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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30. 월요일

정치불패 도비공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치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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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했을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그 무렵 아이들이 어떤 기대감으로 프로야구를 접했는지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작가가 삼미의 팬이고 내가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소설의 전반부에 묘사된 당시 어린이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두 팀 다 원년에 죽을 쑨 팀이라 그때 느꼈던 좌절감마저 흡사했다. 다만 나는 그래도 삼미보다는 잘했다며 마음의 위안을 삼고, 정작 삼미의 팬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도 안 해보다가 이 소설에 묘사된 삼미 팬들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며 웃픈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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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린 역사적인 프로야구 개막전의 시구자는 떠오르는 태양과 흡사한 외모의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북괴의 남침이 오늘이냐 내일이냐만 남은 상황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려 (어떤 구국의 결단이었는지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 나라를 지켜냈다는 전두환 대통령을 나는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경기 시작이 선언되자 영남을 기반으로 일어선 재벌 기업 삼성과 언론사 MBC를 허리에 꿰찬 기세로 전두환 대통령이 마운드에 올랐고, 포수에게 공을 던졌다. 비록 코스가 약간 아리랑 볼 성이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자세도 좋았고 공도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다. 나중에 수많은 시구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라도 스트라이크 존으로 집어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무렵의 시구는 한자리 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 양반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행사나 다름없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대로 거드름 피우며 마운드에 올라서지만 정작 공은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땅에 패대기치기 일쑤였고, 조금 전까지의 당당함과는 달리 약간의 썩소를 머금고는 총총 퇴장하는 것이 팔십년대 프로야구 시구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전두환 만한 놈이 없네.’ 라며 화면에 대고 비웃음을 날리곤 했다.

 

이런 칙칙한 풍경은 89년 프로야구 광주 개막전에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강수연이 연예인 최초로 시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스트레스를 날리러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 앞에서 무슨 당 어디어디 위원장이라는 사람들이 수행원 이끌고 어깨 들썩이며 나타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스트레스감이다. 하긴 영화 한 편 보려 해도 국민의례 하고 대한뉴스 봐야했던 시절이니까 당시의 상식으로는 무슨 행사 있으면 정치인들이 앞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숱한 연예인들이 시구장에 섰지만, 보기 좋은 시구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팔 힘이 약한 여자 연예인들은 발야구 시합 시구로 착각할 정도로 공을 바닥에 굴리기 일쑤였고, 시구에 임하는 자세 역시 그리 진지하지는 않았다. 200578일 잠실야구장 마운드에는 이런 풍토에 종지부를 찍은 히로인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레전드로 남아 있는 홍드로, 홍수아였다. 반짝이는 의상 입고 하이힐 신고 마운드에 올라 대충 공 한 번 던지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여자 연예인의 시구였다면, 홍수아는 그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사람이다. 제대로 된 자세를 익히기 위해 코치까지 받았다는 홍수아는 자세, 스피드, 제구력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 동호인 수준의 시구를 던졌다. 개인적으로 예전 천하무적 야구단의 이하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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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아 이후로 프로야구 시구는 여자 연예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하이힐을 신고 마운드에 올라서면 일부 팬들은 운동화를 신은 홍수아의 사진과 비교하며 마운드 파이게 하이힐 신고 올라간 무개념 연예인이라는 악플을 달았고,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하면 한 번의 시구를 위해 며칠간 투구 연습을 했던 홍수아에 빗대 성의 없다며 비난했다. 반대로 시구가 잠깐 마운드에 올라서 공 한 번 던지는 것이 아니라 수만 관중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연예인들은 홍수아의 개념 시구를 넘어선 시구를 선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에프엑스 멤버 빅토리아의 하이킥 시구였는데, 리듬체조 선수 신수지가 체조 기술을 응용해 그보다 난이도가 높은 일루션 시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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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나 신수지처럼 유연한 몸놀림을 보여주지 못하는 연예인들은 과감한 노출로 관중들의 눈길을 끌고자 했는데, 많은 연예인 중에 단연 화제가 되었던 사람은 클라라였다. 배꼽이 노출된 유니폼 상의와 터질 듯 조이는 레깅스에 드러나는 하체의 곡선은, 사실상 벗고 나오지 않는 이상 이보다 섹시할 수는 없다고 시위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 대중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클라라는 이 시구 한 번으로 수많은 남성팬들을 사로잡았고, 이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순식간에 대세 연예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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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플레이보이 모델이 아닌 이상 몸매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클라라는 거기서 꼬이기 시작했다. 대중이 본인을 섹시한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것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섹시한 이미지 이외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다.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는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대중들의 관심이 멀어지려 하면 클라라는 섹시 화보를 찍으며 근근이 버텨나갔다. 급기야 최근에는 소속사 대표와 낯 뜨거운 공방을 벌이면서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방산비리로 구속된 소속사 대표와의 소송전이 누구의 잘잘못인지 나는 판단할 정보는 없다. 그러나 많은 문화 평론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 사건은 섹시 이미지만을 내세우고 다른 콘텐츠는 갖추지 못한 여자 연예인의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순간 집중시킬 수는 있지만 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능과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섹시 컨셉은 아니지만 고등학생들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프로에 출연해 독특한 말투로 주목을 받았던 남창희, 가는 몸으로 테니스 라켓을 빠져나가는 묘기와 정체불명의 마빡이 댄스로 유명했던 통아저씨 등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며 오래 사랑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 순간의 섹시 컨셉이나 노이즈 마케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오로지 노이즈 마케팅으로 한 세월을 풍미하고 이제 지역구에까지 출마하는 변듣보잡 같은 양반도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일부 정치 마니아를 제외한 대중의 시각에서는 그냥 아웃 오브 안중이다.

 

연예계에 클라라가 있다면 정계에는 홍준표 경남 도지사가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장안의 화제이던 시절, 그 드라마가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것이라고 당당히 밝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정계에 진출한 홍준표는 한동안 승승장구하며 4선 의원에 한나라당의 여러 보직을 섭렵하며 주목받는 중견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1219대 총선에서 자신의 텃밭 동대문을 지역구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민병두 후보에게 패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잠깐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당시 김두관 경남 도지사가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해 도지사에서 물러나자 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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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는 도지사에 당선되자마자, 강성 귀족 노조 때문에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을 한다는 이유로 백 년이 넘는 연혁의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애초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가난한 노인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곳이니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발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마치 그 무렵 임기를 끝마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너만 불도저냐? 나도 한 불도저 한다.'라고 호령하는 기세였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한동안 세간의 관심에서 빗겨나 있었던 홍준표 도지사는 최근 무상급식 중단이라는 카드를 내세우며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무상급식의 정당성에 대한 세세한 논의는 이미 다른 전문가와 네티즌들에 의해 충분히 이루어졌으므로, 나는 오직 홍준표 도지사의 행보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 지사의 무상급식에 대한 공격은 본인 스스로는 진보 좌파에 맞서 싸우는 우파 투사의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고자 한 전략이라 하겠으나,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정치 경력을 스스로 끝장낼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종북이니 진보 좌파니 하는 낙인찍기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경기동부그룹이 무려 비비탄으로 무장혁명을 시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버릴 정도니까. 게다가 그런 식으로 진보 좌파와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면 조중동과 기업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상황이 그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소수당 의원들이 종북좌파 혁명을 시도했다고 사람들을 겁주는 것과, 실제 학부모들이 피부로 느끼는 혜택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진주의료원은 폐쇄하더라도 직원들과 환자들 다 합해도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니 폐쇄가 가능했지만, 무상 급식 폐지는 경남 지역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싸움이다. 동네 양아치가 분수도 모르고 김동현 선수의 코털을 뽑은 격이랄까? 당장 경남에서는 학부모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기세 좋게 홍준표를 지원하던 김무성 의원도 돌아가는 상황을 의식하며 말을 아낀다. 홍준표의 기대는 아마도 본인말고 다른 새누리당 도지사가 무상급식 폐지에 동참하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으리라 했겠지만, 다른 지사들이 머리에 총 맞았다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그 미친 짓에 동참할까? 오세훈 학습 효과가 뇌리에 박힌 지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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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아이콘

 

 

나는 그에게서 대중의 관심을 얻고자 발버둥치는 일부 연예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때로는 벗기도 하고 때로는 소송도 벌이면서 이슈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운 좋게 이슈가 되더라도 본인 스스로의 콘텐츠가 확실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보수 우파가 그렇게 찬양해 마지않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잊혀져가는 연예인들은 노이즈 마케팅을 벌여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홍준표 지사는 무상급식 폐지가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이미 이십 년 전에 '모래시계 검사'로 한국 사회에서 뜬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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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K뉴스)



이십 년 전에 이미 떴다는 그의 말에 우스움을 넘어 처량한 감정이 든다. 홍 지사가 본인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도시락을 못 싸가서 수돗물로 버텼던 가난한 집의 아이가 자라서 검사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도지사도 했으니, 나름 감회도 새롭고 자신의 출세가 자랑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시각으로 봤을 때 그는 많고 많은 정치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연예인 급으로 치면 톱스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고, 그렇다고 박명수처럼 이인자를 자처하는 수준도 아니다. 그냥 딱 클라라 급이다. 클라라가 대세 연예인에서 밉상 캐릭터로 전락하는 것에는 고작 이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홍 지사가 <모래시계>로 반짝 떴을 때가 이십 년 전, 결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처지도 못되는 걸 본인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요즘 누가 YS에 대해 관심이나 가지는가?

 

지난 이십 년 동안 홍준표 도지사가 어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이슈가 되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그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저격수 노릇, 이전부터 탈 없이 내려오던 정책에 시비 걸고 뒤엎는 것 외에 자신의 독자적인 콘텐츠를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나름대로 콘텐츠가 있기야 있겠지만 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자신의 콘텐츠 때문이 아니라 진주의료원 폐쇄나 무상급식 폐지처럼 기존의 정책을 뒤엎을 때뿐이었다. 박물관의 고대 유물을 오함마로 내려치며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고자 했던 IS 테러범이나 다를 바가 없다. IS 테러범들이 고대 석상의 머리를 부수면서 나름대로는 세계 정복을 꿈꿀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낄 뿐이고, 그들의 목적 달성이 점점 물 건너 갈뿐이다.

 

홍 지사는 본인의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성공한 도지사로 남기 위해 노력하거나 스스로의 콘텐츠를 개발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어렵지만 바른 길을 택하지 않고 쉽지만 잘못된 길을 택했다. 연예인이라면 국민에게 직접적인 폐는 끼치지 않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경남 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이제 조만간 사라질 정치인 홍준표를 미리 추모하며, 조금이라도 제정신 남아 있을 때 이만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불패 도비공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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