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13. 금요일

춘심애비

나는 미처 몰랐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로맨티시즘으로 가득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다덜 아시는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면 이렇다. 4년전, 한 여성 검사가 어떤 남성 변호사와 사귀었다. 그리고 그 변호사는 검사에게 벤츠 승용차, 샤넬 가방 및 신용카드 등을 줬고, 총 가치를 환산하면 약 5,600만원에 조금 못미친다. 이 과정에서 검사는 그 변호사의 사건에 관련된 청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결국 그 5,600만원이 청탁의 대가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이 이 사건의 골자가 됐고, 1심에서는 유죄, 항소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늘, 대법원은 결국 최종 무죄로 판결했다.

무죄판결 근거에서, 바로 그 문제의 로맨티시즘이 철철 흘러넘친다. 그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랑의 정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표

이 키워드 ‘사랑의 정표'는 피고였던 검사 이씨가 변호 과정에서 사용한 어휘로 보인다. 이 어휘는 이 사건에 대한 피고측의 변호논리가 응축돼있다고 볼 수 있겠다. 즉, 그 모든건 사귀는 사이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애정표현의 범위 내에 있고, 청탁과 관련된 것 또한 사귀는 사이에서 팔이 안으로 좀 굽는 수준 내에 있을 뿐이라는 것. 이 논리는 2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1) 청탁과 선물의 관계를 끊거나,

2) 청탁 내용과 선물의 질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납득시키거나.

우선 둘의 관계를 끊는 축을 보자. 그 청탁이 아니었더라도 이정도 선물을 했을거라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 선물들은 여자쪽이 검사가 아니었어도 줬을 선물들이 되며, 그렇다면 청탁의 대가성이 없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랑의 정표'라는 키워드가 등장했을거고, 타이밍적으루다가 그 청탁이 일어났던 시기에 선물 양이나 액수가 유의미하게 변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댔겠다. 그리고 2심과 3심에서는 이 근거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또 다른 축은, 5,600만원이라는 액수와 임관 동기 검사에게 전화 한통 넣는 행위가 사귀는 사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호의의 수준 안에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 30대 직장인 커플이 3~40만 원짜리 선물을 주고받는건 그닥 특이한 경우가 아니듯 변호사와 검사 커플 정도면 누적액 5,600만원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은행다니는 친구가 달러 환전시 우대환율을 적용해주는 정도는 별다른 비리로 보이지 않듯, 검사정도면 남친 일하기 편하라고 전화한통 넣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게 만들어야한다.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얘기는, 이 접근이 성공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은 모두 지극히 상대적이다. 청탁과 선물의 타이밍이 어떻게 분포돼있어야 관계성이 있는 것이고 어떻게 분포되면 관계성이 없는 것인가에 대해 보편적 공감이 가능한 객관적 기준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선물의 양 x 객단가를 A로 놓고, 시간 축을 B라고 놓고서 그래프를 그릴 때 B에 따른 A의 그래프가 정규분포곡선에 수렴하면 대가성이 있는건가? 한 사람이 경찰에게 매달 50만원씩 5년동안 입금을 해주고, 3년에 한번씩 랜덤하게 청탁을 하면 이건 대가성이 없어지는건가? 5,600만원이라는 액수와 전화 한 통도 마찬가지. 두 사람의 연소득 총 합에 3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는 선물이고 그 이상은 대가라든가, 전화 한 통까지는 호의지만 1일 5회 이상의 통화는 청탁이라든가 하는 객관적 기준을 만들 수 없다.

즉, 이번 건은 첨예한 요소들 사이에서 객관적인 기준점을 찾아내어 그 기준점 이상이면 유죄, 이하면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이 애초부터 아니었다. 이번 건에 대한 판결은 그러한 과학적인 판단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형법이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인 것.

만약 최종 유죄판결을 받았다면, 대법원의 의도는 ‘아무리 내연관계이더라도 변호사와 검사라는 지위에서는 선물로 인해 청탁의 대가를 제공한 것 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해석됐을거다. 이러한 판례가 남아있게 된다면, 향후 연인, 부부, 친인척 등 특수관계에 있는 변호사-검사 사이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에도 큰 주의가 필요하고, 청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은 불법행위로 간주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의와 인식은, 하물며 둘의 관계가 살짝 서먹해지긴 할 지언정, 소위 ‘정의'라는 것에 훨씬 가까운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결국 무죄다. 유죄로 판결했으면 얻게 됐을 저 가치를 포기한 채, 대법원이 무죄를 판결함으로써 드러냈다고 할 수 있는 지향점은 이렇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라'

‘눈치보지 말고 마음껏 사랑하라'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돈과 지위, 모든 것을 적극 활용하라'

가히 정의 추구를 버리고 선택한 눈물겨운 로맨티시즘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판결을 보다 깔끔히 설명하기 위해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난 2012년 9월 27일, 재판부는 곽노현 전 교육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여 교육감직을 상실시킨다.

그가 상대후보로 나왔다가 사퇴한 박명기교수에게 2억원을 건넨 것을, 후보 사퇴의 대가로 판단한 것.

곽노현 유죄, 벤츠여검사 무죄라는 대비. 이 대비의 원인이라 생각할 수 있는 두 사건의 차이는, 타이밍, 액수, 두 사람의 관계 이렇게 3가지로 요약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타이밍과 액수라는건 지극히 상대적이다. 만약 곽노현은 당선 직후에 돈을 보냈지만, 변호사는 검사에서 지속적으로 선물을 한 것이 포인트였다면, 이 판결은 ‘대가를 줄 때는 여러번에 나눠서 주세요'라는 지침에 불과해진다. 만약 액수의 차이가 포인트라면, 대가성의 판단 기준이 5,600만원과 2억원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게 되어, ‘대가를 줄 때는 5,000만원 이하로 주세요'라는 지침이 돼버린다. 대법원이 이런 가이드를 주려고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리라 굳게 믿는 성숙한 민주시민 딴지스덜이라면, 이 두가지 차이는 과감하게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함이 옳겠다.

글타면 역시 남는건 하나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 곽노현 전교육감과 박명기 교수는 지인이거나 동료, 잘해봐야 친구다. 하지만 벤츠 검사와 변호사는 연인이다. 친구와는 다르다, 친구와는.

곽노현 사건 당시 필자의 태도는 ‘실제 대가성이 아니었더라도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방향이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아무리 경제적 타격에 대한 선의더라도, 대가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보다 정의에 가까운 인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당시 나의 생각은 철없기 그지없었다. 대법원의 진의는 바로 이거였다.

‘바보야, 중요한 건 사랑이야'

글타. 대법원은 진정한 사랑의 전도사이자 국가기관적 차원에서의 큐피트 였던 거시다. 이거슨 역시 고령화사회를 눈앞에 두고도 낮아져만가는 출산율, 결혼 적령기의 후퇴, 결혼포기 세대, 건어물남녀를 우려한 법원이 새로이 정의한 사회적 정의인 거시었던 거시다. 부패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 타이밍에, 굳이 이번 판결을 무죄로 내린 것은 바로 그 뜻을 상징적으로 알리려는 공표에 다름아니다.

진정한 사랑꾼 대법원

여유가 되는대로 가까운 경찰서에 있는 경찰관 하나와 사랑하시라. 그리고 주기적 혹은 간헐적으로 꾸준히 선물을 날리시라. 그러다보면 서로 사랑하는 그 경찰관이 어려운 일을 좀 들어주기도 할거다. 제자의 학업평가를 대가로 성상납을 요구하는 교수들, 부하직원을 성희롱하는 공무원이나 기업 간부들, 뇌물을 수수한 공직자들 등등 모두는 바로 이 대법원의 뜻을 몰랐던 죄로 처벌받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마땅하겠다. 이들과 벤츠 검사/변호사 커플의 유일한 차이는 바로 ‘사랑’이라는 점을 기억하시라. 교수덜은 제자와 진정 사랑하여 학점과 논문승인을 사랑의 정표로 주고, 뇌물과 육체적 관계를 사랑의 정표로써 받으시라. 공직자들은 부하직원을, 민원인들을 진정 사랑하면서 꾸준히 선물을 받되 사랑의 정표로 청탁을 들어주시라.

대법원의 이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당장, 마구 사랑하고 그 사랑의 정표를 마구 주고받아 마땅하다. 이 모두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이 나라의 대법원이 장려하는 뜨거운 사랑이다.

이거시 이 눈물겨운 로맨틱 코리아에서 열분덜께 강력히 권장하는 삶의 모습인 거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