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4. 09. 목요일
펜더
42살(이제 43살이다). 두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 파더'
K형을 무미건조하게 설명한다면, 이렇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는 '초인'이다. 11살, 9살 두 딸을 데리고 홀로 사업을 하는 K형. 그를 볼 때마다 문득문득,
'이혼이란 걸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란 생각이 든다. 그가 자영업을 한다는 사실(골프채를 수입하는 사업을 하다 정리를 했고, 요즘은 정체불명의 '뭔가'를 수입한다. 수입은 그럭저럭 대기업 과장~차장 사이의 연봉을 챙기는 것 같지만, 자세한 것은 모른다)이 그가 두 딸을 홀로 키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사업을 하기 때문에 두 딸을 혼자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하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는 시간에 맞춰 두 딸을 학교에 보내고, 준비물을 챙기고, 밥을 먹이며(그가 수입하는 정체모를 '뭔가'를 먹이지는 않는 듯 하다), 씻긴다. K형은 아빠 혼자 키우는 자식들이라고 꾀죄죄하게 돌아다니는 꼴은 못 본다고 말했다(물론, K형의 어머니께서 가끔 들러 도움을 주지만, 어디까지나 육아는 K형의 몫이었다).
이렇게 딸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도 K형은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골프 동호회에 들어가 열심히 샷을 날린다(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정도다). 예전 골프채 수입 사업을 하던 가락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웃음) 나도 즐겨야지."
재혼까진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자친구'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동호회 참여에 열심이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여성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K형을 기억할 때 가장 인상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와 서점을 갔을 때였다. 강남 교보문고로 기억한다. 가판 가득 놓여있는 '연애지침서'를 보며 코웃음을 치던 K형(이때가 이혼 직전이었는지, 직후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저 책들의 내용이 뭔지 알아? 셋 중에 하나야."
'내 성기를 가장 비싼 값에 사 줄 것 같은 남자에게 접근하는 법.'
'내 성기를 가장 비싼 값에 사 줄 남자가 평생 내 성기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
'장기적으로 내게 성기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 같은 이성을 만나는 방법'
"반박할 수 있어?"
반박할 수 없었다. 아니 열렬히 찬동했다(허락받고 이 내용을 내 책에 사용했던 기억도 난다). 만약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이런 연애 지침서가 필요할까?(형은 연애와 결혼을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그 '돌발적 감정고양 현상'에서도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갑과 을이 나눠진다고 믿고 있다(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는가?). 즉, 사랑이나 연애도 하나의 '거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래의 핵심은 '남자의 능력'과 '여자의 성기(혹은 각종 서비스)'의 교환이다. 시중의 연애 책은 어쩌면 이런 거래에 대한 '협상술'의 다른 표현 같았다.
K형에게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형, 왜 이혼했어?"
"그냥, 잘 안 맞아서."
형은 담담하게 응대했다. 부부사이의 문제는 부부만이 아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아이 교육문제가 시작이었어."
"아이 교육문제?"
"두 딸네미들 교육문제 때문에 좀 티격태격했어. 우리 딸들이니까 최고로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부모의 교육수준과 경제력 수준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한다라고."
"맞는 말이잖아."
"맞는 말이지. 그런데, 아이 엄마가 좀 심했어. 뭐 심하다고 하긴 그렇고, 그 동네 아줌마들의 상식. 아니, 대한민국 엄마들의 상식이지."
"어떤 상식?"
"내가 좀 무리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안 하면 아이들이 뒤처진다. 뭐 그런 논리들 있잖아."
"... 아"
그때 난 처음으로 K형의 이혼에 공감했다. 나 역시도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너도 그런 느낌 들었을 거야. 내가 '개새끼'가 된 느낌? 냉혈한? 아이교육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빠? 부성애가 없는 아빠?"
아빠들이라면 한 번 쯤 느껴봤을 '감정'일 것이다. 아버지들은 사회생활 하느라 아이교육에 대해 별로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학원비'나 '교육비'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 순간 가계경제의 많은 부분으로 빠져나가는 교육비 이야기를 듣고 한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은,
"다른 애들도 다해!"
"OO이가 뒤떨어지면?"
"OO이가 좋아하잖아!"
"당신 요즘 엄마들이 얼마나 열심인지 알아?"
"우리 애는 얼마 안하는 거야!"
"이거라도 안하면?"
"OO이 한테 들어가는 게 그렇게 아까워?"
"지금 안 시키면 늦어!"
대부분의 엄마들이 내놓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리고 이 레퍼토리는 아빠들에게 두 가지 화살을 날린다.
"당신은 애들 교육에 대해서 그 동안 신경 쓰지 않다가, 돈 들어가니 화내는 거야?"
"당신은 우리 OO이 보다 돈이 더 중요한 거야?"
순식간에 아버지를 '쓰레기'로 만드는 화살이다. 영어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던 선배가 영어 유치원 발표회를 가면서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영수증 받으러 가는 거지."
그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 영수증을 받기 위해 선배는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K형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교육 문제가 심각한 건 알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도 알아. 나도 능력만 되면 많이 시켜주고 싶지. 그런데, 내 상황이 그리 녹록했던 게 아니잖아? 남들처럼, 애들 엄마 욕심대로 갈 만한 수준이 아냐. 그런데도 그걸 원하는 거야."
"그때 좀 살지 않았어?"
"앞으로 벌고, 뒤로 밑졌다니까 그러네! 그때 한 참 힘들 때였고, 허리띠 바짝 졸라 메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애들 엄마가 굽히지 않는 거야. 하늘이 두쪽 나는 줄 알았어. 아니, 그 이전에 내가 딸들을 사랑하지 않는 듯이, 부성애가 없는 아빠로 만들더군."
"여자들은 좀 각별하잖아."
"뱃속에 10달 간 품었던 건 이해해. 각별하겠지. 그런데 우선은 우리가 살고봐야 하지 않을까? 당장의 학원비랑 생존이랑 뭐가 더 중요해?"
"요즘 좀 교육이..."
"교육의 문제가 아니지. 가치관의 문제야 이건. 애랑 자기를 등치시켜. 그리고 거기에 감정이입을 하는 거지. 거기에서 난 걍 돈 벌어다 주는 기계가 된 느낌? 마치 애를 사랑하지 않는 나쁜 아빠 같은 입장이 되더라구."
이런 느낌 아버지라면 한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학원을 줄이자는 말을 하는 순간 천하에 쓸모 없는 나쁜 아빠가 된다. 힘들어도 자식 교육만은 시켜야 하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 남편들은 밖에서 일만 하느라 교육환경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투.
"우리 애들이 정말 그걸 원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딱히 그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더라고."
"뭐뭐 시켰는데?"
"잘 기억도 안나. 영어랑 발레랑 한자에다 창의교육? 뭐 이상한 건 다 갖다 붙인 거 같아. 그것도 아줌마들끼리 어떤 커넥션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말하고, 그 부류에 못 들어가면 왕따 당하는, 뭐 그런 게 있었나 봐."
"(웃음) 자식이라도 잘 키워야지. 안 그래?"
"(웃음) 그래. 자식이라도 잘 키워야지. 그렇게 애들 아빠 몇 명은 잡아먹어야지 애 하나 키우지."
그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왜 내가 나쁜 아빠가 돼야 하지? 왜 내가 내 돈을 벌어서 갖다 주는데, 눈치를 봐야 하지? 내 상식 선에서 이건 과도한 지출이라고 생각하면 의견을 말할 수 있잖아? 그리고 내 상식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날 설득하면 되잖아?"
"무슨 대안학교 같은 거 생각해?"
"대안학교는 무슨. 그냥 알아서 크라고 해. 자기들이 공부에 생각이 있고, 뭔가 하고 싶다면 정말 하고 싶다면, 그때는 해줘야겠지. 그런데, 남들 한다고 따라하는 건 난 모르겠어. 그것도 내가 일정 수준 이상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까지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
"오. 멋진데?"
"멋진 게 아니라 상식 아니냐?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거. 이거 다 행복하려는 거 아냐? 그런데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해야 하는 결혼생활이 행복할까? 그리고 그렇게 희생해서 자기를 키운 걸 안다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아니 그 이전에 애들은 그거 몰라.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왜 해?"
"행복하지 않았구나?"
"한 번 색안경을 끼게 되니, 그 동안 애들 엄마가 했던 게 다시 보이는 거야. 교육비는 물론이고, 그 동안 아내가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자식 위주로 집안이 돌아가는 건 이해하겠는데, 내가 어느새 뒷전이란 거. 그거도 이해는 하는데 내게 원하는 게 결국은 애들 키우기 위한 '돈'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뭐 사소하게 이것저것 사치하는 거도 보였고 말도 안 통했고."
"무서운데? 애들 키우기 위한 '돈'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웃음) 무섭지? 너도 네 마누라 잘 생각해 봐. 십중팔구 그런 생각으로 널 바라볼 걸? 어느 순간 '엄마'란 존재는 아이를 기준으로 주변 환경을 바라보거든. 자기가 약간 힘들어도 이혼녀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안 붙이려고 이혼 안하는 엄마도 봤어. 남편이 나가서 다른 여자랑 따로 사는데도 끝까지 버티는 거야. 사실혼도 아니고. 이걸 사실이혼이라고 해야 하나? 마누라가 용인하는 거야. 다만 꼬리표만 안 붙게 해달라는. 골 때리는 세상이지."
아마 내가 법적으로 '처'로 분류된 애들 엄마도 날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어느새 많은 엄마들은 자식의 교육과 자기만족을 위해 아빠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만약 이의를 제기하는 아빠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냉혈 아빠가 되는 것이다. (마치 국방부를 보는 느낌이다. 왜 그 무기를 사야 할지는 모른다. 다만, 남들이 사기 때문에 따라 산다. 그리고, 그걸 반대하면 '종북'이 된다)
대한민국이 미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여자들의 모성애가 유달리 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타인을 의식하는 대한민국의 '남들처럼' 문화 때문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한국 남자들은 다른 나라 남자들과 달리 '부성애'가 약하기 때문일까?
K형에게 <서초동 세모녀 살인 사건>에 대해 물었다.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의도는 없으며, 순전히 주관적인 추측이다. 만약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미리 사과를 드리겠다. 그럴 의도는 절대 없었으며, 이 사건을 통해 각자의 삶을 뒤돌아보고,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으로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은 것뿐이다)
언제나 분석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K형은 자기가 결혼하던 시절을 대입해 사건을 바라봤다.
"만약 남편의 실직사실을 알았다면, 그건 그 동네를 떠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겠지. 자식교육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동네이고, 그럴 환경이잖아? 그리고 그 동안 쌓아올린 '상식'이란 게 있잖아? 나가면 인생 끝이라는."
그럼 몰랐다면?
"그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는 거지. 그게 압박으로 작용했겠지. 의외로 그런 부담이 만만치가 않아. 그냥 나처럼 날 우선으로 했으면 되는데."
"형 행복을 우선으로 한 결정이야?"
"(웃음)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아냐."
"그럼 뭐야?"
"내 상식. 아마 그런 거 같다. 내 상식으로는 가정에서 중심은 아버지야."
"의외로 가부장적인데?"
"(웃음) 그게 아니지. 세상 어디를 가봐. 돈 내는 놈이 대장이잖아? 돈은 내가 냈잖아. 그럼 내가 중심이 돼야지. 안 그래? 그 상식에서 벗어났어. 돈은 내가 내는데, 왜 구석자리에서 눈치 보며 술을 홀짝여야 하는데?"
냉정한 분석이었다. 그리고 정론이었다.
"주인이 되고 싶었던 거구나?"
"주인 같은 거창한 소리는 아니고, 그냥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지."
"내 돈 내고 왜 내가 눈치 봐야 하나?"
"그렇지. 억울하면 지가 벌어서 하던가."
"... 우리가 부성애가 없는 걸까?"
"이게 정상이 아닐까? 다른 사람, 여자사람들이 미친 게 아닐까?"
K형은 지금 행복하다고 한다. 동호회에서 만난 한 여자와 '썸'을 타고 있고, 딸 둘도 K형과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난 K형의 결단이 부러웠다. 정말 애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애 핑계가 아니라, 정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지금 난 K형의 말하는 그 '상식'에 대해 생각중이다. 왜 아빠들은, 자기가 계산하면서 구석자리에 쭈그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 나조차도 내가 왜 돈을 버는지, 그리고 왜 이 돈을 쓰게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가끔 있다. 난 정말 내가 가진 걸 '공유할 마음'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대부분의 4~50대 남성들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H형은 남자는 끝까지 돈을 움켜줘야 한다고 역설을 한다.
"남자가 돈 못 벌어오지? 그럼 아마 뒷방 늙은이 신세로 구박 받을 거야. 끝까지 돈을 움켜쥐고, 돈을 벌어야 해. 돈 벌어도 괄시 받는데, 돈도 못 벌어봐. 사람 취급 받겠어?"
그 말이 와 닿았다. H형은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개탄했고, C는 자신의 능력 없음과 새삼 확인하게 된 '가장의 짐' 속에 파묻혀 희망을 접었다. G형은 1년 만에 간 안마방의 서비스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섹스의 '외주화'를 말했고(덤으로 이제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에 갈채를 보냈다), J는 살던 대로 살겠다고 말하며, 내게 부탁했던 '프로젝트'를 해주면 맛있는 걸 사 주겠다며 은근히 돈 안주고 프로젝트 기획안을 떠넘기려고 했다. 그리고 K형. K형은 유일하게 '갔다 온' 사람답게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인생을 즐기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상식적으로 살자"
란 말을 강조했다. 경제학과 출신다운 논리.
"돈 내는 놈이 왕이다."
란 것이다. 그 상식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서면? 그건 분명 잘못된 상황이란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안에서 K형의 말을 반박할 사람도 없고, K형의 말을 따라 이혼하거나 그 '상식'을 관철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G형은 빼고, 나머지 사람들, 술자리 푸념으로 호기롭게 몇 번 외치겠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글의 시작은 '계백'이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 다음에 들었던 생각은 '왜 죽였을까?'였고, 주변에 의견을 구했을 때 맥을 놓게 됐다.
"유유상종인가?"
비슷한 것들끼리 뭉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안의 세상에서 모든 남녀관계, 부부관계는 이런거라 믿고 있는 걸까?
얼마 전 1년 후배인 J가 내 작업실을 찾아왔다. 내가 지친다고 말을 하자,
"13년간 그렇게 퍼줬어? 그럼 한 30년만 더 퍼줘."
"그럼 뭐가 남아?"
"남는 게 없지."
"근데 왜 퍼줘야 하는데?"
"네 의무는 다 한 거지. 아버지란 이름은 남잖아?"
여전히 고지식한 J다.
그는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고,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녀석이다.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늘 '의무'를 강조한다.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 나이가 되니 결혼을 해야 할 사람과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기의 가치판단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고, 그 가치판단을 가지고 선택을 할 정도의 결단, 결단을 실천할 수 있는 실행력과 계획적인 사고.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꽤' 많이 말이다. 그들의 가벼움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교육체계라는 게 어쩌면, '생각'이란 걸 거세하는 과정이니 말이다. 아니면, 그 선택의 무게감을 너무 가볍게 봤을 수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 어린부부도 있을 것이고, 결혼을 했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도 있다.
어쩌면 결혼에서의 행복은 '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노력일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힘들까란 불행베틀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주목한 건 한가지다.
가장(家長)이란 이름의 의무.
가장이란 이름의 무게가 무겁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이게 꽤 무겁다는 것, 그 의무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 시대의 무자비함 속에서 버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은 이들도 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버티는 게 힘든 이들도 있다. 다른 이들은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들은 다른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공통된 짐을 안고 있다. 가장이란 이름의 짐. 이건 회피할 수 없다.
일단 선택을 했다면,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천형이다. 이걸 각오하고 시작한 사람이라면 좀 더 수월하게 버텨낼 것이다. 아니, 아예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각오 없는 이들이라면...혹은 자신의 각오를 넘어서는 무게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농담 삼아 말하는,
'결혼해선 안 될 놈.'
이란 말을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한국 사회는 보편혼 사회였다(아마 지금도 보편혼 사회일 것이다. 당연히 결혼을 하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맞는 걸까?
결혼은 연애와 전혀 다른 세계의 영역이다. 게임의 룰이 다르다. 그 룰을 지킬 각오가 없는 이들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맞다.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그 개인의 선택이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 이들이 없다.
충분한 사유와 통찰로 결혼을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결혼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순간 헛헛함과 괴로움을 토해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의 짐이란 건 천형이고, 족쇄다.
술자리 푸념으로 끝나면 하소연이 되고, 이걸 물리적으로 실행하면 부부싸움이 되는 것이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되면 계백이 되는 것이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가장이란 이름을 힘겨워 하고 있다(내 개인적 망상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바라보니 하나 둘 자기 속에 걸 끄집어내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家長)이란 이름에 부여한 무게감을 조금 뺄 수는 없는 것일까?
결혼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면, 이걸 명확하게 고지한 다음에 선택하게 해주면 안 될까? 하긴, 명확하게 고지한다고 해도 결혼을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존재한다. 즉, 그 무게감을 온전히 감내할 만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무게를 균형에 맞춰 배분을 할 수도 있고, 주변에 말해 같이 들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은 혼자 버둥거리다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짐이 무거운 것일까?
짐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한 걸까?
지난 기사 (본 연재물은 총 7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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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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