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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와 직장생활을 선택하라면 난 직장생활을 택할 거야. 나한테 전업주부는 맞지 않아.”


전업주부 생활 2주차인 41세 여성의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아들은 혼자 학교를 가고, 학원 버스를 탈 수 있는 8살이라는 것이고, 더 놀라운 건 그녀는 혼자 가사생활을 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그녀는 현재 쌍둥이를 키우는 언니 가족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이제까지 가사활동은 전업주부인 언니의 몫이었다.


개인적인 성격, 주변의 환경, 경제적 차이, 가정환경이나 성장배경에 의한 호불호라 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전업주부 생활 자체를 힘들어 했다.

 


1. 비관적인 예측


에피소드 1


몇 달 전 일이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前 담당 PD와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 가족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과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완벽한 4인 가족이었는데, 여자는 한 눈에 보여도 비만, 그것도 고도비만이었다. 마시멜로우 같았다고 할까? 회색 티로 감추긴 했지만 둥그런 D라인이 ‘임신’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맥주를 마시는 본새가 임신은 아닌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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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담당 PD는 그 가족을 보고 냉정한 분석을 내놓았다.


“조만간 저 가정엔 큰 위기가 닥칠 거야. 아니, 이미 닥쳤을지도 모르지.”


“에? 그걸 어떻게 알아?”


분석은 냉철했다.


“아이들 옷 메이커, 옷매무새를 보면 OO시의 평범한 중산층이야. 아이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의 피부 관리 상태나 옷을 보면 육체 노동을 하는 것 같고, 이 정도 술집에서 평일에 저녁 식사를 할 정도면 그럭저럭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상태지. 집은 전세 정도? 차는 준중형 정도 몰 거야. 문제는 아내인데, 저 정도면 조만간 지병이 생길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우울증 같은 걸 앓을 수 있겠어.”


“병 때문에 저 가정에 위협이 닥칠 거라고?”


“병보다 심각한 건 남편과 사회적인 문제지.”


“사, 회적인 문제?”


“아내가 결혼 전에도 저 정도로 살쪘을 리 없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임신과 육아로 급격하게 살이 쪘을 거야. 저 상황에서 스스로 살이 쪘다는 걸 인지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음식을 더 갈구하지. 그러면 빈곤의 악순환처럼 살은 더 찔 테고, 본인 스스로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이 때 남편이 은근한 압박을 할 수도 있어. 그럼 스트레스가 더하겠지. 저 정도 수준이면 개인적인 노력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거야. 노력을 할 순 있겠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 게다가 전업주부가 미취학 아동 2명, 그것도 사내아이 2명을 키우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저 여자가 전업주부인 건 어떻게 알아?”


“저 모습을 보고도 직장여성이란 생각이 들어?”


뒤로 묶은 머리, 늘어난 회색 티, 화장기 없는 얼굴, 두 명의 어린 아들. 직장여성으로 추정할 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봐도 전업주부였다.


추리는 이어졌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신장질환 등 예측 가능한 병증은 얼마든지 있어. 이미 앓고 있거나 조만간 병이 찾아올 수도 있어. 저 발목만 봐도 이미 습관적인 부종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어.”


건강 관련 콘텐츠만 몇 년째 제작한 PD답게 예측하는 본새가 제법 전문가다웠다.


“병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진짜 문제는 남편과의 관계야. 여자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고, 부부생활에서 점점 소외될 거야. 저 남편이 바람을 핀다는 게 아니라 아내에게서 여자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지. 위험신호는 거기서 부터야.”


“평범한 다른 가정처럼 ‘의리’로 살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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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부터 남편이 흔들리지 않을까? 비록 몸이 변했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본능 같은 건 남아있어. 물론 저 가족의 사정은 몰라. 하지만 육아와 가사에 지친 여성이 자신의 신체변화를 보고 우울해 지거나 정신적으로 지쳤을 때 남편의 수상한 움직임에 받는 상처는 신체변화가 있기 전에 받는 충격과는 다르지.”


“꼭 저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말할 순 없잖아.”


“물론이지. 남편이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고, 저들이 우리가 모르는 끈끈한 애정으로 뭉쳐있을 수도 있어. 다만 저 여자는 이미 위험에 노출 돼 있다는 거야.”


PD의 생각은 단순했다. D라인을 형성한 여성은 가사와 육아 덕분에 살이 쪘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여자는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술 취한 ‘먹물’의 탐정놀이 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진지하게 여자와 그 가정의 앞날을 예측했다.



에피소드 2


내 친구 L의 아내는 결혼 전에는 보기 좋은 ‘건강미인’이었다. TV나 잡지에 나오는 늘씬한 미인은 아니지만, 큰 키에 탄탄한 몸매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하다”


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그녀는 애를 3명을 낳은 뒤 급격하게 체중이 불었다. 친구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셋째 낳고 나서 30kg는 더 찐 거 같아.”


친구는 아내에게 몇 번이고 다이어트를 권했다고 한다. 건강상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 자신도 아내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했다. 그는 충격요법을 생각했다.


“6개월 안에 살 안 빼면 나 당신하고 이혼할 거야.”


정말 이혼할 생각이 있었냐고 물었을 때 L의 대답은 간단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


우리(특히 남자들)의 생각으로는,


“힘들면 살이 빠진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살이 빠지는 게 정상이지만 살이 찌는 주부가 많다. 이 말은 곧 전업주부는 ‘편하다’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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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논리를 기반으로 전업주부를 바라본다. 나태함과 게으름의 상징이 ‘비만’이 되는 거다.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갑자기 ‘다이어트 칼럼’으로 점프하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하므로 그 이유를 고민해 보기로 하겠다.   


첫째, 나잇살


남녀 모두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줄어든다. 남성의 경우 35살이 넘어가면 10년마다 근육량이 1.5Kg씩 줄어들고, 여성은 같은 기간에 1Kg씩 줄어든다. 근육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노화로 인한 성호르몬의 감소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서 남자는 ‘뱃살’이 여자들은 배와 허벅지로 지방이 몰린다.


둘째, 가사노동의 함정


현대여성들은 하루 평균 2,178kcal를 섭취하고, 556kcal 정도를 소비한다. 반면, 1952년의 여성들은 하루 평균 1,818kcal를 섭취하고, 1,512kcal를 연소시켰다. 이 정도면 완전연소라고 해야 할까? 즉, 그 시대의 여성들이 활동량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고,


“요즘 여성들은 게으르다.”


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가사노동은 운동보다는 ‘노동’의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


“운동은 열심히 하면, 신체가 단련되지만 노동은 열심히 하면 몸이 망가진다.”


간단하다. 운동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30분 이상, 신체 모든 부위를 광범위하게 사용해 부위별로 고르게 진행되는 ‘신체활동’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다르다. 무릎, 어깨, 손목, 팔 등과 같이 신체의 일정부분만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그 지속시간도 들쭉날쭉하며, 결정적으로 ‘휴식시간’도 일정치 않다. 휴식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건 운동보다는 ‘노동’의 개념이고, 이는 곧 근육통, 관절염, 만성 부인병의 원인이 된다.


셋째, 산후비만


출산 후 여자의 신체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 신체에 많은 부담을 가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부 ‘연예인’들의 산후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다. 그걸 기준으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이후의 다이어트를 등치시킬 순 없다. 분명 말하지만 현대여성의 ‘자기관리’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가사노동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노동은 신체의 마모를 가져온다. 여기에 ‘자기관리’를 넣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에게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임신 후 다이어트가 힘든 걸까? 먼저 생각해야 할 게 ‘뇌’다. 우리의 뇌는 자신의 체중을 항상 기억한다. 자신의 체중을 알고 있기에 뇌에서 기억하는 체중보다 몸무게가 늘어나면 음식을 덜 먹고, 자신의 체중보다 낮다고 판단하면 음식을 더 먹는다. 이런 메커니즘 덕분에 (특별한 병증이 없다면) 정상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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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게 10개월 동안의 임신기간이다. 뇌는 임신했을 때 메모리 된 ‘체중’을 정상체중으로 생각해 다이어트를 방해한다. 물론 각고의 노력과 자기관리를 통해 살을 뺄 수 있다. ‘체질상’ 살을 잘 뺄 수 있는 여성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남성들이나 문외한들이 출산 후 살찐 여성들을 보며 ‘게으른 여자’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다.



2. 시지프스의 형벌


쌍둥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S의 일과 시간표를 보자.


08:00  기상. 쌍둥이 두 명을 씻기고, 아침밥을 먹이고, 옷을 입힌다.


09:00  유치원 등원. 9시 40분에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버스를 태워 보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10:00~ 14:00  집안청소, 설거지, 빨래를 시작한다. 2주에 한 번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전쟁이다. 빨래의 경우는 세탁기를 돌리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널고, 개고, 정리해야 한다. 집안일 사이에 점심을 해결하는데, 대부분이 남은 음식을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다 먹기엔 벅차다. 잘 차려먹을 순 있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다. 게다가 차려먹으면 그만큼 설거지를 더 해야 한다. 결국 남은 음식으로 간단하게 ‘때운다’.

 

14:00  친구나 근방의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려면 이 시간밖에 없다. 집안일을 대충 정리한 후에야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것도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다.


15:00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때문에 마중을 나가서 데려와야 한다. 아이들은 근처 놀이터나 공원을 가고 싶어 하는데, 특별한 사안이 없는 경우 아이들과 같이 공원에 간다.


16:00  1~2시간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주고, 바로 마트로 향한다. 저녁 찬거리를 위해 장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17:00  집 도착. 아이들을 씻긴 다음(손, 발 정도) 쉬게 한다. 그 사이 저녁을 준비한다.


18:00  저녁 식사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편과 저녁을 같이 먹지 않는다.


19:00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이 놀 때 설거지를 한다.


20:00  빨래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목욕시킨다.


21:00  씻긴 다음 침대로 데려가 잠을 재운다. S의 집 아이들은 취침시간이 밤 10시와 11시 사이다. S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잠을 재운다. 


23:00  겨우 S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미 남편은 돌아와 있지만, 서로 ‘아이’ 이야기 말고는 따로 할 말이 거의 없다(역시 각방을 쓴다). 잠깐 졸다가 TV를 보거나 하며 3~40분을 보내고, 새벽 1시가 돼야 본격적인 취침을 한다.


43세 전업주부 S의 일상이다. ‘가사노동’의 강도에 대해선 차치하더라도 일상 자체가 틀에 박혀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이들의 모습이 군대의 ‘취사병’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휴일이 되도 ‘밥’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전업주부들에게 ‘휴일’은 없다.


그들이 시간을 낼 수 있는 타이밍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돌아올 때까지의 5시간 남짓이다. 이 시간을 ‘자신’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의 일정(빨래, 설거지, 청소 등)을 패스해야 한다.


사르트르의 영원한 여인이자, 20세기 페미니즘의 대모(代母)라 할 수 있는 보부아르는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의 굴레를 ‘시지프스의 형벌’이라 말하며 가정주부의 노동 강도에 주목했다. 노동 강도는 둘째 치고, 고정적인 ‘휴일’이 없고, 대가 없는 노동이 당연시 되는 구조 자체에 의문을 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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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해도 쌓이는 집안일. 다음날이면 반복되는 집안일의 굴레.”


말 그대로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전업주부 체험을 하고 있는 A의 말을 빌리자면,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안 나.”


라고 한다. 그렇다면, 방치를 한다면 어떨까?


“집안이 개판되는 거지.”


너무도 당연하게 출산과 육아 이후 20Kg 가까이 체중이 불었다고 한다. A의 변을 들어보자,


“인간이 ‘뇌’에 지배받는 존재라는 전제하에서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욕구’가 있어.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그걸 풀어야 해. 가정주부, 전업주부의 경우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할까? 다른 사회구성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찾아. 직장인의 경우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지. 그렇다면 전업주부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손쉬운 게 ‘먹는 거’야.”


예민한 대목이다. 단순히 스트레스가 쌓여서 ‘먹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자신의 ‘욕망’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라 말할 수도 있지만, 일반화 이전에 전업주부가 자신의 행동반경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생각해 보자.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


“어떤 의미지?”


“직장에 나가는 남성을 떠올려 봐. 직장에는 비슷비슷한 학력, 비슷한 업무를 가지고, 명확하고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 의무적인 대화라고 하더라도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지. ‘왕따’가 왜 무서운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관심을 받고, 대화를 한다는 건 인간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야.”


여기서 굳이 침팬지의 인형 실험(우유가 나오는 기계와 단순한 봉제 원숭이 인형을 사이에 놓고 아기 침팬지를 보냈는데, 아기 침팬지는 봉제 원숭이에 달려갔다)을 설명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동물도 ‘먹는 것’ 보다는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그 대화가 아무리 ‘형식적인 대화’라고 하더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그것도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전업주부의 함정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를 제외하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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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지만, 1년 365일 명사와 동사만 가지고 대화를 하는 상대, 그것도 지적 수준이 자신보다 훨씬 낮은 아이와 맞춰서 대화한다는 건 고문이야. 물론 사랑하는 자식이고, 자식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건 특권이야. 그렇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대화하고 싶어 하는 존재야. 특히나 여성의 경우에는 더 하지. 게다가 요즘 여성들의 학력을 생각해 봐.”


양날의 요검이라고 해야 할까? A의 주장을 계속해 들어보자.


“여자는 남자보다 스트레스에 강해. 아니, 강하다기 보다는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지. 바로 ‘수다’야. 전업주부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말하는 것, 이건 여자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스트레스 해소법이지.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치료의 기본적인 방법이 뭘까? 피상담자가 말을 하게 하는 거야.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응어리 진 것들을 토해내고, 해소시킬 수 있어. 이건 매우 바람직한 방법이야. 그런데 남자들은 이걸 가지고 욕을 하지. 할 일 없으니 밖에 나가서 수다 떤다고. 그런데 이 수다가 여성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거야.”


전업주부의 수다는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역할인 것이다. 3~5살 꼬맹이들의 명사와 동사로 구성된 대화가 아니라, ‘주어, 목적어, 동사’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 3형식 문장을 말할 수 있는 상대와 대화를 한다는 것, 그것도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한다는 건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출산과 이후의 육아에서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 여성들은 신체적인 변화도 변화지만, 이보다 더한 것이 고립감과 단절감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또래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통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육아를 전담하면서 ‘대화’ 자체가 막혀버린 것이다. 형식적인 대화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하다.


“남자들은 대화라는 것의 중요함을 간과하고 있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강한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야 해. 그녀들은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대화할 상대가 훨씬 더 넓고 깊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걸 수도 있어.”


정작 대화가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닐까? 소통까지는 필요 없다. 말한다는 행위 자체에 주목해 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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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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