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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4개월이 지났다. 그간 쓴 글이 마빡 기준으로 45편. 하루에 두 편씩 쓴 날도 있고 두 달 넘게 쉬었던 적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세 편 조금 안 되게 기고한 셈이다.


이쯤 되면 나도 민족정론지 딴지일보를 먹여 살리는 중견 필진 중 하나라며 벙커원에 갈 때마다 폼을 잡고 있지만, 다들 예상하다시피 이렇다 할 실속은 없는 편이다. 딴지에서의 활약상을 명성과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각종 강연과 기고 요청, 대가성 없는 후원 제의 등을 적극적으로 기다리고 있으나, 좀처럼 울리지 않는 휴대폰은 시계로서의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6월 중순경이었다. 정부의 메르스 예방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온 필자는 낙타를 피하기 위해 종로 부근 어느 커피숍에 짱박혀 백수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전망도 접근성도 좋은 곳이라 임대료가 셀 것처럼 보였지만, 메르스 탓인지 한산하기 그지없어 아메리카노 한 잔 값으로 커피숍을 전세 낸듯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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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 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나른했던 오후의 적막을 깨뜨린 건, 서초구 어딘가에서 걸려온 듯한 한 통의 전화였다. 워낙에 개인정보가 많이 팔린 터라, 이번에도 고만고만한 스팸성 전화겠거니 하고 가볍게 쌩까 주었다.


5분 뒤 한 번 더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무시.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전화를 거는 근성에 탄복하여 마침내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벨테브레 씨 되시죠? 저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김OO 수사관입니다.”



이거슨 반도의 흔한 보이스피싱 사례.txt?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도 이 비슷한 전화를 받아서 놀려준 다음 ‘벙커깊수키’ 원고 소재로 써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무슨 수작을 부릴지 들어나 볼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다.



“딴지일보에 쓰신 ‘패러디 삼국유사’ 관련해서 조사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이번 주에 언제 출석 가능하세요?”



헐퀴! Z. O. T. 됐다. 진짜가 나타났다. 작년 8월 딴지일보 마빡에 올라간 패러디 삼국유사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는 이야기를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주워섬길 수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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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패러디] 삼국유사


그렇게 나는 딴지일보 필진이 된 후 내 글에 대한 첫 번째 인터뷰를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님과 갖게 되었다.


평소 벙커 한번 다녀가라는 죽돌이의 요청을 쿨하게 씹고 있었지만, 다급해지니 도움을 청할 곳은 벙커뿐이었다. 그러잖아도 총수 사건으로 인해 이런 일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겼는지, 사태를 파악한 수뇌부는 벌써 민변 이강혁 변호사님의 조언을 구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강혁 변호사가 조언한 내용은 “영리목적이 아니고, 패러디라는 점을 강조하라. 스마트폰 등 임의제출 요구에는 응할 필요 없으며,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이 선고될 경우 정식재판을 청구하라”는 것이었는데, 조언도 조언이었지만 “정식재판으로 넘어갈 경우 민변을 통한 무료 변론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니 제게 연락해 주실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참 고맙고 든든했다.


그래도 호랑이굴 같은 검찰청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막강한 권한을 지닌 검사 앞에서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건 여전히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쓴 게 아니라고 할까? 그냥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되나? 엉뚱한 트집 잡아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고이 모셔둔 야동이라도 압수당하면 아청법으로 엮여서 좋게 되는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걸 간신히 억누르고 중앙지검 4XX호 K 검사실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검찰의 ‘부’단위 조직 중 최선임에 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주로 공무원 범죄와 관련된 뉴스를 많이 생산해 왔으나 작년부터는 ‘명예훼손 전담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대통령의 7시간’ 루머를 보도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 지국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이 바로 이곳이다. 내 글도 소위 7시간 루머를 다루고 있고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했으니 임자를 제대로 만난 셈이다.


그리고 이 사건 주임 검사는 대구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하고, 대구지검과 포항지청에서 근무하는 등 TK 엘리트가 되기에 손색없는 프로필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지역과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렵고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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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떨 고 인 니 ?


검사실에 들어가 신분을 밝히고 수사관 앞에 앉으려 하는데, 뜻밖에도 검사가 자기 앞에 앉으라고 한 뒤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따라 준다. 고작 이 정도의 사건을 검사가 직접 조사한다는 것도 뜻밖이었지만, 무려 검사쯤 되는 양반이 커피도 차도 아닌 ‘냉수 한잔’을 손수 따라준 건 그 나름의 소박한 친절로 여겨져 신선했다고나 할까.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은 뒤 개인 신상과 관련된 문답이 오고 갔다. 예상대로 저들은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정식 기소되어 재판정에 서면 제법 피곤하겠구나 싶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것부터 막장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검사는 10페이지쯤 되는 A4용지 출력물을 들이밀었다. ‘딴지일보’의 로고가 선명한 출력물은 바로, 내가 쓴 ‘패러디 삼국유사’였다.


오, 이런 곳에서 내 글을 보니 반갑다고 할지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공사다망하실 검사님께서 비루한 제 글을 꼼꼼히 읽어주신 것도 모자라, 국민의 피 같은 혈세로 마련된 컴퓨터와 프린터를 사용해 직접 출력까지 해주시고. 실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이었다면 저자 사인이라도 해드렸을 텐데, 아직 필명이 높지 않아 부끄러울 뿐입니다.


검사는 꼼꼼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네이버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뇌부도 궁금해하지 않는 아이디와 닉네임의 의미, 심지어 당시 블로그 포스팅 시각이 00:00이었던 것을 근거로 ‘예약’ 기능을 사용했으리라는 것까지 정확히 알고 있거나 추측해 냈다. 달리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게 아니구나,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맞서는 나는, 작성일로부터 열 달이 지나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간신히 붙잡으며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약한 존재였다. 이 순간 내가 실수로 뱉은 말들도 검사의 조서에 담기면, 법정에선 나를 겨누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나중 일이지만, 한명숙 사건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으로 ‘법정 진술은 검찰 진술을 이길 수 없다’는 법리를 추인해 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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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만 잘 못 디뎌도... 


검사에 따르면 이 사건은 각하께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씀하신 직후인 작년 9월 중앙지검에 고발 접수되었다고 한다. 고발인은 무슨 새마을과 관계된 포럼의 사무총장이라는데, 인적사항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집에 와서 인터넷 찾아보면 될 줄 알았는데, 해당 단체는 홈페이지도 없는지 검색도 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을 통해 그 단체가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소위 ‘십자가알바단(십알단)’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활동한 것 같다는 이야기는 주워들을 수 있었다.


검사는 딴지일보의 실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기사는 어떻게 채택되는지, 편집은 누가 하는지, 딴지일보와 필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연락은 어떻게 하는지, 게시물과 관련 편집부와 의견을 교환하는지, 급여나 원고료를 받는지 등등. 지조나 절개 같은 건 약에 쓸래도 없는 필자답게, 일체의 고문이나 가혹 행위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딴지일보의 속사정을 검사님께 낱낱이 고해바쳤다. 특히 기사채택 및 편집과 관련해선 편집부에 최대한 책임을 떠넘겼으며, 편집부의 책임자는 ‘너부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불어 버렸다. (얼마 뒤 그 사실을 알게 된 너부리는 유다를 바라보는 예수 같은 표정으로 필자를 노려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명 불상의 ‘딴지일보 편집자’ 역시 벨테브레와 함께 고발당했었다고)


본격적으로 글 내용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다. 사실 나는, 글쟁이가 자기 글에 대해 해설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글은 이미 망한 거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내 글이 이런 취지라는 걸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게 부끄럽고 구차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명색이 ‘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는 글인데,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건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지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독자가 검사라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처벌의 칼날을 휘두를지도 모른다면 민망함을 무릅쓰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놔야 하는 것이다.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다잡은 뒤 작품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했다. 이후 조사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품 해설’ 모드로 전개되었다.


“패러디 삼국유사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분은 삼국사기 온달전을 통해 고 최태민 목사에 관한 의혹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2부분은 삼국유사의 서동요 설화를 통해 SNS를 통한 유언비어의 확산과정을 다루는 한편 과거사 청산에는 소극적이면서 호시탐탐 이웃 나라를 노리는 일본 극우세력을 비판하고자 했다. 아울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패러디 한 3부분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것”이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검사는 해당 작품을 통해 소위 ‘7시간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표현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게 아마 내게 걸린 혐의의 핵심일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 박근혜를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위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라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어마무시한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반의사불벌죄이긴 하나, 피해자가 그분인 이상 무슨 수로 합의를 본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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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채널A>


내 작품에서 루머와 관련된 부분을 굳이 찾자면 서동요 설화를 패러디한 2부분 되겠다. ‘서동’을 패러디한 ‘비선’이라는 인물이 동요를 지어 퍼뜨리는 내용이다. 원작에서나 패러디에서나 동요 내용은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그렇다면 ‘비선’은 누구를 지칭한 것이냐? ‘비선’은 고유명사나 직책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측근들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다. 그러므로 특정인을 지칭한 게 아니라 원작이 된 서동요 설화에서의 서동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극적 장치로서 창작해낸 가공의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검사가 아니다. 이번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대통령 루머와 관련되어 있다면 비선은 결국 정윤회를 암시하는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만약 ‘비선 = 정윤회’라고 인정된다면, 이번엔 정윤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걸고넘어질 게 틀림없었다.


다행히 패러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며 실명과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비선’은 같은 발음의 일반명사로부터 한자만을 바꾸어 지칭한 것으로 특정인을 연상시킬 수 있는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된 작명이다.


대한민국에 비선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정윤회뿐이겠는가? 혹시라도 해당 글에서 정윤회를 지칭하고자 했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그 인물을 암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을 터. 그러나 정윤회를 지칭할 생각도 없었고, 혹시라도 정윤회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싶어 일반명사인 ‘비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며 강력하게 셀프 쉴드를 쳤다.


검사는 지나가는 말로 정윤회가 이 글을 보면 기분 나빠할 것 같다고 했으나 불쾌감이 처벌의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 아울러 그가 이 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자기가 비선이란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테니 개인적으로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검사는 방향을 바꾸어, 온달전을 패러디한 1부분의 주제가 ‘그네 공주의 결혼 상대’ 아니었느냐고 공격했다.


오, 그럴 리가요. ‘결혼 상대’라는 건 원작과의 유사성을 갖게 하려는 문학적 허구적 장치에 불과합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원작의 결말을 비틀어서 얼굴 한 번 못 보고 없었던 일로 만들었잖아요. 이 글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대통령이 고 최태민 목사나 그 주변 사람들과 관련된 의혹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취지로 작성된 것.


그렇다면,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다행히 나에게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니, 신동아 2007년 6월에 보도된 ‘최태민 보고서’ 요약본 되겠다. 해당 내용은 최태민 생전에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이를 보도한 신동아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는 등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음에도 이후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일리 있는 내용이라고 믿을 수밖에...


마지막으로 3부분, 이 대목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기춘 공의 입을 빌려 표현된 “우리 임금님은 7시간 동안 ... 했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장에 대해 검사는, 여왕과 비선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검사님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신건지... 부끄부끄^^;;; “7시간 동안 ... 했다!”는 건, 응응을 했다는 게 아니고, 세월호 침몰 당일 문제가 된 7시간 동안 청와대에선 보고를 받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으나, 막상 그 조치의 내용이나 결과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풍자하려 했던 것.


글 내용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명예훼손을 인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허위의 인식’, ‘비방의 목적’, ‘공적 영역과 무관한 사적 영역에서 다분히 악의적이고 심히 경솔한 방법으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모멸했는지’ 등에 대한 문답이 오고 갔다.


이에 대해 필자는 “패러디 삼국유사는 일종의 문학적 허구로 보아야 하는 내용으로,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 없으며, 일반적인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사실로서 이해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세부적인 표현이 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큰 틀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전후한 사회혼란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응에 관한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던 것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목적이 더 강하여 비방의 목적이 부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풍자만화나 시사만평, 또는 공적인 인물이나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더욱 폭넓게 인정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중한 검토를 바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사는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스스로 리버럴한 입장에 있다고 밝힌 그는, 참 잘 쓴 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좋게 될 수도 있을 거라며 필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특히 여성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불편할 수 있다며 걱정을 해주는 건지 갈구는 건지 모를 이야기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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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쯤, 한가위 특집으로 ‘변희재는 어떻게 집행유예를 받게 되었나’라는 글을 기고했던 나로서는, 내가 쓴 글 그것도 패러디 문학작품이 변에게나 해당할 줄 알았던 명예훼손에 걸려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되었다는 걸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영혼 없는 판사들이 넘쳐나는 사법부의 실태를 감안해 볼 때, 잘못 기소되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기소한다 해도 유죄가 날 거라 확신하진 않는다”는 검사의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검사는 친절하고 양심적인 사람으로 보였지만, 이런 사람이 유죄의 심증을 갖는다면 그만큼 치밀한 검토와 준비를 거쳐 기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두세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조사는 점심시간과 브레이크타임을 포함해 총 8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그 날 일정은 완전히 꼬여버렸고 나는 지친 몸과 불안한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전긍긍하며 1주일을 보내고 형사사법포털(kics.go.kr) 사이트를 통해 해당 사건과 관련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혐의없음) 결정이 내려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요지는 “피의자는 본건 글은 허구의 패러디일 뿐 사실관계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는 취지로 변소한다. 본건 글은 글 자체에 가공된 허구임이 전제되어 있는 등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는 것.


이럴 것 같았으면 뭐하러 그렇게 요란하게 조사를 한 건지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마무리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사악한 검사들이 판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리하지 않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줄 아는 검사를 만난 것도 행운인 것 같다.


다만 한편으로는, 과연 법리적인 판단에서 불기소 결정을 한 건지, 자칫 잡범을 민주화 투사로 만들어 주는 결과를 우려해 멈춘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긴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를 불기소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세월호 관련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래군 선생에 대해서는 “4월 16일 7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았을 때 뭐하고 있었냐? 혹시 마약 하고 있던 것 아니냐? 전 궁금합니다. 청와대 압수수색해서 마약 하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한번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피부미용, 성형수술 등등 하느라고 보톡스 맞고 있던 것 아니냐? 보톡스 맞으면 당장 움직이지 못하니까 7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런 의혹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추가기소했다.


박래군 선생의 표현은 사실관계를 단정적으로 적시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인물인 대통령의 업무수행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것에 불과하다. 공공적·사회적 사안의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거나 정치적인 표현에서는 일정 부분 과장도 용인된다는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비추어 보더라도 유죄라고는 보기 어려운 내용. 그렇다면 박래군 선생에 대한 기소는 금기로 여겨지는 ‘7시간’을 건드린 데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것 아닐지.


이처럼 검찰은 지금 이 순간에도, ‘7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벨테브레가 잘해서 불기소된 게 아니라, 박래군 선생보다 듣보인데다 영향력도 적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고 보아 굳이 건드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수사를 받아본 사람은 공감할지도 모르겠지만,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는 낚시꾼과 물고기의 그것과 비슷하다. 낚시꾼은 이기면 ‘손맛’ 또는 ‘한 끼’를 얻을 수 있고 지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으나, 물고기는 이겨봐야 본전이고 지면 목숨을 잃게 된다.


하물며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글을 써서 큰돈을 벌거나 명성을 떨친 것도 아닌데, 글 하나 잘못 썼다고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내가 이 꼴을 당하며 글을 써야 하나?’ 같은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위축되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가장 바라는 것일 게다. 비록 허접한 글일망정,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고 최소한의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상,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제21조를 통해 보호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총수의 가르침 ‘쫄지마’를 되새기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만국의 딴지스 여러분이여 한가위 잘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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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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