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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16. 월요일

김현진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나를 스쳐 간 당신의 몸, 

당신의 이마를 한때 어루만졌던 누군가의 손, 

아스팔트 위에서 사정없이 깎여나가던 누군가의 피와 살,

철탑에서 얼거나 타들어 가는 몸들, 

당신이 나를 낚아채 주길 바라면서 

숨죽여 뺨을 대 보았던 당신의 쇄골.


몸은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삶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 '몸'에 대한 이야기다.

 






살면서 한 나쁜 짓은 수없이 많지만, 역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는 건 많이 나쁜 짓이다. 물론 나는 그런 짓 많이 해 봤고, 100% 주취폭력이었다. 맨 정신에 사람을 때릴 깡은 죽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늘 술이 깨고 나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다. 지문이 없어질 만큼 빌어봤자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낫게 해 주진 못할 것이므로, 그저 엎드려서 마음으로 사죄의 마음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나 아주 또렷한 맨 정신으로 폭력을 썼던 적이 한 번 있다.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여성비하적인 발언을 했던 적도 딱 한 번. 정말 나쁜 짓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온 나쁜 짓 중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짓이기도 하다. 이것은 딴지의 <벙커 깊수키>'나쁜집 특집'에 썼던 글이기도 하지만, <몸살>이라는 테마에 맞게 엄청난 육탄전을 벌인 경험이기도 하여 한 번 더 적어 본다. 이 글을 다 읽은 어쩌면 딴지 식구 여러분은 뭐 xx할 년이 다 있어, 하고 내 글 따위는 구겨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몸으로 겪은 가장 뜨거운 경험이라면 아무래도 빼놓을 수가 없는 일이라 어차피 맞아야 할 매를 지금 맞는 기분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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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새벽, 나는 어느 종합병원의 로비에 차려진 초라한 농성장 돗자리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링거를 꽂은 환자가 몇 명 왔다 갔다 할 뿐, 1층 로비는 고요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그 병원에서는 자비를 찾기란 어려웠다. 각종 궂은일을 맡아 하던 조무사들이 인원감축을 이유로 한꺼번에 무통보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병원 로비에서 며칠째 농성중이었다. 대부분이 여자들인 조무사들은, 중병 환자의 대소변 수발을 들거나 변기를 비우고 살이 썩지 않도록 침대 위에서 환자를 굴리는 일을 했다. 환자의 보호자들이 애쓴다며 가져다준 빵을 나눠 먹으면서, 그들은 환자 걱정을 했다. '환자에게 지금쯤 뭘 해 드려야 하는데 제대로 됐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보호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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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검은 양복을 입은 용역들이 들어왔고, 나는 그날 새벽 농성장 침탈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무조건 오토바이 시동을 켜고 동호대교를 건너 병원에 도착해서 그냥 쪽수나 맞추고 앉아 있던 중이었다. 모든 침탈은 새벽녘에 일어나는 법이니까. 어설픈 정의감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이라도 더 끌어내기 귀찮게 하는 것 정도가 내 목적이었다.

 

, 나는 왜 인간어뢰 김남훈으로 태어나지 않았나. 여자로 태어나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건만 왜 김남훈으로 태어나지 못했나.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검은 옷들을 보며 나는 쓸데없는 망상만 했다. 벽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보다 사람 수가 적었다. 한쪽에 농성을 돕기 위한 대학생들이 몇 명 와 있었지만, 가느다란 손발목이 농활도 제대로 못해 낼 만큼 연약해 보였다. 그런 나에게 조무사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간호사가 제일 먼저 덤빌 거예요. 그 사람 진짜 무서워요. 우리한테도 성질나면 뭐 집어던지고 반말하고 욕하고... 우리 중에 그 사람한테 막말 안 들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조무사라고 얼마나 무시하는데요. 자기가 수간호사라 이거지. 덩치도 엄청 커요. 밀면 막 밀려서 우리가 많이 다쳤어요. 제일 목소리 크고 뚱뚱한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에요."

 

성모님의 자비로 운영한다는 병원에서 막말에 욕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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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도 수녀님입니까?"


"아뇨, 그 사람만 아니고 다른 원무과 직원들이 와서 우리 끌어낼 건데요, 그 사람들은 다 수녀예요. 그런데 수녀라고 뭐 다른 줄 아세요? 다른 것 하나도 없어요. 욕하고 끌어내는 것 똑같아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쫓겨났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 명 두 명씩 다 다시 들어왔어요. 근데 플래카드를 계속 뺏어가서, 몇 번을 다시 썼는지 몰라요. 오늘은 학생들이 와서 써줬어요."

 

농활도 못하게 생긴 학생들은 그 가느다란 손목으로 예쁜 플래카드를 잘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빼앗기기엔 아까운 것들이었다. 긴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조무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오고 있었다. 과연 수녀 여럿과 남자 원무과 직원, 딱 봐도 아까 그 수간호사라는 사람으로 보이는 비대한 여자가 앞장서서 달려왔다.

 

"당장 나가 이 사람들아!"

 

위치로 보아 수간호사의 오른팔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혀를 찼다. 모르는 얼굴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건 또 뭐야? 당신은 또 누구야? 당신 직장에 가서 당신 할 일이나 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도 뚫린 입이라면 한 개 가지고 있었다.

 

"니들이 니들 직장에서 똑바로 못 하니까 내가 여기까지 쫓아오는 거잖아! 똑바로 좀 해! 그리고 너 나 알아? 어디서 봤다고 반말이야!"

 

여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말했다.

 

"당신은... 당신 직장이나 가세요!"

 

조금 공손해졌군. 나는 어차피 비위가 상했으므로 끝까지 쏘아붙였다. 말 까려면 끝까지 까던가, 밸도 없긴. 여자의 얼굴에 이 미친년은 뭐야? 하는 표정이 크게 떠올랐고, 원무과 직원들이 플래카드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조무사들과 학생들이 달라붙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도 냉큼 달려들어 플래카드 하나를 움켜쥐었다. 애들이 와서 열심히 만들어 준 걸 어디서 뺏으려고. 안 뺏겨. 안 뺏긴다고. 누가 우리 집 가보를 내놓으라고 한들 그렇게 열심히 붙들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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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줄다리기를 하다가 누군가 콧김을 씩씩거리며 몸뚱이를 부딪쳐서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사람들은 내가 툭하면 화를 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가 나를 괴롭히는 건 워낙 익숙한 일이라 멍하니 있곤 한다. 다만 나보다 더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건드리는 걸 보면 화가 불같이 인다. 구겨진 플래카드를 쥔 채 억지로 고개를 돌려 멧돼지처럼 나에게 부딪힌 사람이 누군지 돌아보았다. 타격이 꽤 컸다. 뺨에 닿은 석조 바닥의 감촉이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그 막말 한다는 수간호사였다. 그녀는 나를 중풍 환자 굴리듯 굴리려 하며 소리쳤다.

 

"나가, 이년아, 안 나가? 너 누구야?"

 

과연 덩치가 컸다. 당시 40키로 초반으로 좀 말랐던 나보다 30킬로는 족히 나가 보였다. 그때가 몇 년 전 한 6개월 배우고 그만둔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써먹은 유일한 기회였다. 단순한 격투기가 아닌 두뇌 쓰는 운동이라 따라가질 못하고 관뒀는데, 딱 네 개는 몸에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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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포지션 유지와 무릎으로 장기 압박하기. 암 바와 백 초크. 무릎으로 장기 압박하는 건, 뒤의 건 체중을 다 실어서 정통으로 누르면 여자 무릎이라도 생각보다 꽤 아프다. 나를 깔고 앉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한 바퀴 굴렀다. 이제 내가 마운트 포지션이다. 마운트 포지션에서 머리를 낮춰서 상대의 머리 옆까지 붙여서 그녀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내가 누구면 네가 어쩔 건데?"

 

바로 씩씩대는 욕설이 돌아왔다.

 

"이 미친년이!"

 

그래, 말 잘했다. 내가 이 구역의 미친년이다. 밑에서 버둥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아시다시피 마운트 포지션은 한 번 잘 잡으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 때가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 잡았던 마운트 포지션이었다. 우리가 그 여자한테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요? 하던 조무사들의 푹 꺼진 눈꺼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걸 다 한 방에 갚아 줄 모욕이 어디 없을까. 입술이 나도 모르게 속삭이고 있었다. 귓가에 워낙 바짝이라, 그 사람한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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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맨날 저 사람들한테 욕하고 그런다며? 잘난 척 하지 마. 여기 직원들도 다 아줌마 싫어하고, 아줌마 애들도 딱 보니까 아줌마 싫어하겠네. 아줌마 남편은 아줌마랑 그거 하느니 토할 걸?"

 

이런 말,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었다. 정말 나쁜 말이었다. 같은 여자끼리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저쪽에서 남자 직원 두 명이 마지막 조무사를 짐짝처럼 현관 정문 밖으로 갖다 내던지는 게 보였다. 나는 평생의 연인을 만난 듯이 그녀를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무릎으로 복부를 지그시 눌렀다. 꽤 아팠을 거다.

 

"꺅! !"

 

비명과 함께 버둥거림이 더 격렬해졌다. 내가 모르긴 몰라도 이건 좀 당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체육관에 다닐 때 멤버 중 유일하게 60킬로그램 미만이라 더미(dummy)취급을 당하며 온갖 실습 대상이 되었으므로, 그 통증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게를 바닥으로 바짝 실었다. 손에는 아직도 구겨진 플래카드가 들린 채였다. 그간 착하게 살지도 않았지만, 남에게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못되게 한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원무과 직원 서넛이 들러붙어서 팔다리를 하나씩 잡아서 겨우 나를 떼어냈다. 과연 주짓수는 위대한 무술이군. 덩치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유일하게 제압할 수 있다더니. 그 와중에 신발이 어디서 벗겨지고 어느새 맨발이었다. 수간호사가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저 여자가, 저 여자가 나한테!!!"


"내가 뭘 어쨌는데?"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웃어 본 것 중 가장 사악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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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말 못 할 걸? 해 봐, 한 번! 내가 뭐라고 했는데?"

 

물론 그녀는 말하지 못했다. 직원들이 거칠게 팔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남자 서넛인데다 나는 아쉽게도 김남훈이 아니니 질질 끌려갔다. 그 와중에도 플래카드를 빼앗으려고 했는데, 제일 먼저 끌려 나간 대학생들이 만든 소중한 거였다. 순간 손아귀에 악마가 깃든 것 같았다. 결국 그건 빼앗기지 않고 나는 사뿐히 현관에 내동댕이쳐졌다. 뒤쪽에서 비명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도와주시는 분한테 그러지 마!"

 

조무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내 신발을 찾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털썩하고 성의 없이 나르는 짐짝처럼 부려져 나는 숨을 골랐다. 그녀가 울면서 신발을 내밀었다. 내가 잠자코 신을 신는 동안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다가 갑자기 쿡, 하고 웃었다. 내가 올려다보자 그녀는 울다가 웃었다.

 

"아니, 우린 봤어요. 수간호사... 속이 시원하네."

 

구겨진 돗자리와 수녀들이 가위를 가져와 반으로 도려낸 플래카드 조각을 들고 한두 명씩 모여든 조무사들이 같이 킥킥 웃기 시작했다. 누가 속삭였다. '쌤통이야.' 누가 내 손에서 플래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멀쩡한 거 한 개 있네요!"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가 있을까. 그들은 몇 번이나 그랬듯이 다시 돗자리를 가지고 로비로 들어가 청테이프로 고정시키고, 플래카드를 다시 붙이고, 전지에 매직으로 구호를 적기 시작했다.

 

부당해고 철회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어깨를 주물렀다. 온몸이 쑤셨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나는 태어나서 제일 나쁜 짓을 저지른 참이었다. 그런데 별로 미안하지가 않은, 참 희한한 날이었다. 그게 태어나서 내가 해본 가장 나쁜 짓이다. 아까 수간호사 표정 봤어? 하면서 청테이프를 붙이다 말고 까르르 웃는, 저 웃음을 하루 가져다 준 것만으로 그날 하루 정도야 천하의 나쁜 년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무과 직원들도, 막 달려들다 말고 그런 미친년이 하나쯤 있을 수 있다, 하고 멈칫 하게 하는 정도의 저지라도 될 수 있었다면 오죽이랴 좋을까. 나도 안다, 내가 나쁜년이라는 것을.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나쁜 짓을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다면, 이 정도 나쁜 짓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어차피 나쁜 나의 나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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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