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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05. 목요일

독투불패 그렇고그런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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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이 시대의 계백을 위하여]


1. 여자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2. 돈을 벌어도 보람이 없다.





펜더님의 글 잘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 외벌이 가장님들 불쌍한거 맞다. 가장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는 이 참치 CF 한 편이 잘 표현하고 있는 거 같다. 



"나는 1년도 힘든데, 아빠는 벌써 27년째..."


난 저 광고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돌더라. 내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제로 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들의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라고. 이 글을 쓰는 나는 결혼 적령기를 좀 넘긴 30대 미혼여성이다.


한 가정의 경제를 혼자 독박쓰고(?) 책임지는 외벌이 가장들의 고충을 모르는 직장여성은 거의 없을 거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일을 그만두면 외벌이로는 생활이 안 된다는 거 뻔히 알기 때문에 공동생계책임을 지는 워킹맘도 존재하고 정반대 케이스로는 한 달 생활비가 아닌, 용돈 몇백만 원도 모자란다며 투덜대는 전업주부님까지 매우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더라. (좀 심하다 싶으면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케이스였다.) 하지만 그렇게 용돈 많이 받으시는 극단적으로 부유한 케이스보다는 중산층 정도의 전업주부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분들의 현실에 대해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말해보고싶어서 감히 이 글을 적는다. (근데... 하~ 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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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업주부들의 삶도 사회인 못지않게 굉장히 치열하다. 전업주부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보자면 마치 최전방에 있는 '군인'처럼 '생활경제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이 바로 전업주부더라. 주부들이 왜?! 돈돈...할까? 바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딱뜨리며 살기 때문이다.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숫자들로 뒤덮인 주식시장, 그 한 가운데에서 온몸으로 버티고 서있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 주부들의 삶이다. 남성들은 이번 담배값 인상에 굉장히 많이 격노하셨지만 실제로 가정주부들은 그런 방식의 생활 필수품들의 물가인상을 너무 자주 경험하고 또 그만큼 수없이 격노하게 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하시던 말을 인용하자면 "어제는 3천원 이었던 채소값이 오늘은 5천원 한"단다. 이 정도면 돈돈돈돈돈돈...하는 게 무리가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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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일은 겁나게 힘들지만 한정된 돈을 아껴쓰는 일도 결코 쉽지는 않다. 수입이 한계가 있는 직장인 가정의 경우엔 더 빠듯하고, 사업자 남편을 둔 전업주부는 더욱 더 철저하게 정신을 챙기지 않으면 마이너스에다 심각한 경우엔 파산 또는 사채빚에 허덕이는 지경까지 가는 거,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중 자신의 가족을 돈 버는 기계 취급하며 펑펑 쓰는 가정주부의 결말은 대부분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H형님이라는 분의 사모님은 그다지 흥청망청 쓴 전업주부는 아닐 듯 싶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만한 입장에 처한 존재들이 바로 '자취남녀'들이다. 자취를 일찍 시작했었던 내 대학시절 남자친구는 자신이 혼자 밥과 반찬, 찌개 등등을 곧잘 해먹었고 빨래도 직접 하고 청소도 직접 하고 뭐든지 혼자 척척 해결하던 사람이었다. 그 녀석과의 데이트는 거의 주부생활하는 친구와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녀석도 그런 생활을 직접 하다보니까 주부처럼 맨날 돈돈돈돈... 걸핏하면 생활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며 투덜거리더라. 밥 하나 사먹어도 비싸다고 그러고 뭐 사소한 거 하나 구입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사치스런 여자라며 걸핏하면 지적해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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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직장여성이라도 자취 경험 없는 애들은 철없는 애들이나 다름없다. 월급을 용돈처럼 펑펑 쓰고 비싼 뮤지컬 공연 수없이 구경하러 다니고 명품백 겁나 사모으고 그렇게 사는 직장동료들도 봤다. 한 때 나도 그랬지만. 왜냐? 집안을 꾸릴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능한 생활인 거다. 


그런데, 꾸미기 좋아하는 미혼여성이라도 직접 원룸 월세 몇십만 원 지출해가면서 비정한 생활물가를 뼛속 깊이 경험하고 나면 달라진다. 자취를 하는 친구들은 남녀불문 전업주부처럼 돌변한다는 얘기다. 낭만을 찾을 여유도 없이 마트 유상비닐봉투 한 장조차도 벌벌 떨게 되더라고. (그르니깐 나한테 처녀가 벌써 돈 밝히면 안된다는 소릴 하지 말라고!) 


남들 일주일에 옷 여러벌 구입하며 매일 패션이 바뀔때도 굴하지 않고 단벌로 몇 년 견디는 미혼친구도 있다. 평범하게 성실한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은 블로그, 페북, 카카오 등등으로 지름신 자랑할 시간없다. 특히 사회 초년생이나 바쁜 전업주부들은 인터넷 거의 할 시간이 없으니 부디 미혼남성들은 인터넷 글만 읽고 여자를 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현실에서 직접 만나봐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다가 H형의 부인께서 학원강사를 왜 그만두셨을까를 나름 추리해봤다. 학원강사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아이들 학교수업이 끝난 오후 즈음부터이고 업무 종료시간은 보통 11시 정도더라. 거기다 수업 준비 하는데 드는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 여기에 내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는데, 간혹 학원강사들이 학교 앞에서 직접 전단지를 나눠주며 학원홍보업무도 하더라는 것. 거기다 사비 털어서 아이들한테 간식이라도 정기적으로 챙겨주지 않으면 걸핏하면 학원을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더라는 거다. 그 뿐인가. 학원 등록을 안 한 학생이 발생하면 학원 원장실에 불려가서 마치 할당량을 못 채운 보험영업사원 대하는 듯한 잔소리 압박을 감당해야하는 데다가, 학부모 상담까지 학원강사들이 모두 커버 하다보면 시간외 초과근무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몇 년 전부터는 학원강사들 간의 경쟁도 일반 직장 못지 않아졌다고 하더라. (학원 강사친구 몇몇의 이야기를 들은 내용이다. 억대 수익을 올리는 강사도 존재하기에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이렇게 힘들게 강사 생활하는 이들이 다수 있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고충들에 고용불안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다보니 남몰래 9급 공무원 준비하며 일하는 20~30대 학원강사들도 있다고 한다. 학원가 사정도 몇 년 전부터는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문 닫는 학원들도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최근 경기가 좋지 않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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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MBC


한 가지 더, 권고사직 대상 1순위는 아직까지는 워킹맘인 거 아시는가? 미혼인 나에게 조차도 넌 결혼이나 하지 왜 아직도 돈을 벌려고 하느냐는 소리나 하는게 대한민국 남성들(특히 50~60대)이다. 이정도 되면 대한민국 결혼문화는 정말 모순덩어리들이다. 


하지만, 위와 같이 지적할 내용들이 있음에도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 가장의 무게가 과도하다는 펜더님의 의견에 공감의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당신 여자 마초냐고 말씀하실 전업주부님들 많이 계실 테고 당신이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른다는 말씀을 하실 분들도 있을 테다. 그런데 내가 이 30대 젊은 나이임에도, 가장이라는 무게를 못버티고 삶을 마감한 직장남성을 벌써 두 명이나 목격했다. 한 분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 한분은 경제적 압박감에 의한 자살. 두분 다 나름 전문직 종사자셨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부담이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한다. 남겨진 미망인은 결국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매우 후회를 하시더라. '내가 왜 몰랐을까... 내가 왜 좀 더 잘 해 주지 못했던 걸까'라고. 그럴때마다 난 속으로 '왜 이제서야 철이 든 거냐'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반드시 남성들만의 역활이 아님은 간과해선 안 되겠다. TV판 '미생'에서 나오는 안영이 같은 여자 외벌이 가장도 내 주변에 몇몇 있다. 그녀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10년 정도 된다. 드라마속 안영이처럼 직계 가족의 상황때문에 몸과 마음이 아파도 쉴틈 없이 외벌이를 감행해야 하는 환경에 처한 여성 가장들인데 그 친구들 집안환경은 참 절망적이더라. (더 자세하게는, 개인사생활이라서 적지 못 하겠다.) 


그러고보니, '여자로 태어나 대기업에서 별따기'의 저자이자 승무원 출신 최초로 항공사 임원을 지낸 뒤 정년퇴임했다는 이택금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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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라도 계속 현장에서 근무하셨나본데 무려 33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단다. 이 분 자서전에도 보면 역시나 가장의 무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가족이라는 이름의 희망', '여전히 위력적인 고민, 일이냐 가족이냐' 등의 내용을 보면 이 여성분도 가장이라는 무게를 간신히 버티며 회사생활을 해오셨던게 아닐까 싶다. 


외벌이 가장의 무게감을 단순하게 남녀, 부부관계만의 문제로 보기에는 최근의 상황은 너무나 복잡하고 감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전업주부도 쉽지 않고 외벌이 가장에게도 너무 힘든 세월인 거다. 


다들 진정하시고, 너무 가정 내부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답이 안 나오고 싸움만 커질 뿐이다. 아니, 그 이전에 내 몸 하나 보전하기에도 벅찬 시절인 것을, 가장인들, 아내인들, 자식인들, 어쩌라는 얘기인가.







독투불패 그렇고그런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