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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09. 목요일

해외불패 깊은생각







편집부 주


아래 글은 해외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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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넘게 사니 친구들이 은퇴를 하기 시작하였다. 명예퇴직이라고 하는데 이것만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다. 그냥 사표 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몇 달치 봉급이나 위로금도 나오니 기다릴 수밖에기업구조조정의 1순위가 50대 이상 고액연봉이니 당연히 매해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십년 전 한국을 떠날 때 친구들이 돈 한참 잘 벌 나이에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물었었다. 난 단순히 몇 살 이라도 젊었을 때 자리 잡고 싶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삼년간 여기저기 알아보니 미국은 밑천이 많이 들고, 카나다에서 닭 잡기는 싫고, 호주는 점수가 빡세서 쉽지 않았다.

 

그런데 동남아는 수중에 몇 푼 없어도 쉽게 떠날 수 있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곳. 한 달에 백만 원만 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곳. 동남아로 가자! 그렇게 결정을 하고 또 일 년을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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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주를 한지 벌써 십년이 되었다. 결론은 개뿔. 월백 만 원으로는 어림없다. 고생도 할 만큼 해보고, 미국이나 호주에 투자를 했어도 될 만큼의 돈도 돈대로 들어가고 겨우 입에 풀칠할 기반정도 잡은 것 같다그것도 매우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누군가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면 어디를 추천할까? 나는 그래도 동남아를 추천하고 싶다


단지 몇 푼 안 되는 아파트 전세주고 그 돈으로 놀고먹고 살 생각이 아니라면, 겨울에는 동남아 봄가을에는 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철새이주가 아니라면 당연히 동남아시아가 좋다.

 

동남아시아에서 자리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행착오를 하지 말 것(아니면 적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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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를 적게 하려면 좋은 선생이 필요하다. 산전수전 다 겪고 알 만한 것은 다 알 만한 사람의 경험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장땡이 될 터. 허나 친인척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돈 들여 얻은 실패의 경험을 나누어 주며, 또 나누어 준다 한들 나중에 남는 것은 뺨 석 대나 욕 세 바가지 밖에 없으니 먼저 살던 교민들은 오지랖 넘게 여기저기 얽히기 싫어한다.

 

그리고 뉴스나 책에 나온 것처럼 교민들끼리 친하거나 일가친척 같거나 하지도 않다. 마트에서 한국말 들리면 애들에게 조용조용 한국말 하지 말고 빨리 자리 뜨자고 하는 것이 교민사회이고 교민생활이다.

 

교민은 성골과 진골, 4-6품으로 나뉜다. 성골은 이미 이주 후 2세대가 지나 3세대에 들어간 자리 잡은 교민들을 말하고, 이들은 이주 1세대 같은 천한 것들 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그리고 진골은 이주 2세대에 해당하며 자녀들은 현지에서 교육받고 현지인 같은 지위를 가진 성공한 교민을 지칭 한다. 나머지 교민들은 사업의 규모에 따라 또는 가진 돈의 규모에 따라 6두품부터 4두품으로 나누어진다.

 

만일 성공하지 못하였거나 돈이 없다면 그냥 평민들이다. 대부분의 교민들은 평민들인데 이들끼리 교민회니 한인회니 만들어 모여서 산다.


특이한 부류들이 해외 파견 직원가족들이다. 이들은 교민의 품계에 상관없이 우월감을 갖고 살고 있다교민들과는 서로 닭 보듯 개 보듯 살고 있는데, 웬만하면 피해가며 살고, 모이는 곳도 서로 다르다. 파견 직원들은 남편 회사의 규모나 지위에 따라 또 계급이 나뉘는 모양인데, 제각각이 다르고 하여 이들을 교민에 포함시키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동포와 교민의 차이도 있다. 동포는 한국 국적을 가진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사돈의 팔촌 할아버지, 할머니를 둔 한국인과 비슷한 사람들까지 통칭하고, 교민은 교민회나 한인회에 가입할 자격을 가진 한국에서 살다가 이주해온 대한민국 국민 또는 그 자녀들을 지칭한다.

 

이상은 사전과는 다른 동남아 교민사회의 대략적인 분류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족은 교민일까? 동포일까?

 

교민사회에서 조선족은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일 다름이다. 한국식당과 업체의 상당히 많은 수가 조선족을 쓰고 있는데 이들의 가입을 허락한 교민회나 한인회는 아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도 굳이 한인회에 끼고 싶어 하지 않고 교민들도 굳이 이들을 동포라는 이름으로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외현지에서는 재일교포출신은 거류 일본인회에 나가고 재미교표들은 주로 미국인 모임에 나간다. 한국교민회는 한국에서 살다 이사를 온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이주 초보자들은 찹쌀떡 같이 끈끈한 의리로 넘치는 한인사회를 꿈꾸는데 그런 것 없다. 한국사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독고다이들이다. 인연에는 강하고 연대에는 약한 종족이란 말이지교민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고 만일 해외이주를 한다면 그것도 동남아 이주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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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교민들에 대한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할 이야기도 주관적인 시각일 뿐이다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하기를 바란다.

 

해외 이주를 꿈꾸는 이유로 나라 돌아가는 꼴이 보기 싫어서, 매일 과외로 지친 아이들을 위해서, 우아한 은퇴를 위해서 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찌되었던 떠난다고 결심을 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동남아국가들의 생활 및 사회기반시설을 한국 사회와 비교하여 주관적으로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다.


한국의 2000년대 말레이시아 (싱가폴은 제외다 여기 이미 갈 돈이면 유럽을 가시라)


1990년대 태국베트남


1980년대 라오스


1970년대 캄보디아미얀마


주로 가본 나라와 주요도시 기준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아시는 분이 댓글로 설명주시라.


2014년 IMF 기준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별 국민소득을 보자면, 



  말레이시아  1,062$ (63위)


태국   5,550$ (94위)


베트남   2,073$ (134위)


라오스  1,697$ (141위)


캄보디아  1,104$ (156위)


미얀마   1,270$ (153위)



이렇다. 외교부와 코트라에서 작년기준으로 제공한 자료라고 하니까 대충 믿을 만 하겠지?

 

주관적인 실제 생활 환경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보자면 말레이시아 > 태국 > 베트남 > 라오스 > 캄보디아 > 미얀마 순이다. 위 국민 소득 순위와 같다.

 

베트남을 이주를 하려는 한국 사람들은 많이 없다. 미국과 싸운 나라이다 보니 사람들의 생활력도 강한 편이다. 사납다고나 해야 할까아이들을 위해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학비도 저렴한 말레이시아가 제일인 것 같고, 생활환경이 좀 많이 미흡해도 순한 사람들과 살려면 라오스가 제격인 것 같다.

 

적당히 편안하고 적당히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나라가 태국이고, 인생한번 배팅해보자 하면 가능성의 나라 미얀마가 좋을듯하다글의 목적이 이주 장려가 아니니 나라비교는 이정도로 하도록 하자. 그리고 돈 많으면 어느 나라나 다 살기 좋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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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행복할 사람. 활짝 웃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사업을 하건 아이를 키우건 은퇴생활을 하건 기본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말이 통해야 소식도 들을 수 있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물건도 살 수 있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한국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나라말을 배우는 것인데 꼭 동남아만 오면 영어 하나면 된다는 국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못사는 나라이니 어설픈 영어라도 때깔 나 보이겠지. 사람들이 영어에 기가 죽는 모습도 보고 싶고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주문하면 있어 보이고. 그런데 왜 서양 애들이 옆에 있으면 그렇게 허둥지둥하는지 모르겠다그 나라 말을 배울 생각 없으면 동남아 이주 꿈도 꾸지 마시길. 영어 쓰고 싶으면 호주나 뉴질랜드로 가시고

 

그림인지 문자인지 모를 꼬부랑글자는 보면 기가 죽고, 저걸 어떻게 배우나 싶지만 공부하다보면 먹고 살다보면 다 읽을 수 있다.

 

영어를 차용한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가 아니라면 문자는 시간이 좀 걸리긴 한다. 그래서 말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동남아어 대부분의 장점이 한 달을 공부하면 한 달 공부한 만큼 석 달을 공부하면 석 달만큼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여섯 달만 공부를 하면 일상 생활에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특히 미얀마어는 어순이 S+C+V로 한국과 같고 조사나 동사의 변화가 비슷하여 한국 사람이 일본어 공부하듯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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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에피소드하나가 있는데 몇 년 전 처음 미얀마어를 공부를 할 때였다. 마땅한 한글교재도 없고 선생님도 영어를 하는 미얀마인 이었다. 미얀마어를 영어로 설명을 받으며 공부를 하는데 이상하게 뜻이 약간씩 삑사리가 나며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양곤(편집자 주: 미안마의 수도)에 가서 한-미얀마, 미얀마-한국어 사전을 사고, 미얀마 사람들이 공부하는 한국어 책을 사가지고 왔다. 선생님과 영어도 된 책 한권과 미얀마 노동자들이 한국가려고 배우는 책으로 한 권을 공부하는데 나중에는 미얀마 책으로만 공부를 하게 되었다. 미얀마에서 직접 한국어로 설명을 받으니 뜻이 명확해지고 쉽게 알아듣겠더라.

 

말을 알게 되면 사전과는 다른 의미를 알게 된다. 말이 문화와 깊이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인데, 같은 말을 하더라도 사용하는 동네에 따라서 발음이 달라진다. 그리고 같은 나라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성격이 약간씩 다르다.

 

예를 들어 태국어로 소금은 [끄르이]가 표준이다. 이것이 북쪽 시골로 가면 [끄아]로 짧아지는데 성격도 더 직선적이다. 산속에 가면 [끄아]도 아니고 [끼야]라고 하는데 태국 산족들은 말만큼 감정의 표현도 매우 직선적이다.

 

동남아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이 있다 영어로 치면 [노프로브럼], [쏘리] 정도나 될까. 라오스에서는 [버 뺀 양] , 태국어로는 [마이뺀 라이], 미얀마에서는[빠따나 마시부]. 직역을 하자면 '문제 없어'라는 뜻이다.

 

만일 당신이 길을 가다가 남의 집 개에게 물렸다 치자. 개주인은 그 나라 사람에 따라 쏘리가 아니라 [버 뺀 양],[마이 뺸 라이], [빠따나 마시부] 라고 할 것이다이게 뭔 뜻인지 원. 미안하다는 말인지. 니가 이해하고 넘어가줘 라는 말인지, 병원 가서 치료해 줄께 라는 뜻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지금 십년을 살아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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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충 감 잡고 술렁술렁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성질 급한 골수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100% 코리안이라 가끔은 대놓고 뭐가 '문제 없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감정싸움이 되는데, 개주인은 뻔뻔하게 병원 가. 병원비 줄께, 또는 경찰서에 신고해 니가 알아서. 라고 무시를 하거나 같이 화를 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작은 일이면 저 단어를 '그냥 넘어가자'로 듣고, 심각한 일이면 '지금부터 의논하자' 정도로 알아 듣고 있다.

 

말을 배우다 보면, 한국어로는 여러 동의어가 쓰이는데, 동남아에서는 달랑 한 가지 단어로 쓰는 경우도 있고, 우리는 한 가지 단어만 사용하는데 동남아에서는 여러 단어가 쓰이는 경우도 있다. 단어가 많다면 그만큼 그 단어가 사용되어야 할 상황도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아마도 ‘IF’가 가장 애매할 것 같다. 우리는 '아마도'라 생각하고 뒤의 상황에 따라 가능성이 결정이 되는데, 동남아어는 '아마도 거의', '아마도 중간', '아마도 가능할지도' 정도의 의미들을 가진 서로 다른 단어를 쓴다.

 

살면서 대강 눈치로 배운 바에 따르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결정을 할 때 이런 단어를 많이 사용하더라. 동남아가 소승 불교가 대부분이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는 많지 않은 편이다.

 

내일 만나서 뭐 먹을까? 물어보면 그건 내일 가서 생각하자. 로 대답이 돌아온다. 마치 내일 지구가 망할지 해가 다시 뜰 지 안뜰지도 모르는데 뭐 벌써 고민해 정도의 어감으로 이해되어온다동남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 내달 내년이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이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가장 고마운 부분이 남의 불행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 주고 아이들에게 과일과 물병을 주고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시간이 안 되어 어디선가 레카차가 서너 대 나타나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걱정스러워 정비소나 견인차 회사에 연락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선가 가서 살 생각이라면 일 년은 그 나라 말에 빠져보자.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배워가는 기쁨, 그 나라를 한 뼘씩 알게 되는 기쁨을 얻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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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중요한 국도의 모습이다. 오늘은 넘어 가는 길, 내일은 넘어 오는 일차선 편도 길이다.

 

짐을 너무 많이 실어서 앞이 들린 차, 작은 픽업의 짐칸에 열 명 스무 명이 않아서 다섯 시간을 가는 곳이 동남아이다.

 

그래도 짜증을 내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로 이주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부족하고 당연히 느린 나라에 함께 살아가려고 오는 것이다.

 

ARE YOU READY?


 






깊은생각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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