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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16. 목요일

딴지팀장 꾸물









작년(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며칠 후 취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진도로 내려가기 전 안산에 들렸다. ‘학교가 이런 곳에 있구나’ 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교문엔 노란 조끼를 입은 교사 한 분과 어머니회 몇 분이 나와 출입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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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학년 학생들과 가족·친지, 실종 학생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갔다가 눈물을 닦으며 나오기도 했다. 침몰사고 후 무분별한 취재경쟁과 특종에 열을 올리는 언론들이 뭇매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그런지 학교주변 상황도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2시간 정도 학교 앞 정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진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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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안산)에서 진도는 매우 멀었다. 오후 4시 반쯤 안산을 출발해 팽목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조용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자원봉사 천막엔 봉사자들이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고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팽목항에 비해 체육관은 늦은시간까지 환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많았다. 체육관에 도착했지만 무엇을 어떡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임시로 머무는 체육관 1층으로 들어가는 중앙 문에는 자원봉사자 두 명이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중앙로비에는 컵라면과 간식 등 각종 먹을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복도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물품 박스가 쌓여 있었다.


체육관은 시내에서 좀 떨어진 산 아래 위치해 있어 주변엔 가게들이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로비에 있는 음식이나 체육관 주변 자원봉사단체 천막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안될 것 같아 체육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2층으로 들어가는 철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참을 계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철문이 열리고 남자 두 명이 나왔다. 두 사람의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방송사나 언론사 기자로 보였다.


‘아... 들어가도 되나보다’ 생각하고 철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양 옆으로 사람들이 담요를 덮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밑으로 관중석에도 사람들이 매트를 깔고 누워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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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마주한 모습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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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단상 위 대형 스크린에선 끊임없이 뉴스가 나왔고 다른 스크린에선 가족들의 요구로 해경 함정에 설치된 침몰 현장의 실시간 CCTV 화면(수색상황)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12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체육관의 불은 환하게 밝혀 있었고 뉴스를 진행하는 리포터와 앵커의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퍼졌다. 뉴스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는 가족들과 머리까지 이불을 덮고 자는 가족들이 한 공간에 있었다.

 

비어 있는 2층의 관중석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차장으로 나와 차에서 잤다.




날이 밝자 차 안은 찜통이 됐다. 간밤에 추워서 바지 위에 입었던, 챙겨간 후드티를 벗으며 일어났다. 밤이라 못 봤었는지 아침에 일어나자 이런 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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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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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단체의 자원봉사 천막이 쳐져 있었고 의약품부터 직접 밥을 하는 천막, 간식, 생필품 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건물 뒤쪽에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곳 천막에 가서 바나나 하나를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웃으며 드시라고 봉사자 한 분이 말했다.


건물 뒤편 출입구 쪽에 사람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들어갔다. 체육관 단상쪽으로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테이블과 그 위엔 팻말이 놓여 있었다. 각 정부부처부서 사람들의 자리였다. 테이블 뒤 벽엔 의자가 놓여 있는 기자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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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실종자 가족 중 한 분이 테이블 쪽으로 오셔서 “ㅇㅇ는 왜 자리에 없냐(1년 전의 일이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런 내용의 이야기였다)”며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정부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얼마 있어 하얀색 점퍼를 입은 한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와 내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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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만 놓여진 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책상 위엔 컴퓨터라거나 전화기 같은 건 놓여있지 않았다.


다른 부서 자리엔 프린터, 컴퓨터 전화기 등등의 기기들이 있었는데 대책본부에서 단상 위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 발표를 하면 고개를 들어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엔 나란히 윈도우 바탕화면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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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자 수색작업이 재개 됐는지 단상에서 성별과 소지품, 인상착의 등을 대책본부에서 발표했다. 체육관 안은 일순간에 탄식과 오열, 절규가 뒤엉켰다. 상황을 더 지켜보다가 들어왔던 곳을 통해 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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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계단에 한 아주머니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옆엔 쇼핑백과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대책본부에서 인상착의 등을 발표하면 자신의 아들, 딸이라 여겨지거나 확실하다 생각한 가족들은 체육관에 있던 짐과 담요 등을 챙겨 팽목항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실종자를 만나보고 싶은 가족들도 팽목항에서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은 팽목항의 바다를 차마 마주보지 못할 것 같아 체육관에 있다고도 했다.


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는 차로 20분에서 30분을 운전해 가야 할 만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또, 팽목항에서 사고지점까지도 배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겐 그런 물리적 거리는 실제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바로 앞에 있을 것만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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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엔 주차장에 차를 대고 1Km 남짓 선착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주차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개인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는데 차 옆에 계신 기사분께 여쭤보니 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실종자 가족들을 태워주는 봉사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이 차량들은 모두 안산에서 영업을 포기하고 진도까지 온 택시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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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 미터를 더 걸어가다 보면 하얀 천막이 줄지어 있었는데 수습한 시신의 신원확인을 위한 장소였다. 이 천막 안에서 가족들은 희생자와 마주하고 신원확인을 한다. 날이 밝고 다시 팽목항에 갔을 때 이 천막의 존재를 몰라 근처를 지나가다 오열하는 소리에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가다 제재를 당했다. 워낙 민감하고 어찌보면 잔인한 구역이라 주변을 지키는 경찰 병력이 많았다. 사진 촬영도 할 수 없다.


선착장 쪽까지 걸어가는 도중 큰 소리를 내며 소방헬기가 위의 흰 천막 뒤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하고 사람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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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뒤에 앉아 착륙하는 헬기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께 이곳 주민이신지 여쭤봤다. 좀 떨어진 마을에 살고 계신데 뉴스를 보고 도울 일이 있나 해서 오셨다가 옆에 보이는 이동식 화장실을 치우는 일을 요청받고 봉사하고 계신다고 했다.



수색작업과 시신인양 등에 필요한 장비와 신원확인 등이 이뤄지는 팽목항은 체육관하고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선착장까지 가는 길엔 여러가지 모습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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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를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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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주변 식당과 민박집에는 방송사 차량들이 차를 대 놓고 숙소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팽목항은 체육관보다 환경이 많이 열악했다. 바닷바람과 흙먼지 섞인 바람이 수시로 불었고 4월이었지만 한 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지내다 보니 야외에 있는 화장실이나 샤워시설도 체육관에 비해 많이 불편해 보였다.


항구 한쪽에선 스님 두 분이 바다를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그 옆엔 외신기자가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옆에 보이는 경찰들은 바다에 빠지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배치된 병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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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경찰에게 말을 건네니 기자냐고 묻고는 얘기해 줄 게 없다고 했다. 자리를 옮겨 구석진 곳에 앳돼 보이는 경찰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신 거냐고 물어보니 머뭇거리다가 인천에서 왔다고 조용히 얘기했다. 인천에 필요인력을 두고 나머지 가용인원을 모아 진도에 왔다고 했다. 밥은 어디서 먹냐고 물어보니 도시락을 받아서 먹는다고 했다.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신경을 쓰며 눈치를 살피는 듯 했고 나와 대화하는 게 불편해 보여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조금 미안했다.


팽목항에도 수많은 기업, 단체의 자원봉사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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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천막을 지나 선착장 쪽에 다다르자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는 천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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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도 그렇고 팽목항에서도 가족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상당부분 차단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


진도 체육관에 경찰이 가족인 것처럼 잠복해 뻘짓을 하다가 들통나는 바람에 욕을 먹은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목에 가족임을 나타내는 명찰을 걸고 다니거나 손에,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언론은 언론대로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다가 욕을 먹어서 가족들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 가족들은 경찰 때문에 거추장스런 명찰을 차야 했고 언론의 광기어린 특종경쟁과 오보, 받아쓰기 기사 때문에 누군가를 믿고 보거나 듣고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 가족들은 서로서로 혹은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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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느 순간 실종자 가족 중 한 어머니가 선착장 밑에까지 내려와 오열하며 주저앉자 옆에서 딸과 경찰들이 부축하며 달래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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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서서히 저물어 팽목항을 떠나 다시 진도 체육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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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달려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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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체육관 정문 현관 구석엔 입간판이 기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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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다시 찾아간 팽목항에 저 멀리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배가 항구에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배가 들어오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다이빙 벨을 싣고 온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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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을 더 머물다 서울로 돌아왔다.




진도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건 ‘무지’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자식, 사랑하는 사람, 부모의 생사를 알지 못했고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경찰도, 언론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초유의 대참사가 일어나자 욕심 없이 가족의 생사만을 걱정하는 실종자 가족 이외엔 너도나도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찾았던 지난 4월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며 어떻게, 무엇을 쓸까 고민했다. 그 동안 5월이 됐다. 취재하며 만난 실종자 어머니와의 대화나 나에게 화를 냈던 자원봉사자와의 인터뷰, 그 외 이것 저것 기타 등등 게다가 진도에 다녀왔으니 써야만 한다는 부담과 특종까진 아닌 기존 언론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마음 한켠의 부채의식 같은 것도... 하지만 기사를 쓰지 못했다.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나 자신이 몰랐던 게 가장 컸다. 


지금이라고 뭔가를 확 깨달은 게 있어서 1년 전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년전 그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려고 했던 게 아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입맛대로 기사를 쓰지 않은 건 다행이라 생각한다. 


1년이 지나 참으로 늦었지만 당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려준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렇게 비겁한 사과라도 해야 1년 전 그때의 이야기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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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팀장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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