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김현진입니다 추천16 비추천0

2015. 02. 12. 목요일

김현진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김현진의 몸살]경찰아저씨의 옷자락

[김현진의 몸살]헐리우드 액션

[김현진의 몸살]울지말아요, 다들

[김현진의 몸살]남의 남편 밥을 차리면서: 쌍차 해고자를 위한 밥상

[김현진의 몸살]가장 강렬했던 남자의 감촉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와 저는 사사건건 부딪혔죠. 특히 정치 성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달랐어요. 집에서는 신문을 두 개 구독했는데 하나는 <국민일보>, 하나는 <조선일보>였죠. 전자는 목사인 아버지가 무조건 봐야 하는 업계 소식지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후자는 구독을 중단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다 자해 소동까지 벌인 다음에야 말릴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렇게까지 할 것 있었나 싶긴 하지만 열아홉 살은 펄펄 끓는 나이 아니겠어요? 그 때는 신문 구독을 저지하는 게 쿨한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아버지와 멀어지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모든 말씀은 그 신문의 헤드라인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았거든요.

 

MB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니까 벌써 오래 전이네요. 부모님 양쪽으로 3대째, 좀 지나치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집안답게 이모님들은 글쎄 새벽기도에 나가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드리지 뭐예요. 진작 저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할 것을


어쨌거나 선거가 며칠 안 남았을 때 마침내 칼을 뽑아들었어요. 표 매수에 나선 거죠. 부모님을 마장동으로 불러 신선한 한우 특수부위를 사드리며 아버지에게 애걸복걸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동안 아버지에게 학비를 대 달라고 했어요, 용돈 한번 받아 써 본 적이 있어요

 옷을 사 달라고 했어요, 신발을 사 달라고 했어요? 

 그동안 얻어가진 것 하나도 없어도 뭐라고 한 적 없잖아요

 지금 제가 아버지한테 뭘 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루만 투표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누굴 찍어 달라는 것도 아니구요. 사표를 만들어 줘요

 그냥 어디 놀러나 가세요. 아무도 찍지마시라구요."


그에 아버지는 소금기름장에 갈매기살을 열심히 찍어 드시며 저에게 일갈했죠.

 

2009012344497331.jpg 

(갈매기살은 잘못이 없다.)


 "네가 지금 옛날 자유당 막걸리 선거를 욕할 수 있냐!"

 

그리고 우리는 차돌박이를 더 주문했어요. 마블링이 선명한 고기가 익는 동안 아버지는 된장찌개를 한 숟갈 뜨시며 말했어요. 알겠다. 카드영수증에 찍힌 액수에 위가 좀 아팠지만, 저는 만족스럽게 자취방으로 돌아갔어요


선거 당일 아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죠. “, 니네 아버지 투표하러 갔다.” 일찌감치 될 리가 없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방에서 뒹굴고 있던 저는 대노해서 벌떡 몸을 일으켜 부모님 집으로 달려갔어요. 아니, 목사가 거짓말해도 돼? 서슬이 퍼래서 집으로 들어선 제 앞에서 인터넷 장기를 두다가 아버지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어요.

 

104-yyhome53.jpg


 "나 이인제 찍었다."


포털뉴스에 오랜만에 이인제가 나온 걸 보니 아주 위가 아파지더라구요. 그 날의 기억 때문이었어요. 이인제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에이 죽 쒀서 개 줬네... 그래도 죽은 계속 쒀야 하지 않겠어요? 개를 줄망정, 줄 수 없는 놈들 때문에 멈출 순 없죠. 저는 오랜만에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 딸이 당비를 내고 있는 당을 절대 찍어 주진 않지만 죽 쒀서 개라도 주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가신지 4. 아버지, 이제는 당신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당신한테 백 원 한 장 받아 써본 적 없고 목회 한 길만 가야 한다며 경비 일이라도 하라고 애걸복걸해도 꼼짝도 안 하던 당신. 회사 안은 전쟁이고, 밖은 지옥이라고 하죠. 어쩌면 당신은 여린 겁쟁이가 아니었나, 이제야 감히 생각해 보곤 해요. 이렇게 강퍅한 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갓 탈피한 새우처럼, 약하고 작고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핑크색의 생물이 내 아버지였다고. 그러면서 내 책이 안 팔리거나 내가 쓴 영화 시나리오가 망하는 건 하나님에 대한 내 신앙이 똑바로 되어 있지 않다고, 모든 것은 결국 내 탓으로 만들던 당신. 내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한 말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말들을 시원스럽게 꿀꺽 삼키기에는 목에 너무 걸리는 게 많았어요. 


아버지, 이제 눈을 감아도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요. 다만 벽제 화장장에서 아버지를 태운 몇 개의 뼛조각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저는 그 순간에도 구조가 선명한 뼛조각들을 보며,


 '아, 씨발. 감자탕은 앞으로 다 먹었네...'

 

라고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게 당신은 화덕을 지나 고운 가루가 되어 왔죠. 이제 인터넷 장기 좀 그만 하고 목사가 됐으면 설교 준비나 하라고 투닥거리거나, 너는 신앙이 그 따위라 만나는 남자마자 개판이라고 잔소리할 수 없는 고운 가루가 되어서 말이에요. 장례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자매들, 그러니까 이모님들에게 끌려 고향으로 갔어요. 저는 옷장을 열었더니 아빠 냄새가 훅 끼치는 옷들이 잔뜩 걸려 있더군요. 집에 오자마자 제가 한 건 그 옷들을 죄다 재활용박스에 집어넣는 것이었어요. 마치 당신을 쫓아내듯이. 엄마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당신을 유배시키듯 옷과 신발을 밖으로 쫓아냈어요. 키가 나만했던 아빠, 웬 깔창은 그렇게도 좋아하셨는지 당신이 슈퍼주니어도 아닌데


내가 따로 간직하려고 엄마에게 아버지를 좀 놓고 가라고 했더니 엄마도 참, 아버지를 빈 청국장 통에 넣어 놨지 뭐예요. 핑크색 프림통에 당신을 한 점 흘리지 않고 무사히 옮겨 담고 빈 통을 헹구려 하니, 물에 둥둥 뜬 당신의 조각들이 왜 그렇게 눈을 찌르듯 아파왔을까요. 아버지, 당신이 살아 계셨다면 얼굴을 찡그렸을 테지만 차마 당신을 하수구로 흘려보내 김치 찌꺼기니 어느 집의 먹다 남은 찌개 국물이니 하는 것과 섞을 수가 없어서 저는 당신을 원샷했답니다. 웬일로 목에 걸리는 것 없이 넘어가준 아버지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어요.

 

20120930204507705.jpg

(KBS 드라마 '내딸 서영이'의 한 장면)


고작 3-4년인데, 아버지, 이제 당신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버지를 떠올리려고 애쓰면, 다만 그 입안의 뽀드락하는 감촉이 떠올라요. 한때 당신을 구성했고 나를 만들었던 당신의 조각들, 차마 배수구에 버릴 수 없어 내가 꼭꼭 씹어 삼켜 버린 당신의 조각들, 갈매기살과 차돌박이를 배불리 먹고나서 이인제에게 표를 던진 당신의 조각들. 평생을 다투면서도 남의 집 반찬 나부랭이와 섞이게 할 수는 없었던 당신의 조각들, 지금도 당신의 조각들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겠죠


아버지를 아들처럼 사랑했던 외할머니 옆에 묻힌 당신의 묘소에 아직 묘석 하나 세우지 못했지만, 당신의 조각들을 남김없이 꼭꼭 씹어 삼킨 내가 어쩌면 당신의 묘비로군요. 아버지, 신통치 않은 묘비라서 죄송해요. 우리가 했던 그 많은 싸움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왈칵, 보고 싶은 날이면 나는 내 몸 어딘가를 지금도 떠다닐 당신의 조각들을 생각해요. 내 입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마지막 이별과, 끝내 내가 당신의 묘비가 됨으로써 우리가 완전히 헤어지지는 않았던 것이 가끔은 위로가 돼요. 아주 실낱같이 말이에요








김현진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