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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15. 수요일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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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 그여자의 사정: 부패와의 전면전 감상법






필자는 4월 1일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부패와의 전면전 감상법'이라는 글을 통해, '부패와의 전면전이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성완종의 자살로 인해 그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 것처럼 보이는 요즘, 누가 시킨 사람은 없지만 후속편을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그런데 날마다 하나씩 터져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시시각각 상황이 급변해 가는지라 도대체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4월 15일 오전까지의 언론보도를 기초로 현재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성완종은 왜 사정을 당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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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글에서 성완종에 대해, '친이계'라기보다는 여야를 넘나든 마당발 정치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성완종의 정치역정을 돌아봤을 때, 그를 친이계로 규정짓고 MB를 겨냥한 수사라고 몰아가는 언론 보도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사정의 배경을 이해해 보고자 나름대로 박근혜(친박계)와 성완종의 관계도 추적해 보았다. 그러나 구속을 당해야 할 정도로 밉보일만한 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혹시 같은 충청권을 배경으로 하는 이완구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충청에도 맹주는 하나 뿐이다'라는 마음에서 성완종을 견제하는건 아닌지 살펴 보았지만 딱히 그럴만한 이유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먼저 피닉제를...)


오히려 성완종의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됐든 이완구가 됐든 두루 원만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설로 내세운 것이 '반기문'이었는데, 글을 쓸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확신은 서지 않는다. 반기문이 대권에 도전할 경우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 등에 업힐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대선 주자가 없는 친박계의 입장에서도 반기문 카드는 매력적이다. 선거가 2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권 핵심부의 입장에서 이 타이밍에 굳이 반기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성완종을 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굳이 찾자면, 권노갑이나 박지원의 주장처럼 성완종이 반기문을 야당 쪽에 연결시키려 했을 가능성 정도인데, 아직 구체화되지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 일 때문에 이 정도 고초를 겪어야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성완종이나 반기문 쪽에서 야당으로 넘어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성완종에 대한 수사에 대해, 비리혐의가 있으니 마땅히 수사를 하는 것일 뿐 정치적인 의도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들은 안 계시리라 믿는다. 만일 그렇다면 총리가 나서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대통령이 나서 '부패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는 사자후를 토하는 등 요란한 퍼포먼스를 벌였을 리가 없고, 지난해 구속된 몇몇 국회의원들처럼 조용히 구속시키고 끝냈을 것이다. 더욱이 성완종은 현직 국회의원도 아니지 않은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성완종 본인도 왜 검찰 수사를 당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검찰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4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기는 친이계가 아닌 친박계라는 취지의 뜬금없는 고백(박밍아웃)을 하고 말았다. 이 기자회견에 대해 파워 트위터리안 ‘벨테브레’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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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트윗을 올리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벼랑 끝에 몰린 성완종이 비선을 통한 구명 운동을 안 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정권 핵심부의 의중을 눈치챈 주요 인사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외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성완종 메모에 거론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가 언론에 보도될 즈음 자꾸 전화하고 연락 달라고 해 두어 번 통화했다. 억울하고 결백하다고 해서 결백하면 조사 받으라고 했다. 내가 성 전 회장 입장만 듣고 어떻게 검찰에 조사하지 말라고 하나. 두 번째엔 내가 언짢은 티도 냈다. 자꾸 전화 하지 말고 당당하게 조사받으라고도 했다. 결백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에서 뭐가 나오니 내가 거기다 대고 조사하지 말라고 할 수 있나.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고 앞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도 전한 바 있다. 금품과의 관련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데 대해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 그 다음에 전화가 오길래 안 받았다. 그게 다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성완종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해야 했다. 친박인데 억울하다는 주장은, 언론이나 국민들보다는 정권 핵심부를 겨냥한 메시지였던 것. 그러나 그날 밤이 지나도록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한 성완종은, 발부확률 99.9%로 예상되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독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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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벽 5시 경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 한 통을 남긴 채, 청담동 자택에서 택시를 타고 평소 즐겨 찾던 북한산 부근으로 이동했다. 평창동 매표소에 도착한 그는, 6시부터 50여 분에 걸쳐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 수사기록을 챙기라는 지시를 했다.


오전 8시 경 경찰에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 8시 40분 경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가 확인되었고, 9시 33분 경 다시 이동신호가 잡힌 것으로 볼 때 이 무렵까지는 살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정 사망시각은 대략 10시 전후. 경찰이 그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5시간 반 정도가 지난 오후 3시 30분이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성완종의 마지막 행적을 굳이 되짚어 본 이유는 자살 하기로 마음먹은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와 기자와의 전화통화, 그리고 56자의 메모가 적힌 A4 용지를 남겼다. 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간에 알려진 통화와 메모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김기춘과 허태열의 사정


유품에 필기구가 따로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해당 메모는 자택을 출발하기 전 (아마도 유서와 함께)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 관계상 구체적인 기술을 할 수 없으므로 핵심이 되는 사람 이름과 금액 정도만을 휘갈겨 쓰고, 세부적인 사항은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밝히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기억을 정리해서 작성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본인이 관리하던 수첩이나 일기장 등을 참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중앙일보를 통해 성완종이 관리하던 비망록의 존재와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다) 김기춘과 관련해, '2006년 9월 26일 독일 베를린'이라는 구체적인 일시 장소가 언급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도 이날 조선일보 사진을 확인해 보라고 한 걸 보면, 기록을 해두었거나 적어도 이걸 기억해 둘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3G 폴더폰을 사용하는 성완종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를 찾아봤을 것 같지는... 참고로 이날 조선일보 D1면 "포스트 판교 ‘빅5’ 어딘지 알고 계십니까" 제하 기사에 경남기업이 용인 흥덕지구에 43~59평 아파트 925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긴 하다)


이러한 구체적인 기술은 본인 주장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고 김기춘이 현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위험성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공소시효를 이유로 검찰에서 구체적인 수사를 하지 않더라도 여론을 통해 사실처럼 통용될 가능성이 높아(김기춘의 경우 10만 달러를 건네준 장소로 지목된 롯데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정치적인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소위 '7시간' 루머도 롯데호... 아, 아닙니다)


가장 큰 액수를 기록한 허태열 또한 마찬가지다. 성완종은 ,


"현금 7억 원을 줬다."


"리베라호텔에서 만나서 줬고"


"서너 차례 나눠 줬지요. 내가 직접 주었지요. 거기까지 가져간 것은 심부름한 사람이 했고요."


라며 액수는 물론 정황까지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당시 리베라호텔이 친박계 중진들의 회합장소로 애용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허태열을 만나 돈을 주었다는 것은 신빙성이 높다. 게다가 5만 원권이 없던 당시 7억 원의 돈을 현금으로 담으려면 사과상자 3~4개 정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너 차례 나눠 줬다는 것도 납득이 간다. 회장쯤 되는 사람이 체신머리 없이 낑낑거리며 돈 상자를 들고 다닐 리 없으니 심부름한 사람이 가져왔다는 것도 그럴 듯 하다.


검찰로서는 공소시효 타령을 하며 어영부영 수사를 안 하고 뭉개려 하겠지만, 오히려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성완종의 인터뷰 내용이 허위라는 걸 밝혀내지 못할 경우, 사람들의 마음 속에선 이 모든 것이 진실이 될 것이다. 허태열의 경우엔 금액도 큰데다, 먼저 연락해서 돈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라면 죄질마저 좋지 않다.



홍문종의 사정


김기춘과 허태열보다 폭발력이 큰 부분이 홍문종과 홍준표, 두 홍씨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현직인데다 아직 공소시효도 끝나지 않았다. '2억 원'을 받은 것으로 거론된 홍문종은 황급히 기자회견을 열어 1원이라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쳤지만 그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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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시오...



돈 받은 사실이 확인되면 정계은퇴가 아니고,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므로 정계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퇴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완종의 홍문종에 대한 진술 또한 의미심장하다.


"제가 홍문종 아버지하고 잘 알아요. 이 양반은 국회의원 당선되고 알았지만, 잘 알거든요. 아버지하고 친하고."


홍문종의 아버지는 11-12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낸 홍우준이다. 학교법인 ‘경민학원’을 설립 운영한 사람으로서 건설회사 사장이던 성완종과 인연이 있을 법 하다. 그 많은 학교 건물 중에 경남기업이나 대아건설이 시공한 게 있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 개인적으로 먹을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홍문종의 2014년 신고 재산은 69억 8천만 원. 경기 지역 국회의원 중 1위다. 부친의 뒤를 이어 사학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그가 2억 원 받아서 팔자 고칠 일은 없었을 테니 ‘개인적으로 먹을 사람은 아니다’ 라는 말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당시 성완종은 선대위 부위원장이었고, 홍문종은 선대위 조직본부장이었다. 아울러 지방선거 때에는 홍문종은 사무총장, 성완종은 충남도당위원장으로 관계가 없다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합하고 같이 매일 움직이고 뛰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한 2억 정도 줘서, 조직을 관리하니까."


"같이 사무실 쓰고 그랬으니까요. 같이 사무실 쓰고 어울려 다니고 했으니."


"지방선거 때도 자기는 사무총장하고 나하고 같이 선거도 치르고. 그렇게 의리 없고 그러면 안되잖아요."


공개된 녹취록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건,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메모에 ‘부산시장 2억’, ‘유정복 3억’이라 기재되었을 뿐 아직까지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은 서병수와 유정복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당시 서병수는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고, 유정복은 선대위 직능본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인사들이 현직 광역단체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 제공된 선거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정권 차원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겠지만, 해당 지역의 재선거가 열릴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똑같은 광역단체장인 홍준표는?



홍준표의 사정


그에 대해서는 공개된 녹취록의 내용이 구체적일 뿐 아니라 전달자로 지목된 윤모씨조차 녹취 내용을 부인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인해,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장 입증이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메모에 거론된 다른 7명과 달리 친박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점도 검찰의 수사의지를 고취시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녹취록 내용을 살펴보자.


성완종: 그리고 제가 홍준표가 당 대표 나왔을 때. 경남도지사하는 홍준표 있잖아요


경향신문: 그게 2010년인가 2011년, 그 때일 텐데


성완종: 2011년 일 거에요. 내가 홍준표를 잘 알아요. 잘 아는데, 2011년도 일겁니다. 6월쯤 되는데, 내가 그 사람한테도,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친구한테도 1억을 캠프 가있는 ○○○ 통해서 전달해줬고,


경향신문: 그때는 대표 경선할 때


성완종: 내가 공천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는데 그런 식으로 자꾸 하니까 너무 배신감이 들고, 합당하면서도 백의종군한 사람 아닙니까. 장관을 시켜달라고 했습니까. 취직을 시켜달라고 했습니까.


홍준표는 2010년, 2011년 두 차례 당 대표에 출마했다. 처음엔 안상수에 이어 2등을 했고 재수 끝에 2011년 당 대표가 되었다. 두 번 다 7월에 열렸으니 6월에 줬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고,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아 처벌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홍준표는 성완종을 잘 모른다는 취지의 해명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홍준표는 경남지사, 성완종은 경남기업 회장이란 것 말고는 특별한 인연은 없어 보인다.


라고 쓸 줄 알았지? 경남기업의 본사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데, 이곳은 홍준표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한 지역구이기도 하다. 물론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경남기업이 답십리에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으나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라며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국회의원(갑)과 건설회사(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회사에 왕림하지 않더라도 수금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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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하는 그 당의 전당대회로 말할 것 같으면, 2008년까지만 해도 후보들이 돈봉투를 직접 돌리는 관행(박희태!)이 있었다는 게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2012년 고승덕의 폭로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으니, 2010년이나 2011년 전당대회에서도 적잖은 돈이 필요했으리라는 건 합리적인 추측이다.


4월 14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남기업으로부터 1억 원이 윤모씨에게 전달된 사실이 계좌와 진술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한다. 윤모씨는 2010년 전당대회 당시 홍준표의 공보특보를 역임했으며 2011년 전당대회 당시에는 경남기업 고문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자금 전달자의 역할을 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성완종 또한 배달사고 가능성을 우려해 윤모씨에게 사실관계를 재차 확인했다고 하며 윤씨는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홍준표의 무상급식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완구와 이병기의 사정


메모에 거론된 인사들 중 금액이 적시되지 않은 건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공교롭게도 리스트 8인 가운데 유이하게 임명직이며, 충청 출신(이완구는 충남 청양, 이병기는 충남 홍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추측해볼 수가 있는데,


1. 돈을 주지 않았거나 액수가 미미하다. ☞ 그러면 이름은 왜?


2. 돈을 주었으나 (충청 출신에 대한 호의로)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 그러면 이름은 왜?


3. 워낙 가까운 사이라 (적은 돈이더라도) 빈번히 지원을 해왔기 때문에 얼마인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곤란하다.


답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라고 썼는데, 2013년 4. 24 재보선에 출마한 이완구에게 3천만 원을 지원했다는 성완종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완구. 이에 대해 성완종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개혁하고 사정한다고 그러는데, 사정 대상이 누군지를 모르겠어요. 사정 대상이. 사정을 해야 될 사람이, 당해야 할 사람이 사정하겠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 우리 이완구 총리 같은 사람. 사정대상 사실 1호입니다. 1호인 사람이 가서 엉뚱한 사람. 성완종이 살아온 거하고 이완구가 살아온 거하고 쭉 보시면, 비교를 한번 해보십시오. 청문회 자료하고 성완종 자료하고 조사한 거 다해서. 이게 말이 되는 거냐. 국민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적절치 않다고 보고요. 뻔히 보는 아는 거고, 너무 욕심이 많아요, 그 양반은, 자기 욕심이, 너무 남들 이용을 나쁘게 많이 해요. 너무 이용을 많이 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이용을 많이 해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그러네요."


필자의 지난 글과 비교해 보자.


다들 알다시피 이번 사정(司正)은 지난 3월 12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패와의 전면전' 선포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완구가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다니. 필자는 마사오횽이 야동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과 같은 강한 충격을 느꼈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고 했던 맥루한의 입장에 따르면 이것은 완벽한 구라가 아니겠는가. 불과 한 달 전 인사청문회에서 그분은 병역, 논문표절, 교수채용 및 황제강연,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부패의 끝판왕 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제 와서 부패와의 전면전이라니. 이쯤 되면 유체이탈화법의 만렙이라 할 수 있는 '스스로와 싸우는 경지'에 올라섰다 아니할 수 없다.


이완구는 ‘돈 받은 사실이 밝혀진다면 총리직을 사퇴하겠다’라는 영양가 없는 멘트로 결백을 주장했지만, 홍문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돈을 받았다면 형사처벌 대상이지 총리직 사퇴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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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이완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급기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까지 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진 일단 오리발을 내밀고 보는 이완구 스타일에 비추어볼 때 그다지 신뢰도가 높아 보이진 않는다.


결국 4월 15일 경향신문에 2013년 4월 4일 오후 4시,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비타500' 박스를 꺼내 전달했다는 몹시 디테일한 진술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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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 전문)



하위직 공무원조차 수사선상에 오르면 직위해제부터 시키고 보는 이 정부의 단호한 태도에 비추어볼 때, 행정부의 수반인 국무총리가 수사대상이 된 현재의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상급자이며, 유사시 대통령권한대행이 되는 막강한 권력자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이제 각하는 머나먼 중남미로 순방을...) '증거가 발견되면 목숨까지 걸겠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죽을 줄 알아라'는 협박으로, '나부터 빨리 수사해달라'는 '빨리 내 혐의를 털어달라'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다.


따라서 야당은 '총리&비서실장 해임 or 특검 수용' 양자택일의 카드를 걸고 여권을 압박하는 게 바람직하다. 막연히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태도는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고, 이는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부터 여당이 총리의 거취와 특검 수용 등을 거론하며 주도권을 잡을 듯한 인상이다. 야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검찰의 대응과 특검의 필요성


검찰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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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대전지검장



사법연수원 18기인 문무일은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한(고교-대학 직계 후배로 선동렬, 염경엽, 최희섭이 있다) 호남 출신 검사장이다. 정치적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출신지역을 고려하면서도, 특수수사 경력을 반영한 인선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측근 비리 의혹 특별검사팀에 파견되어 최도술을 구속시킨 바 있으며, 2007년 대검 중수1과장 시절에는 변양균-신정아 사건을 수사한 바 있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하며 BBK 김경준 기획 입국설,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연예계 비리 의혹 등을 수사하는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담당했으나, 이후 출신 지역 탓인지 주로 지방을 전전하며 다소 홀대 받는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서부지검장을 맡아 땅콩회항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총괄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수통으로 알려져 있기에 돈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수사에는 적임자일 것으로 보이나, 일각에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건에 호남 출신 검사장을 내세워 일종의 면피를 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개인적으로 문무일 팀장의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이러한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능력보다는 의지의 문제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검찰보다는 특검의 수사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검찰 내에도 의지가 있는 검사들이 있겠지만, 함부로 의지를 과시하다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처럼 좋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 수사에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살한 사람의 유언과도 같은 메모를, 다시금 검찰 수사에 맡긴다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경향신문 보도가 없었더라면 메모 자체가 증발했을 뻔 하지 않았나. 현직 총리와 비서실장, 그리고 얼마 전까지 검찰을 쥐락펴락했던 김기춘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검찰보다는 특검을 통해 고인의 넋을 달래주었으면 한다.



메모와 녹취록이 전부 사실일 경우


현재까지 밝혀진 메모와 녹취록 내용이 전부 사실일 경우 공소시효가 지난 허태열과 김기춘, 금액이 확인되지 않은 이병기를 제외한 5명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하며,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다만 부산시장(2억원)과 유정복(3억원)의 경우 돈 받은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정황상 2012년 대선 또는 2014년 지방선거였을 가능성이 유력하며, 이는 추가 공개될 녹취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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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이로 인해 실형 선고를 받게 된다면 형 집행종료 후 10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으면 형 확정시부터 10년, 100만원 이상 벌금을 받으면 형 확정시부터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며, 이미 당선된 직책에서도 당연 퇴직된다. 이는 부산시장(서병수), 인천시장(유정복), 경남지사(홍준표), 국회의원(홍문종, 이완구)같은 선출직은 물론, 국무총리(이완구)나 대통령 비서실장(이병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임명직은 확정판결 전에 해임될 가능성이 높고 국회의원도 거의 임기가 끝나가지만, 시도지사는 보궐선거를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번도 선출직이었던 적이 없는 이병기의 경우, 돈을 받았다 해도 이를 정치자금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돈 받은 시점이 2013년 5월 이전이라면, 정당 간부(여의도연구소 고문)로서 '정치활동을 위하여 제공된 금전'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 성완종에 따르면 주일대사 하기 전부터 잘 알았다니, 가능성은 적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이 모든 사람들에게 뇌물죄가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한 편인데, 대가관계 입증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성완종 역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돈을 준 것이 아니라 '신뢰관계'에서 준 거라는 취지여서 특별한 반대급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포괄적 뇌물죄'를 예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나, 돈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 야당 또는 여당 비주류 국회의원들이었던 이들에게 적용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포괄적 뇌물죄의 경우 대통령이나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실세들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김영란법이 만들어졌으나, 아직 시행 전이라...


현재까지의 사실관계만으로는 김기춘이나 허태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처벌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별건수사에 밝고 법리에 정통한 검찰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참고로 외국환관리법이나 조세범처벌법(증여세 포탈)은 나도 살펴봤는데 공소시효가 지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메모와 녹취록을 재판정에서 증거로서 쓸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 메모와 녹취록은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의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나 진술을 기재한 서류'로 볼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성완종의 재판상 진술을 통해 성립의 진정함('내가 쓴 게 맞다'고 인정하는 것)을 증명해야 증거로 할 수 있다. 앗! 그렇다면 죽은 성완종은 말이 없고 재판에 출석할 수도 없으니 증거가 안 되는 것인가?


그럴 리가. 바로 다음 조항인 제314조에서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경우 이를 증거로 쓸 수 있다. 녹취록의 경우, 성완종과 대화를 나눈 경향신문 기자의 법정진술을 통해 증거가 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 전화통화를 그 상대방인 경향신문 기자가 녹음한 것이므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배제되는 도청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편, 중앙일보에서 입수해 보도한 성완종의 비망록(만난 사람, 일시, 장소 등 기록)이라든지, 향후 비자금 장부 같은 것들이 발견될 경우, 이는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 또는 같은 조 제3호의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로써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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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비망록의 내용

(중앙일보 기사 전문)



그러므로 메모와 녹취록을 증거로 채택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고, 다만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의 문제인데, 위에서 살펴보았듯 정황증거는 충만하다. 수사를 통해 메모와 녹취록을 뒷받침할만한 진술,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텐데, 역시 능력보다는 의지의 문제 아닐까?



아직 남아 있는 의문점


아직 녹취록의 풀버전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라 궁금한 점이 무척이나 많다. 부산시장, 유정복, 이병기 등에 대한 자금 제공시기와 경위도 그러하고, 해당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회계처리를 안 해도 되는 특성상, 회계처리를 할 수 없는 은밀한 사업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다.


부산시장이나 유정복에게 준 돈이 2012년 대선자금이었다고 볼 경우, 홍문종에게 준 돈까지 포함해 지나치게 창구가 많아지는 것 또한 의문이다. 후보(박근혜) 본인은 그렇다 치고 당시 선대위 총괄본부장(김무성)은 이런 자금 흐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인가?


무엇보다도 사망 당일 성완종의 행적 부분이다. 앞서 보았듯 그의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10시. 경향신문과의 통화를 마치고 나서 3시간 가량을 더 머물렀던 셈이다. 죽음을 결심했던 그 역시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기다렸던 걸까? 혹시나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게끔 하기 위한 모종의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의 마지막 행적이 진실 규명의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건네며 친교를 쌓으려 했던 성완종의 행위를 잘했다고 옹호할 수는 없다. 해당 정치인이 먼저 요구를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배신감 또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리스트를 공개했다 하여 그를 영웅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어려운 집안 형편을 딛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서 장학재단을 만들어 후배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으려 했던 점, 베트남과 에티오피아 등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업을 벌이며 민간외교에 앞장섰던 점, 서산-태안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태안 앞바다 유조선(삼성중공업 소속 허베이스피리트 호)침몰 사고와 관련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던 점 등은 성완종의 업적으로 기록해 두고 싶은 부분이다.



누구보다 외로웠을 그의 명복을 빌며, 목숨을 건 그의 내부고발이 헛되지 않도록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소위 '성완종 리스트'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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