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SamuelSeong 추천5 비추천0

2015. 04. 03. 금요일

Samuel Seong








좋은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1. DIY Telecom

 

지난 3월 7일자 이코노미스트 아시아판엔 <DIY Telecom>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었다. 주민들이 만들어서 운영중인 통신회사가 멕시코 남부의 Sierra de Juarez라는 곳에 있다는 이야기. 기존 통신사에게 기지국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더니 5만달러를 주면 운영을 위한 기지국을 만들어보겠다고 해서 주민들이 Open OS와 PC등을 이용해 7천5백달러, 한국 돈으로 800만원도 안되는 돈을 모아서 자신들의 통신사를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회사를 만들었으니 요금도 아주 쌀 수 밖에 없다. 지역 내에서 같은 통신사를 사용하는 사람끼리의 통화는 월 기본료 40페소(약 3천원)만 내면 무료, 기존 통신사 가입자에게 하는 전화는 분당 0.82페소(약 61원)이라고 한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통신사인 America Movil과 Movi Star 등과 같은 곳에서는 분당 3페소(약 224원)을 내야 하는 것에 비교하자면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셈.


사실 이런 형태의 간이 통신사들은 꽤 많다. 한국인들이 주축인 NGO가 필리핀의 정글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봤고, 기사에서도 언급되지만 인도네시아에도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본 기자의 체류기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네팔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위성전화를 대체하고 있다.

 

 P4280149.jpg


해발 5천미터인 여기다가 기지국을 세우기 위해 나귀로 물자를 실어나른다고 생각해보셈

 

 

특히 네팔의 경우에는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등반 원정왔던 팀들이 포터에게 기증하고 간 위성전화가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부족 마을들의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는데 이게 꽤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다.


외국에 일하러 나간 노동자가 몇 시에 다시 전화걸겠다고 약속하면, 전화기가 있는 집 아이가 그 집에 찾아가서 그 이야길 전해줘 시간 맞춰 대기하고 있으면 통화하던... 한국의 60년대 시골 같은 풍경도 사라지고 있다.




2.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순수할까


우짜다가 한국식당에 가서 밥 먹다가 여행자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게 "이 나라 사람들 눈은 참 맑은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다. 글쎄... 사위가 장인에게 사기쳐서 인도 장기밀매 조직에게 넘겼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교통사고로 버스나 트럭이 엎어져서 싣고 가던 물건들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그거 줏어다가 주인 찾아 주는 모습은 고사하고 다친 사람들 구조해주기 보다는 사고가 난 지역의 인근 마을 사람들이 짐을 모조리 쓸어가는 꼴만 본 입장에선 좀 많이 깬다.


눈이 맑다 어떻다 얘기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환타지 소설 작가로 이해하는 유명 작가의 에세이집의 영향이겠거니~라고 짐작은 하지만...


저개발국가를 감상적인 시각으로 여행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시각들이 꽤 늘어나고는 있지만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사람들'이라는 택두 없는 신화는 꽤나 공고하다. 사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다는 나라의 사람들이 '난 행복해'라고 하는 말의 뜻은 '난 오늘도 살아있단 말이지'에 훨씬 가깝다고 본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뭐 어디 입체적으로 보려고 하는가.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없는 지역에서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생존에 필수적인 통신이나 에너지를 연결하는 과정을 한번 겪어보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염증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선의로 만들어진 시스템을 조금 더 편의를 얻겠다고 마구잡이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PV.jpg

 

 

네팔의 새 과도정부는 연초에 올해 말까지 30만개의 태양광 패널을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소수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총 발전량도 900MW가 안되는 나라에서 가로등을 밝힐 방법, 뭐 태양광 밖에 없다. 그래서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보급하고 있는건데... 위 사진을 좀 자세히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보일 거다. 일단 가로등 높이가 아주 높고, 두 번째는 가로등에 사람이 타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비포장 도로도 많은데다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보니 건설현장도 많아서 흙먼지가 워낙 쌓이니까 먼지를 상대적으로 덜 뒤집어 쓸 수 있는 높이로 올리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도난 때문이다.


꽤 많은 환경 NGO들이 저개발 국가의 공공시설에 태양광 패널을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상당히 많은 숫자가 뜯겨서 시장에 팔리고 있거든. 그러니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도록 설치하는 것.


DIY Telecom의 경우엔 SIM카드를 쓰는 방식이 아닌, 관리자가 수동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여기에 등록하고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이 해당 지역의 기지국을 쓰는 게 아니라 다른 통신사의 기지국을 이용하면서도 같은 요금을 내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아끼겠다고 원래 만든 목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자기기들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한 둘이 아닌데, 집단이 공유해야 하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갖다놓은 장비들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뜯어가는 사람들이 없겠냐.




3. 이기심이 만드는 정치

 

P6120059.jpg 

 

히말라야 자락에선 이런 길을 따라 주욱 며칠을 걸어 올라가면

 

 


P6120006.JPG


이런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 밑에 해발 2000미터에서 3000미터 사이에 이런 곳들을 꽤 발견할 수 있다.

 


 P6120018.JPG


소수력발전소들이다. 이런 소수력발전소들을 만들기 위해선 일단 길부터 만들어야 한다.




길이라고 해봐야 이런 형태들이긴 하지만.

 


P6120022.JPG


 


발전소 자체 공사보다 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초 인프라 만드는 공사의 규모가 얼마나 적으냐가 네팔 소수력 발전소의 사업타당성을 결정한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발전소 건설을 대체로 반긴다. 발전사업자가 길을 닦아주고 전기를 대도시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주며 주주로 참여할 기회까지 주는데 반대할 이유가 별루 없지.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대규모(?) 사업이 벌어지면 뭔가 자기에게 잔뜩 떨어지는 게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 이런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일종의 알박기 되겠다.


파이프를 통해서 물길의 일부를 돌려 그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물길을 돌리기 위해선 상당히 긴 파이프관들이 있어야 하고, 얘네들이 제대로 붙어서 물을 이동시키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지지대들이 필요하다. 이 지지대가 들어갈만한 곳에 정말 손바닥만한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몇 억씩 토지보상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는 거다.


토지수용 문제로 공장도 못 짓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인도에선 그래서 올해 초에 주민의 80% 이상이 동의한 프로젝트면 나머지 20%가 반대해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문제는 '이해관계자 조정'이라는 정치의 영역이 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질이 극적으로 개선되는 일임에도 이렇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극한으로 갔을때,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야 하는 현장에선 그래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일 자체가 공중에 붕 떠버리는 경우들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하는 곳에선 작동 안하니까.




4. 꼰대정신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요즘은 댓글이나 달고 있는 국가기관이 기획하고 한국에서 돈 움직이는 것은 모두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경련에서 돈을 지원해서 대딩들에게 중국 여행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로 끌고 갔던 대딩들은 단과대학 학생회장단이나 학교 수석 졸업 예정자들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좀 웃겼다. "사회주의라는 게 이 모양 이 꼴이니까 학생 빨갱이 여러분들께선 남한 적화의 꿈을 빨리 깨고 한국적 자본주의의 충실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로 요약정리 가능했거든.


모스크바 대학의 석학이 택시 운전을 한다고 사회주의의 실패가 그렇게들 기쁘셨던 분들은 그 추운동네에서 일자리를 잃은 기초과학 연구자들을 어떻게 업어올 생각을 하기 보다 동구권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 수집하러 다니기 바쁘셨었다. 바로 그런 분들이 기획자고 돈줄이었으니 뭐 오죽했겠는가. 뭐 요즘은 자기 말들을 잘 들을 애들로만 보내주고 있는 것 같다만... 창의력은 가끔 자신의 뒤통수를 때릴 때 발현될 수 있다는 걸 인정 못하는 자세를 보면 저 양반들도 어지간히들 안 배운다 싶다.



2.gif



일단 남 쫓아가기 바쁘던 시절은 그래도 모범이 될만한 넘 하나만 쫓아가면 됐다. 근데 그렇게 열심히 잘 뛰어서 선두 그룹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남 따라 하는 걸로는 답 안나온다.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지켜보고 그걸 따라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게 우리의 현실인걸.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만 보라고 하면 뭐 어쩌자는건가.


그러다보니 지금보다 나아지게 하기 위한 방안들이 기괴한 형태들로 나오기 시작한다.




5. 취지는 알겠는데


이번 달 초, 서울시는 생활쓰레기 재활용 분리 배출 강도를 높이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관련기사-링크) 쓰레기 종량제 봉투안에 '종이나 비닐'이 들어가 있으면 봉투 수거가 거부되거나 과태료 대상이 된다고 배포한 것.


분리수거_(1).jpg

 

 

뭐 대부분 서울시의 삽질에 대한 규탄으로 커뮤니티든 트위터든 도배가 되던데... 뭐 일하고 있는 영역이 영역인지라 줏어 듣는 것이 좀 있는 본 기자로선 서울시의 고민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 생활쓰레기는 소각장으로 가서 지역난방을 제공하는 열로 바뀌는데, 휴지나 비닐 등은 이 소각로 안에 찌꺼기로 달라붙어 명랑한 소각로 운영에 훼방을 놓는 넘들로, 처리 기술들이 여러가지가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속시원한 해법은 안 나오고 있는 상태 되겠다.


추울 때는 겁나 춥고 더울 때는 또 겁나 더워서 냉난방 수요가 항상 있을 수 밖에 없는 지역에 나라를 세웠고, 지정학적으로 섬이라 에너지도 모두 배로 실어날라야 한다. 그러니 지역난방비를 최대한 안 올리려고 하면 소각로 유지관리에 꽤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그건 애초에 투입되는 '연료'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수 밖에 없고, 뭐 그러니까 저런 아이디어가 나온 걸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삽질은 '통합자원관리시스템'. 재난과 응급상황 등 사회 전반에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민간 의료진과 전직 소방관, 중장비 등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뭐 겁나 좋은 취지를 가진 넘이었는데 '자원'이 된 양반들이 빡 돌았던 것.

 


 민간자원약탈.PNG

(관련기사-링크) 


 

의료현실에 대한 이해와 과목별 의사 숫자 편중에 대한 상황. 수도권의 병원에서 일하면서 집은 서울인 의사나 서울의 병원에서 일하며 수도권에서 사는 의사들을 생각하면 저게 도대체 뭔 소린가 싶다. '자원'으로 동원하겠다고 하는 당사자들의 상태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그들과 가장 먼저 대화를 했었어야 하는거 아닌가?




6. 문제는 민주주의다


얼마전 트위터를 통해 지방의 모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일하는 분이 올린 '지금까지 만나본 고객님들'이라는 진상 고객의 행태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유머에 올라왔었다. (본문 링크) 최신 IT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님들을 상대하고 계신 분의 애환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는데 사실 저렇게 행동하는 진상 고객님들, 딱히 신기한 인종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당 업종 종사자만 아는 내용들은 겁나 많아졌는데, 뭔 사고가 터지면 말 그대로 모두가 피해를 입는 사회가 된지 꽤 됐다. 본 기자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엔 IT영역에서 기획자로 한동안 일했었음에도 최신 기술 동향들을 읽다보면 모르는 이야기가 태반인걸. 자동차의 경우엔 이미 고전적인 기계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굴러다니고 있고.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서로 아는 내용들이 제대로 공유되어서 해당 조직이 굴러가는지 궁금해지는 경우들도 많다.


거기다 옛날처럼 베낄 상대도 없다. 그러면 해당 분야 사람들끼리 앉아서 뭘 만들어내고 그걸 계속 보완해야 뭔가 좀 나아지게 되는건데... 한국 사회는 이걸 해본 경험이 없다. "내 말 들어"가 아니라 "말씀을 듣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주 드문 사회 아닌가 말이다.


학부 졸업생에, 그것도 전공과도 전혀 상관없는 일로 밥벌어먹고 있는 넘이 KDI의 박사들이 만들어내신 정책 논문들을 감히 평가하는 게 좀 멋적긴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안들에 대한 선진국의 해법이라고 해놓은 것들은 대부분 최종 결과들을 나열한 것들이지, '그 사회가 어떻게 그런 결론들에 합의했는가'라는 동력에 대해 다루는 걸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우리가 선두그룹에 있는 한, 남이 안 해보는 바보짓을 꽤나 반복해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영역에서 미시적 정치행위들을 쌓아나가지 않는다면 모든 것들은 더 나빠지기만 할 뿐, 개선시킬 방법은 없다. 옛날에도 호사다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좋은 일에는 마가 끼는 법이라는데, 그걸 쉽게 몇 명이서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인구 5천만에 지금의 GDP를 가진 나라를 영도할 지도자는 나올 수 없다. 거의 모든 것들의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합의해나가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게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장비들 갖고도 손가락만 빨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라이브로 보는 꼴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52223.jpg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