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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위원장님께 드립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의 무거운 자리에 앉으신 것을 축하드려야 하나 그럴 마음이 없음을 삼가 고합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사학과 88학번입니다. 게으르고 불민한 탓에 위원장님의 수업은 교묘히 피하였기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바는 없으나 엄연히 학교의 어른이셨고 나아가 고 김준엽 총장께서 총리보다 훨씬 나은 자리라 하셨던 고려대학교 총장까지 지내셨으니 어찌 사제간의 예의를 파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오늘은 사제의 예를 내려놓고 고개 쳐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위원장님이라 칭하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위원장님께 감히 고합니다. 역사를 두려워하십시오. 평생을 역사에 몸 바쳐 온 분께 무례한 얘기일 수는 있으나 오늘 위원장님의 모습에는 결코 무리한 충고가 아닙니다. 41년 전 국정교과서가 지금 대통령의 선친에 의해 도입될 때 위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국사가 획일적으로 되는 것에 반대한다, 획일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사료의 개발에 따라 역사 내용 자체도 달라질 수 있는 마당에 다양성을 말살하고 획일성만을 찾으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던 분이 오늘 이렇게 말을 바꾸십니다. 


“독재체제 에 있을 때하고 그렇지 않은 체제하고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렸다고 대통령의 명예훼손으로 사람을 잡아 가두는 나라가 유신 체제와 ‘기본적으로’ 얼마나 다른지는 논외로 합니다. 그러면 유신 체제 같은 독재 국가가 아닌 어느 나라에서 국정 교과서 같은 역사의 획일화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북한 같은 왕조 국가나 이란 같은 신정 국가 말고 대관절 어느 나라에서 ‘국정교과서’를 가르치고 있답니까. 어떻게 역사를 공부하신 분이 이렇게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며 자신의 과거를 모욕하며 나아가 한 나라의 역사를 이리 모욕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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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경향



위원장님의 스승이시자 전 고대인의 스승이라 할 고 김준엽 총장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역사학자로 역사의 신을 믿는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자.”


지금 위원장님은 역사의 신전을 더럽히면서 역사에 칼을 꽂고 현실의 비루한 돗자리 위에서 닭벼슬에 혹하여 계십니다. 지난 9일 <한국사 교육의 올바른 방향>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기가 막히다 못해 분노가 치밉니다.


"국가 정체성이 역사의 상징이기에 역사 서술은 항상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아무리 학문에 뜻이 없어 낙제를 겨우 면한 신세라지만 그래도 수십 년 역사를 공부한 이의 입에서 “국가 정체성이 역사의 상징”이라는 언명이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차마 제 입으로 위원장님께 반박하기 참람하여 강만길 교수님의 말씀을 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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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정체성을 국민에게 강요할 이유가 없고, 애써 그 역사를 획일화하여 아이들에게 주입해야 할 까닭이 없으며, 국민에게 알아야 할 것과 알지 말아야 할 것을 구태여 구분할 까닭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의 교환 속에서 상식과 진리에서 먼 것들은 떨어져 나가게 마련이며 억지와 편견의 모서리들은 다듬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위원장님은 이 간단한 역사적 진리를 더욱 간단하게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모욕하다 못해 흙탕물에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의 말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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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을 평가할 때 일방적인 과를 책정하는 것도, 공만을 기리는 것도 역사학에서는 금기라 할 만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비롯한 모든 학문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바로 금기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제한하는 울타리를 치는 일이며 이 이상은 넘지 마라는 선을 긋는 소행이며, 내가 정한 기준에 맞추라는 강요를 하는 행위입니다. 김정배 위원장님의 저 말을 들으며 저는 위원장님이 역사학자라는 사실에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위원장님 당신이 교수로 녹을 먹었던 당시의 학생이었음이 눈에서 불길이 일도록 싫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히틀러도 공 7과 3의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며 이오시프 스탈린도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공을 세며 수염을 비틀겠지요. 공식적으로 공칠과삼(功七過三)의 평가를 받았던 모택동도 흐뭇해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위원장님 자신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역사는 과오를 내세워 단죄하는 학문이 아니며 또한 공만을 찾아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학문도 아니며 밑도 끝도 없는 숫자를 들이대어 가르마를 탈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기분 나쁘시겠지만, 강만길 교수님을 또 끌어대서 위원장님의 종아리를 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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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스승의 종아리 운운한다 버릇없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원장님의 다음 말씀에서는 저는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를 들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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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유명한 크로체의 말입니다. 여기서 현대사란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역사를 통칭해서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하지만 결국 역사란 현재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와 역사는 분리될 수 없다는 설파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우리 체제는 가까이는 1987년의 소산이며, 1950년의 자식이며, 멀리는 1945년의 손자이자 1910년의 증손자입니다. 역사가로서 그 하한선을 어디에 설정하시려 합니까. 문경 보통학교 교사 박정희가 큰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건너갈 때입니까? 5.16 이전에서 끊으시겠습니까? 유신에서 커트하시겠습니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역사라는 강물을 당신의 손바닥으로 갈라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위원장님이나 그 비슷한 부류들의 손을 모으면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까? 정말 역사학을 공부하신 분 맞습니까?


후회가 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나 할 것을. 위원장님 같은 분이 역사학의 태두로 인정받고 국사편찬위원장 감투를 쓸 만큼 역사학계가 ‘만만’한 줄 알았더라면 모든 것을 작파하고 학문의 길을 갈 걸 그랬습니다. 위원장님과 위원장님을 임명한 사람의 뜻대로 ‘국정교과서’가 흉물스럽게 부활하고 또 그걸 역사학계가 ‘수긍’한다면 그 후회는 더욱 짙어질 것 같습니다.


김정배 위원장님 역사를 공부한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더 이상 추해지지 마시고 이 이상 남루해지지 마십시오. 다이아몬드로 심순애를 유혹했던 ‘김중배’ 같은 시정잡배가 아니라 역사학자 김정배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결정적으로 위원장님 당신께서 평생 다뤄 온 역사라는 학문에 제발 겁을 좀 내십시오. 역사가는 역사라는 이름의 호랑이를 키우는 사람입니다. 언제 그에 잡아먹힐지 두려워하지 않는 역사가는 언제 토막 나고 찢어발겨 호랑이의 뱃속에서 삭아갈지 모릅니다.

 

 

 



편집부 주


'한국서 국정교과서화 반대 역사 관련 학과 출신 댓글 서명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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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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