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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오래전 엠엘비파크 불펜의 회원이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별의 별일도 많았지. 그런 것들이 또한 커뮤니티의 매력이었고, 나는 매일 그곳을 들락거렸다.


2년 전 11월, 큰 시험을 끝내고 나는 큰마음의 상실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시험은 점수가 나와봐야 결과를 알 수 있었고, 나는 결과도 모르는 채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불펜질만 했던 나를 따끔하게 혼내는 척하곤 다시 불펜에서 놀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불펜에서 유명했던 일본의 아이돌인 시노자키 아이를 보고 온 불페너 하나가 긴 인증 글을 올린 것이다. 그는 시노자키 아이의 팬이었고, 일본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몸뚱이 하나로 열심히 고생하여 그녀를 만나 선물까지 하고 온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열정에 환호하였고, 열광적인 추천 수로 호응해주었다. 불펜 역사상 이런 일은 흔치 않았고, '뭔가 멋있는 거 같지만, 실상은 뭐라 말하기 그런' 일에 불페너들은 언제나 좋아하였다. 하지만 이 일은 시작에 불과하였고, 그 직후 우리를 더 열광 속에 빠뜨린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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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자키 아이 인증이닷 (이미지출처 : MLBPARK)



불과 1시간 정도 후,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츠보미와 만나고 인증샷을 찍은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시노자키 아이를 만난 후기를 장문으로 보고하듯 적은 그만큼이나 정성 들여 쓴 그의 글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는 '뭔가 멋있는 거 같아서 열광하지만, 실상은 뭐라 말하기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사실에 흥분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별의 별것으로 서열 매기기를 좋아하는 불페너들은 급기야 추천 수로 경쟁에 들어갔다. 엠엘비파크 최다 추천 글에 오르는 24시간 동안 더 많이 추천받는 사람이 이기는, 정작 당사자들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경쟁. 거대한 축제의 분위기는 그렇게 뜬금없이 시노자키 아이와 츠보미의 당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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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츠보미 인증으로 간다. (이미지 출처 : MLBPARK)



하지만 그것 역시 불페너들에겐 축제 일부였고, 상당수는 그 둘을 모두 추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으리라. 선거운동이라도 하듯 불페너들은 시노자키 아이와 츠보미에 대한 응원 글과 유세운동을 벌였고, 때론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도 펼치면서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평소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결과는 근소하게 시노자키 아이의 승이었다.


패배자인 츠보미의 팬은 '패배인정문'이라는 명문을 썼고, 승자인 시노자키 아이 팬도 화합의 글을 썼다. 이 아름다운 분위기에 서로 네거티브까지 펼치며 분열의 기세를 보였던 불펜은 잠깐이나마 대한민국 어떤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국민 대통합'의 감동스러운 순간을 이뤄냈다. 우리들은 이 거대한 축제를 즐겁게 즐겼고, 시험에 짓눌려있던 나도 잠시동안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2.


2014년이 돌입하고 나는 백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교 내내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 일주일 용돈 5만 원으로 생활하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용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스스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처지도 나와 같았던 아는 형이 전화로 연락이 왔다. 


"천안 종XX에 이틀짜리 알바가 떴는데 나랑 같이 갈래? 20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야." 


돈이 급했던 나는 바로 콜했고, 그 형과 나는 천안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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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도 뜨지 않은 3월의 새벽, 천안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천안터미널 근처 편의점에서 대충 아침을 때운 후에 천안터미널에서 종근당으로 떠나는 회사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약간의 서류를 작성한 후 거대한 운송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택배 회사 같았다. 수많은 물건이 있었고, 수많은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약간 긴장했다. 택배 상하차는 하지 않았지만, 그 악명은 익히 들어본 적 있었으므로...


하지만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일을 시켜보려던 회사직원들은 우리가 곧 쓸만한 재목들이 아니란 걸 알아채곤 그냥 박스 밴딩이나 시키고 필요할 때 잠시 힘이나 쓰는 정도로 쓰려고 했던 거 같다. 회사 직원들은 친절했으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칠 거라는 나의 개인적인 편견을 깨는 데 충분했다.


우리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나는 이곳을 소개한 형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너는 돈은 어떻게 벌거냐."

"막막해요. 생전 안 해본 일이라. 알바도 그동안 해본 적 없고."

"그럼 단기 알바 쪽으로 일해봐. 용돈 떨어질 때 즈음에 잠시 일하고 또 버티다가 일하고. 그렇게 해."


그 형은 단기 알바는 돌아다니다 보면 꽤 있으니 일이 생기면 나하고 같이 해보자고 했고 나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그리곤 우리는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형. 혹시 형은 돈이 좀 생기면 뭐하고 싶어요?"

"나야 뭐 알잖아. 여행가는 거지. 이번엔 좀 멀리 가보고 싶네."


대학교 다닐 때부터 그 형은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다녔던 여행애호가였다.


"너는 뭐하고 싶냐?"


이 질문이 나에게 돌아왔을 무렵, 나는 특별한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형처럼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생활비로 쓰긴 이렇게 돈 번 게 아까웠다. 그 때였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이미 4달이나 전에 벌어진 불펜의 그 장면이었다. 시노자키 아이와 츠보미를 만나러 갔던 내 눈에는 용감하고 대단해 보였지만, 남에게는 말하기 그런 일을 한 사람들. 이유는 모르겠다.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지. 그것 또한 숙명론자들이 말하듯 거대한 숙명의 수레바퀴 살의 하나일지.


"흠...... 형 4년 전에 저랑 일본 갔었던 기억나요?"

"어."

"이번에 한 번 더 가보고 싶긴 해요."


우리는 그런 속 없는 이야길 나누면서 힘든 걸 잊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도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종XX 알바는 이틀 만에 끝났다. 그리고 그 형과 나는 보름 후 시험지 인쇄소 알바로 36만 원을 벌었다. 나와 같이 단기알바나 하자고 했던 그 형은 4월이 되자마자 단기 알바가 아닌 긴 알바를 구하게 되어 단기알바 대열에서 탈퇴했다. 나는 4월에 다른 알바가 있나 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1달 전에 내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듯이 다시 불펜에 접속한 나는 이미 오래전 글이 되었던 작년 11월의 글을 찾았다. 수백 개의 댓글을 내려가다 한 개의 댓글을 찾게 되었다. 그 이벤트를 주최하는 사이트의 홈페이지 주소를 적어놓은 댓글을. 나는 이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벤트 일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츠보미를 보러 갔던 그에게 쪽지를 보냈다. 혹시 이 이벤트 내용을 해석해 줄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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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문제의 리플로 추정되는 리플



쪽지가 왔다. 나는 다시 단기 알바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 다른 인쇄소 알바였다. 인쇄소 알바는 외부와 연락할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나름 괜찮은 알바이다. 난 이곳에서 3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4월 16일. 대한민국이 제주도로 떠나는 한 거대한 배의 사고로 침통해 했던 그날 오전. 나는 인터넷 뉴스로 그것을 확인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3.


온 나라가 세월호의 침몰 사고로 침통했던 4월 16일. 나는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 텍스쳐로만 전해지는 그 무미건조함으로 인하여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들뜬 마음으로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해외여행을 혼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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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며 나는 긴장이 되었다. 언제나 비행기를 탈 때는 이 비행기가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하지만 별 사고 없이 비행기는 무사히 떴고, 우리나라를 저 멀리 남겨두고 난 일본으로 향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나는 도쿄 우에노로 가야 했고, 전철을 탔다. 나는 철도를 좋아했고, 뭔가 새로운 철도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여윳돈이 별로 없었다. 돈을 아껴야 했다. 가장 싼 일반 전철. 하지만 1,000엔이 넘는 높은 가격에 손을 후덜덜덜 떨면서 전철표를 뽑았다. 나리타는 도쿄에서 정말 멀었다. 나는 1시간이 훨씬 더 넘게 전철에 있어야 했다. 지하철을 별로 타본 적이 없었기에 잠도 잘 잘 수 없었다. 아니, 긴장감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을까.

 

우에노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졌고 도쿄는 자동차의 빛나는 라이트와 건물의 빛이 박힌 까만 옷으로 갈아입었다.

난 내가 묵을 숙소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야 했다. 어느 화려한 빠찡꼬 건물 고층에 있는 캡슐 호텔. 내 지갑 사정으론 그 이상의 숙박시설은 허락될 수 없었다. 짐을 풀고 나는 우에노 근처에서 가장 싼 식당을 헤매다 이상한 국물도 없는 우동을 먹었다. 그리고 도쿄타워를 구경하러 갔다. 이미 늦은 저녁이었지만 역시 '본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 여행의 예고일 뿐이었다. 내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도쿄타워도, 내일 갈 '에노시마'도 아니었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에노시마와 가마쿠라로 갔던 5시가 훨씬 넘어 도쿄 신주쿠 역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은 매우 급해져 있었다. 이미 매우 늦었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왔던 이유, 그것을 이루지 못 할지도 모른다. 신주쿠 역은 거대했고, 나는 이곳에서 한참을 헤매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려 아키하바라 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난 계속 시계를 보고 있었다. 시간은 내 마음을 모르듯 흘러가고, 내 마음을 모르는 전철보다 나는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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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 역에 도착하고, 나는 한 건물을 찾았다. 그곳에 들어가서 나는 내가 이곳에 온 용건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난 일본어를 하지 못했다. 손짓과 발짓, 그리고 안되는 영어와 일본어를 총동원했다.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난 그곳에서 2장의 DVD를 샀다. 5,500엔. 일을 치루기엔 만만치 않은 대가로군. 그리고 점원이 명함처럼 작은 종이에 전해준 약도를 보고 한참을 거대한 아키하바라를 돌다가 드디어 그 건물을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시작했지만 나는 다행히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이곳 도쿄에 온 이유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AV배우 하즈키 노조미가 있었다.




4. 


그곳에는 AV배우 하즈키 노조미가 팬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 담당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담당자 역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이 들어오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세계의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와 안되는 영어로 대충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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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니찌와~



나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이벤트가 벌어지는 그곳을 관찰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중앙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나보다 먼저 온 30명의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나이 조금 있는 아저씨로 보였다. 내 나이 또래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이 나잇살 먹은 아저씨들이 무슨 주책을 부려서 여기 모여있나.'라고 그들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미친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곧 난 그들이 보여주는 팬심을 감명 깊게 바라보게 되었다. 양복 입은 직장인처럼 보이는 이도, 커다란 백팩을 메고 안경을 낀 오타쿠처럼 보이는 사람들 모두 난 생각도 못 한 고급진 카메라를 들고, 이벤트 때문에 산 게 아닌, 이전부터 샀던 것처럼 보이는 DVD를 가져오거나 자신이 직접 만든 거 같은 사진을 들고, 직접 고른 선물을 건네주며 하즈키양에게 사인을 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직접 안경 소품을 가져온 팬도 있었다.

그들의 팬심은 진심이었다. 난 곧 그들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 국경은 다르지만, 저 사람들이나 나나 모두 하즈키양을 좋아해서 한자리에 모인 인연이다. 그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기보단,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팬임을 인정하고 박수를 쳐주자. 난 조용히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겠으나 그건 오오, 나에겐 감동이었네.


하즈키양의 팬서비스는 여러모로 농도가 진했다. 그는 자신을 만나러 온 팬들을 위해 얼마든지 좋은 포즈를 취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름 거유 배우인 하즈키양은 가슴이 파여 브래지어가 훤히 드러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농도 높은 포즈를 취해주는 일도 거리낌이 없었다. 귀여운 포즈도, 때론 팬티를 드러내거나 앉아서 M자형 다리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나는 하즈키양과 같은 적극적인 팬서비스 포즈를 취해주는 이를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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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 순서가 다가왔다. 메인이벤트 담당자는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오자 역시 당황했다. 하지만 역시 어찌저찌하여 대화는 통했다. 나는 하즈키양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와 팔짱을 끼고 같이 투 샷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 그리고 팔짱 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그녀의 신체. 그 날카로운 감각은 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여성과 낀 팔짱이었다.


사진찍기가 끝나고 나는 사인을 받게 되었다.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나는 구글 번역기로 나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나는 차마 여기서 적지 못할 낯간지러워 손이 오글거릴 말을 적었고, 하즈키양은 양 뺨에 손을 대고 '하즈카시'라고 말해주었다. 그 오글거릴 말은 지금 생각해도 밤에 자다 이불을 찰 수준이지만, 하즈키양의 그 모습이 귀여워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이벤트는 끝났고, 하즈키양은 팬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물론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벤트는 끝났다.


이 정도까지 글을 썼다면 내 이후의 여행에 관해선 관심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그 후엔 별로 적을 건 없다. 다음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그 엄청난 일을 내가 왜 했을까. 여행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실외활동 자체를 안 좋아하는 내겐 지금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마음속에서 하즈키양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커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정말 그것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하즈키 양이 아닌 다른 배우라도 난 갔었을 거 같다. 그렇다면 하즈키양만이 내가 그렇게 큰일을 벌인 이유가 아닌 것이다. 


결국...... 난 츠보미를 만나러 갔던 그처럼 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처럼 내가 모니터를 통해서만 만났던 그녀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처럼 같이 사진을 찍고 후기를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 이 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결국 모두 그가 지배하는 것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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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먼바다 건너 만난 여인.

나에게 웃어준 여인.

나에게 팔짱을 끼워준 여인.

그 머리카락 냄새, 팔짱 낄 때의 감각. 기억나지 않아도 내 운명의 지침을 바꾼 여인.

내 서툴고 오글거리는 고백에 부끄럽다고 말해준 여인.

언젠가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여인.


하즈키 노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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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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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타노 유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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