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11. 수요일
sydney
-그들과 우리, 어떻게 다른가?- 이 글은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얻은 문화인류학적 느낌을 정리한 글입니다. |
윤락 업소를 찾는 사람들
2편에서 카지노롤 드나드는 손님 얘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윤락업소를 찾는 사람들을 태우며 겪은 얘기를 해볼까 한다.
호주 윤락업소의 서비스 가격은 보통 시간 당 250불 정도인 듯 하다. 그런데 이 가격도 시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변두리로 갈수록 값이 싸지는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체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까봐 걱정할 염려는 별로 없다. (역시 성진, 아니 선진국이다.)
이곳에서는 업소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집의 넘버를 조그맣게 붙여 놓는데 비해서 업소는 아주 크게 네온사인으로 만들어 붙여 놓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윤락업소의 우편물은 밤에 배달되기라도 하나 싶었을 정도다. 이렇게 불을 켜놔도 장사가 잘 안 되는 곳은 택시 기사와 미리 얘길 해두기도 한다. 손님을 데려다 주면 1인당 20불씩 주겠다고 말이다.
서구 사회는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보니 자연히 섹스 산업도 발달해 있다. 혼자 사는 남자는 여자를 사서 성욕을 해결하고 혼자 사는 여자는 이런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돈을 벌고 있으니 참 편리한 사회다. 호주는 여자 혼자 신문에 광고를 내서 몸을 파는 행위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 단 두 사람 이상일 경우는 사업신고를 해야 한다. 세금 내야 하니까.
아무튼 이런 호주 윤락업소들을 찾는 손님도 인종에 따라 태우는 느낌이 다르다. 백인들이야 아무데나 데려다주면 되지만 가끔 동포들을 태울 때는 사정이 좀 다른 것이다. 한국 청년 두 명을 태운 적이 있었다. 종이에 적힌 주소를 주면서 그리고 가자고 하는데 몇 번 손님을 태워준 적이 있는 곳이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그 곳은 한국인이 외화벌이를 위해 진출(?)을 한 업소였다. 그런데 이 청년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눈치 채더니 "죄송합니다. 객지에 나오고 보니 쓸쓸해서..."라며 몹시 겸연쩍어 하는 것이었다. 제 돈 내고 택시에 탔어도 운전사가 나이를 좀 먹었다고 공손한 태도로 대해주는 싸가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좋은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도 "외국에 나와서까지 이렇게 온 몸으로 동포를 사랑하려는 것을 보니 자네들이야말로 진짜 애국자들이네"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이렇듯 업소를 찾는 손님 중에는 당연히 한국인도 있다. 보통은 몸도 피곤하고 술이 취한 상태의 손님을 태우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안 태우는 편이지만 노는 꼴이 척 봐도 한국인 같아 보이면 태우게 된다. 내가 안 태우고 다른 인종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면 국격이 실추되는, 중대한 외교적 사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호주 사람들은 한국인들처럼 술 먹고 주정하거나 길에서 비틀거리거나 엎어져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한 번은 껄렁하게 생긴 호주 젊은 녀석을 태우고 한인촌을 지나는데 술에 취해 한 한국인이 길바닥에 주저 않은 것을 보고서 "너희 한국인들은 술을 저렇게 먹고 어떻게 사냐"고 물었다. 월드컵으로 힘겹게 오른(?) 국격이 실추되는 창피한 장면이었다. 호주는 술집에서도 취한 사람에게는 법으로 술을 팔지 못하게 되어 있고 택시도 술 취한 사람에게는 승차거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처럼 술 먹고 게걸거리면 즉각 경찰이 수갑을 채워 모셔가서 4시간을 감금해 놓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도 안 깨면 4시간 또 연장전으로 들어간다.
(한국인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걸 객관적으로 입증해줄 경험도 했다. 한 번은 점잖은 신사를 태웠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매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이다지도 반가워하나 했더니 죠니 워커 아시아 총판에 근무하는데 한국이 제일 큰 시장이란다. 양으로는 물론 중국이 크지만 일인당 소비량으로는 한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원한 금메달이란다.)
어쩌면 이런 사실과 경험 탓에 업소를 찾는 한국인 손님을 더 자주 태우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밤늦은 시간에 한국사람 같아 보이는 동양인 넷이 길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현지 주민 한 명이 한국에서 온 거래처 손님 3명에게 접대를 한다고 이벤트를 벌인 모양이었는데 호주 상식에 맞지 않게 한국식으로 술이 취한 불량한 상태에서 그날 밤 대미를 침대에서 주짓수 한 판 하는 것으로 장식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내가 "한국 사람들 있는 데로 갈까요?"했더니 "아니! 백말, 백말 타러 가요"하면서 특별한 부탁이 있다고 했다. 자기들이 비즈니스를 끝나고 올 때까지 나에게 밖에서 기다렸다가 호텔까지 데려다 달라는 것. (이런 일은 보통의 경우에는 시간이 돈인 택시 운전사로서는 할렐루야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이들의 여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가 아니라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첫 번째 백인들이 운영하는 집에 들어갔지만 어째서인지 금방 나왔다. 왜 빨리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여자들 숫자가 모자란단다. 또 다음 집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윤락업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현지 시찰을 해보기로 하고 따라 들어가봤다. 벨을 누르자 정장차림의 전형적인 여사무원이 나오더니 회사에 면접시험 보러 온 사람처럼 대기실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란다. 들어가 보니 아주 조용하고 우아한 오피스 같이 생겼다. 영화에서 보던 화려하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내가 내부 시설을 둘러보러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더니 여직원이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란다. 한참 있다가 백인 여자 하나가 들어오더니 "나하고 놀 사람?"하고 물어본다.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구나.'
궁금증이 해결되었으니 나는 더 이상 거기 있을 필요가 없어져서 택시로 돌아와 손님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 사람들이 또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왜 이번에도 금방 나왔냐니까 여기서도 여자가 충분히 없단다. 손님을 받아놓고 나중에 가서 여자가 없다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 사람들이 너무 취해 있었던 것이다. 성(?)스러운 행사를 하러 온 인간들이 술에 취해 있으니 점잖게 거절을 당할 수밖에.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 셈이었다. 네 사람은 그제야 할 수 없이 한국인들이 있는 업소로 가자며 동포를 찾았다.
한국 집은 뭐가 다른 것일까? 궁금증이 다시 동해서 나도 따라 들어갔다. 실내장식부터가 옛날 청량리 588같은-내가 그 근처에 살아봐서 잘 안다-비슷한 싸구려 냄새가 났다. 영어가 서툰 동남아인 문지기가 갑자기 단체 손님이 들이닥치자 (나까지 5명인 줄 알고) 바빠졌다. 일행이 술을 취한 것을 보자 "아가씨들이 술 취한 사람들 싫어한다. 그러니 서비스가 나빠도 괜찮겠냐"고 미리 선수를 친다.
이미 두 번 씩이나 거절당한 판이라 이 쪽은 더운 밥 찬밥을 가릴 여지가 없었던지 괜찮다니까 그제야 여자들을 들여보냈다. 비슷한 체격에 똑같이 화장을 하고 똑같이 속이 비치는 나이트가운만 걸친 5명의 여자가 허리에 번호판을 달고 들어와서 앞에 섰다. 손님이 번호를 불러서 찍는 것이다. 하나씩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찍고 나서 눈물이 마렵게도 나까지 배려해서 "아저씨도 고르세요!"한다.
웃으면서 "나는 됐어요."라고 거절을 했다. 그런데 같은 몸을 팔아도 사람값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원래는 외국에서 동포들끼리 온 몸으로 진한 사랑을 나눈 이 네 사람을 기다렸다 호텔까지 모셔다 드려야 마땅했으나 그만 기분이 우울해져서 "일 끝나고 다른 차를 타고 가시라" 말하고 그냥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도 한국 사람과 북조선 사람과 조선족의 몸값이 각기 다르고 같은 비행기에 타고 가다가 추락을 해도 여권에 따라서 배상금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날 밤 내가 겪은 백인들과 한국인들의 윤락업소의 차이는 너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문득 호주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인의 여성관이 생각난다. 택시가 고장이 나서 견인을 하게 된 상황에서 만난 견인차 운전사였다. 한 눈에 척 보아도 지독한 호색한 같이 생긴 기분 나빠 같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차를 견인하면 운전자가 차고까지 운전석 옆에 앉아 동승하게 되어 있는 규정 때문에 께름칙하지만 할 수 없이 견인차의 조수석에 타야 했다. 아무리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라 해도 싸운 사람들처럼 갈 수는 없겠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부쳤더니 이야기 하는 것이 가관이다.
보아하니 생긴 모습이 백인 여자들 근처에도 못 갈 듯한 형편이어서 사정이 여의치 못한 이민자나 아시아 여자들을 대상으로 껄떡거리면서 살아온 꼴상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니 당장 나에게 한국 여자를 소개해 달란다. 노는 것이 하도 꼴같지 않아서 보통의 경우 초면에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도 좀 거칠게 나갔다.
"나이를 꽤나 처먹은 것 같은데 결혼을 안 할 거냐?"
그렇게 물었더니 자기는 돈을 벌어서 가능한 한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결혼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거란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언젠가는 늙어서 힘이 없어서 더 이상 여자와 즐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더 이상 섹스를 못하게 되면 콱 죽어 버릴 거다"라고 했다. 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다.
그 이탈리아 인의 성격 상 국적 가리지 않고 소개해달라 그런 거라면 다행이겠으나 한국 여자가 쉬울 거라 생각하고 나한테 소개시켜달라 그런 것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었다.
거친 호주 여자들
택시를 운전하다보면 업소를 찾는 남자들만 태우는 게 아니다. 가끔 토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자들을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자들은 대개의 경우 기분이 별로인 상태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 번은 20 대 초반의 어린 여자가 타서 먼 거리를 가자고 한 덕분에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 여자는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옷은 벗지만 손만 파는 마시지 걸이었다. 탄 곳, 내린 곳. 차 안에서의 품행 등등을 보아서 학교 때 공부도 안 했고 신에게서 받은 선물도 변변찮은 처지에 손쉽게 돈을 버는 길을 택하다 보니 어린 나이에 섹스 업계로 진출을 한 모양이었다. 그 동안의 내 경험으로 볼 때도 호주에서도 몸 파는 여자들은 쌍스럽고 거칠거나 어디가 조금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벽지 시골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시골 여자가 아니라도, 또 어딘가 부족하거나 쌍스럽지 않더라도, 호주 여자들은 대체로 거칠다.
시드니는 날씨가 덥고 바닷가가 많기 때문에 젊고 싱싱한 여자들이 거의 나체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원래 백인 여자들은 몸을 많이 드러내놓고 사는 편이지만 여름이 되면 한층 더 심해져서 인심이 좋은 여자들은 젖가슴을 절반 쯤 내놓고 다니고 좀 헤픈 여자들은 거의 다 내놓고 다니며 도시 미관을 장식한다. 그러다보니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도 많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성추행으로 간주하는 범위가 넓다.
한국에는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이 여자애들의 치마를 들치고 도망가는 '아이스께기'라는 장난이 있다. 그런데 이게 호주에서는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아예 초등학교 여자애들은 교복 치마 밑에 반바지를 입게 되어 있다. 남자들도 여자를 잘못 건드리면 피 본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는다. 백인들 사회에서는 성추행에 대한 법률이 엄격해서 여자를 잘못 건드리면 큰 일 난다는 것이 교육이 아주 잘되어 있다.
파티에서 흥분제를 복용하고 술 먹고 신나게 춤을 추고 키스하고 입 맞추고 뽀뽀하고 할 짓 다하다가도 여자가 제 정신이 들어 갑자기 'stop' 하고 레드 카드를 내 뽑으면 남자는 그 즉시 '동작 그만!'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자의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의인지 구분이 아리송하지만 일단 여자가 성추행으로 고소하면 남자는 꼼짝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오르내리는 범죄에는 강간 사건이 빠지는 날이 없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나같이 노련한 택시운전사는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지만 20대 초보 운전자는 급정거가 어려운 것이다.
처음에 호주에 와서 길에서 보무당당하게 마치 군인이 행진하는 것처럼 걷는 여자들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나중에야 일반적으로 호주의 젊은 여성들은 씩씩하고 용감하다는 걸 알고는 택시에 좀 제대로 규격을 갖춘 젊은 여자가 타면 신경을 바짝 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좀 생겼다 싶으면 찬바람이 쌩하게 도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대체로 택시에 탄 젊은 여자 승객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어도 한국 여성들 사이의 정겨움 같은 것이 별로 없고 대부분이 억세다는 느낌을 받는다. 피차간에 자기주장이 강한 개인주의 사회에서 여자라고 해서 접고 들어가는 일이란 전혀 있을 수가 없다.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고 경제력이 늘어나고 이혼을 해도 혼자 아이를 키울 때의 복지제도가 좋아진 탓에 시원찮은 남편 데리고 사느니 혼자 시원하게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매 맞는 아내'가 있기는 하다.)
한번은 귀걸이가 아니라 눈썹걸이 코걸이에 팔에는 문신을 한 4명의 여성이 타서 말끝 마다 'fucking.' 찾아 쌌는데 진짜로 공포 분위기였다. 가슴은 쳐다 볼 생각은 못하고 슬그머니 손을 봤더니 덩치는 나 보다 크지 않는데 내 손 보다도 훨씬 거칠고 컸다. 이 분들에게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분명히 여성들인데 헤비메탈 그룹 같기도 하고 막노동꾼 같기도 한 그들은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가장 무서워 보이는 여성은 레즈비언 스타일의 여성들인데 진짜 레즈비언은 아닐 테고 자신이 성적으로 남자들에게 별 볼일 없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린 듯한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자세는 가히 도전적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교육비가 무서워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호주에서는 여자가 무서워 아예 결혼을 안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택시에 탄 남자 손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결혼을 포기한 이들이 정말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병역 기피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호주에서는 결혼기피자가 점점 늘어 사회적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인구가 늘지 않으니, 특히 백인 인구가 늘지 않으니 어찌 걱정이 안 되시겠나?
백인 여자들과 일부 한국 여성들의 '나긋나긋', '고분고분', '다소곳함'의 여성스러운(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부지깽이 들고 쫒아올지 모르지만) 모습은 한국과 호주 의 지리상 거리만큼이나 멀다. (아주 드물게 예쁘고 마음 착해 보이는 젊은 여자를 만날 때면 예뻐서가 아니라 착해서 혹시 하늘에서 방금 하강한 천사가 아닌가 싶어서 자꾸 쳐다보게 될 정도다.)
물론 백인이라고 해서 원단이 부드러운 여성이 어찌 없겠나? 다만 적어도 사회적, 교육적, 가정적으로 '여자는 어찌 어찌 해야 한다.'고 학습되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사회적, 교육적, 가정적으로 '정의'와 '용기'라는 덕목이 학습되는 일이 전혀 없듯이 말이다. 왜냐하면 '정의' 나 '용기'는 현실이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는 위험한 개념이기 때문에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다. 혹시 학교 다닐 때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가? 어쩐지 '정의'니 '용기'니 이런 것을 주장하거나 가르치는 선생을 봤다면 혹 그 선생이 종북스럽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런데 역시 동양 여성들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해도 동양스럽(?)다. 물론 이것도 얼마나 호주 물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농도가 다르다. 왜냐하면 호주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남녀가 구별이 전혀 없이 자라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여자들에게도 럭비를 가르친다.
요즈음 호주가 아프간과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최전선에 여군을 배치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에 대한 호주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당연히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인 남자들 가운데 동양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 농촌에는 처녀가 없어 동남아에서 수입을 해오지만 호주는 여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동양 여자를 선호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호주 남자들과 결혼한 한국 여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 성공적인 편이다. 일반적으로 호주 남자들은 한국 남자들에 비해서 여자들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물론 말 잘 들어준다고 결혼생활이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적어도 백인들 사이에서이런 결혼 생활에 대한 경험담이 퍼지면서 동양 여자를 편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확대되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주 아주 드물게 호주에서 나고 자란 젊은 남자 가운데 호주 여자와 결혼한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공항에서 호주 영감을 태웠는데 내가 한국인 것을 알고 자기 마음 속에 쌓였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딸이 직장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사위가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이혼을 했단다. 자기는 사위가 좋았다면서 '바보 같은 년'이라고 자기 딸 욕을 마구 해댔다. 그런 사위를 어디서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호주 한인 사회가 좁은 덕분에 마침 그 사위가 내가 잘 아는 분의 아들이라서 농담 삼아 "내가 다시 한 번 잘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볼까?" 했더니 "벌써 한국 여자 만나서 재혼 했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혼잣말로 "우리 딸은 아직도 혼자 사는데..."하고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 한국 남자도 호주 백인 여자의 터프함이 무서웠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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