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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2. 월요일

독투불패 디플로







편집부 주


아래 글은 과학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인류가 오대양 육대주를 모두 돌아다닐 수 있는 항해기술을 갖추게 된 것은 15~16세기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먼 바다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을 것이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질 경우 바닥을 알 수 없는 빈 공간으로 낙하하게 된다거나, 그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믿었을 지도 모른다. 튼튼한 배와 항해술을 갖추고 대양을 가로질러 다른 대륙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물과 때때로 찾아오는 거센 비바람, 높은 파도 앞에서 뱃사람들은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다. 심해에 사는 산갈치(oarfish)가 간혹 해수면 가까이 올라와서 헤엄치는 것을 본 뱃사람들은 거대한 바다뱀을 보았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고, 그것 말고도 검푸른 물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많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원인을 알 수 없이 침몰한 배, 바닷가에 떠밀려온 산산조각난 배의 파편들을 보면서 바다속 괴물의 소행이라고 수군댔을 것이다. 배를 침몰시킨 미지의 힘을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로 의인화 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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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부근 해변에서 발견된 몸길이 7m의 산갈치

 

 

그린랜드 앞바다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크라켄은 아마도 실재하는 대형 해양생물과 거센 폭풍우를 의인화한 존재,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했을 것이다. 알려진 생물 중에서 크라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와 콜로살오징어(Mesonychoteuthis hamiltoni)인데, 깊은 바다속에 살다가 어쩌다 한 번씩 해수면 가까이 올라와서 목격되는 몸길이 10 미터가 넘는 이들 오징어가 크고 튼튼한 배를 거대한 촉수로 잡아끌어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바다괴물 크라켄의 모티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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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에 그려진 문어 모습의 크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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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술, 럼의 한 종류인 크라켄.

오징어나 문어를 안주로 해서 이걸 마시다보면 크라켄을 만날 수 있을지도?




오징어가 조상일 수도 있다



콕 집어서 어느 종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대한 오징어의 존재를 기록한 문헌은 꽤 이른 시기부터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통 오징어(teuthis)보다 훨씬 큰 대형 오징어(teuthus)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대 플리니우스 역시 다리길이가 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오징어를 언급한다. 분류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린네는 1735년에 출판된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초판에 크라켄을 두족류로 분류하고 미크로코스무스 마리누스(Microcosmus marinus)라는 학명을 부여해 싣고 있다. (이후 판본에서는 빠져 있다)


대왕오징어의 실물이 확인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로, 프랑스의 전함이 대왕오징어 몸의 일부를 확보하기도 했고,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해변에 죽은 대왕오징어가 쓸려오기도 하면서 그 존재가 과학계에 확실히 알려지게 되었다. 대왕오징어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콜로살오징어는 1925년에 발견된 촉수를 바탕으로 명명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야 여러 개의 표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대왕오징어의 최대 크기는 13미터, 콜로살오징어의 최대 크기는 14미터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둘 다 수십 미터씩 되는 길이의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진짜 괴물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이감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크라켄을 상상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오징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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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를 빼고도 길이가 4m에 달하는 자그마한(?) 대왕오징어 표본.

 


크라켄에 영감을 주었을 오징어들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니 신비감이 사라져 버렸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깊은 바다 속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인간이 지구 전체를 자유롭게 다니는 것 같아도 바다의 경우는 깊이가 조금만 깊어지면 빛도 없고 수압이 매우 높아서 쉽게 탐사하기 힘들다. 드넓고 깊은 심해에서 언젠가 이들보다 더 거대한 '크라켄'이 발견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점을 조금 달리 해서 과거의 바다로 눈을 돌려보자. 화석으로 발견되는 생물들 중 어떤 것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생물들보다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 중생대의 땅 위를 호령하던 초대형 용각류들을 떠올리거나, 신생대의 바다를 헤엄쳤던 거대 상어 메갈로돈을 떠올려 보면 감이 올 것이다. 이런 생물들도 있었는데 바다 속에 크라켄이라고 불릴 만한 거대한 오징어가 살았을 가능성은 없을까? 가능성은 물론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생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화석으로 남는 생물은 대부분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고, 근육이나 지방, 피부와 같은 연질부가 화석으로 남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분류학상으로 오징어와 문어는 두족류(Cephalopoda)에 속하고, 두족류는 연체동물(Mollusca)의 일종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체동물은 몸의 대부분이 연질부로 되어 있다. 조개나 달팽이처럼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징어와 문어가 포함되는 두족류의 대부분은 그런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앵무조개가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말려 있는 집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갑오징어 등 일부가 몸 속에 작은 뼈를 가지고 있는 정도다. 화석기록을 살펴 보면 앵무조개의 사촌 뻘인 암모나이트가 중생대의 표준화석이고 그 외에도 다양한 두족류의 외골격 및 내골격 화석을 찾아 볼 수 있지만 대왕오징어에 비견될 만한 크기의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 초대형 오징어가 과거에 살았다 해도 몸의 대부분이 연질부로 구성되어 있다면 화석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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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암모나이트 파라푸조시아(Parapuzosia)의 모습

지름이 고작(?) 2m 밖에 안 된다.

 



미국지질학회의 아이돌



2011년 가을 미네소타 주의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미국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America)의 연례회의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발표가 하나 있다.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의 고생물학자 마크 맥메나민 박사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크라켄의 둥지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구두발표를 한 것이다. 아니, 크라켄이라고 부를 만한 대형 두족류가 있었다고만 발표해도 화제가 될텐데 크라켄의 둥지를 발견했다니 대체 뭘 가지고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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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 제출 된 초록 원문 (링크)



초록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트라이아스기의 크라켄: 벌린 어룡 사체군집을 거대 두족류의 음식물 쓰레기 더미로 해석하다."

(Triassic Kraken: The Berlin Ichthyosaur Death Assemblage Interpreted as a Giant Cephalopod Midden)

 

내용을 살펴보면 맥메나민 박사는 네바다 주의 유령 마을인 벌린(Berlin, Nevada) 부근에서 발견된 어룡의 사체군집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어룡의 사체군집은 1950년대에 찰스 캠프가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사체군집을 구성하고 있는 어룡의 학명은 쇼니사우루스 포풀라리스(Shonisaurus popularis), 몸길이는 15미터 정도로 알려진 어룡들 중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며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 대략 2억 3천만 년 전에 살던 종류다. 지금은 벌린-어룡 주립공원(Berlin-Ichthyosaur State Park)이 된 이곳에서 최소한 37마리의 어룡 사체가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왜 다수의 어룡 화석이 이곳에서 발견되는지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연구를 했으나 맥메나민은 기존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꼈는지 상당히 대담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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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린-어룡 주립공원에서 발견된 어룡, '쇼니사우루스'의 모습.


 

맥메나민은, 발견된 어룡 화석들이 골격의 흩어진 정도나 매장된 과정들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면 바다속 산사태 등의 원인으로 한꺼번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신 무언가가 죽은 어룡을 이곳으로 끌고 와서 (다 먹고 난) 사체를 버려두었다고 해석하고, 그 '무언가' 는 아마도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거대한 두족류, 몸길이 30 미터에 달하는 '크라켄'이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어룡인 쇼니사우루스를 잡기 위해 '크라켄'은 몰래 숨어 있다가 어룡이 가까이 오면 잡아채서 질식시키거나 (어룡은 파충류라서 아가미가 없기 때문에 숨을 쉬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해수면으로 올라가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 목을 부러뜨려 (스티븐 시걸이냐...) 죽인 다음 먹고 난 나머지를 이곳에 마치 음식물 쓰레기처럼 버렸다는 이야기다. 맥메나민이 제시하는 중요한 증거 하나는 어룡의 척추뼈가 배열되어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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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 U'



'표본 U'라고 불리는 이 어룡 척추뼈 중심체들은 두 줄로 독특하게 배열되어 있다. 맥메나민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크라켄'이 자신의 다리에 있는 빨판들을 보면서 그 모양대로 어룡 척추뼈의 중심체를 배열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자화상이며, 따라서 중생대의 이 '크라켄'은 모든 무척추동물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 뭐라고?

 

객관적으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이 장소에서 다수의 어룡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중 하나의 척추뼈가 조금 특이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 정도다. 특정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동물 여러 마리의 사체가 발견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고, 그렇게 되는 원인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맥메나민보다 앞서 이 사체군집을 연구했던 연구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자면, 가끔 해변의 얕은 여울에 상어나 돌고래들이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어룡이 그랬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적조현상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 어룡들이 집단폐사를 했을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원인으로 사체군집이 생겼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긍정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맥메나민이 그런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크라켄'의 몸길이를 30미터로 추정한 것도 의아하다. 혹시 어룡의 몸길이가 15미터라고 하니 그 어룡을 잡아먹으려면 크기가 두 배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표본 U의 척추뼈 중심체 배열 역시 예가 딱 하나이고, 완벽하게 기하학적인 구조를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성을 가진 존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배열해 놓았다고 보기에는 좀 석연치 않다. 혹시 주변을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순전히 저 중심체들만 똑바로 두 줄로 늘어서 있다면 그 배열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구애를 위해 바다 속에서 열심히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아래 복어처럼. 

 


굳이 복어가 아니라 사람이 이렇게 구애해도 넘어갈 것 같다.

 


맥메나민의 발표에 대해 대다수 고생물학자들의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으나 미국지질학회에서는 이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학자들의 반응이 회의적이었던 것은 설명했듯이 맥메나민의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긍정적인 증거가 너무 부족했고, 그 부족한 증거로부터 트라이아스기 크라켄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논리가 심하게 비약되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를 내보낸 것도 비판받을 만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학자의 주장이 다른 학자들 및 세상에 알려지는 방법은 동료심사를 거친 논문이 전문저널에 실리는 것이다. 그 과정도 물론 완전하지 않아 황우석 사태처럼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앞서 살펴보았던 케첨 박사의 빅풋 논문처럼  저널 자체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작동해온 체계다. 분야마다 학회발표와 저널에 싣는 논문의 역할이 조금씩 다른데, 학회에서의 발표는 관련분야 종사자에게 연구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저널에 싣는 논문보다는 통과시키는 기준이 느슨한 경우도 꽤 있는 것 같다.


화성의 문명이 핵공격으로 멸망했다는 주장도 미국 물리학회의 연례회의에서 발표되었고, 조금 수상쩍은 저널에 논문으로 실린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학회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사람도 이 내용이 선정적이라 눈길을 확 끌기는 하겠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언론사들이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테니 학회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을 했을까? 결과적으로 몇몇 언론에서 기사를 써서 나름 주목을 받고 논란이 되었으니 보도자료 배포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꼰대스럽게 바라보자면, 그다지 좋은 연구가 아닌 것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데 학회가 앞장 선 셈이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필자는 진실을 알고 있다. 이 화석은 멀리 화성에 살면서 사이도니아의 인면암 및 도시들을 건설하고 나중에 핵폭탄을 터뜨렸던 바로 그 존재들이 어느해 여름에 지구로 휴가를 왔다가 어룡을 대량으로 사냥해 잡아먹은 후 사체를 한꺼번에 이곳에 버리고 후세의 지구인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주기 위해 척추뼈를 요상하게 배열해 놓은 흔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근거가 부족한 주장과 학자들의 회의적인 반응, 언론의 주목 등이 이래저래 뒤엉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트라이아스기의 크라켄은 잊혀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2년 후 가을, 이번에는 콜로라도 주의 덴버에서 열린 미국지질학회 연례회의에서 맥메나민 박사는 새로운 증거들을 공개하면서 돌아왔다. 두둥... 크라켄의 귀환!



 

크라켄 이즈 백

 

 

2013년 가을, 콜로라도 주의 덴버에서 열린 미국 지질학회 연례회의에서 마운트 홀리오크 대학의 고생물학자 마크 맥메나민 박사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구두발표를 진행한다 

 

"크라켄이 돌아왔다: 어룡 뼈를 배열한 두족류에 대한 새로운 증거"

(The Kraken's Back: New evidence regarding possible cephalopod arrangement of ichthyosaur skelet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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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에 대한 두 번째 초록 (링크)

 


2011년 크라켄에 대한 첫 발표 이후 많은 반박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던 모양이다. 맥메나민에 의하면, 네바다 대학 라스베가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30여 년 전의 어룡 화석 사진을 전달받았는데, 거기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들에서 맥메나민이 찾아낼 수 있었던 크라켄의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표본 U와 유사하게 두 줄로 배열된 척추뼈가 또 발견되었다는 점, '크라켄'이 어룡을 사냥할 때 다리로 몸을 꽉 잡아 질식시키거나 목을 부러뜨려 죽였을 것이라고 했는데 마치 누군가 꽉 껴안은 것처럼 갈비뼈가 한 곳에 뭉친 상태로 있는 표본이 발견되었다는 점, 그리고 '크라켄'의 부리처럼 보이는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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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래 부분에 표본 U 처럼 두 줄로 배열되어 있는 척추뼈를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2011년에 처음 크라켄의 존재를 주장했을 때보다는 좀 더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어룡 표본은 야외에서 발견되었던 원래 모습 그대로 전시했다고 한다. 오래 전의 일이라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들 중, 두 줄로 늘어선 척추뼈가 실제로는 핵심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척추뼈가 두 줄로 늘어선 것은 독특한 배열이긴 하지만 원래 한 줄로 있던 척추뼈인 만큼 그 중 일부가 어떤 이유에서건 줄에서 빠져나와 바로 옆에 놓였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독특한 배열이라고 보기도 힘들 것 같다. 맥메나민은 아래의 그림으로 이에 대해 추가설명을 하고 있다.




크라켄이 진짜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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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척추뼈가 같은 길이만큼 두 줄로 놓여 있는 형태다. 맥메나민의 계산에 의하면 우상-좌하 방향의 강한 해류가 있을 경우 이런 형태의 배열은 흐트러지게 되는데 그 가능성은 17% 라고 한다. ⓑ의 경우 역시 두 줄이지만 왼쪽 줄이 아래로 조금 더 길게 뻗어 있다. 이때는 해류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흐르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느 방향에서 강한 해류가 오더라도 배열이 흐트러지게 되고, 그 가능성은 89% 라고 한다. ⓒ가 표본 U, 그리고 30 여년 전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어룡의 척추뼈의 배열 형태인데, 이 경우 어느 방향이든 강한 해류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배열이 흐트러지게 되며 그 가능성은 100% 라고 한다. 그런데 표본 U 와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어룡 척추뼈가 저 배열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길 수 없는 배열이고, 따라서 크라켄이 이 형태의 배열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솔직히, 어떻게 저런 수치가 나왔는지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저 수치가 다 맞다고 치더라도 위의 그림과 설명은 척추뼈가와 같은 두 줄 배열을 이룬 후에 퇴적물이 더 쌓여 위치가 고정될 때까지 강한 해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저런 배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독특한 배열을 만들어 낸 원인이 무엇인가?“


"독특한 배열이 화석이 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을 두 개로 나누어 본다면 위의 그림은 후자에 대한 설명이지 어떻게 저 배열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크라켄에 대한 주장은 앞의 질문에 대한 맥메나민의 대답이다. 만일 척추뼈가 별모양으로 놓여 있었다거나, 척추뼈와 기타 다른 종류의 뼈를 이용해 명백하게 두족류(오징어든 문어든)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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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꽉 껴안아서 질식시켜 죽인 것처럼(?) 갈비뼈들이 뭉쳐있다.

 


두 번째 추가 증거는 촘촘하게 뭉쳐있는 갈비뼈의 모습이다. 맥메나민의 시나리오대로라면 크라켄은 어룡을 잡아서 다리로 꽉 껴안아 질식시켜 죽이게 되는데, 이 때 강한 힘을 받으면서 어룡의 몸통이 수축되어 갈비뼈가 한데 모일 것이라고 한다... 아니,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면 말이 되겠지만 그 사이에는 힘줄이나 근육 등의 연질부가 있을텐데? 보통은 몸통을 꽉 조이면 갈비뼈가 부러지기야 하겠지만, 그 갈비뼈가 압축된 것처럼 촘촘하게 모일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일단 어룡의 숨이 끊어진 이후에는 크라켄이 굳이 몸통을 죄고 있을 이유도 없으니 원래의 형태와 위치에 가깝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크라켄의 조임때문에 모인 갈비뼈가 어룡이 죽고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살이 다 없어지고 뼈만 남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들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룡의 갈비뼈가 원래부터 저렇게 촘촘하게 모여있었거나, 사체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고 연질부가 모두 없어진 후 다른 원인으로 모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원인을 알 수 없을 가능성도 있고. 어느 쪽이든 이것 역시 크라켄의 존재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크라켄의 야부리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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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 크라켄의 부리인 화석

 


나름 흥미로웠던 것은 크라켄의 부리(?) 화석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어룡의 사진을 본 맥메나민과 연구팀은 다시 네바다 주의 베를린-어룡 주립공원으로 돌아가 추가적인 증거가 없는지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약 5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크라켄의 부리일지도 모르는 화석을 발견했다고 한다. 맥메나민은 이것을 훔볼트오징어의 부리와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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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오징어의 부리



줄이 가 있는 모습이나 끝부분이 부러진 형태 등이 양쪽 모두에서 나타난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 화석(?)의 정체는 분명하지가 않다. 사진만으로는 화석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맥메나민 박사에게 이메일로 문의를 했더니 CT스캔을 해보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두족류의 부리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룡의 화석과 상관 없이 이것이 대형 두족류의 부리였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는 발견이 될 뻔 했지만... 아쉽게도 그도 아닌 모양이다.


결국, 흥미로운 증거들이 추가로 제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맥메나민 박사가 주장한 트라이아스기 크라켄의 존재는 상상, 혹은 논리의 비약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맥메나민 박사에 대한 자료도 조금 더 찾아봤는데, 과거에도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대담한 주장을 (4억 5천만 년 전에 육지를 생물의 조직이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는 초바다 이론이라든가) 했던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굳이 그것까지 자세히 파고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더 알아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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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의 최후.

사실 일주일 넘게 밍기적거리다가 술병이 빈 것을 보고,

글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싶어서... 

 


트라이아스기의 크라켄이라는 거창한 주장으로 시작했다가 어쩐지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 좀 드는데, 그래도 필자가 보기에는 화성 문명과 핵폭발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고 그럴 듯한, 한 번 들여다볼 만한 주장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번에는 일부 사람들이 중세까지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는, 익룡(!)에 대해서 한 번 디벼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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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