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sydney 추천5 비추천0

2015. 03. 25. 수요일

sydney








요즘 딴지일보의 [가난특집]에 올라오는 '가난 이야기'들이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가난을 특집으로 삼다니? 역시 딴지만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해서 현재 딴지에 연재 중인 글도 있지만, 급히 하나 썼다. 내 전공이 가난이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왜 가난한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아버지가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항상 가난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한극장, 명동 성모병원, 을지로 입구 한전건물, 지금 경향신문사로 쓰이고 있는 정동 구 MBC 건물, 명동 유네스코회관 건물 등의 건축에 참여했던 건설업자다. 그런데 4남매를 고등학교도 못 마치게 할 정도로 가난했다. 나만은 고등학교 때부터 고학으로 공부했지만, 명색이 건설 사업가인 아버지의 정상적이지 않은 삶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 때문에 처음 정신적 테러를 당한 것은 대학생 때였다. 60년대 후반에는 여자 값이 싸서, 모든 술집에, 심지어 대학생들을 상대로 막걸리를 파는 대학가의 술집에까지도 접대부가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막걸리 집에서 판을 벌리고 있는데, 한 친구가 늦게 왔다.

 


^2E2BCA74E47EBC9D73E070071DEC4484D10588048C3DBBEEE9^pimgpsh_fullsize_distr.jpg

 


어디 갔다 왔느냐는 질문에 그 친구가 '도서관'이라고 하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도서관? 거기 뭐 잘해요?"

 

라고 물었다. '관'자가 붙으니 도서관을 무슨 음식점으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은 웃고 넘어 갔지만, 그 후로도 두고두고 슬픈 느낌이 든다. 도서관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가난했기 때문에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싸구려 술집으로 흘러온 것이니까.

 


가난에 대하여 보다 깊게 생각을 한 계기는 어떤 군가였다. 거의 반세기 전, 훈련소에 들어가기 위하여 수색에 있는 30사단 정문에 집합을 했을 때였다. 정문에서 부대 안으로 행진을 하는 순간, 인솔 조교가 자연스럽게 "행군 간에 군가 한다. 군가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하나, , , !"하고 구령을 붙였다.

 

아니? 나는 조교가 군가 한다고 했을 때 언제 군가를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막 부대에 도착해서 아직 군복도 갈아입지 않는 상태였는데도. 그런데 나만 빼놓고 처음 들어 보는 노래를 모두가 부르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들어 보니 이건 군가가 아니고, 요상한 가사의 노래였다.

 

"인천에 성냥공장/성냥공장 아가씨/하루에 한 각 두 각/일 년에 열두 각/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치마 밑에 불이 붙어/XX털이 탔다네!XX털이 탔다네."


알고 보니 그 노래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1886년에 일본 사람들이 인천에서 성냥을 생산했다. 성냥을 묻히는 일은 대개 가난하고 어린 여자 아이들이 했다고 한다. 당시 성냥은 오늘날처럼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고, 성냥 한 통을 쌀 1되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고가여서 치마 밑에 감춰서 가지고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성냥은 마찰성냥이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치마 밑에 감추고 걷는다고 해서 불이 붙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치마 밑에 불이 붙어'인 것이었다.

 


^8B60231C6FA5DD8FACD7C59162B5E0A7C72647C09443FA8F14^pimgpsh_fullsize_distr.jpg

 


시대가 만들어낸 가난한 민중 사이의 이야기를 성적으로 희화한 노래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시사해주는 바는 컸다. 가난이 개인적인 탓이 아니라 시대 상황구조체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오도송'이었다.

 

 

군대 이후 나에게 또 다시 '가난'에 대해 자극을 준 사건이 있었다. 20여 년 전에 세상을 들썩하게 만들었던 5인조 흉악범 조직 '지존파' 사건이었다.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돈을 뺏는 것은 물론, 화장까지 해버리는 시설을 갖추어놓고 범행을 저질렀던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잔혹했던 지존파 일당을 취조했던 형사의 입에서 "불쌍한 놈들"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htm_201204301825a010a011.jpg  



글로 표현하기조차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을 취조한 형사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그 해답은 취조를 받는 도중에 일당 중 한 명이 했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에요."

 

그런가 하면 형사들이 해삼덮밥을 사주자,

 

"이런 밥은 난생 처음 먹어 본다."

 

라고 했다고 한다. 나도 한 때는 지존파 같은 사회 부적응자들이 느끼는 맹목적인 사회적인 불만과 이 사회에 대한 파괴적 욕구에 전적으로 공감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그들과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이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했는데 그 말은 틀렸다. '가난한 사람은 재수가 없나니.'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예수가 그것을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실제로 세상은 부자가 행복하다.’라고 해야 맞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의 뜻은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의 것이다. 꼭 그렇게 만들겠다." 이런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용기를 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이 용기마저 잃었다면 그 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시드니에 고교 동창이 4명 산다. 네 명이 같이 만날 때면 주차장에 벤츠가 3, 토요다 코로라 소형차가 한 대다.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장의 돈은 그들 보다 적겠지만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김어준이라는 인간을 옆에 있으면 어쩐지 비위생적일 것 같다는 것 외에는 전혀 모른다. 그런 그가 나꼼수를 한창 진행 중일 때 어떤 인터뷰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면서 겁나지 않느냐?"

 

라고 물으니까



01.jpg


"가난하게 살면 되잖아요?"

 

라고 했단다. 바로 그렇다. 자발적 가난! 나는 그런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면 말아야지 어쩌겠나?

 

 

     

 


[가난 특집]

지난 기사


"당신의 가난은 무엇입니까?"

그대도 나와 같다면: 한 298세대의 행복

사랑보다 돈이 더 사생활이 되었다

가난의 증상

가난한 외국인의 기록

언제나 들러붙을 기세의 가난, 니들이 걱정이다






sydney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