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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06. 금요일

파토

 

 





이 이야기는 소재로 보면 우원의 또 다른 연재인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 들어가야 할 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제는 <쿡 찍어 푸욱>의 방향으로 풀 거라, 잠깐의 고민 끝에 이쪽에 넣기로 한다.

 

바로 얼마 전에 크게 화제가 됐던 파검흰금 드레스 논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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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검정 or 흰색금색

That is the question.

 

지난 2 27일 텀플러에 'Swiked'라는 사용자가 드레스 사진 한장을 올리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이 양반이 위 사진과 함께 드레스의 색깔에 대한 자기와 친구의 생각이 다르다며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거다. 그때부터 이 사진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고, 하루 즈음이 지나자 전 인류는 파검파와 흰금파로 양분되기 시작한다.


매체들은 이 세기의 질문에 대한 온라인 투표에 들어갔고, 먼저 미국의 버즈피드가 72% 28 %로 흰금의 손을 들어줬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장장 138 5천명이다. NBC 의 보스턴 지국 WHDH 의 온라인 투표에도 흰금이 69%, 파검이 23%로 집계됐다. 이렇듯 여론의 방향은 대략 비슷한 정도로 흰금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논쟁을 보다 못한, 자그마치 포토샵을 만드는 어도비사가 나서서 드레스 색을 분석한 결과 이 드레스의 실제색은 온라인 투표 결과를 뒤집는 파검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결국 드레스의 다른 사진이 등장하면서 파검쪽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고, 판매 사이트의 캡쳐 사진과 ‘blue’ 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품명이 밝혀지면서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글타. 이 드레스의 원래 색깔은 7,80%가 주장한 흰금이 아니라 파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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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에 힘입어 이 드레스는 순식간에 절판됐다고.

예쁜진 잘 모르겠고.

 

이렇게 을 찾긴 했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커다란 질문이 던져졌다. 어떤 사람들 눈에는 어이없게도 저게 흰색과 금색 글타, 우원은 파검파다 - 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편집자 주: 본인은 흰금파다.)


? 어떻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 다르게 세상을 보고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그간 소위 착시효과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접해 왔다. 휘어진 선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평행선이더라, 전혀 길이가 달라 보이는 두 선이 실은 같은 길이다 등등 어릴 때부터 봐 와서 익숙해진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간혹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이상한 것들도 있다.

 

아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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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커먼 A 와 허연 B 는 실은 같은 색이다. 글타. 같은 색이라고. 포토샵 스포이드로 저 부분들만 딱 떼 와서 동일 조건하에서 비교하면 똑같다는 말씀이다. 같은 색으로 이어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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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기둥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착시인데, 만약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절대 같은 색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건 흑백이지만 컬러에도 물론 적용될 수 있다. 아래 블록을 보면 그늘진 앞쪽 한가운데 오렌지 색 타일이 붙어 있고, 밝은 위쪽 한 가운데는 짙은 갈색 타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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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 두 타일은 같은 색이다. 믿어지시냐덜.

 

내친 김에 하나 더 보여드리자. 아래 사진에는 3대의 비슷한 차가 주차돼 있다. 다만 맨 앞의 차는 장난감처럼 작고 맨 뒤는 트럭처럼 우람해 보인다. 물론, 이 차들은 다 같은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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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은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가에 대해 과학적인 논의를 벌일 생각은 없다. 조명, 명암의 차이, 원근감에의 왜곡 등등이 이유라고 하는데 그렇게 듣고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이성적인 분석과 설명을 우리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우리의 직관과 본능은 자꾸 저것들은 서로 다 달라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착시 효과들과 비슷한 것도 같은 이번 사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멀까?

 

위와 같은 사진들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착각하며 본다. 다시 말해 저 오렌지 블럭과 갈색 블럭을 같은 색으로 볼 넘은 아무도 없다.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생물학적, 신경학적 요인 때문에 같은 착각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검흰금 드레스는 다르다. 드레스의 원래 색이 파검이라면 결과적으로 흰금으로 보는 사람들이 일종의 착시를 경험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일에서 중요한 건 어느 쪽이 옳냐는 게 아니라, 두 진영이 철저하게 나뉘어 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른 진영이 그 드레스 사진에서 정확히 무슨 색을 보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나아가 이 두 진영은 서로 바뀌지 않으며, 고개를 그떡이며 납득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다들 경험했듯이 계속 '진짜?' 하면서 의문만 던지고, 서로가 본다는 색을 믿지 못하며 놀랄 뿐이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일을 이토록 큰 화제로 만든 배경의 이유다.

 

머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보는 착시 효과도 없는 건 아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댄서가 한 방향으로 돌다가 어느 순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걸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왼쪽으로 돌 때는 완벽하게 왼쪽으로 도는 걸로 보이는데, 일단 오른쪽으로 도는 걸로 보이기 시작하면 좀 전에 왜 이게 왼쪽으로 도는 걸로 보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반대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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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것대로 생각해 볼 거린데, 여하튼 한 사람이 상황에 따라 두 모습을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파검흰금 드레스와는 또 다른 경우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온 모든 착시현상이 앞의 사진들 류가 아니면 이 회전하는 댄서 영상, 둘 중의 하나다.


이 상황을 보면서 우원의 머리 속에 떠 오른 단어는 단절이었다. 어쩌면 이 파검흰금 소동은 역사상 처음으로 각 개인들이 뭔가를 서로 완전히 다르게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타협이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준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저게 흰금이라고 아무리 강력히 주장해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파검파인 우원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내 눈에는 명확하게 파검일 뿐이다. 그들은 그런 나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나 혼자만 파검을 주장하고 있다면 종국에는 거짓말장이나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리게 될 거다. 한편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저들이 합심해서 거짓말로 나를 왕따시키려 한다고 여기거나, 나아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스스로가 정말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될 거다

 

, 이게 묘한 조명을 받은 드레스 한벌에 국한된 이야기라면야 상관없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이 파검흰금 드레스 효과를 발견하는데만도 인터넷이 일상화 된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세상엔 이런게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알게 뭐냐? 누군가에게는 명확한 어떤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반대 의미에서 명확할 수 있고, 그 대비의 명료함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 파검흰금 드레스처럼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오해와 갈등을 낳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는 참으로 비생산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런 극적인 차이와 단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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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 사람들이 흰 피부에 금발이라고 주장한다면

열분들은 거기에 고개를 끄떡일 수 있겠냐.

 

없다.

 

파검파와 흰금파 둘다 자기가 뻔히 보는 색이 틀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그래, 니가 옳을 지도 몰라라며 양보할 수도 없다. 판매 웹사이트을 통해 파검이 원래 드레스의 색이라고 증명된다 한들 여전히 내 눈에 다르게 보이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이 문제는 실물 드레스의 진짜 색이 아니라 그 특정한 사진에 나타난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게 쟁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종교, 정치, 인종, 민족, 언어 등 수많은 다른 이름의 파검흰금 드레스들이 널려 있다. 내게는 그저 당연하고 옳고 지당하고 확실한 건데도 다른 누군가에는 전혀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인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니들한테는 너무 뻔한 이야기인데 내게는 지랄 옆차기로 보이는 것들도 천지빼까리로 많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토론하고 논쟁하고, 심각하게는 싸우고 나아가 죽이기까지 한다. 그 결과 때로는 파검파가, 또 흰금파가 주류가 되어 상대편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짓누르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서로 다른 가치가 서로를 틀린 것으로 여기며 벌인 주도권 쟁탈전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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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은 서로를 누르고 잡으려 한다.


드레스 사진이 보여줬듯, 이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슬람과 기독교, 나아가 무신론이 하나로 통합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지 모른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같은 것이 될 수도 없고, 진보와 보수가 중간에서 딱, 만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런 가치들 중 뭐가 진실이냐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다. 드레스의 원래 색이 쟁점이 아니듯,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걸 보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 아닐까. 이 다른 생각들을 통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놔두는 거다. 파검으로 보인다면 그렇게 놔두고, 흰금으로 보이면 또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 거다. 이건 파검이야! 라고 소리치는 순간 단절은 갈등으로 번지고 만다. 너는 환상을 보고 있어, 너는 미쳤어,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너는 쓰레기야라는, 반대 쪽에서는 한없이 억울할지도 모를 비난이 되고 만다.

 

, 글타고 인간사의 모든 게 다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원은 절대적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규범과 룰이 존재해야 하고 그 가치는 시대의 보편율을 따르게 마련이며, 서로 다른 극단적인 의견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아무 판단이나 결정도 하지 않고 그냥 있을 수도 없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명백하다고 믿는 것도 누군가에는 명백히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각성을 오랜만에 이 생뚱맞은 파검흰금 드레스 사태가 던져주는 것 같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용, 한때 똘레랑스라는 불어로 유명했던 그것을 한번쯤 되새길 시점이 아닌가 싶은 거다.


그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 원칙이 바로 양심과 표현의 자유일거다. 그런데 이건 어쩌면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불안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정부부터 앞장서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지금 우리 자신들의 일상이나 생각 속에는 나와 다른 것을 용인하는 맘가짐이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어떤 이는 욕망과 힘에 눈이 멀어, 어떤 이는 분노와 절망감에 떨며, 다른 누군가는 패배감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혀 다른 것은 다 틀렸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면, 그래서 저게 파검이나 흰금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듣고싶지 조차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사회는 정말 암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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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사회의 모습



그래서 우원은 이 기회에 한번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싶다. 여러분은 어떠시냐.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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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