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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16. 월요일
챙타쿠










0. 기억하라, 네 덕질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세상에 덕후는 많다. 다들 분야와 깊이·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주위를 둘러보라,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덕후일 것이다. 마냥 착하기만 한 남자친구도, 참하고 조용한 과 친구도 알고보면 덕후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그저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덕후가 아닌 척 하는 것)를 잘할 뿐, 커뮤니티계를 사로잡는 덕후의 제왕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외로움을 싫어하듯, 모든 덕후도 외로움을 싫어한다. 모든 덕후들을 외롭게 하지 마라. 덕질은 나누어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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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보다 멋드러진 존재는 없다.


오늘은 백수 덕후들에게 추천할 만한 인형 덕질을 소개한다. 인형 덕질 중 가장 돈이 덜 드는 덕질로, 제 아무리 스크루지라도 쉽게 시작 할 수 있다. 바로 디즈니 베이비돌(이하 베이비돌)이다. 가격이 구체관절인형의 1/10로 매우 저렴하여 가벼운 지갑으로도 쉽게 인형놀이를 할 수 있고, DIY(Do It Yourself)로도 충분히 가능하여 덕질 이행과정에서 소요되는 돈이 매우 적다. 지갑은 허하나 인형으로 마음을 채우고 싶은 백수라면, 베이비돌로 인형 덕질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백수라면 공부를 해라.)




1. 그대 지갑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베이비돌을 향해 'Shut up and Take my money'를 외치기 전에 베이비돌이 뭔지 대강 알고나 가자. 베이비돌의 정식명칭은 'Disney Animators' Collection Doll'로, 디즈니 영화 속 공주들 인형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뮬란, 엘사, 안나 등이 다양한 디즈니 공주 혹은 여왕이 있으며, 16인치의 귀여움 특화 된 모습이다. 몸에 비해 머리가 매우 커서 기립이 어렵고, 관절이 마디마디 이어져 있지 않아 포즈잡기에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귀엽기는 제대로 귀엽다. 재질은 마론 인형에 가까우나, 그 느낌은 봉제인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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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돌은 공식적으로 '디즈니 스토어'에서만 살 수 있다. 24.95$에 판매하며, 디즈니 스토어에서 직구를 했을 경우, 한 구에 5만원 정도로 살 수 있다. 고리대도 아니고, 돈의 단위가 바뀌었다고 가격이 두 배가 된 이유는 바로 배송비 때문인데, 직구의 배송비 문제라면 대충 알지 않는가? 베이비돌을 살 때도 디즈니 스토어에서 미국 배송대행지까지, 배송대행지에서 우리집까지 배송비만 두 번을 무는 수모를 겪는다. 이런 이유로 보통 두 구까지는 국내 수입업체를 이용하고, 세 구 이상 일 때 디즈니 스토어에서 직구를 한다.
 
그렇다면 국내 수입업체는 어떻게 이용하느냐? 간단하다. 핸드폰 케이스 사 듯 하면 된다. 검색창에 '베이비돌'만 치면 어마어마한 수의 판매 업체들이 나온다. 2015년 신버전 베이비돌 기준으로, 베이비돌 한 구당 배송비 포함 3만원 후반~4만원 초반대가 적정 가격이며, 엘사랑 안나 등 겨울왕국 시리즈는 보통 5만원 남짓이다.


당당하게 베이비돌 구매에 성공했다면, 당신이 준비 할 것은 시간 뿐이다. 시간적 여유까지 완벽하다면, 개미지옥에 입성한 것을 축하한다. 이제 당신의 젊음을 LTE로 보낼 수 있다.

 

 


2. 참을성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다



학교엔 병결을 하고, 회사엔 병가를 내고, 이 세상에서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보고 싶은 존재인 택배아저씨를 맞이했다. 산타할아버지도 이렇게 인자한 얼굴은 아닐텐데, 베이비돌을 배달해주는 택배아저씨의 얼굴은 어찌나 인자한지, 두 손에 안겨주는 베이비돌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베이비돌의 놀라운 무게감. 존함조차 함부로 부르고 싶지 않는 박스 안의 베이비돌이 그 자태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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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But she is...


기쁨도 잠시, 박스에서 베이비돌을 꺼내면 첫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SM플레이가 아닐까 의문을 가질 정도로 지지대에 몸이 묶인 베이비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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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난관 말이다.


베이비돌을 고정할 수 있도록 지지대로 쓰인 종이에 베이비돌의 온 몸을 철사로 엮여놓았다. 이걸 끊어내는 게 한 시간. 마음 같아선 타잔마냥 다 찢어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베이비돌이 상한다. 어떻게 영접한 베이비돌인데! 머리카락이 상할까, 몸에 스크래치가 날까 염려하면서 뜯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있다. ‘베이비돌’이 왜 ‘베이비’돌인지 알 것 같은 순간이다. (아기한테 저런 SM플레이를 해도 되는 지 의문은 잠시 넣어두고) 고난의 행군을 하다보면 드디어 '툭' 하고 베이비돌이 앞으로 꼬꾸라진다. 몸과 마음을 희생한 덕분에 베이비돌을 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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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때문에 머리카락에서 묘한 질감이 느껴지는 거죠?


하지만 묘하게 거부감이 든다. 솔직히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동안 밥시간 보다 더 기다렸던 베이비돌이건만 어째서 더럽다는 무례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어쩔 수 없다. 갓 세상을 본 베이비돌은 진짜 더럽다. 공주 특유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공정 과정에서 머리에 왁스(인 것 같은 무엇인가)를 잔뜩 바르기 때문이다. 왁스 자체도 기분이 나쁜데, 크리티컬 히트로 미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왁스가 굳을 만큼 굳는다. 그래서인지 처음 머리를 만질 때의 그 거북함. 거기다 이건 개털이라고 말하면 개한테 미안할 정도의 머릿결이다. 


그리하여 필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쩔 수 없이 덕질의 시작은 '샴푸하기'다. 방금 SM플레이 연옥에서 베이비돌을 구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엔 머리까지 감겨주어야 한다. 안 해주고 싶어도 머리카락을 만지려면 어쩔 수 없다. 머리카락을 만질 때 마다 손에 굳은 왁스가 느껴지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베이비돌의 머리카락을 땋고 싶다면 지금 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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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방치플레이?


베이비돌의 머리는 섬유이기 때문에 사람의 샴푸가 아닌 울샴푸로 빨아야 한다. (울샴푸가 아닌 사람 샴푸를 써야한다는 사람도 있다.) 먼저 개수대에 따듯한 물을 붓고 울샴푸를 푼 다음, 베이비돌을 머리부터 거꾸로 집어넣고 머리카락을 오물조물 감겨준다. 머리를 감긴 후, 이번엔 섬유린스를 풀어놓고 베이비돌을 30분 정도 방치한다. 이 과정에서 SM 플레이에 이어 방치플레이까지 온갖 수모를 당하는 베이비돌이 안쓰럽다면 정상적인 뇌를 갖고 있는 거니 안심해도 된다. 혹시 안쓰럽다는 감정보다 희열이 앞선다면 경찰서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마지막은 쉽다. 비눗기를 제거하고, 말려주면 된다. 물이 몸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을 추천한다. 어딘가 고문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2-3일 정도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머리의 물기가 모두 마르니 양심의 가책이걸랑 날려버리고 마음껏 방치플레이를 즐기면 되겠다.




3. 덕후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커스텀’의 시간이다. 순정 베이비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베이비돌 덕후의 목적은 커스텀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사지 않았나. 내 베이비돌이 순정 그 자체라면 당장 커스텀을 시작해라. 그래야 당신도 덕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기억하라, 당신의 베이비돌은 아직 눈부시지 않다.


베이비돌 커스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머리, 얼굴, 옷. 머리의 경우,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염색하는 것을 말하나, 실패하면 복구하기 힘들다는 문제 때문에 많이 하지는 않는다. 보통 베이비돌 머리를 전문으로 하는 블로거에게 위탁을 하는 편이나, 위탁할 돈이 없다면 미용사 자격증을 딸 때까지 손을 대지 않는 게 좋겠다. 가끔 사람용 고데기로 베이비돌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려는 덕후들이 있는데, 앞서 말했듯 베이비돌의 머리는 섬유다. 섬유타는 냄새를 맡고 싶지 않다면, 머리에 대해선 모든 것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 그냥,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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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원형이 아닌 것 같은 건 착각이다.


다음은 얼굴 커스텀으로, 소위 ‘리페인팅’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리페인팅부터는 DIY를 해도 위험부담이 크지 않다. 머리카락과 달리, 리페인팅은 맘에 들지 않았을 때 수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셀프로 하는 덕후들이 꽤 많다.


먼저 약국에서 파는 아세톤으로 베이비돌의 원래 얼굴을 지운다. 약국에서 파는 아세톤은 일반 아세톤과 달리 매우 독해서 베이비돌의 얼굴 따위 원래 없었던 것 마냥 가오나시로 만들 수 있다. 가오나시에다가 광택제를 바른 후, 파스텔 가루를 면봉에 묻혀 볼터치·입술·섀도우를 그려준다. 여기까진 자기 얼굴에 화장만 조금 할 줄 안다면, 초심자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리페인팅의 진짜 시작은 눈동자를 그리는 것이다. 모든 리페인팅의 근원이며, 리페인팅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못해서 시도조차 안 하는 덕후들이 많다. ‘내가 원 그리는 것 빼고 미술적 재능을 발휘한 적 없다.’ 하는 덕후들은 이 부분에서 고뇌와 비탄에 빠질 것이다. 그래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 자신의 그림실력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순간이 온다. 학창시절 미술 내신 8등급도 두 번 만에 해냈다. 유경험자의 선례를 최대한 많이 찾아보고, 도화지 같은데다가 눈동자를 미리 그려본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그림 실력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는 것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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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리페인팅의 퀄리티

(출처 - kemi0318 on Flickr)


라고 하지만 웬만하면 돈 주고 맡겨라. 괜히 ‘마에스트로’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퀄리티가 다르다. 검색창에 ‘베이비돌 리페인팅 오더’를 치면 리페인팅 해주는 블로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만 5천원~3만원이면 밥 아저씨가 그린 것 같은 베이비돌 얼굴을 가질 수 있으니 남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직접 하는 게 더 정감 가지만, 정감 간다고 모두 예쁜 것은 아니다. 다들 예쁘지도 않은 친구네 강아지를 반강제로 칭찬 해 본 적 있지 않는가? 당신이 직접 한 리페인팅을 예쁘지 않냐고, 남에게 강요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적당히 맡기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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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이라고 했지 양갓집 규수가 입던 한복이라곤 말 안 했다.


마지막 커스텀은 옷이다. 세 단계 중 가장 직접 하기 쉬운 부분이다. 장벽이 가장 낮기 때문에 미술적 재능이 없는 덕후들은 여기서 덕질의 묘미를 느낀다. 천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어. ‘베이비돌 패턴’ 혹은 ‘도안’ 으로 구글링을 하면, 기본 티셔츠와 바지의 패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당신은 이 쉬운 패턴을 이용해서 한 바가지 정도 예쁘지 않은 거적들을 생산 할 것이다. 분명 가내수공업인데 대량생산에 가까운 속도로 옷을 만들다보면 어느 순간 패션디자인과 새내기가 아닌가 싶은 순간이 온다. 새내기 코스프레를 하다보면 기본 도안을 이용해 한복 패턴까지 만드는 자신을 발견하는 데까진 멀지 않다. 리페인팅에 엄두를 내지 않은 덕후라면 더 빨리 패션디자인과 코스프레에 빠져들 것이다. 다만, 재봉틀에 욕심을 내는 것은 지양하길 바란다. 정말로 젊은 날을 LTE-A의 속도로 보낼 수가 있다. 장래희망을 베이비돌 옷 제작자로 바꾼 것이 아니라면, 재봉틀 살 돈은 지갑에 넣어두는 좋겠다.


이 단계까지 이르면 성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당신은 이미 덕후라고 소문이 나있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4. ‘내일’을 이끄는 덕질, ‘내 일’을 이끄는 덕후



오늘만 사는 것처럼 덕질을 했다면, 이제는 친구를 사귈 때다. 기본적으로 덕후는 덕후에겐 인자하다. 동종 덕후의 따듯함을 느끼고 싶다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인형 덕후들을 위한 행사로 출발할 것을 추천한다. 인형 덕후들의 행사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사실 더 많지만, 이 두 개만 알아도 인형 덕질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두 개만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돌프리마켓’이다. 인형 덕후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 가봤을 행사로, 벌써 56회 째를 맞는 규모 있는 행사다. 3-4달에 한 번, 학여울 SETEC에서 열리며, 개인 혹은 기업이 인형 옷, 신발, 악세서리, 가구 등을 판다. 구체관절인형이 주인 행사이나, 베이비돌 물건도 만족할 만큼은 구입할 수 있다. 셀프 덕질이 체화 된 덕후라도 구경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길. 다만, 지갑은 미리 만땅으로 채워두길 바란다.


두 번째는 ‘스윗돌페어’로, 작년 12월로 4회를 맞은 신생 행사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돌프리마켓과 같지만, 신생 행사답게 규모가 작다. 1년에 3번 정도,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베이비돌 부스의 숫자도 적으니, 상암까지 너무 멀다면 그다지 추천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갑을 가볍게 만들 아이템들은 충분하니 돈이 너무 쓰고 싶을 때 마음 껏 들려주시라.


이렇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베이비돌 덕질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덕질 권태기(일명 덕태기)가 올 것이다. 그럴 땐 좌절하지 마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랬다. 큰 놈이 지겨우면 작은 놈으로 덕질을 이어 갈 수 있다. 베이비돌하고 똑같이 생겼지만, 크기도 작고 가격도 저렴한 미니 베이비돌을 구입 해 다시 위의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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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베이비돌. 심지어 인형놀이까지 가능하다.


휴덕은 곧 또 다른 개미지옥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니, 역시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LTE로 보낼 젊은 날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휴덕-탈덕을 걱정하지 말고 마음 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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