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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3. 화요일
ParisBoucher








건축과 도시는 우리 모두의 일상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천만의 사람이 수백만 채의 건물에서 일상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도시는 도시민 한 명 한 명의 활동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아 움직이는 거대한 정밀기계이며, 하나의 생명체다. 하나의 건축물은 그런 도시를 이루는 물질적 요소이다. 도시민 뿐 아니라 수도·전기·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도시를 움직이고 유지시키는 요소라면, 건축물은 그리 유동적이지는 않지만 짧게는 몇 십 년, 길게는 몇 백 년 동안 도시민의 필요를 담아내는 공간을 제공하는 요소다. 건축물은 또한, 필요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더해, 한 도시의 모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에서는 공간을 제공하고 바깥의 껍데기는 다시 도시의 공간을 형성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건축물들이 모여 그들의 껍데기들의 하나의 특정한 군집을 만들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 군집들이 어떤 공간을 만들어 내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도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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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외관은 곧 도시의 모양이다.
사진은 파리 바스티유 근처에서 시작하는 산책길 공원에서 찍은 한 길.



도시민과 건축물의 관계는 상호적인 것 같으면서도 상호적이지 않다. 도시민이 없다면 건축물이 존재 할 수 없고, 도시민의 필요에 의한 공간을 제공하는 물건이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도시민과 건축물은 상호적인 관계다. 그렇지만 건축물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도시민과 건축물의 관계를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오늘날 그것이 상호적 관계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도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을 담아서 필요한 위치에 지어지며, 그 위치에 맞게 설계한다. 그러나 그 생각의 ‘주체’는 대부분의 경우에 안타깝게도 도시민이 아니며, 도시민이 투표로 뽑아 놓은 권력자도 아니다. 그들은, 아니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사고의 주체는, 오늘날 많은 것들의 주인이 그렇듯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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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뉴타운의 모습.

서울의 아파트는 도시민의 필요를 위해 지어지지 않고,

아파트 주인과 건설사의 물질적 만족을 위해 지어진다.



쿨하스 형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장황설을 늘어놓나 생각이 드실 수도 있으나, 조금 더 이야기를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주체는 국민에게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투표를 해서 나를 대신해 정부를 운영하고 그것을 감시할 사람들을 뽑는다. 그리고 건축물과 그것으로 이루어진 도시, 특히 후자는 너무나 거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게 그 운영권을 위임한다. 도시의 형성에 대한 권리는 우리가 위임하는 대부분의 권리 중 사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것, 집·철도·역·상가·공장·공원·광장 등 모든 것이 도시다. 그리고 우리가 낸 세금의 대부분도 이 도시를 물질적으로 만들고 변화시키고 가꿔 나가는데 사용한다. 도시가 운영되는 시스템을 위한 비용, 예를 들면 수도세나 전기세·교통비·등록금 같은 돈을 모두 합친 것에 비견될만한 비용이 물질로서의 도시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그 중의 대부분이 건축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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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금은 시청광장의 풀밭을 관리하는데도 쓰이지만

시청 같은 큰 건물을 허물고, 짓는데도 어마어마하게 쓰이고 있다.



한반도에 왕정이 끝나고 공화정이 도래한 지 어언 수십 년,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는 드디어 풀뿌리 민주주의에 도달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권력을 갖게 된 도시민들은 권력을 감시하는데 권력을 양도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도시가 운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꽤나 철저하면서도, 아직까지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가 도시가 바뀌고 만들어지는 데, 어떤 권리를 갖고 있고 가질 수 있는 지와 권력자들끼리 우리의 도시를 자신들 마음대로 만드는 문제를 떠나서,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어떤 건축물이 도시민들의 삶에 더 적합한 것인지에 대해 인식이 거의 없다. 건축에 대한 이러한 무지와 무시는 물론, 우리의 교육과정에서 0에 수렴하는 건축·도시에 대한 교육의 양 때문이고, 우리 교육의 전반적인 질 때문이기도 하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으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재 한국의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에서는, 도시민의 직접적 필요는커녕 공간을 평생 연구하고 공부해온 건축가들의 생각조차도 담아내기 힘들다. 한국에서 이름 좀 날리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면, 도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인 집단주거 공간, 즉, 아파트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기껏해야 부자들이 사는 빌라촌 정도다. 왜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전문가 건축가가 만드는 아파트, 혹은 그에 영향을 받은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재벌이 돈 벌기위해 만든 아파트만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필자의 글이 열분들의 건축 상식을 갑작스레 확립시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더 좋은 아파트를 위해 청와대로 진격하게 할 수는 없다. 솔직히 필자도 내가 그런 정도의 건축 지식이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건축에 대해 원론적이고 되게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건축과 도시에 관해서 자본과 권력자의 관점이 아닌 '도시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알아보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작은 밑바탕을 만들어 보려는 글 정도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셨음 좋겠다.



그럼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번 이야기, 렘 쿨하스 2부를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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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톨비악에 위치한 BnF(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Dominique Perrault 작.



이번에 소개할 렘 쿨하스의 두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둘 다 도서관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둘 다 파리 땅에 설계되었다는 점이고, 마지막은 이따가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 외에 중요한 공통점은 둘 다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점과 전편에서 소개한 마천루 건축에 대한 연구가 아닌 건축의 다른 면들에 대한 연구가 각각 발현된 작품이라는 것 정도가 있겠다.

첫 번째로 소개할 도서관은 BNF(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파리에다 다양한 거대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령 시절 시작되어 1995년에 완공된 이 도서관은 그의 이름을 따 미테랑 도서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제공모전으로 설계를 시작할 당시 이 도서관은 TGB(Très grande bibliothèque)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못한 렘 쿨하스와 OMA의 작품명도 TGB로 남아 있다. 당선자는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와 제임스 스털링(James Sterling)팀으로, 페로는 당시 나이 고작 36세로 프랑스의 새로운 모뉴먼트로 여겨졌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건축가로 발탁됐고, 프랑스는 물론 세계 건축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다. 페로의 작품은 70여 미터의 거대한 책 네 권을 직사각형의 거대한 땅의 꼭짓점에 직각으로 맞춰 세워 놓은 형상을 띄고 있다. 건축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직접적인 은유가 사실 좀 유치한데다가, 은유를 위해 도서관 건물을 네 개의 동으로 분리시켜 버린 것, 국립도서관이라는 기능을 거의 무시한 채 건물을 통째로 유리로 설계해 책에 직사광선을 맞게 한 것, 바깥의 유리 안에 나무로 만든 거대한 표피로 다시 건물을 싸는 방식으로 다시 설계를 한 것 등의 이유로 많은 건축가 그룹에게 까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왕 지어진 거 어쩔 수 없다.


이에 반해 렘 쿨하스의 작품은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3단계로 이루어진 공모전에서 1단계를 224:20의 경쟁력을 뚫고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이 명확하지 않고 대지의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건축가들은 성공적이지 못한 작품을 제출하였지만, 그는 매우 뛰어난 작품을 제출해서 주목을 받았다. (La plupart de ceux qui avaient été retenus 20 au départ avaient d’ailleurs rendu des projets assez ratés, à l’exception notable de Rem Koolhaas. François Fromonot, Publié par BnF / 프랑스 도서관 출판물 2014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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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쿨하스의 Très grande bibliothèque(TGB) 모형. 



렘 쿨하스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이론을 훑어보기 전에 이 프로젝트를 렘 쿨하스와 그의 팀이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자. 국립도서관의 역할에는 책의 보관과 열람 두 가지가 있다. 렘 쿨하스는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모든 출판물을 보관하는 역할을 갖고 있는 국립 도서관의 특성 상, 다른 보통의 도서관보다 책을 보관하는 기능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정육면체 형태의 건물을 통째로 책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상정하고, 열람이나 사무를 하는 공간은 외관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이 거대한 정육면체는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므로, 도미니크 페로의 빌딩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외부와는 소통하지 않는 닫힌 공간으로 만든다.

외부와 차단된 거대한 블록 안에 열람실과 같은 공용공간을 넣기 위해, 렘 쿨하스는 그 블록을 파내기 시작한다. 즉, 그의 국립도서관은, 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암석 안에 사람이 살기 위해 이곳저곳 굴을 파고 들어간 형태의 건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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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결국 그의 중요한 건축이론 중 하나이며 전편에서 소개 한 '큼'(Bigness, 메트로폴리탄 건축의 중요한 측면중 하나)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로젝트가 끝나고 얼마 후, 그의 글 'Bigness or the problem of Large'에서 건축이 컨텍스트와 미적 퀄리티가 아닌 규모로서 갖게 되는 성질인 '큼' 혹은 ‘거대함’에 대해 5가지 원리(Theorem)를 주장한다. 그 중 필자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특히 4번째 원리를 소개할까 한다.


어떤 건축물은 규모 하나만으로 좋고, 나쁨을 떠난 도덕적 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영역에 존재하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은 그 건축의 질과는 무관하다.


Through size alone, such buildings enter an amoral domain, beyond good and bad. Their impact is independent of their quality.


(OMA / Rem Koolhaas, and Bruce Man, S, M, L, XL, New York: Monacelli Press, 1995)


Bigness에 관련된 그의 주장은, 전편에서 다뤘던 뉴욕 마천루들이 홀로 거대하기에 주변의 환경과는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분석과 일치한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로젝트에서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책을 프로그램(Program, 기능)으로 다루면서, 이 생각을 적용했다. '파리' 혹은 '세느강변'이라는 주변 환경과는 동떨어진 무심한 형태의 거대한 블록을 그 땅에 얹어 놓은 것이다.

이는 지난 편에서 시애틀 중앙도서관과 도곡타워(현 타워팰리스)를 예로 들며 다뤘던 주변 환경(흔히 컨텍스트라고 한다.)에 적응하거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화된 형태의 마천루들과는 다른 방식의 건축이다. 시애틀 중앙도서관이 여러 가지 기능을 층층이 쌓고, 그들이 각각 주변 환경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게 하여 건물이 도시의 컨텍스트에 적응하게 한 것이나, 도곡타워 프로젝트가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의 여러 마천루들을 도시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1층 공간과 상층부에서 서로 접합하게 해 도시의 컨텍스트 자체를 흔들려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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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 그린 도곡 타워스 쉐마.
중요한 것은 빨간 부분이다.


두 번째로 렘 쿨하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의 중요한 명제 중 하나인 '채움과 비움'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거대한 책장인 기본 건물이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빈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외관과 연결이 되면 구조적으로 짓기 힘들거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특이한 형태의 공간도, 이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파내는 방식으로 만든다면, 상대적으로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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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형의 모양을 갖고 있는 물체들이 열람실과 같은 빛이 들어오는 빈 공간이고, 

빈 공간으로 표현된 공간은 원래 책으로 가득한 정육면체다. 

즉, 이 모델은 채움을 비움으로, 비움을 채움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국립도서관이라는 특수한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시공간에서 '비움'이라는 것이 주로 건축물들의 파사드(입면, 외관)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렘 쿨하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이런 도시공간의 비움을 자신의 건축 내부로 끌고 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마천루들이 건물의 내부는 빈틈없이 기능(혹은 각 층의 평면)으로 가득 채우고, 1층에 출입구 홀 공간이나 건물 바깥의 빈 공간을 비움으로 다루고 있다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로젝트의 빈 공간은 건물의 채워진 부분을 이용해 빈 공간을 형성해내는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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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반 데 로헤(Mies Van Der Rohe)의 시그람 빌딩(Seagram Building).


저명한 현대건축가 미스 반 데 로헤(Mies Van Der Rohe)의 시그람 빌딩은 마천루 시대의 채움과 비움을 새로이 확립하기도 하였지만, 렘 쿨하스의 방식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그람 빌딩 앞의 빈 공간인 광장은 '거대함 앞의 비움'이라는 고요한 아름다움은 있지만, 그 공간이 시그람 빌딩이라는 거대한 마천루에 융화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사실 이 채움과 비움에 대해서만 글 한편을 쓸 수 있겠으나, 이번 편의 진짜 주제는 아직 시작도 못했으므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두 번째 프로젝트로 넘어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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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한 OMA의 전시회에 전시된 Jussieu 도서관 모형.


OMA가 프랑스국립도서관과 비슷한 시기에 설계를 하였지만,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프로젝트는 1992년에 있었던 파리 쥬시우(Jussieu) 캠퍼스의 도서관 공모전에 제출된 것이다. 이 두 도서관의 설계 이후로 렘 쿨하스와 OMA는 도서관을 한 번도 건설하지 않은 도서관 전문가의 칭호를 얻게 된다. 그만큼 이 두 도서관이 건축가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프로젝트에서 렘 쿨하스와 OMA는 다시 한 번 기존의 도서관의 건축방식을 뒤엎는다. 기존의 도서관, 아니 대부분의 건물들이 같은 평면이 쌓여 형성되는 건물이었다면, 그는 모든 층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평면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발명해 낸다. 벽은 하나의 층에서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바닥은 평면이 되어 필요한 기능을 그 위에서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건축이라면, 렘 쿨하스는 이 프로젝트에서 바닥=벽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낸다. 벽이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층과 다른 층을 연결하는 램프(경사로)가 되어 다른 층을 연결시켜주고, 바닥은 기능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동선을 이루는 기나긴 산책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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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장으로 만든 쉐마 모형. 아이디어를 잘 설명하고 있다.


2009년에 출판되어 어떤 건축가들에겐 건축계의 바이블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Composition, non-composition. Architecture et théories, XIXe-XXe siècles(구성과 비구성, 19-20세기의 건축과 이론. Jacques Lucan, Presses polytechniques et universitaires romandes, Lausanne)에 따르면, 렘 쿨하스의 설계 방식은 주로 건축 프로젝트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기능(프로그램)의 발전 혹은 하나의 건축요소의 변형 또는 대입으로 이루어진다. (La méthode que Koolhaas entend souvent mettre en oeuvre s’apparente au développement d’un programme, l’introduction ou la modification d’un paramètre pouvant orienter le projet dans une nouvelle direction, p.559)


이 쥬시우 도서관도 마찬가지인데, 렘 쿨하스는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책의 보관, 그리고 열람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이, 층층이 쌓여있는 건축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엘리베이터가 각 층을 연결 하고 있다면, 모든 평면이 어떤 곳에선 합쳐지고, 어떤 곳에선 더 큰 공간을 만들며, 하나의 거대한 동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다. 그리고 그 동선이 1층의 도시공간에 연결 된다면, 여러 층을 갖고 있는 건물이 도시, 즉 건물 외부에서부터 하나의 층으로 이어진 공간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 안에서 도시를 다양한 방향으로, 다양한 높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산책이 가능한 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도달했다. 


쟈크 루캉선생이 이야기하려는, 렘 쿨하스의 건축이론이 가진 건축사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이제 이 두 건축의 또 다른 공통점에 간단히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이 두 도서관은 아까 언급한 것처럼 지어지지 않은 건축물이다. 흔히들 이런 지어지지 않은 작품을 가리켜 프로젝트(Project)라고 부른다. 하지만 작품을 프로젝트로 부르는 것은 그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작품이 프로젝트로 남았다'는 뜻이다. 지어지면 프로젝트가 사라지고 건축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완공된 건물 그 자체도 건축가에겐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는 Unbuilt project(말 그대로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것이 맞으며, 그것을 한 단어로 줄여 프로젝트라고 표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개념이야 말로 사실 필자가 이 두 매력적인 도서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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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Status(상태)란을 보면 각 프로젝트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다. 
어떤 상태에 있건 저 모든 것이 프로젝트다.


서양 건축에서 프로젝트라는 개념을 일깨워준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다. 그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두오모를 짓기 위해, 두오모의 모양뿐 아니라 그것을 건설할 수 있는 기계까지 설계한다. 즉,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축의 구조와 건설에 대한 방법론까지 그의 건축에는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프로젝트는 이렇게 현실화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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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성당의 두오모(Du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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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넬리스키가 설계하고 그린 도르레. 이걸로 벽돌을 올려서 쌓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건축에서는 이 과정에 다양한 요소들이 첨가된다. 미적·구조적 문제뿐 아니라, 그 건축이 갖는 사회적 의미,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방법, 주위 환경에 끼칠 영향 등 다양한 문제들이 공간을 상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 과정들을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배우거나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식으로 쌓아 놓아야 비로소 '공간에 대한 일반적 전문 기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프로젝트 자체가 건축가가 하는 건축 행위인 동시에 건축가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키우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부문의 건축들, 예를 들면 공동체 건축 같은 경우에는 천 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5-6개만 현실화 되기도 할 정도로, 건축가의 프로젝트는 실제로 지어지는 건물의 수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건축가는 실제로 지어진 건물에 의해서 평가 받으므로, 건축가가 하는 창작활동 중 우리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런 프로젝트들이 모이고 모여야 비로소 세상에 자신의 건축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 사람의 건축가의 프로젝트건, 공모전을 통해 모인 수 백 명의 건축가의 프로젝트건 간에.

르 코르뷔지에와 렘 쿨하스는 현대 건축역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기에, 그들을 통해 '건축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시대에 큰 영향을 준 건축 이론가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들은 대부분 프로젝트로, 지어졌건 지어지지 않았건 표출되었음을 지금까지 살펴봤다. 오늘날 건축가들은 이론건축가가 아니어도 건축이 무엇인지, 그 이론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서 학생 때부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모여서 만든 건축가가 또 모이고 모여야,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도시와 건축물이 하나 하나 만들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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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을 띄우는 데 필요한 기술자의 숫자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프로젝트를 갈아 넣어야 건물 하나가 나온다. 
(출처- 스마일루 블로그)


르 코르뷔지에와 렘 쿨하스 편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이 건축과 건축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많은 이해를 하셨길 바라며, 렘 쿨하스편은 이만 마친다. 앞으로 당분간은 건축가에 대해서 다룰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건축가가 아닌 사람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건축과 도시를 한번 이야기 해 보겠다. 



p.s: 연재라고 하기가 뭐할 정도로 엄청난 인터벌을 갖은 후에야 찾아뵙게 된 점, 죄송합니다. 주경야독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러려니 이해해달라고 하면… 안 되겠죠. 앞으로는 조금더 빠른 리듬으로 '연재'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간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지난 기사


[르 코르뷔지에 1]

[르 코르뷔지에 2]

[르 코르뷔지에 3]

[렘 쿨하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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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