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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27. 금요일

챙타쿠





 



흔히 요즘 20대를 보고 삼포세대라고 한다. (어디서는 달관세대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연애결혼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했다 하여 삼포세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삼포세대, 20대를 딱 반 살아온 나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그래도 가난하게나마 연애도 하는 중이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미련도 아직 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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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언제쯤 결혼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서른 살에는 하고 싶은데, 과연 지갑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1~2천만 원 정도 든다던데, 학자금 빚만 2천만 원이 넘는 내 입장으로는 한숨만 나온다. 어느 세월에 2천만 원이나 되는 학자금을 갚고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은단 말이냐. 그나마 5년 뒤의 미래라 그나마 낙관적으로 보는 거지, 2년 후에 이런 생각을 했으면 결혼을 포기했을 것 같다. , 사실 2년 후에 어떨지 아직 모르는 거지만.

 

이럴 때 마다 나에게 빚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노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 25살에 2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 빚이 있다니. 세상이 나한테만 모진 것 같다. 그게 아닌 것을 알지만 20,000,000이라는 숫자를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산 아드레스에 가서 차라도 훔치고 싶은 생각이 들까.

 

내 결혼도, 출산도 가로 막고 있는 학자금에 대해 말해보자면, 앞서 말했듯 대략 2천만 원이다. 사실 더 넘는데, 그냥 2천만 원에서 스스로 카운팅을 멈췄다. 모든 일에나 포기를 하게 되는 임계점이 있지 않나? 그게 나에겐 2천만 원인 것 같다. 2천만 원이 넘지만 그냥 2천만 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어떻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안 갚을 순 없으니까, 내 임계점을 벗어난 숫자는 없는 존재로 여겨버리고.

 

처음 학자금을 빚졌을 땐 당연한 수순으로 부모님을 원망했다. 등록금을 대줄 여력이 없는 부모님을 보면서 아주 조금이지만 무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나있는 자식이라고 등록금 하나 못 대주나, 남들은 다 부모님이 해결해주시던데. 차마 320만 원이라는 액수 앞에서 '그깟 320만 원이 없어서'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원망스러움이 가시지도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린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게 싫었고, 학자금으로 인해 여유 없어질 미래의 내 삶이 싫었다. 그냥 다 싫었다. 그저 금수저를 찾아서라도 물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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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빚을 찾아서

 

1학년, 2학년, 3학년을 지나면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실 학교 다니면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한 몸 운신하는 데 적당할 뿐, 다른 용도에 쓸 만큼 넉넉하지 않은 액수다. 한 달에 30만 원 벌었나. 덕분에 빚 갚는 건 고사하고, 교통비니 핸드폰 값도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지 못했었다. 휴학해서 돈만 벌어봤지만, 그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버는 돈이 3배로 늘어났지만, 그만큼 학원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4학년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영어를 못했다. 영어를 못하는 데 별 수 있나. 취직은커녕 졸업도 못하니까 토익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학원비랑 책값은 20만 원 안짝인데다 단발성이라 어렵지 않게 낼 수 있었지만, 토익 접수비가 문제였다. 참고로 토익 접수비는 한 번에 4만 원이 넘는다. 나는 ETS에서 VIP를 시켜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토익을 많이 봤다. 그나마 볼 시험이 토익 하나면 다행이게. 토익스피킹, 한국어, 한국사, 컴활 등 우선 따고 봐야 하는, 시간과 돈을 요구하는 시험들이 여전히 많았다. 토익만 해도 끝나지 않는 싸움인데, 내가 질 확률이 매우 높은 시험에 강제로 베팅을 해야만 했다. 이것을 시험 수대로 곱하기.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버니까, 옷 좀 사고, 부모님 드리고, 학원 좀 다니고, 빚 갚아야지' 하는 꿈은 허물어 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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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사막같은 길을 지날 수 있을까



운이 좋게 최대한 돈을 안 들이고 취직을 했다.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근 전까지, 내 머리 속엔 갖고 싶은 물건들 뿐이었다. 취준생 기간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안 했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그런지 매우 설렜다. B사의 클러치니, A사의 트랙탑이니 온갖 재화들이 머리를 떠다녔다. 누가보면 생일인 줄 알았을 거다. 철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취준하는 기간 동안 너무 거지 같이 살아서 그랬다. 몇 달만에 싸구려 원피스 하나 샀다고 좋아하던 그 마음을 보상받고 싶어서.

 

그리고 빚 갚을 생각도 안 했다. 내 학자금이 먼 미래라고 생각했고, 너무 큰 액수라서 현실감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 내가 이 돈을 갚아야 하는구나?'하는 말이 그저 문자로 느껴질 뿐 영혼이 없었다. 마치 친구한테 1,000원을 갚아야 하는데 친구도 나도 까먹은 느낌? 하지만 언제나 그 친구가 절대 기억력의 소유자라는 게 문제다.

 

첫 월급을 받고나서야 이게 진짜 현실임을 알았다. 강제로 상환조치가 내려졌다거나 압류를 당했다는 게 아니다. 들어와야 할 액수가 들어왔음에도 이 돈이 모두 내 돈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 내가 이만큼을 받으니까 학자금 대출비를 빼면 교통비니 밥값에 이 정도 쓸 수 있겠다. 아무리 내 소비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실제로 소비를 덜 한다고 해도 남는 액수가 터무니없었다. 돈을 버는 데도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콧구멍만 했다.

 

,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백수로 1년을 더 살면서 취업준비나 더 할 걸 그랬나. 언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대기업에 들어가 보겠다고 1년이란 세월을 허투루 보낼 걸 그랬나. 부모님의 등골을 빼면서 늘어가는 빚더미만 보고 앉아있을 걸 그랬나. 돈을 갚자고 돈을 벌었지만 돈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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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에 발을 들여놓다

 

아니다. 돈을 버는데 돈 좀 못 쓴다고 투정 부리는 건 애들 같은 생각이다. 부모님이라고 버는 돈의 태반을 생활비에 쓰고 싶으실까. 다 본인들 옷 사고 맛있는 거 먹고 하고 싶으실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참는 게 맞는 거겠지. 나 혼자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니까. 다만, 고작 학자금 좀 갚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 뿐이다.

 

우선 학자금을 갚기 위해 정승같이 돈 쓰는 생활을 3~5년은 해야 한다. 물론 어른들 집 값 대출 갚는 거에 비해 가벼운 수준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25살이니 서른까지는 남들 부럽지 않은 생활은커녕 남들을 부러워하면서 살아야한다. 한 번쯤은 가져본다는 사치품은 서른까지 물 건너갔지만, 좋게 생각하자. 서른 살 넘어서 더 비싼 거 사면된다. 문제는 고생고생을 해서 마이너스 인생에서 제로 인생으로 돌아섰을 때, 그 때다.

 

다시 삼포세대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집도 없고 절은커녕 학자금에 허덕이고 있지만, 서른쯤에는 결혼이 하고 싶다. 그 때는 결혼해야 건강한 몸으로 출산을 하고, 건강한 멘탈로 애기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은 그렇다. 마음은.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처럼 내가 결혼 할 돈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 결혼하는데 족히 1~2천만 원은 든단다. 5년에 걸쳐 겨우 제로가 되었는데, 또 천만이라는 숫자를 채워야한다. 공백기가 없다면 아마도 사회생활 5년 차. 경력이 있으니 지금보다 버는 돈은 많을 것이다. 확실히 임금은 높아지겠지만, 그만큼 우리 부모님도 나이를 드신다. 외동딸,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 생활비, 나의 미래. 과연 천만이라는 숫자가 찰 수나 있을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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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생각이 난다. 아는 사람네 이야기인데, 직업도 있고, 남자도 있고(심지어 남자도 괜찮았고), 결혼할 생각도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했다. 도저히 신부 될 사람 집이 시집을 보낼 여력이 안 돼서 결혼을 못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20대 중반인 나는 안타까움과 불안함을 느꼈다. 차라리 남자가 별로였던 거라면 낫겠다 싶었다. 요즘엔 서른에 새 남자 찾는 게 어렵겠냐고. 그런데 집이 어려워서 결혼을 못 하는 건 얘기가 다르다. 지금도, 앞으로도 결혼을 못한다는 말이니까. 그저 안타까웠다. , 저 사람도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한 게 아닐 텐데, 약간의 연민도 있었고.

 

물론 연민은 그 언니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것 뿐은 아니다. 그 언니와 나, 나에 대한 연민도 함께 있었다. 엄마한테 이 언니의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한 마디 했다.

 

"너도 그럴 수 있겠는데?"

 

엄마는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엄마의 농담 아닌 농담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20대 중반이라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웃으면서 말한 것일 뿐, 서로 농담할 의도는 아니었을 거다. 막말로 빚은 언젠간 종착역이 있다. 액수가 커서 사람을 지치게 할 뿐, 언젠가는 끝을 맞는다. 하지만 결혼은? 어떻게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한다고 치자. 출산은? 육아는? 부모님 부양은? 난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에게도 전가해야 하는가?

 

 

쳇바퀴에 발을 들였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난 쳇바퀴에 오를 자격도 없는지 모른다. 삼포세대인 것 자체가 쳇바퀴에 오를 자격조차 없다는 걸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다'라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돈이라도 있으면 행복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라도 있지, 아예 없으면 행복을 꿈꿀 수조차 없다. 꿈이라도 꾸게 해주면서 행복한 지 안 행복한 지 물어봐라. 빚 상환이라는 암담함을 시작해야 하는 어린 마음에서 나온 투정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뭐라도 손에 쥐면서 이게 뭘까 저게 뭘까 고민이라는 걸 하고 싶다. 안전장치는 갖추고 쳇바퀴에 타고 싶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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