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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10. 화요일

벨테브레









 문재인의 배수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배수진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에 문재인 의원이 선출되었다. 대선 패배 이후 리더십 공백에 허덕이던 야당에는 지난 대선 2위를 차지한 문재인의 존재감이 절실했다.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지난 대선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문재인으로서도 더 이상은 전면에 나서라는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절박함이 문재인에게 야당 대표라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게 만들었다. 또한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인 문재인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총선을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의 배수진이기도 하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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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이래 삽질을 거듭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허접한 위기대처능력을 인증했을 뿐 아니라, 초이노믹스라는 이름의 무리한 경기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서민 생활을 위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더 내고 덜 받는' 연말정산이었을 텐데 결국 대다수의 근로소득자들이 예전보다 많은 세금을 내게 된 상황에서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박근혜는 끝까지 증세 없는 복지를 부르짖는 등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던 누군가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진심으로 전문가에게 상담받기를 권하는 바이다.)

 

도와달라며 피켓까지 들고 읍소하던 김무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몰수하고 복지가 과잉이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개드립까지 작렬했지만, 나태해진(?) 국민들은 테러 수준의 비하 발언을 당하고서도 그러려니 할 뿐이다. 똘똘한 야당이 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이다. 고승덕처럼 못난 야당을 둔 국민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퍼포먼스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야당에게 있어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을 심판하고 남은 2년을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며, 2017년 정권교체 및 그 이후 국정운영을 위해 필수적으로 획득해야 할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총선을 진두지휘할 당 대표는 야당이 보여줄 수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내세워야 할 것이기에, 대표 경선 역시 역대 야당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던 두 리더십, 김대중 vs 노무현의 대결로 압축되었고 명불허전,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이 펼쳐졌다.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는데, 첫째로는 흥행에 실패한 무관심 전당대회였다는 혹평이 그것이요, 둘째로는 고질적인 계파 갈등을 여지없이 드러낸 막장 전당대회였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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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는 엉망이었나?

 

우선 흥행 문제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야당 전당대회에 관심을 갖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 언제는 야당 전당대회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거나, 오랜 기간에 걸쳐 전국 순회 경선을 치르는 형태였다면 모르겠지만 당 대표를 뽑는 1회성 경선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게 더 낯선 일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고질적인 계파 갈등과 관련, 새정치민주연합에 친노와 비노의 대립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허나 민주국가의 정당에서 계파가 생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정책의 방향이나 한정된 자리 배분을 놓고 계파 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대표 선출, 그것도 총선 공천권과 대선 후보 경선 규칙 등을 좌우할 수 있는 당권을 놓고 경쟁이 붙었는데 계파 간의 대립이 전혀 없다는 건, 오히려 그 정당이 1인의 지도자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사당(私黨)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당장 지난해 새누리당의 전당대회만 보더라도 친박(서청원)과 비박(김무성)이 얼마나 살벌한 대결을 펼쳤던가, 심지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패밀리가 다 해먹고 있는 조선로동당조차 심심하면 종파를 만든다는 이유로 주요 인사를 날려버리는데 유독 대한민국의 새정치민주연합만 계파 간의 대립으로 집권할 수 없는 무능한 정당인 양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태도라 생각한다.

 



 계파를 넘어서는 큰 정치

 

문제는 친노 vs 비노로 상징되는 계파 구조나 계파 간의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계파 간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각종 정책의 결정 과정이나 인사 문제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필연적으로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있음이 명백한 문재인 대표의 입장에서는, 총선 및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서 소위 비노 진영이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을 만들지 못한다면 후보가 되더라도 당선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당직 인선이나 주요 지역구 공천과 관련해서도 진영과 계파를 넘어 폭넓은 용인술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런저런 잡음이 없지 않았던 민주통합당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당내에서도 친노와 문재인 대표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박지원 후보를 찍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소위 친노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작은 이익을 쫓기보다 큰 정치를 하기 바란다. 가까운 사람들을 곳곳에 심는 것보다 아직까지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현재의 친노를 넘어서는 거대한 친 문재인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계파 간의 갈등도 자연스레 극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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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번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룰 변경 논란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비대위와 전준위(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며 문재인 후보 측의 입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지만, 어차피 경선 후에도 박지원 후보 측을 안고 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 후보 본인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당연히 정치생명까지 걸고 배수진을 친 문 후보의 절박함과 예측을 불허하는 박빙의 승부가 된 막바지 판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뮬레이션해보니 원래의 룰과 변경된 룰의 차이는 전체 득표율 대비 1.5% 정도에 해당되는데, 이 정도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대표가 되더라도 난감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노무현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불리해 보이는 승부수도 마다하지 않는 과감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문재인이 제1야당 대표를 넘어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무현을 넘고 2012년의 스스로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박지원 후보의 선전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당연시되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밸런스 붕괴의 미스매치로까지 여겨지던 박지원의 출마였지만, 일흔네 살의 노구를 이끌고 당권 경쟁을 끝까지 혼전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저력은 정권교체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표와 그 지지자들 입장에선 2월 2일 JTBC 토론을 전후해 분당까지 거론할 정도로 과격해진 박지원의 발언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를 인신공격이나 일삼는 저질 막장대회로 전락(?)시킨 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총선과 대선 기간 중에 그보다 더 지독한 공격과 흑색선전에 노출될 문 대표로서는 적절한 스파링을 통해 맷집을 키워두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더욱이 2012년 대선 당시 박지원은 어지간한 친노보다 더 적극적인 문재인의 후원자가 아니었나. 근소한 표 차이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승복을 선언한 박지원의 결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표는 반드시 조만간 박지원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현장 연설에서 말했던 "흩어진 48%를 다시 모으고,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독이 든 성배? 독이 든 참배?

 

어쨌건 문재인 대표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로 시끌벅적한 걸 보니 만만치 않은 자리임은 분명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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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취임 첫 일정으로 하필이면 이승만-박정희 두 사람의 무덤 앞에 고개 숙인 야당 대표의 모습을 봐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부인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상황에선 더욱 그러하다. 지난날 두 사람의 독재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이쪽에서 그들에게 먼저 가서 머리를 숙여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냉정해지자.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얻은 48%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산술적으로 박근혜를 찍었던 51.6% 중 적어도 1.8% 이상의 유권자를 야당으로 돌려놔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 중에 상당수는 '이승만-박정희이 독재자인 건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업적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중용 돋는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김대중-노무현 묘소도 참배하는 대인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승만-박정희 묘소도 외면하는 소인배'로 단순무식하게 분류한 보수언론의 프레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기본전제는 논리보다는 직관의 영역이기에 설득을 통해 극복하는 것보다는 형식 면에서 다소 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서라도 우리 편으로 만들 궁리를 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무덤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고 죽은 독재자가 살아 돌아올 게 아닌 다음에야, 근본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예의를 갖추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야당 대표 시절 이승만-박정희 묘역에 참배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김대중이 이승만-박정희에게 굴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고인에 대해서는 다소 관대해지는 문화적인 요소 탓도 있겠지만, 사실 보수 정치인들도 김일성-김정일이나 야스쿠니 신사 정도가 아니면 망자에게 예의를 표하는 데에는 그럭저럭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물론 그래놓고 뒤돌아서서 욕하는 데에도 별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지만. 


심지어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가 철천지원수 중 한 명으로 여기며 군대까지 보내 막으려 했던 공산 베트남의 두목(?) 호치민의 묘소에 참배하는 불효막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베나 어버이연합은 물론이고 월남전참전자회나 고엽제전우회에서조차 반발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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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당연히 문재인의 비굴한 모습(?)에 피꺼솟하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옛날이야기 한 가지.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던 백원우는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한 이명박에게 "정치 보복 사죄하라"며 사자후를 토했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후 백원우는 '장례식방해'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다). 모두가 놀라면서도 통쾌해 하고 있을 때, 문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명박에게 다가가 정중히 사과했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영결식의 격을 높여준 멋진 모습이었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많은 사람들에게 문재인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 장면이었다.

 

그 당시 문재인인들 이명박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대의를 위해 감정을 억제하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때로는 적뿐만 아니라 우리 편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총선승리와 정권교체에 헌신하는 것. 이것이 제1야당 대표라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든, '문재인의 운명' 아닐까.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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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