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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0. 월요일

아까이 소라







2015418일 토요일 오후 6시 프랑스 파리

2015419일 일요일 새벽 1시 대한민국 서울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를 비롯, 100여 명이 연행되고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가 등장하고, 불법으로 판명 난 차벽이 보란 듯이 재등장하는 등 온갖 아수라장이 연출되던 그 시점을 약간 넘긴 시각, 한국에서 9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 써머타임이 적용되어 해가 더 늦게 떨어지는 만큼 하루 종일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은 이제 나른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기 시작하였고, 으레 그렇듯 에펠탑 사진을 찍기에 가장 탁월한 명소로 이름난 트로카데로 광장은 사진기를 든 관광객 일색이었다. 그리고 하나 둘 동양인들이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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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일상인 지하철 늑장으로(변명) 10여 분 늦게 도착했다빨리 간다고 정신 놓고 뛰다 보니 정겹게 손을 잡고 가던 커플 몇 쌍을 떼어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어쩐지 기분이 좋아 졌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 그 이름에 걸맞게 필자가 집회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피아노 연주가 트로카데로 광장에 모인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서쪽 하늘에 걸린 태양이 연출해 내는 길고 긴 그림자와 어우러져 놀라우리만치 평화로웠는데, 같은 시각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트로카데로 광장을 찾은 프랑스인들은 이런 장면이 어색하지 않은 듯 기웃거려 보다가 피아노 연주에 이끌려 이윽고 자리를 잡아 본다. 그도 그럴 것이 트로카데로 광장의 별칭은 인권광장. 19481210,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파리 샹젤리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광장은 각종 집회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문화제가 있던 이날, 트로카데로 광장에는 한국인보다 앞서 알제리, 예멘, 캄보디아 집회도 있었다고. 멀리 있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모두들 관심 있게 지켜봐 주었고, 또한 집회 준비를 거들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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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 김주원씨의 탁월했던 피아노 연주

그가 선보인 마지막 곡은 세르지오 오르태가의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이번 추모집회는 영국, 캐나다, 미국, 독일 등 세계 각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전적으로 자원봉사 형태로 구성 및 진행되었다. 2013년 필자가 딴지 프랑스 특파원으로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집회에 취재차 나갔을 때 보이던 얼굴들이 주축이 되었고, 이번에는 보다 새로운 이들이 적극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집회를 준비해 온 이들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물어 본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말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먼 곳에서 슬퍼하는 것뿐이었는데이렇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슬픔을 나눌 기회가 생겨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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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노란 종이배를 만들고 칠하느라 노래진 손.

이 손은 집회 내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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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손수 칠하고 접어 만든 노란 종이배에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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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진 세월호

바로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플래카드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그녀는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추모제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자 스스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너무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선을 긋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인양하겠다고 박근혜 대통령도 말했으 니까 인양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시행령도 폐지를 하던가 개선을 하던가.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 야 겠죠."


그녀의 한 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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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받았으면 좋겠어요.

자식을 잃었는데도 그 슬픔에 공감해 주기는 커녕 그걸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이들 때문에

상처받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라로셀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장장 3시간 반을 달려 집회에 참여한 그녀는 프랑스에 와서 한국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 대학생을 접하면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에 각성했다고 고백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 터지고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에 멀리서라도 표현의 자리에 함께 하고 싶어서 파리까지 올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그녀에게 있어서 한국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상. 그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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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카데로 광장 바닥 곳곳의 포스터들


삭발한 머리에 띠를 두른 어머니의 눈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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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로 프랑스 난민 자격을 획득한 첫 한국인 이예다씨와 목수정 작가가 

각각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지난 1년간의 세월호 참사 및 그 이후 일련의 사건을 정리하고 있다.


바로 이 즈음부터 트로카데로 광장은 노란 리본의 물결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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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왔지만 마음은 항상 그곳에

한국에서 일어난,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참상에 귀를 기울이는

집회 참가자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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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쬐러 온 듯 한 프랑스인 여성도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그렇게 자리를 잡은 그녀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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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집회에서는 간단한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첫 번째 자유발언은 한불친선협회의 브누아 케네데(Benoît Quennedey)씨의 말을 간단히 옮겨 본다.



"한국에 닥친 일련의 일들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정치의 결과물에 의한 필연적인 것이었습 니다. [중략] 바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정치가 시민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에 중점을 두었기에 이런 사건이 필연적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더 이상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모든 진실이 밝혀져야 하 , 법적인 조치가 만들어 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인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의 진보적인 시 민 모두가 한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연대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는 프랑스와 한 국이 외교관계를 맺은지 130년 주년 되는 해입니다. 다가오는 9월에 올랑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 로 보입니다. 그 때 올랑드 대통령이 세월호 비극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을 촉구합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 령은 한국 정부가 세월호 유족과 활동가에게 했던 만행에 대하여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메세지를 전 달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나는 한국이 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될 것을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 세월호를 잊지 맙시다."



자유발언 이후 잠시 진행한 인터뷰에서 브누아 케네데씨는 좀 더 비판에 날을 세운다.



"우리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많은 우려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 일들을 프랑스에 알 리려 합니다. 지금 이런 식으로 간다면 머지않아 한국은 다시 독재체제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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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유발언은 중학생 이덕진 군. 그는 앳된 목소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이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호소하였다. 잠시나마 그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이 덜 우울해 보였음을 고백한다.



"차갑디 차가운 바다 앞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저 부모님들을 보았다면, 사람이라면 어떻게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을 덮으려 하고 있고 또 언젠가는 이 사건도 잊 혀질 수 있겠죠. 하지만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눈물은 너무나 말라 있습니다. 내 삶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챙겨야 하느냐며. 하지만 챙겨야 합니다. 함께 슬퍼하 , 함께 울어야 합니다. 나라의 경제를 걱정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국민의 누군가가 어떠한 이유로 죽었다 면 먼저 슬퍼해야 합니다. 슬퍼합시다, 그들을 위해 울어 줍시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런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의 정부는 과연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까요? 자신의 국민이, 내 아들 딸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님들 은 그 슬픔을 풀길이 없습니다.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가슴은 그 어느 것으로 도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슬픔을 기억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아픈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 의 도리이고 지금의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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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과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노란 종이배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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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접은 종이배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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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공연은 유학생 이예빈씨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그에 따른 아버지의 고통을 보며 만든 곡이기에

특별히 이 곡을 선택했다고.



"유학생활 하면서 세월호를 미디어로만 접했기 때문에 타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이런 애도의 물결에 제가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정말 뜻 깊은 자 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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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자유발언의 주인공은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 활동가 플로린 웡(Florine Wong)

신당을 대표하여 추모집회에 참여, 연대를 보여 주었다.



"우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희생자 가족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또한 반자본주의신당 활동가로서 저는 이 참사를 단순히 국가의 범죄로만 보지 않습니다. 제게 있어 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빚어낸 범죄이기도 합 니다. 저희 신당은 세월호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행동에 연대를 표하고자 성명을 발 표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4416, 세월호가 남한의 한 해안에서 침몰, 3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 중 250명이 서울근교 산업도시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선장은 3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살아남은 다른 선원들도 3년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희생자를 전혀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고, 실질적인 책임자에 대한 심판도 없이 이루어진 개인에 대한 처벌이, 이 학살의 핵심적인 책임이 한국 정부와 청해진 해운에 있음을 은폐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공권력과 사적 권력은 수익을 위해 서로 손을 잡고 공공안전을 무시하는, 범죄와 다름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감시감독은 피상적으로 진행하고, 구조서비스를 상 용화시킨 한편, 유지보수도 되지 않은 선박을 이용하고 과적된 화물을 서둘러 적제하고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불안정 노동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둘 사이에 단지 박근혜 정부의 특성만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묵인 과 부패의 고리가 존재합니다. 이 공적, 사적 권력이 바로 대다수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에 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 체제를 온전히 대변합니다.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은 한국 정부와 세월 호 경영자인 청해진 해운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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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장 옆에서 여유로이 공놀이를 하는 아빠와 아들


이 곳에 집회의 폭력성을 우려하여 차벽을 세우는 경찰 따위는 없다. 남의 나라에 와서 무슨 짓이냐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없다. 집회는 일상이며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다른 이의 입을 막는다면, 내가 할 이야기가 있어 소리칠 때 내게 귀 기울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도 프랑스에서와 같이 집회의 자유가 있다. 다만 법으로 명시된 그 자유가 뒤틀려 해석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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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에 나선 프랑스 유학생 한혜인씨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내 마음도 떨렸다.



"유가족에 보이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 이것이 현 정부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관권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 혜 정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기 가족이 왜 죽 었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는 것 하나로 영정사진을 들고 투쟁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박 근혜 정권은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대한민국의 시계를 독재시대로 돌려놓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시 창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던 학생들을 박근혜 정권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민과 유가족의 목소리에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박근혜 정권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정권입니다."


"더 큰 문제 는 이 정권이 시민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2, 3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권을 반드시 변화시켜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권력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동원, 차벽을 만들어 시 민의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난 군중은 차벽을 뛰어 넘으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탄압이 있 는 곳에 저항이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다가옵니다. 억눌릴 대로 억눌린 민중의 목 소리는 반드시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정권을 창출시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인양되고, 임자는 처벌받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잊지 않고 함께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변화시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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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진지하게 자유발언을 듣는 프랑스 청년들

17살의 유럽계 소녀도, 18살의 아프리카-마르티니크계 소년도 모두 프랑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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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마지막 공연은 배은선, 양세원, 김영원의 노래 <비목><얼굴>

여담이지만 성악공연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지 이전에는 몰랐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예쁘게 떨어졌는데 화장이 다 지워졌더랬다.



"저희가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들을 애도하면서 조금이나마 저희의 마음을 노 래로 전했으면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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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자유발언자, 프랑스 혁명공산당에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



"제게 오늘밤 이 집회는 매우 뜻 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자본에 의한 참사가 아니라 정권이 만들어 낸 학살입니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한국 정부는 무 엇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중략] 한국에서 현 정권 하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변화의 하나의 중요한 증거 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 한국의 전교조는 노조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바 있습니다. 이후 노조 의 활동이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2, 한국의 통합진보당이 강제해산 되었습니다. 한 국가안보를 위한 새로운 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일제식민지 시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시에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이 자리에서 희생 자 가족에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자 하며 프랑스 정부와 언론들이 한국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방관하지 않기를 촉구합니다. 또한 한국 민주화 투쟁과 평화통일에 있어 연대할 것을 이 자리에 서 약속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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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생이라는 안토넬라()와 샤를롯()

이들은 집회 2시간 내내 두 눈을 반짝이며 맨 앞자리를 지켰다.


프랑스 혁명공산당 사무국장의 자유발언을 끝으로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1주기 추모문화제가 모두 끝이 났다. 애초에 집회를 두 시간 신고했으므로 8시에 해산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는 것. 그리고 나는 궁금해 졌다. 집회 내내 맨 앞자리에서 공연과 발언에 귀 기울이던 이 두 사람의 프랑스인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또한 가슴에 리본을 달고, 기꺼이 종이배를 전시하는 역할을 도맡아준 것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은 그냥 지나가다 들른 것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부탁했고, 흔쾌히 승낙 해주었다. Merci Charlotte et Antonella!


각기 파리7대학과 국립동양학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들은 세월호 사건이 터진 시점부터 거의 실시간으로 사건들을 접해 왔다고 한다. 이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훨씬 이전으로, 한국문화 중 ''에 감명을 받았었다고. 프랑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환대와 나눔이 한국에서는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한국을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한국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이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충격적이었을 터. 특히 정부의 부재와 유가족 및 시민활동가에 대한 공권력의 행태는 너무나 야만적이어서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또한 국가 규모의 추모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은 거두지 않을 예정인데, 어쩌면 한국 사회의 변화에 자신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까이 소라: 그렇다면 한국에 가장 가져다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샤를롯: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마도... 표현의 자유? 사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표현하 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는 나이로부터 시작해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전 당신 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건방지거나 버릇없다고 보는 경향이 워낙 전반적으로 강 하게 퍼져 있잖아요. 그런 점이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개인의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가 막혀 있는 것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해서든 존중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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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가한 모두가 아침이슬을 부르며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집회는 해산하였다. 트로카데로 광장에 노을이 내리고,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는 풍경에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는 광경은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이번 집회에는 경찰 추산 200, 주최 측 추산 250명이 참가하였으며, 집회를 담당했던 경찰이 "질서정연하고도 아름다운 연주에 감동받았다", "혹시 다음에도 이런 모임을 가질 계획이 있거든 내게 연락해 달라", "혹시라도 방해 세력이 있다면 미리 알려 달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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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필자가 접어 본 종이배

에펠탑 아래 센 강에 띄우고 올 걸 그랬나 보다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