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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14. 화요일

그라스호퍼







이 글은 전적으로 삼류 찌라시 소설이며,

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기분 탓임을 미리 밝혀둠





추리소설 많이 읽어본 친구들은 알거야. 어떤 사건을 기획한 범인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채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는 거라는 걸. 폭탄 테러를 기획하고서 자신도 폭발물에서 적절한 거리에 있다가 부상을 입는다거나 하는 방법 말이야. 이런 건 뜻밖에 잘 먹히는 방법이지.


자살한 경남기업 전 회장 성완종씨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리스트를 보는 순간, 난 직감적으로 이 말이 떠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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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이 안에 있다.”


뭐, 이 정도면 벌써 다들 눈치 챘을 거야. 그 리스트 안에 이 정도로 나라를 뒤흔들만한 사건을 기획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누구겠어? 김기춘이지 뭐.


즉, 이 사건은 김기춘이 기획한 거라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쓸 소설의 내용이야.



사건의 시작


신임 총리 이완구가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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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의 전쟁은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다'

(출처- 트위터 '마음의 얼룩' @stainofheart)



이에 발맞추어 검찰은 전임 가카의 치적(이라 쓰고 돈줄이라 읽는다)인 자원외교를 파헤치겠다고 팔 걷어 부치고 나섰잖아.


그런데 하필 만만한 줄 알고 쥐 잡듯이 잡아 족치던 경남기업의 성 회장이 갑자기 자살을 한 거야. 그러면 또 그렇게 넘어가나 보다 할 텐데, 글쎄 성 회장이 집을 나가 잠적한 뒤 경향신문에 전화를 걸어 구구절절 인터뷰를 하고, 주머니에는 ○○ 얼마, △△ 얼마 하는 식으로 외상값 장부 같은 명단이 적힌 메모를 넣은 채로 자살을 했어.


이건 진짜 보기 드문 핵폭탄이지. 거기에 화룡점정은 도대체 왜 끼어 있는지 모르겠는 홍그리버드 눈썹맨까지 들어 있었다는 점이지. 그건 아마 부록 같은 존재였을 거야.


사람들의 첫 반응은 이랬어.


“검찰 이 무식한 새끼들. MB 잡으라고 시켜 놨더니 엉뚱하게 박근혜 가슴팍에 화살을 쏘고 있어.”


왜냐면 그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친박인데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심지어 청와대 비서실장들까지 시리즈로 들어 있었으니까. 검찰이 초대형 헛발질을 했다는 것이 최초의 반응이었어.


그러나 과연 우리 시대의 검찰, 청와대의 사냥개들이 그렇게 무능할까? 주인을 물어뜯을 정도로? 그건 아닐 것 같지 않아?



MB the Almighty 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제 사람들은 MB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어. 이건 꽤 합리적인 추측이지. 왜냐면 모든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항상 그 사건으로 가장 큰 이익을 취하는 놈일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범죄의 동기가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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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배가 고픈 전임 가카

그래서 콩밥 같이 먹을 사람을... 아, 아닙니다.



즉,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가 그렇게 쥐 잡듯이 검찰을 조져가며 MB맨들을 솎아냈어도 아직도 MB의 끄나풀들이 검찰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래서 정권의 오더, 자원외교를 적절히 뒤져 자서전도 내고 헛소리나 삑삑하는 전임 가카의 군기를 좀 잡자는 오더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의도적으로 헛발질을 했다는 거야.


이런 상황을 빗대어 생명공학의 대가 황우석 박사께서는 이런 표현을 하시기도 했지.


‘인위적 실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사람들은 대부분 이건 MB의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더군. 딴지일보 정치부장이라는 물뚝심송도 ‘MB가 무서워진다’는 둥, ‘전지전능한 전임 가카’라는 둥 헛소리를 했어.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어. 일단 살아있는 검찰의 레전드인 기춘오빠가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 정신이 혼미해졌어도 검찰 내에 MB의 끄나풀들을 그리 많이 남겨뒀을까? 현직도 아니고 전직에 충성하는 사냥개들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겠어? 지금쯤 졸라 뺑이치는 강력계 같은 곳으로 쫓겨나 어디 허름한 룸살롱 가서 조폭들하고 술이나 먹고 있겠지.


또 있어. 그렇게 대형 헛발질을 해서 친박의 실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치자. 그러면 청와대가 그 사람들을 잡아 가두라고 검찰에게 시키겠어? 어떻게 해서든 무마해 버리고 ‘인위적 실수’를 유발한 검사들은 완전 좋게 되는 거지. 기껏 숨겨둔 끄나풀들도 다 끊어지고. 이건 전지전능 MB라는 가설과 스스로 내부에서 서로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되는 거지.


주진우 기자도, 성완종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단서 하에, MB가 힘을 발휘해서 자원외교 수사를 망가뜨리고 오히려 친박으로 화살을 돌려 버린 작품이라는 얘길 <시사in>에 쓰기도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비선 실세설


왠지 ‘억겁의 세월동안 윤회를 거듭한다’라는 윤회설을 믿으면서 사실 것 같은 비선 실세 그 분 계시잖아. 그 분이 이 사건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어.


어차피 전임 가카와 현 가카는 일심동체잖아. 굳은 맹약이 있을 거라고. 전임 가카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국정원을 동원해서라도, 현 가카를 당선시켜 주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폭탄을 다 수집해 놨을 거고. 이에 호응해서 현 가카는 범지구적 핵전쟁이 벌어지는 한이 있어도 전임 가카를 보호하기로 하고.


이 권력의 오누이 간에 맺어진 굳은 맹세도 몰라주고 사람들이 자꾸 자원외교 수사하라는 둥, 4대강 국정조사 하라는 둥 개소릴 자꾸 하니까 그걸 무마하려고 일을 꾸민 거지. 겸사겸사 눈에 가시 같은 친박 실세들을 좀 제거하면 더 좋잖아. 김기춘이나 김기춘 같은, 또 김기춘이라고 부르는 할배들 말이야.


또 총리 시켜줬더니 이게 총리로 만족하지 않고 차기를 노리는 것 같은 행보를 보이는 ‘Toy Lee’까지 한 방에 보낼 수 있고, 괜히 무상급식 문제로 긁어 부스럼 만들고 있는 홍그리버드까지 보내 버릴 수 있는, 일석이조 수준이 아니라 돌 한방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격추시키는 일석팔조 시스템이잖아.


그렇게 사람들이 친박으로 알고 있는 멤버들을 잘라 내면 사람들은 또 읍참마속이네 뭐네 하면서,


“보라~ 이 정권의 청렴함과 진정성을~”


뭐, 이따위 소리 하면 정권 지지율도 오르고 이미지도 쇄신할 수 있고 말이야. 해볼만 하지?


근데 또 문제가 있어. 이런 사건을 기획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실행에 옮기려면 수족이 있어야 하는데,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청와대 비선실세라 해도 이제 어지간히 그 실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MB의 끄나풀이건 기춘오빠의 수족들이건 검사들이 말을 듣겠냐는 거지. 괜히 사이드로 찔러 봤다가 3분 이내에 기춘 오빠 귀에 들어갈 거고.


비선실세는 실세긴 하지만 운신의 폭이 좁기 마련이야. 수족이 없어. 수족이...



기춘오빠 자작극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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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오빠는 요즘 여러 가지로 피곤해. 나이도 너무 많이 먹었고,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도 겪었고, 평생을 박씨 정권을 위해 살아왔는데 그것도 이제 거의 끝물이고, 인생무상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도 사람들이 도대체 잠시도 기춘오빠를 내버려두질 않아.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을 부리려면 기춘오빠를 통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고, 어디로 연결 되더라도 그의 놀랍고도 신기한 네트워크 능력을 통하는 것이 제일 편하니까 말이야. 제발 은퇴 좀 하고 편하게 살게 내버려두라고 해도 통하지가 않아. 비서실장 직책을 벗어나도 잠시도 편하질 않아.


그래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한 거야. 윤회사상 좋아하시는 그 분이 기뻐할 거고, 따라서 공주, 아니, 이젠 여왕이지, 여왕님도 흡족해 하실 만한 것으로 말이야.


자기 자신을 성완종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신의 한수였어. 그것도 딱 10만 불이래. 이게 무슨 의미일까? 10만 불이면 대략 1억인데, 당시 환율로 9천 얼마래. 정치자금법으로 하면 관계없지만, 뇌물죄로 가면 1억이 넘어가면서 공소시효가 7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고. 완전 맞춤형이네, 맞춤형이야. 싹 빠졌어. 


자기는 이제 그냥 오명만 뒤집어쓰고 (물론 그래봐야 아무런 처벌도 안 받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실세께서 제거하길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구시대의 친박들을 끌고 저 저 멀리 노스탤지어로 떠나는 거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상향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너구리들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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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한 장면)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으니 이제 사람들은 아무도 김기춘의 자작극을 의심하지도 않아.


이거 완벽하잖아.



그래서?


뭐 세상일을 뒤에서 쥐락펴락하는 세도가들의 속내를 우리 같은 민초들이 어찌 알겠어. 그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 어떤 얘기를 하는지도 하나도 모르는데 말이야. 다만 어떤 소설이 그럴싸한지 아닌지는 따져볼 수 있겠지.


일단 <한겨레>에서 검찰이 성완종 회장을 족치면서 참여정부 관련자들도 대라고 요구했다는 기사가 하나 나온 게 있어. 기춘오빠 입장에서는 겸사겸사 좋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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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 전문



성 회장이 마지막 순간에 김기춘의 집 근처를 배회했다는 제보도 있어. 이건 어쩌면 성 회장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김기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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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 전문



그리고 앞으로 명단에 등장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지켜보면 될 일이야. 홍그리버드는 1착으로 수사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상태고, 이완구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난리를 치는데 경향이 연빵으로 증거를 들이대면서 침몰해 가는 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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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 전문



그 뒤 다른 사람들이 어찌되나 지켜보면서 이 소설이 소설인지 다큐인지 확인해 가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
아, 야당은 뭐하냐고? 아마 기춘오빠가 다 연락해 뒀을 걸? 그냥 방해하지 말고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고 말이야. 괜히 특검 같은 소리 꺼내서 검찰이 하는 일 방해하면 니들도 좋을 거 없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이미 문재인 대표께서는 특검은 시기상조고 검찰이 하는 거 봐가면서 해도 된다고 하셨네.



모든 거 떠나서 맨 손으로 기업을 일으켜 정치인들에게 뇌물 상납하며 어떻게 해서든 기업을 살려 보려고 개고생 하다가 결국 압력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성 회장만 불쌍하네.


하지만 크게 불쌍해 할 것도 없어. 그 역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의 고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부귀영화 누리던 사람이니까 말이야. 명복은 빌어 주겠지만, 확실하게 이 얘기는 해둬야겠지.


당신도 잘 한 건 하나도 없어.


끝.






그라스호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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