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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31. 화요일

히야신스님








삐꼬고 놀리고 풍자하기. 이것이야 말로 딴지일보가 능한 일이다. 그런데 '병신' 혹은 악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당연하다.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보 같기 때문이다. 멀쩡했던 사람이 왜 병신이 되는가. 왜 악인이 되는가. 민주화 투사가 어떻게 하면 도지사나 찾는 병신이 되는가. 나름 참신했던 문화평론가가 극우파 병신으로 변신하는 이유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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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을 신어보니 병신


병신.gif

"존나, 병신"


병신이라고 놀리는 게 최선인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면은 없을까?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어쩌면 놀리는 일보다 훨씬 흥미 있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병신과 찌질이, 혹은 악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관용과 우애를 길러줄 리야 없겠지만, 최소한 이해의 싹을 발견할 수 있다면 족하다. 싹 만이라도.



1.


얼마 전  웹툰 작가 ㅇㅅㅇ (귀요미 아님)의 웹툰이  대대적인 어그로를 끌어 모은바가 있다.

윤서인

그런데 그 직후에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듯 한 웹툰을 내보냈다. 뭐 요지는 뻔하게도 무한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어처구니없고 가소로운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을 웹툰에 실어 아까운 전기를 낭비하다니 참으로... 까지 쓰다가 호흡을 가다듬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한번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인생이란 어차피 벼랑끝 런닝 머신 같은것.


사지가 멀쩡하다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락하는게 당연한 거다.


생존권이 다 보장 돼 있으면 누가 이렇게 열심히 띌까.



내가 뛰어서 내가 살아야 한다.


인생은 고단한 것이다.


뛰는 건 오로지 내 몫이어야지.


나라는 내가 딴거 신경쓰지 않고 뛸수 있게만 해주면 그만.



관련 링크조이라이드 페이스북 (편집자 주 : 웹툰으로 직접 연결되는 <조선일보>사이트는 회원만 열람이 가능하여 부득이하게 페이스북을 링크합니다.)




자의적인 발췌 및 짜집기를 피하기 위해 해당 에피소드의 중반부, 그가 쓴 말 그대로를 옮겨 적어 보았다.



2. 


(노력을 하면 성공하고) 노력을 안하면 실패하고, 노력부족으로 실패한다면 추락해도 어쩔 수 없다. 


그의 사회에 대한 기본 생각이다. 어떤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낸 문장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일베라든가. 자유경쟁과 적자생존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확고해서 그 자신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마치 중력의 법칙과도 같은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그게 나라고 할지라도' 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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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트위터 권요섭



'죽도록 경쟁해. 낙오하면 죽어야지. 나라 탓 하지마. 안되면 전부 니 탓이야.' 라는 얘기는 그의 웹툰에서 수없이 반복된다. 자기자신이 낙오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그 주장을 여러 편에 걸쳐 반복해서 얘기한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은 맹목적 신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어느 현자가 이야기 했듯이, 자신의 물건사이즈를 떠벌이는 사람은 자신의 물건에 대해 뭔가 콤플렉스가 있다고 보면 된다. 자기 물건이 어딘가(사이즈이든, 성능이든, 지속시간이든 간에)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자기 물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 거기에 대해 떠들 필요가 있겠는가.


맹목적인 신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믿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내내 떠들 필요가 무엇인가. 우리 안의 의심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효과적인 방법은 크게 떠드는 것이다. 광신자들이 소리높여 떠드는 이유는, 내 안에서 있는 의심의 작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이다. 완벽한 자유경쟁/성공신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마음속으로는 그게 불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화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동화가 안 이뤄지면 어쩌지라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는 그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밖으로 크게 떠들기. 바로 명동 한가운데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떠드는 이들의 방식이다.



3.


그 신념이 개인에게 충고하는 것에 머문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이걸 사회적 차원에서 훈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뒤섞기까지 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원래 고시에 실패한 제자들을 위해 쓴 글 모음이다. 힐링은 고시실패에는 맞춤 처방일 수 있다. 노력의 양과 밀도로 따지면 고시생만큼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법시험의 경우 소위 기본서라고 불리는 서적만 해도 7-8천 페이지이며 최소 3-5회 정독은 해야 말 그대로 기본이다. 물리적으로 하루 최소 10시간씩, 최소 2년 이상 공부에만 전념하지 않고는 도전조차 불가능하다. 사실 2년 간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고시도 학원비 독서실비 생활비를 오랜 시간 감당할 형편이 안 되는 빈곤층은 꿈도 못 꾼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쌓았지만, 그야말로 '운'(컨디션 난조, 집단과락,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이 나빠서 몇 년간 고배를 마신 후, 집안 사정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신림동에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인생을 길게 보면 노력과 실력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고시계에서는 그 말이 항상 정답은 아님을 보아왔다. 


노력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시험에서도 이럴진데 수없이 많은 변수가 개입하는 일반 사회에서는 어떨까. 개인이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그런 아름다운 동화 같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이 노력 없이는 성공 할수는 없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라든가, 운이라든가, 연줄이라든가, 배경이라든가... 수없이 많은 요인이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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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출처 - 한국일보


개인이 실패하면 무조건 도태시키는 사회에서 발전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오로지 협력을 통해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협력이 빠진 인간은 짐승만도 못한 힘을 가질 뿐이다. 충분히 노력하고 재능도 있는 청춘들을 단지 실패했다는 이유로 도태시키는 사회는 잠재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4.


(와 그를 추종하는 일베 아이들 포함)는 왜 이런 동화를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일차적으로는 신자유주의식의 경쟁논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불리한 이런 논리를 왜 추종하는가. 그 의식의 밑바닥에는 낙오에 대한 공포심과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어차피 벼랑끝 런닝 머신 같은 것.'


'사지가 멀쩡하다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락하는게 당연한 거다.'



당장 일거리가 끊기면 생계에 영향을 받는 만화가이니, 벼랑 끝 러닝머신이란 비유는 본인이 뼈저리게 느끼는 현실이다. 과연 그는 추락의 공포를 극복해 버린 현자란 말인가? 그보다는 추락에 대한 공포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락의 공포가 큰 만큼 성공에 대한 욕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인이 꿈꾸는 시사만화가로서의 재능은 받쳐 주지 못한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타의 웹툰과는 달리 역사 얘기, 경제 얘기 등 우리 사회에서 주류라고 보이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그는 시사 만화가를 지향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는 최저임금 빅맥지수도 이해하지 못한다. 시사만화가로서 갖춰야 할 상식도 부족한 듯하다. '몽준형님이 시장되면 치킨 쏩니다라는 내용의 그림과 글을 올려서 선거관리법 위반으로 신고를 당하기도 했으니 일반상식이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그 결과 자신의 생각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기는커녕, 매번 대대적인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즉, 안타깝게도 그는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재능이 부족하다. 시사만화가를 꿈꾸지만 대중(일베와 조선일보를 제외한)에게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는 심정은 어떨까. 조선일보 계열사인 조선비즈에서조차 비판을 받으면 상사에게 지적을 받은 기분일까. 아니면 배신당한 기분일까. (편집자 주 : 조선비즈 기사 원본은 삭제된 상태. 네이버에 송고한 기사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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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비즈


추락의 공포는 큰데, 성공의 욕심은 크고, 재능은 뒤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인이 더욱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사회안전망, 사회적 해결이라는 인류의 오랜 지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 결과 그는 '노력하는 만큼 성공한다, 성공해야 한다'라는 동화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노력하고 있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추락하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 벼랑 끝 러닝머신이라는 비유는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5.


말 자체보다는 그 말을 펼치는 방식이 그 사람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ㅇㅅㅇ의 말과 글보다는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방점을 찍어 보았다. 


이번에 그는 '100만원을 주는 사람에겐 150만원 어치 일을 해서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고 150만원을 주는 사람에겐 200만원 어치 일을 해서 미안하게 만들어 버리고' 등의 말을 남겼다. 그런데 당시 회사 동료가 병역특례 회사에서 일 할 때는 왜 농땡이 피웠냐고 그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일단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는 않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한 것은 댓글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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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 위반 온라인 자술서.JPG>

출처 - 윤서인 블로그



보시다시피 굳이 이름과 나이, 외모를 들먹이며 상대의 신상을 턴다. 그의 페이스북과 블로그 댓글에서도 이름을 거론하고 신상을 터는 방식을 즐겨 쓴다. 온건한 말투와는 달리 상당히 공격적인 반응이다. 


그의 안티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클리앙이라는 커뮤니티에 낭중지추란 아이디로 ㅇㅅㅇ 만화를 올리고 옹호하는 댓글들을 올렸다. 나중에 낭중지추는 ㅇㅅㅇ 으로 밝혀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앙드레 아가시라는 아이디가 등장해서 ㅇㅅㅇ의 노트북을 빌려 가지고 있던 중 자동로그인 되는 바람에 글을 올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에 앙드레 아가시는 ㅇㅅㅇ 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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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인 만화 친일 논란에 대한 낭중지추의 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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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아가시의 반론. 그러탄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는 공격을 당하면 곧이어 하나하나 반박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악플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라고 과거 인터뷰 중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직접 댓글 하나하나 반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다중아이디 놀이를 해서라도 자신을 변호하고 싶어 한다. 댓글 다툼을 한 후에 자신의 웹툰에서 다툰 사람을 디스하는 내용을 넣기도 한다.


그의 말과는 달리 그는 악플 하나하나까지 읽고 반박하고, 변명을 해서라도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근저에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거기에는 아마도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6.


공포와 열등감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그는 자기 방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만큼 주관적으로 느끼는 열등감의 크기가 큰지도 모르겠다. 그 열등감의 원인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웹툰을 그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형편없다'고 까지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존중감도 좀 낮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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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인터뷰



"사실 전 직장 들어가기 전까지 형편없는 사람이었어요. 학교도 적응 못하고, 미술도 엉터리로 하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낙서밖에 없고. 그런데 병역특례를 시작할 때 굉장히 주목 받았던 동기 하나가 있었어요. 문대 출신의 유능한 디자이너였는데 같은 학번인 저에 비해서 어마어마한 실력과 포스를 가지고 있는 친구 였어요. 그 친구가 해준 한마디가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었어요.

 

하루는 제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보더니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는 거예요. 당시에 다른 디자이너들은 펜 마우스를 썼지만 전 그냥 마우스를 쓰고 있었거든요 그 대단한 친구가 한 그 한마디가 저에게 자신감을 주 었어요"

 


어린 시절 부모나 선생님의 칭찬이 큰 힘이 되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스무 살이 훨씬 넘어서 들어간 직장에서 동료의 칭찬이 오늘의 나를 만들다니, 약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걸지도 모른다.

 

경쟁과 승패라는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이 거의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로지 캄피티션이니 그에게는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이 그다지 잘난 것도 없고, 학교에서도 적응 못하고 미술 실력도 인정받지 못하던 그에게 열등감이 자리 잡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 상황에서 경쟁의 사다리 꼭대기에 위치한 '명문대' 출신 실력자의 칭찬은 그에게 정말로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힘 있고 유명한 사람을 추종하는 경향, 유명인과 일반인을 구분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7.


그가 행한 인터뷰 거의 전부를 구해 읽었고, 눈이 썩을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일보에서 그의 최근 웹툰을 모조리 읽어보기도 했다. 나 역시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사회인으로서 어느 순간 아나키스트적인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무튼 최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까는 것처럼 보였다면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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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윤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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훟흡... 흠... 으 흡... 흐읍 흡흡


미안 미안... 아무리 애써도 순간적으로 실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바른 소리를 잘해서 매도당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기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어그로를 끌고 있으면서도 세상이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는 좌파들이 쓸데없이 헐뜯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공격당하는 이유는 단지 그의 표현이 엉성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화실력이나 일상 웹툰으로서 표현력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방면에서 충분히 재능과 경력이 있다. 그러나 가끔씩 어떤 독이라고 해야 하나, 악에 받힌 심정이 느껴진다. 조선일보로 연재처를 옮기고 시사 웹툰을 지향하면서 이런 일은 잦아지고 있다.

 

열등감과 낙오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맹목적인 신념에 매달린다. 타 집단의 비판에는 귀를 닫고 방어적이 된다. 거기다가 점점 자극적인 표현의 수위를 높여간다. 변희재가 망가진 이유, 일베 아이들이 점점 위험한 장난을 하는 이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간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그의 태도는 개인에게 용기를 준다기보다는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있는 사회 안정망을 공격하고 사회제도와 공동의 이익을 허물어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스머프를 잡아먹으려는 가가멜, 호빵맨에 맞서는 세균맨 혹은 희대의 악당 조커나 쏘우 시리즈의 직소 같은 악당'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성실하게 살아가는 생활인에 가깝다.

 

굳이 그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어느 순간 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의 단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듯이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악당 특집] 


"악당을 보았다!"


누가 진짜 악당이냐






히야신스님

트위터: @Krowzerthe2nd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