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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3. 화요일

홍준호








Warning


본 리뷰에 약간의 스포일러만 있겠다 생각했다간 난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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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매튜 본

주연 : 태런 에거튼, 콜린 퍼스, 소피 쿡슨, 사무엘 L. 잭슨, 소피아 부텔라, 마크 스트롱, 마이클 케인,          잭 데븐포트, 제프 벨, 한나 알스트룀

음악 : 헨리 잭맨, 매튜 마게슨

촬영 : 조지 리치몬드 

등급 : R (17세 미만은 부모 동반 하에 관람) / Color / 127분

원제 :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매너인가, 본성인가


"보기 좋은데, 에그시. (Looking good, Eggsy.)"

"아주 좋아요, 멀린. (Feeling good, Merlin.)"


(스포일러 좀<?>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봐야 진정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말 하지 않았으니 큰 걱정은 마세요.) 요 몇 년 새 아주 잘 팔리는 매튜 본 감독의 신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를 2월 12일에 봤다. 시작 전에 나오는 여러 광고들을 보며 문득 감독의 행보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다. 


처음 '매튜 매튜 홈매튜 본' 감독이 <레이어 케이크>로 데뷔했을 때, 그는 <스내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만든 가이 리치 감독과 함께 설명되던 감독이었다. 실제로 그는 가이 리치 감독과 함께 설립한 영화사의 제작자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었으니 유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튜 본은 더이상 갱 이야기와 플롯을 복잡하게 엮는 세상에 머물지 않았다. (가이 리치 역시 마돈나와 어울렸다 한 번 맛간 뒤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나오는 <셜록 홈즈> 프랜차이즈로 넘어갔다.) 또 이번 신작 역시 R 등급을 받긴 했지만, 그는 전에 이미 PG-13 등급의 작품도 잘 만듦을 증명한 실력파다.


뭐랄까. PG-13 (13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하에 관람 가능). 혹은 PG (연령 제한은 없으나 부모 동반 하에 관람 가능) 나, 심지어 G (전체 관람 가능) 등급의 작품을 만든다는 건 헐리우드에서 일종의 능력증명이다. 감독 입장에서 표현수위에 대한 타협도 적절히 할 줄 알면서 좀 더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매튜 본 감독의 큰 자산이 드러나는데, 그는 고어에 가까운 폭력을 박력과 해학으로 이해할 줄 아는 좋은 능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신나는 음악을 선곡해서 거부감을 중화시킬 줄도 안다. (<킥애스> 같은.) 반대로 폭력성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관객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충격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예컨대 그의 감독작이자 'PG-13' 등급을 받은 작품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매그니토가 초반부에 술집에서 자신의 원수들을 싹 쓸어버리는 시퀀스를 생각해보라.




"왜 이렇게 화질이 구려!?" 라고 불만을 느끼신다면, 당장 블루레이나 DVD를 사러 가시라. *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위 시퀀스는 사실 R 등급 감이다. 총 쏘지, 배에다 칼 꽂고 손바닥에 칼 꽂지.. 그러나 PG-13 등급인 탓에 이런 시퀀스는 직접적인 폭력의 클로즈 업 없이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식으로 대부분 처리됐고, 피 역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칼로 찌를 때 편집을 하거나, 상대의 배나 손에 폭력이 가해지는 순간 불안하고 육중한 오케스트레이션 음악을 삽입함으로써 관객은 폭력과 죽음의 고통, 그리고 매그니토의 분노를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매튜 본 감독은 영상을 통해 적나라한 수위 묘사를 보여주면서도 거기서 관객에게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할 줄 안다. 표현수위를 줄였다고 해서 역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시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이건 감독으로서 가진 큰 능력이다.




웹 사이트 공개용이라 몇 초 분량이 살짝 잘려나갔지만, 멋진 액션 신이다. 

콜린 퍼스는 언제나 로맨틱 코미디, 시대극으로 주로 대표됐었는데 드디어 

이 작품을 통해 액션에 입문했다. 근데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상당히 잘 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의 본편이 시작됐다. 이 작품 역시 그런 폭력의 요소로 관객과 장난하듯이 진행된다.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Money For Nothing' 이 사운드트랙으로 흘러나올 때 스탭들의 이름이 폭발하는 건물들의 파편에서 통통 튀면서 등장한다. 이번에도 뭔가 흥겨운 이야기 겠거니 하는 순간, 초장부터 관객에게 해리와 다른 킹스맨 팀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에그시의 아버지가 수류탄으로 희생하는 신을 보여준다. 수류탄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니 사방에 피가 줄줄 흐르고 흩뿌려지는 잔혹한 묘사를 예상했지만 의외로 깔끔하게 보여진다. 흠. 이번엔 별로 감독 특유의 폭력 묘사는 별로 없겠는걸?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은 이후에 등장하는 시퀀스를 통해 관객의 뒷통수를 후려친다. 한 킹스맨 요원이 마크 해밀이 연기하는 아놀드 교수를 구할 때 악역 발렌타인의 심복인 가젤의 발에 달린 칼날에 의해 반으로 썰리는 순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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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퀀스는 희생당하는 킹스맨 요원의 첫 등장 때문에 흥미로웠다. 화려한 몸놀림과 총질로 악역의 심복들을 모두 처치하는 그의 모습을 영락없는 제임스 본드의 후예처럼 찍어놨으며, (주로 로저 무어와 피어스 브로스넌 시기의 제임스 본드가 떠오른다.) 거기서 선보이는 아크로바틱 액션에서 일종의 유희성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려 비현실적인 가젤의 액션에 의해 토막나는 걸 보고서야 '훅' 하고 다가온다. 의문이 든다. 아무리 악역의 사악함을 부각하기 위해서라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음을 당할 필요가 있을까? 어휴. 저 쫙 빼 입은 양복에 피가 묻는다고 생각해봐. 포마드 발라서 넘긴 머리는 또 어쩌나. 곶감과 포마드 스타일을 유행시켰던 빈지노가 영화 보다가 울겄네, 울겄어. 


근데 생각해보면 영화화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 대부분에서 묘사된 스파이의 이미지는 대부분 '살인' 이라는 단어와 잘 연관되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몇 번씩 '살인면허' 의 존재가 언급됐는데, 이상하게 그 단어가 본드와 동일선상에 놓여 고려되는 것이 낯설었던 것이다. '살인' 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 본드의 오마주같은 그 킹스맨 요원의 활약과, 악역의 심복에 의해 잔혹하지만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는 시퀀스가 연이어 등장할 때 관객은 잠시 비죽 웃다가 생각의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킹스맨 요원들도 어찌보면 악역들처럼 살인귀 같은 행각을 벌인 셈' 이기 때문이다. 외면만 피와 어울리지 않게 고상하게 빼 입었을 뿐이다. 어쨌든 이후, 작품은 에그시의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진 해리가 성장했지만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에그시를 찾아내는 순간을 보여준다. 해리는 그에게 정보기구인 킹스맨의 요원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고, 에그시가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를 요원으로 키우기 위한 해리의 노력을 상당 부분 할애해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그 즈음에서 악당이 착 등장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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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매력적인 악당의 등장이요.


보던 중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초장부터 제임스 본드 스타일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심지어 제임스 본드가 마시는 술의 취향마저 비틀어 놓았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마도 킹스맨 정보기구를 지휘하는 수장인 아서 역을 맡은 배우가 마이클 케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렌 다이튼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첩보원물인 해리 팔머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재밌는 점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영화화를 제작해왔던 제작자 중 한 사람인 해리 설츠먼이 같은 시기에 해리 팔머 시리즈의 영화화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포함하여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참여했던 스탭들인 피터 헌트, 존 배리도 제작에 참여했었다. 해리 팔머 시리즈는 총 세 편이 제작됐고, 금전적으로 쪼들리거나 근시라서 안경을 쓰는 설정 등, 제임스 본드 시리즈보다 현실적인 설정들을 지향했다. 킹스맨 요원들 역시 해리 팔머의 오마주인듯 정장에다 안경을 쓰고 행동하는데, 이로 인해 마이클 케인의 역할이 딱 내가 생각한 그 방향으로 흘러가서 보는 동안 꽤 재밌었다. 그가 '수장' 이라서 벌어지는 스파이 세계의 건조함과 냉혹함이 본드 스타일의 액션을 구사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작품 상영 내내 어우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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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팔머 시리즈의 첫 편인 1965년작 <입크리스 파일> 속 마이클 케인. 시드니 J. 퓨리 감독의 첫 작품이기도 한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시드니 J. 퓨리 감독은 스파이인 해리 팔머가 요리를 한다는 원작의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반면 해리 살츠먼을 비롯한 이 작품의 제작자는 "뭣이라? 스파이가 요리를 한다고!? 그럼 흥행이 안 돼! 게이 같잖아!" 라며 경악해서 절대  그런 설정을 넣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었다. 1960년대 중반이었으니 그리 생각할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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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 감독의 말에 따르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는 일반적으로 상업 배급망을 타는 영화의 상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한 40분쯤 잘라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삭제분량 중 하나가 해리가 에그시에게 요리를 만들어 대접해 주는 시퀀스였다. 킹스맨 요원 훈련 중에서 '멘토와 24시간 보내기' 라는 설정이 있었단다. 해리 팔머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물론 극장판에서는 잘려나갔으니 굳이 더 얘기할 건 없겠지만.  




아. 내가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자꾸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해리 팔머 시리즈의 '영화판'만을 거론하는 이유는 일단 그 두 프랜차이즈의 원작 소설들과, 마크 밀러와 데이브 기븐스가 지은 그래픽 노블인 <더 시크릿 서비스>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 분들은 아시겠지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그래픽 노블인 <더 시크릿 서비스>를 원작 삼았다.) 일단 스파이라는 설정 때문에 제임스 본드와 해리 팔머 시리즈를 내세우고 거론하긴 했다만, 사실 원작을 제외하고 진정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영향을 받은 작품은 따로 있어 보인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이 스파이물이지만 정작 스파이 그 자체를 다루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영향을 받은 한 편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 프리퀄 3부작이고, 다른 한 편은 존 랜디스 감독의 <대역전 - Trading Places> 이다. 이 중 <대역전>이 이 작품과 좀 더 핵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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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존 랜디스 감독의 1983년작인 <대역전>, 

(우) 조지 루카스 감독의 1977년작인 <스타 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스타 워즈>의 경우에는 그 작품 주연이었던 마크 해밀의 출연과, 해리가 에그시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습, 그리고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해리가 극중 퇴장을 하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보는 앞에서 퇴장하는 오비완을 보는 느낌이다.) 에서 그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산에 위치한 발렌타인의 '방주' 로 킹스맨의 비행기가 침입하는 순간은 <스타 워즈>에 나오는 악의 세력, 제국군의 핵심 기지인 데스 스타 내부의 우주선 활주로로 침입한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대역전> 의 경우에는 작품 속에서 해리가 에그시에게 킹스맨 요원이 되는 점에 관해 예시로서 언급해주는 여러 영화들 중 한 편이다. 그가 언급하는 작품들은 <대역전>을 포함해서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 게리 마샬 감독의 <귀여운 여인>, 조지 큐커 감독의 <마이 페어 레이디>가 있다. 더 있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넷 다 외적으로 보자면 평소의 자신의 신분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영향을 받는 것은 과연 사회환경인지, 아니면 본성인지의 여부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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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뤽 베송 감독의 1990년작. <니키타>

(가운데) 게리 마샬 감독의 1990년작. <귀여운 여인>

(맨 아래) 조지 큐커 감독의 1964년작. <마이 페어 레이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위에 거론된 작품들 중 이 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꼬집는 작품은 <대역전> 이다. 이 작품은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장르의 영화인데 댄 애크로이드가 잘 나가는 증권 회사 전무인 '루이스' 역으로, 그리고 에디 머피가 거지 '발렌타인' 역으로  등장한다. 


주된 줄거리는 이렇다. 루이스가 다니는 증권 회사의 경영자들인 한 재벌 형제가 인간은 환경에 지배되는지, 아니면 본성이 환경을 압도하는지가 궁금하여, 1달러를 걸고 두 사람의 처지를 바꿔보자는 내기를 하게 된다. 이들은 권력의 힘으로 발렌타인을 으리으리하게 출세시키고, 유능한 부하 직원인 루이스에게 누명을 씌워 거지로 만들어 버린다. 


작품은 부자 형제의 말대로 정말 환경을 바꿔놓으니 그에 맞춰 이전의 모습을 잊고 바뀌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먼저 제작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설정과 비슷한 면이 있는데, 적어도 그 작품은 내기를 주도한 사람이 주인공에게 사과와 사랑을 고백할 줄 알았다. 그러나 <대역전>의 재벌 형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이들은 겉으로는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랍시고 깔끔한 옷에다 고급스러운 언어를 쓴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된 루이스와 발렌타인이 함께 복수를 해서 결국 자신들의 목적이 틀어질 때, 이들은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남발하고 만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에서 제 무덤을 판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대역전>은 평상시에 '매너를 몸에 익힌 사람들' 이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순간을 막판 하일라이트로 보여준다. 재미있지만 좀 더 적나라하고 심술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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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랜디스 감독의 1983년작. <대역전> 의 스틸 컷들.

마지막 사진의 노인들은 두 주인공의 인생을 바꿔놓을 계획을 세우는 재벌 형제의 모습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스파이물의 외면을 하고 있지만, 주된 이야기는 <대역전> 식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재밌는 건 킹스맨 요원들과 맞서는 악역인 발렌타인의 음모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환경 오염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결국 가장 해가 되는 종자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리고 그들을 멸종 시켜야 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상당히 극악한 아이디어다. 왜냐면 계획을 실행하는 와중에 마치 자기 나름대로 쿵짝이 맞는 사람들을 우성인자로 생각하고 남겨두기 때문이다. 선택된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인데, 발렌타인의 이런 행각은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작품은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이 언제부턴가 최소한 그 의도만큼은 이해는 간다고 관객들의 공감대를 사게끔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게 바로 킹스맨 정보기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전개다. 해리가 이성을 잃고 웨스트보로 침례 교회 신자들을 척살하는 과정, 아서의 배신 등 킹스맨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는 순간을 작품이 보여줄 때가 대표적이다. 


킹스맨은 정보기구로서 오랜 역사를 두고 존재하고 있고, 요원들은 작품에서 히어로처럼 묘사되며 그렇게 매너를 부르짖는 해리는 해당 정보기구를 상징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요원으로서 훈련 받은 그가 악역의 음모에 놀아나, 이성을 잃고 임무 외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살인병기가 된다. 그리고 킹스맨의 수장인 아서의 경우에는 에그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하는 말투 대부분에서 한 인간을 대놓고 탐탁찮게 생각하는 오만불손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에그시가 교육받은 '귀하신 계층' 이 아니라 요원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이후, 영국의 노동자 동네에서 방황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무시도 있을 것이다. 이랬던 아서가 야욕을 품고 발렌타인과 연합한 사실이 드러난 중반부의 반전에 이르면, 결국 관객에게 '사람이 먼저다' 도 아닌, '사람이 문제다' 라는 짖궃은 비판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은 킹스맨 본부로 들어가는 양장점의 고풍스런 프로덕션 디자인과 에그시를 안내하는 해리의 대사를 통해 킹스맨의 역사를 상세히 이야기한다. 이는 곧 그 기관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자리 잡았다고 해서 무조건 그 기관이 지혜의 상징이라 단정짓지 않는다. 작품은 킹스맨 기관이 그 환경이 만든 '매너' 라는 것에 종속되다 못해 아예 박제 되지 않았는지를 되묻는다. (작품 속에서 짧게 지나가는 농담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해리가 마가렛 대처 수상을 암살로부터 구했는데, 사람들에게 욕만 먹었다고 에그시에게 얘기해주는 시퀀스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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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악역인 발렌타인은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했다. 한국에서 사무엘 L. 잭슨은 '마더 퍼커 옹' 으로 불리는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욕을 입에 담을 정도로 꽤 성깔 있는 분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 역시 'mother fucker' 를 읊조리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다만 이번엔 좀 재밌다. 저런 요란한 의상을 입고 혀 짧은 발음을 해도 발렌타인이라는 역은 의외로 점잖은 인상이 강하다. 분명 욕을 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안 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작품 내내 시종일관 달고 다니는 욕을 딱 한 번 마이클 케인이 하는 순간이 있는데, 어느 순간에 주된 악역보다 더 잔인한 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그인지라 임팩트가 강하게 남는다.   




이렇게 스파이를 바라보는 매튜 본 감독의 냉소적 시선은 꽤 신선하다. 인간을 논하기 전에 스파이 또한 그들이 있어서 만족감을 얻을 사회나 집단에게는 선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강력한 방해꾼이자 악이 될 수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냉전시대 때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현시대의 시점에서는 착오적인 사고방식이 되어 있듯 말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게 스파이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냥 설정된 직업일 뿐이다. '스파이 영화' 가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 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파이 이전에 사람이고, 사람은 숙주나물 마냥 잘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에 의해 지배 당할 수도 있다. 아니면 본성 자체가 나쁜지라 '매너' 라는 이름의 환경을 통해 평생 스스로를 적절히 제어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젊은 에그시는 킹스맨의 영광과 시행착오를 온 몸으로 겪으며 새롭게 살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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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독의 재기발랄한 시선과는 달리 이 작품은 끝내 내 마음을 뺏지 못했다. 정작 관람하는 동안에는 다소 정신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장르던 간에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무드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매튜 본 감독의 전작들 중에서 <레이어 케이크>는 건조함과 긴장감이, <스타더스트> 는 낭만이 섞인 로맨스가, <킥애스>는 흥겨움이 원작 그래픽 노블의 어두움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보인다. 그런데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이 스스로 챙겨야 할 레퍼런스가 많았는지 작품의 분위기가 꽤 오락가락하는 편이다. 


가령 이 작품은 2시간 8분의 상영시간 중에서 전개의 상당수는 에그시의 요원 훈련에 할애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그의 성장기, 해리와 보여주는 스승 / 유사 아버지의 관계, 악역의 만행, 배신의 드라마, 영감을 준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다루려고 하니 작품이 많이 산만하고 각각의 이야기는 흐름이 끊긴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 속에서 해리가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여러 극영화들을 예시로 들었듯이, 그 레퍼런스들을 몽땅 이 작품 속에 우겨넣고 싶었었나 보다.) 에그시를 비롯한 킹스맨 요원들이 악역 발렌타인의 기지에서 벌이는 후반부의 이야기에 와서야 산만한 모습이 많이 줄어드는 편이다. 이 작품을 보신 많은 관객 분들은 보는 내내 흥겨웠다고 하시던데 내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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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얘기한 '끊기는 흐름' 은 액션 시퀀스에서도 그렇게 느꼈는데, 위키백과에서 기독교 관련 정보를 찾다 보면 한번쯤 마주하게 되는 웨스트보로 침례교회가 등장하는 순간도 그랬다. (KKK단 마저 욕한다는 무척 악명높은 교회다. 물론 이 작품 속에서는 실제 교회의 이름을 쓰지 않고 '사우스 글레이드 교회' 라고 이름 붙여놨지만. 웨스트보로 침례교회가 궁금하시다면 클릭하시기 바란다. -> 위키백과 보러가기)


레너드 스키너드의 'Freebird' 가 울려퍼지며 해리가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교회 신자들을 덩달아 학살하는 시퀀스를 배우와 감독 입장에서는 한 테이크, 촬영은 롱 테이크로 찍었다고 자랑하는데, 문제는 최종 편집된 본편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에그시, 발렌타인이 그 현장을 바라보는 쇼트와 교차가 되는데 그 때문에 롱 테이크로 지속되는 듯한 액션의 야성적인 흐름이 깨진다. 그리고 'Freebird' 와 더불어 거의 날아다니는 듯한 해리의 액션 신의 조화가 굉장히 신이 나지만 에그시의 시점과 작품 속 이야기 진행으로서는 이게 결코 속 즐거운 유희같거나, 시원한 순간이 아니다. 에그시는 어이없고 끔찍한 광경이라는 듯 인상을 찡그리거나 경악한다. 상대의 이런 반응들이 교차되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이 시퀀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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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엘가의 'Pomp And Circumstance March' (우리에겐 '위풍당당 행진곡' 으로 익숙한) 가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머리통이 펑펑 터지는 하일라이트도 그렇다. 펑펑 터지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파악하게 되면 감독의 똘끼에 감탄하게 되는데, 하필 이 시퀀스가 발렌타인, 가젤과의 결전을 앞두고 등장한다. 이 시퀀스가 원체 강렬해서 주된 악역인 발렌타인과 가젤의 마무리를 짓는 액션 시퀀스가 이 머리 폭발에 비하면 어째 좀 미약해 보이며, 혹은 하필 그들의 마무리가  다음에 나오는 바람에 똘끼 넘치는 머리통 폭발 시퀀스에 대한 감흥이 빨리 휘발되어 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위에서 거론한 두 시퀀스는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또 논쟁적인 순간이다. 매튜 본 감독은 교회 시퀀스를 삭제하라는 20세기 폭스사의 압력에 대항한다고 이 작품의 개봉을 한동안 미루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보존했기 때문에 여파를 방지하고자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시퀀스는 관객의 머리 속에서 빨리 휘발되도록 배치했고, 교회 시퀀스는 마냥 액션을 즐길 수 없도록 편집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그 시퀀스를 배치하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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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관객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스칸디나비아 공주님. 그녀의 대사를 듣고 순간 흠칫 놀랐는데, 번역이 꽤나 완만하게 되어 있더라. 그대로 했었으면 재밌었을 게다. 극장에서 직접 들어보시라.   




이번 작품은 감독 특유의 팝 / 록 음악 선곡 대신 오케스트레이션의 비중이 좀 더 높아졌으며, 그 바람에 진중한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 이로 인해 중간중간 관객을 웃기려고 넣은 듯한 경쾌한 부분들이 오히려 흐름을 끊는다. 그리고 위에서 요원의 죽음에 대해 얘기했듯, 작품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대해 그리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아예 'JB'의 약자는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도 아닌 잭 바우어라고 에그시의 입을 빌려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두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거나 우산을 가장한 비밀무기식 설정, 과장된 액션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공주님의 활약이 돋보이는 마지막 마무리는 분명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말하자면 그 시리즈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시퀀스라는 얘기다. 그래서 솔직히 이 작품이 자기 정체성을 알고나 있는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그렇게 본드의 세계를 조롱하던 작품이 그 시리즈로부터 영향을 받은게 다 작품 속에 묻어나 있는데 말이다.


영문을 모르겠다. 보신 관객 분들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에서 스파이라는 소재는 원작이 있어서 그냥 구실상 갖고 온 듯하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에서 제임스 본드나 해리 팔머 시리즈는 그냥 겉으로 '나 이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소' 라며 적당히 할당량 채우듯 겉핥기 식 패러디를 하면 그만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오마주를 바친다고 드러냈어야 할 작품은 <대역전> 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이야기와 오마주를 위해 가져온 여러 레퍼런스들 중에서 겉멋으로 머무르게 해야할 것들에 어느 순간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단순히 '상업영화로서의 타협' 이라는 투로 이해하려 해도 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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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덕에 보고 나온 관객들로 하여금 양복 입은 신사들의 BL 짤방을 생산하게 만들어 흥행에 도움이 되는 쾌거는 거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주된 레퍼런스로 보이는 작품을 언급하는 데는 굉장히 소극적이다. 감독이 작품이 날뛰게 만들다 어느 순간 제어하는 것을 잊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익숙한 매튜 본 감독의 작품 같으면서도 묘하게 낯설다. 감독 특유의 폭력 액션에 대한 기술적 성취도는 여전하며 대체적으로 신선하다. 작품이 지닌 풍자적 시선도 날카로운데, 암만 봐도 우리에게 여태까지 받아들여진 스파이물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작품은 아니다. 최소한 그 장르로서의 선은 지키겠지 하면서 보면 실망할 정도다.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와 해리 팔머, 그 두 시리즈의 주된 요소들은 다 빼와서 덕지덕지 붙여 놨지만 그렇다고 두 영역 어디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이 자신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스파이 액션물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다. 두 프랜차이즈에 그렇게 연관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관객의 입장으로서 좀 불만족스럽다. 


<대역전>! 왜 "나는 <대역전> 의 테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고 말을 못하니! 설렁탕을 가져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느냐! 응!? 으으응!!??





P.S.1 - 참고로 이 리뷰의 첫 부분에 인용한 작품 속 대사. 'Looking good. Feeling good' 운운하는 대사가, 실은 <대역전> 에도 나옵니다. 에디 머피가 묻고 댄 애크로이드가 답하죠. 암만 봐도 이 작품은 <대역전>의 후예에요. 근데 <대역전> 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글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네요. 솔직히 이 작품을 제임스 본드와 해리 팔머 스파이 시리즈와 연관시켜 보는 건 어쩌면 오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근데 이 정도까지 느끼는 건, <대역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이 리뷰의 결론은, 음.. '재미는 있는데 내 씅에는 안 찬다' 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P.S.2 - 매튜 본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오히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스파이 장르의 감성을 더 잘 구현했어요. 제겐 그렇게 느껴지더라구요. 



P.S.3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엔딩 크레딧까지 다 보고 상영관을 걸어 나왔는데 막 고등학생이 된 듯한 학생을 데리고 온 부모 관객이 "표도 끊었는데 왜 네가 막는거냐. 우릴 빨리 킹스맨 상영관에 처 넣어라!" 며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티켓 예매 부스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예매를 해줬나봐요. 그런데 상영관 앞의 직원이 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민등록증을 요구했나 봅니다. 


단관 극장 시절이라면 한숨을 쉬면서 "뒷문으로 들어가거나 영사기사와 친한 관계를 만들어서 들어갔어야지!" 라며 방법을 전해줬겠지만, 멀티플렉스에서는 얄짤 없죠. 거 참. 나이가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니까.. 게다가 무려 미성년자를 데리고 '사무엘 L. 잭슨이 주연하는 영화'를 보러 들어가려 하다니. DVD나 블루레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든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제작사는 아래 영상의 판권을 구입해서 작품 시작 전에 필히 틀어야 할 것입니다.






 



홍준호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