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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06. 월요일

독투불패 락기






편집부 주


아래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SNS를 하며 빈둥거리고 있던 날이었다. 오후 2시쯤 되니 특정 해시태그가 갑자기 많이 보였다.


#SAVE KUFILM


세이브 쿠필름? 커필름? 아무튼, 흥미가 생겨 해시태그와 연관된 사진들을 클릭했다. 연예인들이 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라는 글이 적인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과 연관된 뉴스를 찾아보니 건국대학교가 영화학과와 영상학과를 통폐합한다는 내용과 함께 대학이 취업률로 예체능 학과를 판가름하는 것을 우려하는 내용의 기사도 보였다. 뉴스를 계속 뒤적여보니 학생들이 건국대 행정관을 점거하고 학과 통폐합 반대 농성을 하고 있다는 뉴스도 보게 됐다. 내 궁금증을 건드리는 뉴스였다. 딱히 심심해서가 아니라 작년부터 꾸준히 들리는 대학의 학과 간 통폐합에 관해 많은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국대학교는 내가 빈둥거리고 있는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이다. 그런 이유로다가 무작정 건국대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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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끊기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니다.

 

2015331. 오후 4. 날씨 맑음.


건국대학교에 도착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왜냐하면, 오는 길에 만 원을 주웠기 때문이다. 궁금함을 못 이기고 왔건만 만 원까지 주웠으니 기분이 상쾌하지 않을 리 없었다. 기분 좋게 대학교 정문을 지나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대학생이 걷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굳이 엿들으려 하지 않아도 내 귀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맑은 대학생들의 목소리 속에 어색하고 어두운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통폐합

 

통폐합이란 말이 자주 들리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 농성장을 찾기 시작했다. 행정관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하얀 건물이었다. 건물 앞으로는 비닐 천막이 줄지어 있었고 건물 외벽을 따라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건물 안에서는 학생들의 구호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두 번째 자리에 있는 천막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물었다.

 

학생들을 배제한 채 대학 측이 학과 통폐합과 관련된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학생들과 상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에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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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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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들


정부와 시민 간의 대화에서나 있을 법한 불통을 대학교 캠퍼스에서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야기를 들은 내가 더 궁금해하자 학생들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소개해 주었고 영화과와 영상학과만이 아니라 학내 다른 학과들도 통폐합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실제 건국대학교 홈페이지에는 기존 15개 단과대학 73개 학과에서 2016년도 입시부터 63개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한다는 공고도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깐 대학이 학생과의 협의 없이 구조조정을 했고 많은 학생이 자신의 학과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왜 학생들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통폐합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실마리는 교육부 발표에 있었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기본계획

 

작년 1223일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 정원 전체가 종교 지도자 양성 목적 학과인 경우와 재학생 정원 전체가 예체능 계열 학과인 경우를 제외한 일반 대학과 전문대를 평가하여 대학의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른 차등 정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신부나 목사, 스님을 육성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대학이나 예술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 같이 학생 전체가 예체능 계열인 대학 말고는 죄다 구조개혁을 하겠다는 거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225일 순천향대 열차 강연회에서 대학 정원감축에 대해서는 대학 자율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교육부는 황우여 장관의 발언과는 정 반대의 안을 내놓은 것이다. 교육부 장관이 허수아비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줏대도 없어 보인다. 일단 넘어가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평가 기본 계획안을 보면 추진 배경 첫머리가 이렇게 쓰여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 수립'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알겠고 인구가 줄어드니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학령인구도 당연히 줄어들 거라는 것도 알겠고 예전부터 대학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도 알겠다. 그런데 왜 학과가 통폐합되는 거지? 첫 장만 읽어보면 모르겠더라. 둘째 장, 셋째 장을 넘기다 보니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대학이 학과 통폐합을 학생을 배제하면서까지 강행하는 이유를 말이다.


 

돈 끊어버린다!

 

교육부는 대학을 A등급에서 E등급까지 나눠, 하위 D등급은 정부 재정지원사업 제한, 국가장학금 2 유형 미지급, 학자금 대출 일부 제한하기로 하였으며 E등급은 정부 재정지원사업 제한, 국가장학금 1,2 유형 미지급, 학자금 대출을 전면 제한하기로 하였다고 적혀 읽다. 여기서 포인트는 역시 돈이었다. 역시 돈이 문제다. 정부에서 대학 등급별로 돈 주는 것을 나누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니 대학 입장에서는 벌벌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학의 주요 수입원은 등록금이다. 그리고 대학 입학자들 상당수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납부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학자금 대출에 제동을 걸겠다고 하고 E등급 대학은 무려 학자금 대출을 전면 제한한다고 하니 대학 입장에서는 이런 공포가 없었을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간 대학 간판까지 내리게 생겼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과 통폐합은 왜 시행되는지 의문을 가질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유는 대학 등급을 나누는 평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 일반대학 : 1단계 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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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육부 보도자료

 

보이시는가? 60개의 평가 항목 중 졸업생 취업률(5)과 취, 창업 지원(2)? 그렇다. 대학평가 항목에 취업률이 들어가 있다.


 

기업인재 육성의 전당

 

대학이 교육의 전당이며 상아탑이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331일 한양대 이영무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종합대로써 어느 한 전공만 잘돼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공장서 제품을 생산했는데 재고만 쌓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되겠나. 취업률 같은 사회적인 요구도 매우 중요하다.”라고 발언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하지만 대학이 졸업생 취업률을 홍보하는 것과 정부의 대학 평가 항목에 취업률을 포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대학교 졸업생들이 이렇게 잘나가요자랑하는 것과 정부가 너희 대학 졸업생들 취업자 조사해서 돈 다르게 줄 거야의 차이이며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정부에서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가 취업률이란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대학취업 학원으로 보고 있다는 의중을 들어낸 것이다.



취직은 했니?

 

배우라는 직종을 살펴보자. 배우는 매일 정기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하는 직업이 아니다. 작품이 있고 캐스팅이 되었다면 연기라는 일을 하는 것이고 작품이 없는 시간에는 휴식을 가진다. 그렇다면 배우는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시간 동안은 무직인가? 오래 쉬다가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면 복직인가? 아니다. 배우라는 직종은 직장인과는 다른 특수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취업률 통계에 배우를 집어넣기 어려워진다. 카메라 감독이나 연출도 배우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아니 애초에 예체능 학과의 취업률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 화가가 혼자 그림을 그려 판매한다거나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어 판매한다거나 예체능이 가지는 특수성을 살펴보면 흔히 말하는 취업과는 거리가 먼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예체능 학과의 취업률을 따지겠단다.


대학은 이런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정부에 대들었나? 아니면 예체능 학과는 빼달라고 사정했을까? 둘 다 아니었다.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예체능 학과 여러 개가 따로따로 점수를 깎아 먹느니 차라리 학과 여러 개를 통폐합해서 점수를 들 깎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교육부가 '에헴' 하니 대학이 '어이쿠' 하면서 손을 비비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피해를 보아도 말이다.


 

콜래트럴 대미지

 

박근혜 정부의 특징은 말이 통하질 않는 것에 있다. 청와대만 이 문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을 관장하는 대부분의 부서가 이에 해당한다는 거다. 그동안 종합대학의 문제점은 언론이 계속 지적해 왔다. 높은 등록금, 차별화 없이 획일적 교육을 하는 대학, 수도권 대학의 커리큘럼을 모방하기 바쁜 지방의 대학교, 자금 운용이 불투명한 대학, 총장의 횡령, 사학 재단의 횡포 등 대학의 문제를 다룬 기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간을 정해 대학 보고 따르라고 강압하고 있는 것을 보자면 답답해진다. 돈을 쥐고 대학을 좌지우지하며 낮은 등급의 대학에 재정 지원 비율을 줄이겠다는 것을 보자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혹시 정부가 돈이 없어서 저러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정부의 재원 마련 방향의 기괴함까지 느끼게 해준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자며 창조, 창조 침이 마르게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행동은 말과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학생들뿐 아니라 대학에 입학하고 하는 입시 준비생들도 갑자기 바뀌는 전형에 당황하고 있다. 당장 2016년부터 입시 전형을 바꾼다고 하니 입시 준비생들은 불 보듯 뻔하게 부수적 대미지를 입을 것이다.

 


취업 문제 떠넘기기

 

대학평가 항목에 취업률을 보고 있으면 돈 문제 말고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취업하지 못하는 학생에 대한 책임을 대학이 느낀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었나? 취업 문제를 청년 실업문제로 치환해 생각해보자. 청년 실업 문제는 교육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엮여 발생한 것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나 정부의 일자리 창출 능력 부재, 대기업 중심의 기업 풍토, 청년 창업 지원의 미흡 등 정부의 책임을 물을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대학에 취업률을 적용해 평가하다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건 마치 정부가 청년 실업 문제를 대학에 떠넘기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대학 진학률이 60%가 넘고 대학 수도 200개가 넘어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청년 실업자가 이렇게 많아? 그럼 대학 책임이겠네?’


과대 해석일진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까지 받았다. 책임 전가와 대학 길들이기 그리고 지출 줄이기. 정부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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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관 점거농성 중인 학생들



대학생은 빠져! 어디 힘도 없는 게 까불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다니던 학과가 다른 학과와 통합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학과가 폐지된다. 학교는 다양한 커리큘럼을 남겨 놓겠다며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런 전례는 없다. 정부의 정책과 지원금을 따내려는 대학 사이에서 피해는 오로지 학생의 몫이다. 대학에서 학생의 취업을 위해 절대평가를 하다 기업과 언론의 학점 변별력 없다’, ‘학점 인플레’, ‘학점 뿌리기라는 질타에 다시 상대 평가를 도입했다. 재수강으로 학점을 재취득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기 시작하고 교육부의 방안에 이제는 학과 통폐합도 한다. 취업률로 홍보하려던 대학이 질타를 받으니 기업과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바꾼 것이다. 애초에 학생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교육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조차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의 예를 들지 못하고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 이제는 현실은 취업이라며 대답하지 못했던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학생이 배제된 대학구조 개혁은 시행 돼서는 안 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과 함께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외침을 공허하게 만들어선 안 될 것이다. 학생과 대화하라. 그리고 설득의 과정을 거쳐라. 지금의 하향식 대학구조개혁 강압을 멈춰야 한다. 학생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생은 정부와 교육부의 말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대학을 취업 학원이라 여기는 마인드야 말로 대학의 존재 자체를 흔들리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독투불패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락기' 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아울러, '락기'님께서는 본지 대표 메일 ddanzi.master@gmail.com으로 연락가능한 개인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독투불패 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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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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