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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11. 수요일








편집부 주


아래 글은 해외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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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잠재 후보군

민주당(왼쪽): 모르는 분, 힐러리 클린턴, 현재 부통령인 조 바이든

공화당(오른쪽): 테드 크루즈, 랜드 폴, 젭 부시, 마코 루비오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언론이 서서히 달궈지고 있다. 2012년 선거가 오바마의 재선으로 판가름 난 직후부터, 성질 급한 언론이 2016년을 논한 지 오래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가운데, 선두 주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나만 그랬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일리노이 초선 상원 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에게 후보 자리를 내준 이후로, 그 이름이 2016년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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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선호도 48%. 젭 부시 선호도 21%.

그런데 미국인 10명 중 7명은 대통령 후보가

부시 가와 클린턴 가 말고 더 나와야 된다고 말한다

 


현재 힐러리는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 되는 인물이다. 한편,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젭 부시(Jeb Bush. 조지 부시의 둘째 아들이자, 조지 W. 부시의 동생으로 전직 플로리다 주지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당내 후보 경선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초, 비로소 자신의 캠페인을 후원(펀딩)P.A.C.(이 글을 계속 읽다 보면 이게 뭐하는 단체인지 알게 되실 거다)를 결성한다. 공화당 경선에 참가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 글은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과 선거 구조 및 자금 조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이다.

 



아이오와 코카스 (Iowa Caucus)

 


2008년 대통령 선거는 내가 미국에 와서 경험한 첫 번째 대통령 선거다. 그래서 한국 언론의 걸러진 입이 아닌 미국 언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선거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이오와 코카스(Iowa Caucus)라는 말은 4년에 한번 씩 신문에서 읽었다. 그렇지만 정확히 코카스라는게 뭔지도 몰랐고, 기사를 쓴 기자도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미국에 오고 나서야 그게 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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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를 논할 때, 아이오와 코카스가 중요한 이유는 대개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1월에 아이오와를 필두로 기초선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건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마찬가지다. 2016년 역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아이오와 코카스를 필두로 6개월 동안 당내 경선을 한다. 전당대회가 50개 주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전국 규모의 당 회합이라면, 코카스는 한 주 단위로 열리는 미니 전당대회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사실 대통령 선거는 아이오와 코카스 시작 일 년 전부터, 자신의 캠페인을 펀딩할 후원단체를 결성하고, 펀드레이징(정치자금 모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후보에 따라 더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오와 코카스를 시작으로 기나긴 경주에 돌입하는 것이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

 


2008년 아이오와 코카스의 결과는 의외였다. 한낱 초선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가 아이오와의 전체 유효 투표수 가운데 38%를 얻어 힐러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 지지율은 아이오와 민주당 당원의 특정 후보를 향한 지지율을 의미하며, 이 지지율을 토대로 전당대회에 참석할 대표(Delegate)의 숫자가 결정된다. 오바마가 아이오와 당원 38%의 지지를 얻었다는 말이다. 아이오와 다음에 열린 뉴 햄프셔에서는 힐러리가 가까스로 오바마를 물리치고 1위를 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와 같은 주요 주에서도 모두 힐러리가 승리하였다. 둘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벌였다.

 

사실 코카스가 진행되는 동안 각 후보의 지지율은 누적되기 때문에, 어느 후보가 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될 것인지 전당대회 전에 대충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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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민주당 경선 중 서로를 외면하는 힐러리와 오바마

 


당시 힐러리는 인지도 측면에서 오바마보다 앞섰고, 최상의 선거 스태프를 두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오바마는 초선 상원의원인데다 선거 스태프들도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와 오바마는 막상막하 각축을 벌였다. 그러다가 민주당 전당 대회를 석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 6월 초, 힐러리는 자신을 지지하던 민주당원들에게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밀어줄 것을 호소하면서 후보경선에서 사퇴한다. (남은 경선을 해도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이 들었기에 사퇴한 것이다. 2008년 민주당 기초 선거 결과)

 

"I have stood on the stage and gone toe-to-toe with him in 22 debates. I've had a front row seat to his candidacy and I have seen his strength and determination, his grace and his grit."

 

"나는 그(오바마)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개 토론을 22번이나 벌였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였던 나는, 그의 강한 의지력과 결단력 그리고 부드러움과 끈질긴 면을 모두 보았다."

 

힐러리가 사퇴하면서 한 말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후 힐러리는 지속적으로 오바마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고, 그 해 8월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였다.

 



미국, 리더쉽을 다르게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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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이 때만 해도 젊다.

 


2008년 민주당 경선 당시, 오바마에게 전국무대 정치경험이라고는 일리노이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에 당선 된 경험 밖에 없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주 의회에 진출하기 전, 12년 동안 헌법학 교수 겸 인권 변호사였다. 2년 임기의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은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의회 의원 정도 될까? (주 의회는 말 그대로 해당 주의 입법기관이고, 연방의회는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 입법기관이다. 일리노이의 경제규모는 50개주 가운데 5위정도 된다.) 그는 1997~2004년 동안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을 세 번 역임하였으며, 해당 기간 중 한 번은 민주당내 후보 경선에서 패배하여 선거에 나가지도 못했다. 2005년이 되서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일리노이를 벗어나 워싱턴으로 진출하였고, 2008년 초선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었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상원의 여러 분과 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 것과 비교하여 볼 때, 당시 오바마의 정치적 경륜은 매우 짧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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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라는 구호가 인상적이다.

 


이와 같이 정치적 경륜이 짧았던 오바마가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를 물리치고, 또 대통령 선거에서 매케인보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리더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 미국은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져감과 동시에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경제 침체기(Recession)였다. 1930년대 대공황(Depression)에 버금간다는 할 정도의 경제 침체는 미국 사회에 위기의식을 가중시켰다. 거기다 기나긴 이라크 전으로 인해 국민들은 심리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미국인들이 이해하는 강한 리더쉽의 소유자는 보스처럼 불도저처럼 밀고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비져너리(visionary) 타입이다. ‘비져너리는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과 때문에 보지 못하는, 꿈이 있는 미래를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투쟁하고, 끈임 없이 노력 하며, 사람들을 설득하여 리드해 나가는 인내심과 저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캠페인 기간 중 보여줬던 리더쉽은 두 번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일련의 진보주의적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2016년 대표 주자,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쉬

 


1989년부터 미국 대통령의 성은 부시 아니면 클린턴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레이건 대통령을 이어 제 41대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의 뒤를 빌 클린턴이 이었고, 그 다음을 조지 W. 부시가 이었다. 그래서 현재 2016년 대통령 선거의 대표주자인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시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패턴은 유지될 거라는 농담이다. [부시->클린턴->부시->(오바마)->클린턴 or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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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는 제 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부인으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였다. 현재 퍼스트 레이디인 미쉘 오바마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쌓았듯, 힐러리 역시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로서 활동하였다. 백악관을 떠난 직후인 2001,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직에 당선되어 8년 동안 의원직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대선을 노린 행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말을 아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사퇴한 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직을 수행하였다. 미국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은 한국으로 치면 국무총리와도 같은 요직이다. 연방 상원의원직과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리더쉽과 국정 수행 능력을 입증하였기 때문에 힐러리에게는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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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가지 사태에 대한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힐러리

 


이런 힐러리의 오점 중 하나는 자신이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어났던 벵가지 사태다. (벵가지 공격이라고도 부른다.) 2012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파견 대사인 크리스토퍼 스티븐스가 리비아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반정부적인 이슬람 군대의 공격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부가 제때 지원 병력을 파견하지 않아 미국민이 죽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국정 수행 및 위기관리 능력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에 공화당은 이걸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또 며칠 전,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자신의 개인 서버를 통해서만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뭔가 숨기는 게 많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적합하겠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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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형과 함께. (맨 오른쪽이 젭 부시)

 


한편, 공화당 대통령 후보군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젭 부시의 원래 이름은 존 엘리스 부시이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자란 그는 필립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다시 텍사스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 공부를 잘한 거 같지는 않다. 1971년 젭 부시는 필립스 아카데미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멕시코 레온에 가서 영어를 가르친다. 이 때 미래의 아내인 콜럼바를 만난다. 당시 둘의 나이 18. 1974년 센 텍사스 남자 로맨티시스트 젭 부시는 콜럼바를 멕시코에서 데려와 결혼식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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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 부시와 콜럼바 부시. 로맨티시스트처럼 보이나?

 


대학 졸업 후 플로리다로 이주하여 부동산 개발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아버지와 형처럼 정치에 뛰어들었고, 1999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취임하였다. 플로리다 주지사(1999-2007) 당시, 불법 이민자의 운전면허증 취득을 허락하는 법안을 서포트하고, 의료 시스템을 개혁하는 등 공화당의 정책과 궤도를 달리하는 독자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젭 부시가 공화당 내 극우파에게 이상적인 후보는 아닌 것 같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다른 대항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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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지사로 취임하는 젭 부시. 옆에서 바라보는 부인이 콜럼바

 


젭 부시의 최대 약점은 그의 성 '부시'. 아버지와 형이 모두 대통령이었고, 둘 다 경제 측면에서 그리 성공적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형인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예산 낭비는 물론이요, 의미 없는 전쟁을 질질 끌었다. 국민들이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따라서 그는 아버지나 형과 다른, 독자적 정치관을 가진 후보임을 강조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근 공식석상에서 그가 한 말은 자신을 자신의 아버지와 형과 똑같이 보지 말아달라는 말로 들린다.

 

"I am my own man and my views are shaped by my own thinking and my experience."

 

"나는 (아버지와 형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은) 나 자신일 뿐이고, 내 시각은 내 생각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는 현재 다른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 전체가 모금한 후원 액보다 많은 모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젭 부시가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되지도 않을 후보한테 몰릴 후원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젭 부시에게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 임기가 끝난 후 '이노 비다 홀딩스'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 이사회 일원 겸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했었다. 현재 이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400억 원 손실을 입고 소송(사기)을 걸어놓은 상태다. 또 이 회사 최고의 경영진 두 명이 이와 관련하여 형사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가 있는 상태다. 젭 부시가 이사회 일원으로 있을 때 발생한 일이긴 한데, 그가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연관이 돼 있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다음 편엔 대통령 선거의 시스템과 선거 자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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