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2. 06. 금요일

파토









1.jpg


마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흔한, 하지만 여전히 신기한 모자에서 토끼를 만들어내는 마술부터 자그마치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식은 물론 자연의 법칙까지 위배하는 듯한 마술 기법들은 수천 년 전 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을 놀래키고 또 즐겁게 해 왔다.


우원은 마술의 오랜 팬이다. 20여 년 전부터 마술의 역사와 마술사들의 전기, 자서전 등을 읽어 왔고 아는 마술 기법도 꽤 있다. 그러다보니 재작년과 작년, 과학과 사람들의 송년 파티 때 마술사를 초빙하기도 했었다.


물론 아는 것과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다른 이야기고 손이 무딘 편이라 도전해 본 적은 없다. 그저 마술을 보며 즐기고 그 이론과 실제, 배경 철학 등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마술을 즐기는 것에는 몇 단계가 있다. 마술사가 벌이는 놀라운 일들을 그저 엔터테인먼트적 관점에서 향유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단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순수한 관객의 상태를 굳이 벗어나지 않는다. 머 꼭 그럴 이유도 없다.


허나 좀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면 간단한 마술의 기술을 들여다 보게 된다. 손바닥 가운데에 어떻게 물건을 숨기는지, 카드를 섞을 때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일부 마술 장치의 종류와 사용법 등을 알게 되는 단계다. 그래서 마술을 취미로 삼고 친구나 친지를 상대로 아마추어 마술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은 손기술이나 소도구를 넘어 마술의 바탕에 깔린 심리와 논리를 이해하는 단계다. 사실 마술은 기술이나 장비 이상으로 심리 싸움이기 때문이다. 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청중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 또 청중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액션을 취하는 거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술사와 당신이 각각 카드 한 장씩을 고른다. 마술사는 두 카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당신이 고른 카드를 뒤집어 당신에게 도로 주고, 두 손으로 꼭 누르고 있게 한다. 그리고는 잠시 주문을 외우거나 손을 꼼지락 거린 후 손을 펴면 마술사의 손에는 당신의 카드가 놓여 있다. 물론 당신의 꽉 닫혀진 손 안에는 어느 틈에 그의 카드가 들어 있다.


2.jpg

데이빗 블레인. 21세기 최고 마술사 중 한 명.

다양한 마술 기술의 마스터이고 후디니식의 탈출 묘기에도 능하다.


이런 것을 직접 눈 앞에서 보면 굉장히 놀랍고 신기하다. 처음에는 대체 어떻게 한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이 마술은 기본 원리를 알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이런 마술의 대부분은 시간차 공격에 그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술에서 모든 청중들의 관심은 꼭 맞물린 당신의 두 손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내내 열리지 않은 그 손바닥 속의 카드가 말 그대로 마술처럼 바뀌어 있는 것에 경악하고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마술사라도 상대방이 모르게 닫힌 손을 열고 카드를 바꾸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럼 뭐냐구?


마술사가 카드를 당신에게 주기 전에, 즉 서로 고른 카드 두 장을 주변에 확인시켜 준 직후에 잽싸게 자기 것과 맞바꾼 거다. 그 때 마술사는 잠시나마 두 장의 카드를 자기 손 안에 함께 들고 있고, 기술이 좋은 프로라면 아무도 모르게 카드 두 장을 맞바꿀 수 있다. 하지만 청중은 이때 교환이 이미 이뤄졌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후 맞잡은 당신의 두 손 사이로 바꿔치기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처럼 여기고 놀라는 거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방법인데, 약간의 손기술과 마술사의 주도적인 상황 리드, 그리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미스디렉션’(misdirection)을 통해 우리는 대책없이 속아 넘어간다. 그래도 이 정도는 쉬운 편이지만 마술이 복잡해지고 정교해 질 수록 그 답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며, 마술사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마술을 개발해 마술 트릭과 청중 사이의 갭을 늘림으로써 그 ‘불가능성’을 업데이트한다.


마술에서 불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1980년대에 데이빗 커퍼필드가 비행기나 자유의 여신상을 없애고 만리장성을 뚫고 지나가는 등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마술들을 선보인 이래로 데이빗 블레인, 대런 브라운, 크리스 앤젤, DMC, 다이나모, Yif 등 젊은 마술사들이 속속 등장해 정말로 불가능할 것 같은 마술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아래는 그런 예 중 하나로, 최근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술사 ‘다이나모’의 작품이다.



이 정도 되면 보는 사람으로서는 놀라움이나 즐거움을 넘어 상당히 진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술 좀 안다는 우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혹시 일종의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된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로 서구에는 이런 마술들을 악마의 존재의 증거라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마술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윤리 중 하나가 바로 초자연적 능력을 표방하지 않는 거다. 초능력자로 자처하는 순간 그들은 예술가이자 엔터테이너가 아닌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정직하게 부와 명성을 얻는 게 아니라, 물리법칙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로 위장함으로써 숭배자와 신도들의 추종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아래의 인물, 유리 겔러다.


3.jpg


우원이 초딩 때 한국에도 와서 티비에 출연한 바 있는 그는 1970년대 스푼 밴딩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신기한 능력으로 국제적인 유명인이 됐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 이전까지 다른 마술사들과 사뭇 달랐다. 마술사 특유의 과장된 복장을 하지도 않았고 무대에 올라 복잡한 도구들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진지하고도 정직한 표정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외계인을 만났으며, 그래서 숟가락을 구부리고 씨앗을 발아시키며 고장난 시계를 움직이게 하고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카메라와 청중 앞에서 실제로 그 능력을 선보였다. 그래서 당시 전세계인들이 그를 믿었는데, 심지어 과학자들의 통제된 실험도 일부 통과했고 그 과학자들 중에는 겔러가 진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보증해 준 경우도 있었다.


그런 그의 정체를 꿰뚫어 본 것은 다름아닌 속임수의 전문가인 마술사들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라고 해도 간파하기 힘든 마술사 특유의 손기술이나 심리 트릭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마술사들이 유리 겔러가 들고 나온 ‘기적’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재현해 냈고, 그가 물리법칙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던 거다.


4.jpg

초능력과 심령술 사기를 전문적으로 밝혀내는 마술사, 제임스 랜디.


5.jpg

영국의 ‘멘탈리스트’ 대런 브라운.

텔레파시나 천리안 등 마치 초능력을 가진 듯한 놀라운 능력을 TV에서 보여주고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함으로써 심령술의 허상을 고발한다.

유명한 회의론자(skeptic) 리처드 도킨스와 친분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역설을 보게 된다. 마술사라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남을 속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구사하는 속임수가 진짜 같이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진짜 ‘기적’을 일으키는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을 또한 분명히 밝힌다. 그랬을 때만이 그들의 마술 행위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마술사들이야말로 사실은 근대적 과학 문명의 산물이다. 예전의 마술사들은 대부분 유리 겔러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신 또는 악마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은 것으로 자처하며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속임수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과 권위를 확립했으며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을 갈취했다.


그 시절에는 그런 그들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무엇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기준마저 모호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의 비밀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으면서, 이제 마술은 더 이상 기적을 가장하지 않는 지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매우 건전한 오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마술의 세계에 사는 그들이야말로 실은 미신이나 망상의 덫에 빠지지 않고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이 바로 그들의 마술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멋진 마술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적이나 주문, 악마와의 거래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의 연습과 노력, 철저한 기획과 계산, 적절한 세팅과 도구, 그리고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실행력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트릭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 마술사들이 아닌 그들의 마술을 지켜보는 우리들이 더 전근대적인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야말로 합리적인 원인을 차분히 찾아가기 보다는 조금만 신기해도 쉽게 신비주의에 기대고 툭하면 초자연적인 해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름과 형태, 크기는 조금씩 달라질망정 우리는 끊임없이 그런 유혹에 빠져들며,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기가 다반사다.


그런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실은 중세로 회귀하고 있다.


6.jpg


우리가 사는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한다는 건 마치 마술사들이 유리 겔러의 ‘초능력’을 간파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학을 모를 때는 세상의 모든 것, 해에서부터 구름, 바람에 이르기까지 전부 마법이나 기적이다. 그래서 경이롭기도 하지만 그 곳은 실은 무지와 망상이 주연인 연극 무대다. 진짜 세상이 품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경이감을 찾아 가는 대신, 착각의 세계 속에 우리를 안주하게 하는 좁고 어두운 스테이지일 뿐이다.


하지만 과학의 이성과 합리성을 통해서 우리는 그 답답한 무대를 벗어날 수 있다. 유리 겔러가 진짜 초능력자가 아니라는 점이 당장은 실망스러울 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인간이 노력을 통해 얻은 기술과 합리적 계획을 통해 스카프로 아이폰을 뚫는(것 같이 보이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것은 또 다른 경이로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자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지만 후자는 거짓을 가장한 진실이다.


전자에 매몰되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경배하거나 추구하고 또 두려워하게 된다. 후자를 받아들이면 편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인간의 잠재력에 유쾌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과학을 아는 것은, 이를테면 자연의 마술이 동작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거다. 그 마술은 마법을 참칭하지 않으며 기적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그 마술의 비법을 많이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떤 태도로 즐겨야 하는지는 알게 됐다.


믿으면 편한 것들을 일단 의심하는 합리적 회의주의는 때로는 우리를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다. 우리 인간의 진정한 자존심은 모르는 것에 억지 해석을 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른다고 인정하고 조금씩 알아 나가는 태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인간이라는 지위에 걸맞는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다.


끝으로 아래는 제임스 랜디의 말이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나는 가능한 한 내가 사는 세계를 확실히 이해하고 싶다. 가급적 내 정신을 최대한 깨워 두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종의 편안함을 주는 많은 환상을 포기해야 되지만, 최대한 ‘진짜’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그럴 용의가 있다.







 1.jpg


현재 본지는 <생각비행>출판사와 연계하여 딴지 인기연재물을 출판하고 있다. 

첫빠타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가 책으로 나왔고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관련 자료 출처, 계보 등  

아주 보기 좋게 정리가 되어 나온 상태. 


많은 언론에서 본 저서를 다루었기에 언론사 서평 또한 링크 걸어 놓았다. 

관심 있으신 분덜은 아래로 놀러가시라.  



딴지마켓에서 책 구매 가능합니다.

딴지마켓.jpg













지난 기사


1. 연재를 시작하며 (1)

2. 연재를 시작하며 (2)

3. 중력의 임무 (1)

4. 중력의 임무 (2)

5. 중력의 임무 (3)

6. 과학 스터디의 기억

7. 시간을 여행하는...안내서

8. 소설 '20년 전후'

9. 시간과 평행우주..안내서

10. 나는 대체 뭐냐 (1)

11. 나는 대체 뭐냐 (2)

12. 고대의 실험 (上)

13. 고대의 실험 (下)

14. 고대의 실험 썰

15. 과학은 무엇을...있을까

16. 무신론자를 위한 레퀴엠

17. 위기의 시대, 과학의 힘

18. 단편 소설 <30초>

19. 단편 소설 <30초>, 썰

20. 영구기관/무한동력

21. 인류의 과학...실상

22. 과학은 감동이다

23. 계몽의 임무

24. '계몽의 임무' 해설편

25. 과천과학관 SF2014 전시 이야기

26. 진화에 대한 착각

27. 달 탐사는 마냥 삽질일까

28. Memento Mori

29. 영생, 인류 마지막의 유혹 , Memento Mori 썰

30.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31.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해설판)













파토
트위터: @patoworld

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