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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4. 수요일

독투불패 디플로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과학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포털 뉴스 등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라면 작년 11월 말에 보도되었던 기사를 아마 기억할 것이다. 화성에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발달된 문명이 있었고, 이들이 어느 시점에서 핵폭발에 의해 멸망했다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였다. 딴지 애독자거나 과학과 사람들의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듣는 분들이라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파토 님의 '태양계 연대기'에서 보았던 것와 상당히 유사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하지만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별로 없는, 파토 님의 상상력에 기대서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무려 천조국의 물리학자인 브랜든버그 박사가 미국물리학회의 추계연례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화성 편' 이라고나 할까.


nownews.JPG

기사 원문 - 나우뉴스


필자도 흥미가 생겨 조금 디벼봤다. 일단 확인해야 할 사항은 미국에 정말 브랜든버그라는 물리학자가 있고, 학회에서 저 내용을 발표했는지다. 흥미 위주의 타블로이드 언론에서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들이라든가, 패러디 언론에서 웃기려고 생산해낸 기사에 소위 '기레기'들이 낚이고, 그들이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써낸 기사에 우리가 다시 낚여 파닥거린 사례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잖은가. 구글신께 여쭤보니 브랜든버그라는 물리학자가 실제로 학회에서 저런 내용의 발표를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해당 발표의 초록은 Evidence of a Massive Thermonuclear Explosion on Mars in the Past, The Cydonian Hypothesis, and Fermi’s Paradox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APS.JPG

초록 링크 - American Physical Society


미국물리학회 추계연례회의라고 되어 있는 것을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 프레리 섹션(Prairie Section)의 추계연례회의였다. 규모가 큰 학회의 경우 지역별로 따로 모임을 가지곤 하는데, 미국물리학회 프레리 섹션은 발표자인 브랜든버그 박사가 거주하고 있는 위스컨신 주를 비롯하여 일리노이, 아이오와, 미주리 등 중서부의 대평원 지대에 위치한 주의 학자들이 주로 참여하는 분과인 것으로 보인다. 플라즈마 물리학자인 존 브랜든버그 박사는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분교(UC Davis)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위스컨신 주의 매디슨에 위치한 오비탈 테크놀로지에 근무하고 있다. 즉, 이 내용이 발표된 장소도 정상적인 학술회의고, 브랜든버그 박사 역시 정상적인 교육을 통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므로 정보원 자체는 비교적 신뢰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브랜든버그 박사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과연 말이 되는지를 따져보아야 할텐데, 불행히도 필자의 전공이 물리학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를 직접적으로 평가할 만한 능력은 없다. 하지만 브랜든버그 박사의 주장 중 물리학적인 세부사항은 타당하리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문제점들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이번에 화제가 된 APS 의 초록을 요약해 보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① 동위원소와 감마선 관측결과에 의하면 오래전에 화성에서 두 번의 공중 핵폭발이 있었다. 


② 상공에서 핵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장소는 Cydonia Mensa 와 Galaxias Chaos 두 곳이다.


③ 해당 지역의 최근 고해상도 사진을 살펴보면 침식된 인공물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된다.


④ 따라서 화성에서는 핵폭발로 인한 대량학살이 있었을 것이다.


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유인 화성탐사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①, ②는 대기의 조성이나 표면 동위원소의 종류들을 가지고 하는 추론들이라서 필자가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일단 타당한 주장이라고 치겠다. 물론 이것도 알려진 자료들을 브랜든버그 박사와 다른 각도에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③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주장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화성의 운하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테고, 비교적 최근에는 바이킹 1호가 화성에 근접해 찍은 사진으로부터 생겨난 사이도니아 지역의 인면암 (Face on Mars) 에 대한 주장이 있을테지만 전자는 단어를 잘못 번역해서 생긴 해프닝에 가깝고 후자는 고해상도 사진이 공개되면서 쑥 들어간 이야기다. ④는 ①, ②, ③이 모두 맞다면 역시 참이라고 볼 수 있는 주장이고, ⑤는 화성탐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선 주장들의 진위에 상관없이 수긍할 수 있는 항목이다. 2025년까지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화성에 정착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단체가 실제로 있기도 하고, 시기의 문제가 있을 뿐 언젠가 이루어질 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상식적인 측면에서 ③, 즉 과거의 화성에 핵무기를 만들 정도로 발달한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의 흔적이 ②에서 언급된 두 지역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질문이 브랜든버그 박사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초록만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어 검색을 조금 더 해 보았다. 다행히 초록에 같이 실려있는 참고문헌과 키워드들로 구글링을 하자 브랜든버그 박사의 주장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논문이 발견되었다. 저널 오브 코스몰로지 (Journal of Cosmology) 에 2014년 11 월 출판된 것으로 '과거 화성에서의 대규모 핵폭발에 대한 증거, 사이도니안 가설, 그리고 페르미의 역설(Evidence of a Massive Thermonuclear Explosion on Mars in the Past, The Cydonian Hypothesis, and Fermi’s Paradox)'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APS 의 발표 제목과 동일한 제목이므로 내용 역시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논문이 실린 저널이 좀...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저널 오브 코스몰로지는 우주론을 주제로 하고 동료심사(peer-review)를 거치는 오픈액세스 저널이라고 하는데 심사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는 평을 받는 것 같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저널 오브 코스몰로지 앤드 아스트로파티클 피직스 (Journal of Cosmology and Astroparticle Physics) 는 괜찮은 저널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의심스러운 저널이라고 해도 논문 내용은 의외로 좋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들여다 보도록 하자. 논문의 PDF 파일은 다음 웹페이지에서 링크를 찾을 수 있다. 


pdf.JPG

논문 링크 - Joural Of Cosmology 

(PDF파일이므로 다운로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전체 분량은 50페이지 정도 되고, 앞의 20페이지는 각종 동위원소 관련 자료들을 가지고 화성에서 핵폭발이 있었음을 보이는 부분이고 나머지는 사이도니아 가설, 즉 과거의 화성에 발달한 문명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 제시다. 사이도니아 가설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이킹 1호의 인면암 사진에 크게 기대고 있다. 1976년 바이킹 1호가 찍은 저해상도의 사진에 있는 거대한 바위가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과거의 화성에 사람을 닮은 존재가 살았고 그 존재가 문명을 이룩하여 얼굴 모양의 건축물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20여 년 후 여러 화성 탐사선들이 고해상도의 사진들을 보내오면서 잠잠해진 편인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 작게 보이는 것이 바이킹 1호의 사진이고, 같은 대상을 20여년 후에 찍은 사진이 가운데 보이는 큰 언덕이다. 저해상도의 사진은 얼굴이라고 보려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해상도 사진은... 얼굴로 보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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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혹은 절망적인) 사실은 브랜든버그 박사가 1991년에 제안한 사이도니아 가설을 인면암의 고해상도 사진이 공개된 이후인 지금까지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의 이 논문에서 후반부의 내용 대부분은 인면암을 비롯한 여러 "브랜든버그 박사에게는 인공물로 보이는" 화성 표면의 여러 지형들에 대한 설명이다. 건물 모양의 지형,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이는 지형 등등. 위의 고해상도 인면암(?) 사진을 보고 이것이 인공 구조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분이라면 논문의 뒷부분은 솔직히 일고의 가치도 없는 내용이지만, 어쨌거나 논문에서 화성 문명의 증거로 제시된 사진 몇 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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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버그 박사는 이 사진에서 뚜렷하게 눈과 콧구멍, 그리고 헬멧의 모양이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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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보이는 것은 인면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D&M 피라미드로 불리는 지형이다. 인면암이 얼굴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오른쪽에 있는 포트 맥헨리와 비슷한 모양의 5각형 건물 흔적이라고 본다. 일단 D&M 피라미드라는 것이 제대로 된 5각형 같아 보이지도 않지만, 화성인들은 어떻게 볼티모어에 위치한 포트 맥헨리의 5각형 모양 한쪽에 추가로 튀어나와 있는 저 구조물까지 똑같이 만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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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들은 다른 곳에도 얼굴 모양의 건축물을 여러 개 남겼다. 

위의 사진에서도 두 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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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xias 얼굴과 사이도니아 얼굴의 공통된 특징인 헬멧, 눈, 오른쪽 뺨의 장식 등을 볼 수 있다. 

일단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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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둔덕 (왼쪽 사진에서 알파벳 표기가 되어 있는 부분) 들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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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도니아 얼굴과 D&M 피라미드, 그리고 '도시' 등의 배치를 보여주는 사진. 


결국 브랜든버그 박사의 주장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살펴본 논문에서 오래전의 화성에 존재했던 문명에 대해 브랜든버그 박사가 제시하는 증거는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화성 표면의 몇몇 지형에 대한 과대해석이라는 결론밖에는 내릴 수가 없었다. 인면암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이도니아의 인면암이 사람 얼굴 모양을 본뜬 인공구조물이라고 주장하려면... 글쎄, 하늘의 구름들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모양들도 누군가 구름의 형성과 움직임을 조종하는 기술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인공적인 모양이라고 우겨야 할 판이다. 말머리 성운은 지구에 와서 말을 본 1500 광년 밖의 외계인이 우주의 먼지를 가지고 만들어낸 예술작품인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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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nard 33' by Ken Crawford 

이미지 출처 - Imagingdeepsky.com


물론 논문을 들여다보기 전에도 회의적이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논문을 들여다 보고는 실망이 컸다. 택도 없는 주장을 하는 음모론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 아닌가.. 정상적인 교육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이들어서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지면 약도 없는 법이다. 간혹 터무니없어보이는 이단적인 주장들이 훗날 맞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뭐 한편으로는 화성 탐사로봇이나 유인우주선이 정말 저 지역에서 가서 고대 화성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기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브랜든버그 박사의 주장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냉정하게 해석해 볼 때 망상에 불과하다. 멀쩡해 보이는 박사가 멀쩡해 보이는 학회에 참석해서 하는 얘기도 뜬금없는 헛소리인 경우는 꽤 있는 편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필자의 조금 더 잘 아는 분야의 골때리는 얘기도 한 번 끄적거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독투불패 디플로


편집 : 딴지일보 홀짝,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