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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3. 화요일

sydney






-그들과 우리,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얻은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정리한 글입니다.






주먹보다 말이 가까운 사회


학교 앞에서 수업이 끝났는데 가방도 없이 어디를 가는 여학생 세 명을 태웠다. 그 또래 아이들이 타면 떠들기 마련인데 제법 긴장된 모습이었다. 애들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토론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호주 교육에서 토론을 매우 중요시해서 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각종 스포츠 챔피언컵과 같이 각종 토론대회 챔피언컵도 전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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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마치 법정에선 변호사처럼 계속 발표 연습을 했다. 호주는 학생들이 학교 일로 이동 할 때는 반드시 왕복 택시비를 학교에서 지불하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일단 학교로 돌아왔다가 집으로 가도록 한다. 책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호주 AM 방송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토크쇼여서 어른 애할 것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활발한 토론을 벌인다. 술집에 가서도 맥주 한 잔을 들고 서서 끝도 없이 이야기한다. 방송을 보아도 그렇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마이크를 들이대도 주뼛주뼛 하거나 슬슬 피하는 인간이 없고 남이 들을 때 말이 되건 안 되건 간에 누구나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 할 줄 안다. 토론이 완전 생활화된 탓에 정반대의 주장을 해도 열내지 않으며 냉정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편이다. 


도대체 이곳 백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다가 우습게도 입술이 얇아서 그런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백인들은 타 인종에 비해서 입술이 얇다. 어떤 사람은 아예 입술이란 것이 없는 것이 무척 경망스러워 보일 정도이기까지 하니까. 이렇듯 얇은 그들의 입술 두께가 말을 잘 하게 해주는지는 몰라도 표정이 다양한 까닭인 건 분명해 보인다. 하중을 덜 받으니까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보다 자유로울 것 아닌가? 


반면에 가장 입술이 두꺼운 인종은 흑인들이다. 입술이 두껍다 보니 흑인들에게는 미세한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흑인들의 표정을 읽으려고 할 때는 그 대신 눈을 잘 읽어야 한다. 하여간에 나는 입술 얇은 백인 보다 입술 두터운 흑인들에게 더 믿음이 간다. (키스를 해도 백인 여자 보다는 흑인 여자하고 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호주 백인들은 교육을 못 받은 막되 먹은 인간들 빼놓고는 상식적이지만 그 대신 미친놈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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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은 서비스업이다. 그러다보니 호주 정부의 정책은 철저히 승객위주다. 택시운전사 입장에서 보면 가혹하기 짝이 없다. 일단 손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불만이 몇 번 제기되면 면허정지를 받게 된다. 못된 인간들에게 생트집을 잡혀서 경찰에 끌려 다니기가 십상이고 잘하면(?) 법정까지 가는 수가 다반사이다. 백인들은 신고는 습관화, 고소는 생활화가 되어 있어서 기분 나쁘면 잘잘못은 나중이고 일단 신고부터 하고 본다.


이렇게 더러운 인간을 만나면 오래 태워 요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둘째치고 5분 정도의 시간마저 지옥 같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5분 동안에 신호등 하나, 차선 하나 가지고도 시비가 붙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손님들(99%가 백인)과 싸울 일이 생기는데 내가 잘못해서 싸움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고 대개가 교양 없는 백인들에 의해서 시비가 걸린다. 그러나 싸울 때 영어도 못하면서 먼저 성질을 내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나는 아직도 화가 나서 씨근덕거리고 있는데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도 돈 몇 센트 깎았다고 생글생글 거리며 "have a nice day!"하고 내리는 인간들을 보면 '저것도 잉가이가?'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언쟁을 하다 보면 대뜸 언성이 높아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얼핏 폭력적으로 보이는 백인들은 되려 언성을 높이는 일이 별로 없다. 만약에 대화 중에 한 편에서 핏대 올리고 감정적으로 나오면 그 다음 부터 아예 그 사람과 상대를 안 한다. 감정보다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습관일 것이다.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냉정하고 이성적일 수 있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어떤 때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말도 미안한 감정 전혀 없이 설명을 너무 친절하게 잘 해주는 백인들이 무서울 때가 있다. 마치 나를 묶어 놓은 채로 칼을 들고 "이제부터 내가 네 몸의 살을 한 근만 베겠어? 괜찮겠지?"하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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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랭크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보면 택시기사는 누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처럼 '앞으로 나란히'식으로 줄을 서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 대충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왔다 싶으면 앞으로 나선다. 이 때 재미있는 현상은 당사자는 꼭 '혹시 누가 나보다 먼저인 사람 없느냐?'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동의를 구한다. 아무도 이의가 없으면 자신 있게 택시를 탄다. 아무렇게나 서 있어도 누가 먼저 왔고 내 위치는 누구 다음이라는 것을 서로들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차례 때문에 분쟁이 생기더라도 제 3자가 나서서 '이 쪽이 옳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상황이 끝난다.


이런 현상은 다른 길거리 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주차 문제로 시비를 벌이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이 쪽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한 마디 하자 상대방이 두 말 않고 꼬리를 내린다. 한국에서처럼 "네가 뭔데 나서고 난리냐?"고 시비 거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장 경찰을 부른다. 객관적인 판단을 중요하게 보는 문화라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거 같다. 

 

이런 문화적 차이에 얽힌 재미난 얘기도 있다. 3명의 중국인이 서류를 한 아름씩 가지고 탄 적이 있다. 중국인 치고는 좀 질서가 잡힌 사람들이었다. 중국어를 썼다가 영어를 썼다가 했는데 중국인 특유의 영어발음을 그대로 구사하는 이들이라 곧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 자란 이들은 아니고 장성해서 이민을 와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된 이들이었던 거다. 호주에는 변호사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법정에 나갈 수 있는 법정 변호사가 있고 서류로만 일을 하는 변호사가 있는데 그들은 후자였다.


먼 거리를 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해사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변호사들이었다. 듣다보니 일단 남을 의심하기만 해야 하는 형사도 좋은 직업이 못되지만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서 일단 걸고 넘어져야 하는 변호사도 좋은 직업이 못되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는 정도가 가장 높은 직업이 무엇일까?


의사? 변호사? 교수?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교수는 한국에 비하면 정말 인기가 바닥이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호주에서 10년간 교수를 하다가 재미없어서 못해 먹겠다고 한국의 대학으로 갔다. 왜 그렇게 교수가 인기가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책임질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책임을 질 일이 많아서 즉,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많은 직업이 당연히 인정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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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어떤 건축설계사가 말하길, 자기 직업이 가장 인정도가 높은 직업이란다. 왜? 지은지 십 년이 넘는 건물에서 영업을 하다가도 장사가 안 되면 '누구 고소할 사람이 없을까?'하고 궁리하다가 "당신이 한 설계가 잘못해서 장사가 잘 안 된다"며 건축설계를 했던 사람을 고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비용에 아예 고소당할 때를 대비한 법률경비까지 포함되어 있단다. 물론 건축설계사가 본인 입으로 들은 것이니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일리는 있어 보였다.


호주는 그렇게 주먹보다 말과 법적 책임이 가까운 사회 같다는 인상을 주는 곳이니 말이다. 




융통성이 없는 인간들


호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오후 늦게 시드니 주변의 조그맣고 한적한 국립공원에 바람을 쐬러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공원이 무료 입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매표소에 공원 관리인이 있는 것이었다. 지난 평일 공원 나들이 때 보이지 않았던 터라 의아해진 나는 도대체 언제 나오고 언제 안 나오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니 이 공원 관리인, 평일에도 날씨 좋으면 나오고 날씨 나쁘면 안 나온단다. 참 편리한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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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예상 밖의 공원 입장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공교롭게 내 일행 중 누구도 현금을 갖고 있질 않았다. 다행히 그 때 일행 수가 많아서 차 두 대가 함께 갔기에 뒤따르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차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고 일행인 뒤차가 오면 돈을 받으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까 안 된다고 한다. 여기까진 내가 거짓말한다 여겨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다음 말이 걸작이다.


자기가 5시까지 근무 하니까 15분 있다가 들어가려면 들어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입구에서 주차를 시키고 기다렸다가 곧 뒤 따라 온 차의 일행과 함께 5시 정각을 넘어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퇴근하는 관리인과 정답게 인사를 하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제안대로 했으면 10불의 수입을 더 올렸을 터인데 도대체 이건 무슨 심보란 말인가?


미국에 있을 때에는 이와 반대 경우의 일을 겪었다. 5시까지 주차요원이 근무하는 주차장에 4시 45분에 도착했는데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조카가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주차요원이 퇴근하면 주차를 시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제 엄마 더러 15분 전에 도착했으니까 당연히 주차비를 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나 더, 다시 호주에서의 일이다. 콜이 와서 어느 복잡한 주택가에 손님을 태우러 가는데 바닷가라서 가는 길이 꼬불꼬불 굴곡이 많고 복잡했다. 그 집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게 생겼고 좀 더 가까운 길이 있기는 있는데 20미터 정도의 일방통행 골목길이 있었다. 한국이나 호주나 택시가 교통법규 철저히 지켜가면서 영업을 하기는 어려운 일인지라 잠깐동안 역주행을 하기로 하고 일방통행 지름길을 택했다.


실제로 한적한 주택가라서 앞에서 차가 올 일도 없고 차가 온다고 해도 뻔히 보이기 때문에 기다렸다 가면 되는 것이다. 무사히 짧은 일방통행 길을 통과해서 50미터 정도 가서 골목을 꺾어져 나오는데 아뿔싸 그 한적한 바닷가 주택가에 웬 놈의 경찰차가 어떤 차의 딱지를 떼고 있는 중이었다. 모른 체 하고 두근두근 하는 심장으로 그 옆을 지나가는데 경찰관이 기어코 내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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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저 앞에 일방통행을 지나왔지?"


보이지 않는 곳이니까 안 지나왔다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지만 한국사람 체면에 뻔한 사실을 거짓말 한다는 것이 쪽팔리는 일이기에 그렇다고 순순히 시인을 했다.


경찰을 눈을 부라리며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눈으로 못 보았으니까 딱지는 안 뗀다."하는 것 아닌가? 고맙다고 하고 한참 가다 생각하니까 은근히 성질이 났다. 제 놈이 못 보았으면 그만이지 의심만 가지고 추정해서 겁을 주다니? 그러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의심이 들면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 경찰의 의무가 아니겠나 싶었다. 한국 같으면 경찰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이 놈이 일방통행으로 왔겠구나.'하고 의심만 하고는 그냥 못 본체 하지 않았을까?


경찰관뿐만 아니라 호주 사람들과 상대를 하다보면 앞뒤 좌우 위 아래가 꼭꼭 막혀 숨이 콱 콱 막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서 그들의 생활에서는 소위 융통성이란 항목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애를 태웠는데 고급 호텔로 가잔다. 호텔 앞에 도착해서야 돈이 없어서 객실에 있는 제 부모에게 전화해서 돈을 가져올 터이니 기다리란다. 가끔 가다 돈이 없는 승객이 제 집 앞에 내려서 집에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는 있었어도 호텔에서 돈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이에 바쁜 호텔 현관 앞을 막고 있으니 다른 차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돈을 안 받을 수도 없고 난처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웨이터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로비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여자애에게로 갔다.


여자애가 다시 나오더니 1불 50 센트가 모자라니 아버지가 돈 가지고 내려오는 걸 기다리라 한 것이라며 15불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젠장! 1불 50 센트 받자고 그 애 애비가 수 십층이 되는 대형 호텔 객실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올 것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돈이 조금 모자란다고 했으면 될 일이었다. 나도 시간 낭비하지 않고 호텔에 진입하는 다른 차에게 불편주는 건 싫으니 15불만 받겠다며 가버렸을 테니 말이다. 보통 호주 애들은 이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종종 교민들이 호주에서 자란 2세 자녀들 때문에 복장 터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무슨 문제에 부딪혀 영어가 딸려서 자식들을 좀 써 먹으려고 하면 답답해서 차라리 한국말로 하는 경우가 더 났겠다 싶은 경우가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통 외국서 교육 받은 아이들은 "되냐? 안 되냐?"를 물어서 '안 된다'면 "땡큐"하고 끝낸다. 안 된다면 "왜 안 되느냐? 어떻게 하면 되겠냐?"등 까지 물어 볼 줄을 모른다. 2세들은 보통 어떻게든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제 부모에게 남에 일처럼 "안 된대"하고 전해주는 것으로 임무 끝인 경우가 보통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런 철학을 들어 본적도 없으니까 협상이고 뭐고 없이 그냥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는 거다.


오랜 동안 박정희에게 조련 받아 어느 정도 '하면 된다'라는 철학이 각인되어 있는 이민 1세대와 '되면 한다.'라는 생각을 가진 2세들 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교민사회에서 일상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되면 한다'는 구호가 아주 적절하게 쓰이던 곳이 있는데 남성용 팬티의 상표였다고 한다. 출입구에 '되면 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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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 애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하고 단순한데 비해서 한국 애들은 유치원생부터 벌써 까질대로 까져서 맨들맨들해 보인다.


호주에서는 어떤 일이든 매뉴얼에 따라서만 한다. 모든 일을 틀 안에서 생각하고 처리하려고 하니 일에 대한 책임 한계가 분명해진다. 정작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해야 할 일 보다는 책임 한계를 정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공사를 해도 속도는 빠른데 하자가 많이 발생하는 한국인에 비하면 백인들은 무슨 일을 해도 안전을 먼저 고려하다보니 생산성은 떨어져도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큰 건설 회사를 하다가 투자 이민을 온 친구가 집을 짓는데 "이 놈의 나라는 내 집 마당에 나무도 내 마음대로 못 심는다."고 투덜대던 일이 있었다. 가정집도 마당에 나무를 주인 마음대로 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어야 되는 나무가 있고 심어서는 안 되는 나무가 있다. 준공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구청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내 집 마당에 나무를 심는데도 자연과 환경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시드니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오두막 수준의 집(정말로 방 3개 밖에 없는 오두막이다.)이지만 조그만 수영장이 있다. 한국에서 생각하면 '수영장 있는 집이라니!'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집이 좋아서 수영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수영장이 있는 것이다. 시드니는 바다와의 거리가 집값을 결정해서 바다를 앉아서 볼 수 있는 거리, 서서 볼 수 있는 거리, 까치발을 하여 볼 수 있는 거리, 점프를 하여 볼 수 있는 거리, 2 층에서 볼 수 있는 거리에 따라 집값이 다르다. 그러므로 바다와 멀수록 수영장이 있는 집이 많다.


아무튼 이 집 뒤 쪽에 이웃한 빌이라는 70대 노인 부부가 있다. 그 집과 우리 집 사이의 담장이 너무 오래되어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지만 두 집 사이는 잡나무와 줄기 식물들이 얽혀 자란 덕에 대강 보이지 않게 되어 피차간에 사생활은 보호되는 편이었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 빌에게 담장을 새로 하자고 하니까 자기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정작 나에게 애로사항은 빌의 집에 있는 잎이 아주 작은 30미터 정도 높이의 나무로부터 생겨났다. 입사귀가 바람이 불면 우리 집 수영장으로 모조리 떨어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건져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집 나무를 자를 수도 없는 일이라 그 나무를 매일 저주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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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빌이 자기 집 쪽의 정글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집 사이가 휑하니 뚫리게 되었다. 자연 담장이 없어진 것이다. 내가 판자를 가져다가 대충 막아놓았더니 빌이 무슨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는지 담을 세우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자기 집 정원을 정리하자니 뚫린 구멍으로 혹시라도 누가 우리 집 수영장으로 들어가서 빠질 수 있으니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왕에 우리 집 수영장을 걱정해 주니 말이 나온 김에 내가 피해를 받는 것은 댁의 나무 때문이니 가지를 좀 칠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안 된단다.


결국 빌은 우리 집 수영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이도 없고 개도 없이 노인 부부만 살고 있지만 앞으로 양로원에 들어 갈 수도 있고 집을 팔수도 있으니 혹시 언젠가 자기 집 쪽에서 무엇인가가 넘어와서 우리 집 수영장에 빠질지 모를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70 대 중반 노인이 안전에 대하여 이 정도로 신경을 쓴다니 이 사회의 단단한 밑바닥을 보는 느낌이었다.


'안전'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상 깊게 들린 것은 고교 3년 때였다. 


당시는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명동의 학생 회관에서 미군 법무관 중령이 영어로 교리를 가르치는 클럽에 나가고 있었다. 클럽에서 야유회를 가기로 하여 중령이 미 8군에서 버스를 빌려오기로 했었다. 목적지는 강화도였는데 당시에는 강화도로 가는 다리가 없었기에 배에다 버스를 싣고 건너가야 했다. 그러한 교통 사정을 알게 된 중령은 버스가 다리가 아닌 배로 건너는 게 안전하지 못하다며 장소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야유회 장소는 산정호수로 바뀌게 되었다. 


그 때 우리들은 모두 섬인 강화도를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사고가 안 나고 잘만 다니는데 '안전'을 이유로 갈 수 없다니 속으로는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중령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겠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는 처사였다. 호주에서는 무슨 일을 하던 안전이 최우선이고 안전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아마 안전하지 않다면 천국도 사양할 것이다.


융통성이 없는 호주 사람들은 분명 답답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안전 문제에서만큼은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는 사람들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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