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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9. 수요일

 








백인 경찰 총에 목숨을 잃는 비무장 흑인

 

최근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노스 찰스턴에서 비무장 흑인 남자가 또 백인 경찰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찰이 다른 인종과 달리 흑인 남자를 대할 때 지나친 공권력을 사용한다는 흑인 커뮤니티와 여론(특히, 진보 여론)의 비난이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강하게 일어났지만, 정작 경찰 내부에선 별다른 자성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 경찰 업무는 주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주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막말로 아무리 대통령이 나서서 뭐라고 해도 안 들으면 그만이다. 다시 말하면, 주정부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시정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대부분 이런 사건들은 역사적으로 Segregation(흑백 분리 및 차별 정책)이 행해졌던 지역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지역 백인들의 의식 속엔 아직도 뿌리깊은 인종주의 사고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경찰이 흑인 피의자의 생명을 백인 피의자의 그것처럼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쉽게 무기를 사용해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는 건 아닌가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제까지 이러한 사건들의 추이를 살펴보면, 해당 경찰 대부분은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끝이 났다. 작년 미국 전체를 떠들석하게 했던 미저리주 퍼거슨에서 일어난 마이클 브라운 사건이나 뉴욕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에서 질식사한 에릭 가너 사건의 경찰들 모두 기소를 면했다. 주 검찰이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확정짓기 위해선 6~12명 Grand Jury (배심원이긴 한데, 정식 재판의 배심원은 아님) 2/3 혹은 3/4 (주마다 비율이 약간씩 다름)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의 공권력 사용이 정당했다고 믿는 배심원이 2~3명만 되도 피의자에 대한 기소조차 이루어질 수 없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비무장 흑인과 대치 중 혹은 체포과정에서 이들을 사살한 백인 경찰이 재판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흑인이 백인 경찰 총에 맞아 죽거나 체포 과정에서 의문사한 건 분명한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월터 스캇 사건과 비디오

  

그런데,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유사 사건이라 보기엔 이번 것은 약간 다르다. 4월 4일 사건 발생 초기에는 경찰인 마이클 슬레이거가 몸싸움 과정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월터 스캇에게 총격을 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을 했다. 이전에 있었던 다른 사건들처럼 경찰 교육과정에서 훈련받은 대로 프로토콜에 따른 자기 방어를 한 것으로 이번 사건이 흘러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흘 후 목격자인 페이딘 산타나가 사건의 추이를 녹화한 휴대폰 비디오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그 방향이 180도 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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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슬레이거와 월터 스캇

 

이 비디오를 보면 몸싸움은 커녕 달아나는 스캇의 등을 향해 슬레이거는 8발의 총탄을 주저하지 않고 발사하였다. 비디오 공개 후, 슬레이거는 일급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경찰직에서도 해임되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의 경우, 사건 조사 도중 경찰이 해임된 적은 없었기에 매우 파격적인 조치였던 셈이다. 게다가 슬레이거의 변호사는 비디오가 공개된 후, 즉시 사임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비디오의 존재로 인해 법을 집행하는 경찰로서 슬레이거의 주장이 상당 부분 신뢰성을 상실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타나가 촬영한 휴대폰 비디오 


미국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다. 그런데, 도대체 왜 경찰 총에 맞아죽는 건 매번 흑인일까? 이 글은 미국 내 흑인의 사회, 경제적 위상과 저소득층 흑인 가정 세대간 악순환의 역사, 그리고 인종주의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한 답변을 해보려고 한다.

  



인종별 스테레오 타입과 데모그래픽

 

미국에 아직껏 피부 색깔에 따른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인종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비지니스맨, 정치인은 백인이고, 공학 박사나 엔지니어, 의사는 아시안이고, 커스토디언(건물 관리인 및 청소부)은 흑인이다. 청소년 드라마를 봐도, 백인 남자아이는 리더격이고, 흑인 남자는 스포츠맨이거나 춤을 잘 춘다. 때로는 갱으로도 등장한다. 그건 히스패닉도 마찬가지다. 아시안은 똑똑하지만, 소심한 공부벌레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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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 중에서.

백인은 리더, 흑인은 스포츠맨이라는 공식을 따름.

대신, 뉴 멕시코 주 앨버컬키를 배경으로 해서 아시안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시안이 별로 없는 동네이기 때문.

 

드라마가 허구이긴 하지만, 드라마 속 스테레오 타입은 현실을 비교적 단순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 사회 내 비즈니스맨이나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백인의 비율이 높고, 의사, 박사, 엔지니어 가운데 아시안의 비율이 높고, 학교 커스토디안은 흑인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 때문에 사회 계층이 인종에 따라 고착되어 버렸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백인 인구 비율이 전체 미국 인구 가운데 65%를 차지하기에 사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백인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구대비 비율이 중요해지는 건데, 아시안은 전체 인구 중 5~6%를 차지하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IT, 과학, 의약업계에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

  

'Silicon Valley Index'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IT의 심장부로 불리우는 실리콘 밸리 전체 거주민 중 가운데 36%는 외국 태생이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 중 16%가 외국 태생인 것과 비교하였을 때, 매우 높은 수치다. 그리고, 집에서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실리콘 밸리 전체 가구 가운데 50% 이상이고, 이 가운데 아시안(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 한국 등)의 비율이 50%를 넘는다. 또한 'San Jose Mercury News'의 한 기사에 따르면, 2010년 통계 기준으로 실리콘 밸리 IT관련 노동자 중 50% 이상이 아시안이라고 한다.

 

그러면, 전체 인구 가운데 12~13%를 차지하는 흑인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CNN 기사에 따르면, 포츈 500 회사 가운데 흑인을 CEO로 둔 회사는 2015년 현재 5개에 불과하다. 인구 구성 대비 1%에 불과한 수치다. 상하원 535명으로 구성된 연방 의회에서 활동하는 흑인 국회의원은 2015년 현재 100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2명으로 2%, 435명 하원 가운데 46명으로 1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프로 스포츠(특히, 풋볼과 농구의 경우 7-80% 이상이 흑인선수일 것임), 대중 음악과 같은 쇼 비즈니스 분야에서 흑인의 활약은 다른 인종과 비교하였을 때,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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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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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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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존 레전드. 

(레전드는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 대학교 출신임.)



 

교육 수준과 소득의 상관관계

 

2006-2010년 연방 정부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미국 25살 이상 인구 가운데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는 28%다. 즉, 25살 이상 인구 100명 가운데 오직 28명만이 학사,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종 별로 세분하여 보면, 백인은 29%, 아시안 50%, 흑인의 경우 18% 정도이다. 이 중 흑인은 백인 및 아시안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오직 13%만이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인 히스패닉보다는 높은 편이다.

  

미국에서 고등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교육 수준에 따라 소득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2012년 25~34살 풀타임으로 일하는 인력의 연봉 중간값(median)을 최종 학력 순으로 산출한 정부 통계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의 연봉은 6만 불, 학사 학위 이상은 4만 6천 불, 2년제 대학 학위(associate degree)의 경우 3만 6천 불, 고졸은 3만 불,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경우는 2만 4천 불이었다. 따라서, 흑인 청장년층 18%만이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면 나머지 82%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없는 직종에 종사하게 되기 마련이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경우 연봉은 자연적으로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오레오(Oreo)

  

전체 인구 대비 흑인의 고등교육 비율이 백인이나 아시안과 비교하여 낮기에 학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한 과학분야, 학계, 최고 경영에 몸담고 있는 흑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마친 중산층 흑인이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주류 사회에 편입한 흑인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드시 최고 과정은 아닐지라도,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흑인이지만, 게토 지역의 흑인과는 달리 백인과 유사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었다 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오레오(겉은 까만데 안에는 하얀 크림이 들어있는 쿠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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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 

 

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아이비 리그에서 교육받은 최고의 두뇌이고, 그의 부인 미쉘 오바마 역시 아이비 리그 출신이다. 버락 오바마가 전형적 중산층 출신(경우에 따라선 중하로 볼 수도 있겠다)이라면, 미쉘 오바마는 시카고 남부(전형적인 흑인 게토 지역)에서 블루칼라 노동자인 아버지와 비서였던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도 아이비 리그 출신이다. 2012년 미쉘 오바마의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 연설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지병이 있는 몸으로 열심히 일을 하여 아들과 딸의 대학 학비 일부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학자금 대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미쉘과 버락 오바마는 백악관에 입성하기 몇년 전에야 겨우 대출금 전액을 상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도 로스쿨 학비는 비싸기로 유명하다.)


또한 오바마 정부에서 연방 검사장직을 수행했던 에릭 홀더 역시 흑인이고, 그 후임으로 내정된 로레타 린치 역시 흑인 여성이다. 과학계를 보면 닐 드그래스 타이슨(천체 물리학자), 메이 제미슨(박사, 아스트로낫), 벤 카슨(외과의사)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사회 곳곳에 사회 지도층인 흑인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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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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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드그래스 타이슨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과외활동(extracurricular activity)을 하는 아이들 중에 전형적 중산층이나 의사나 교수 부모를 둔 흑인 자녀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갱이나 커스토디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분위기만 다른 게 아니라, 이들은 저소득 계층을 형성하는 흑인들과 사는 지역도 다르고, 인생의 행로 역시 다르다.

 



중산층 동네와 게토

 

캘리포니아의 인구 구성 비율은 미국 전체와는 약간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는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의 다른 지역과 대비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각각 39% (아직까지는 백인이 약간 더 많음), 아시안 14%, 흑인 7%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인종 비율을 보면 백인 58%, 히스패닉 19%, 아시안 13%, 흑인 3%다. 백인이 과반 수 이상이고, 히스패닉과 흑인의 비율은 캘리포니아 평균치를 밑도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로스 앤젤레스 남쪽 컴튼이나 왓츠같은 도시는 히스패닉과 흑인 거주민의 비율이 97%에 이른다. 이런 지역은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와 달리, 저소득층을 이루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가끔 다운타운 L. A.에 볼 일이 있어 갈 때, 차를 가져가는 대신 기차(지하철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지상운행을 하기 때문)를 이용할 때가 있다. L. A. 시내가 대부분 일방통행인데다, 주차하기 번거로워 기차를 이용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롱비치에 가서 블루 라인이라는 기차를 타면 왓츠와 컴튼 지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역에 있는 사람들이나,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 전부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이다. 거리도 지저분하고, 건물 페인트도 벗겨진 채 그대로 있고,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도 눈에 자주 띈다. 이에 반해, 중산층 동네는 주택 보수가 그때 그때 이루어지기에 깨끗할 수밖에 없고, 그래피티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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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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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컴튼이나 왓츠같은 저소득층 흑인 및 히스패닉 인구 거주 지역은 인종 구성만 다른게 아니라, 중산층이 거주하는 도시에 비해 위험한 편이다. 좀도둑도 많고, 리쿼스토어(일종의 편의점)에 총든 강도가 들어오기도 하고, 밤이면 총쏘는 소리가 실제로 들릴 때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하나는 예술가인데, 저렴한 가격에 넓은 스튜디오 겸 주거 공간을 찾느라 소위 말하는 안전한 중산층 동네를 좀 벗어난 곳에 임대를 했다.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사정이 약간 달라져서 지난 몇 년 동안 세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마지막 한 명은 자기가 사는 건물 바로 앞 길에서 죽었다고 하니, 한 동안은 이사가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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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유리로 만든 부스 안에 앉아 있는 캐쉬어.



(다음 편에 계속...)



편집자 주 - 이 글이 300에 올라오고 이틀이 지난 어제(현지 시각 27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경찰 체포 중 척추 손상으로 사망한 흑인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렸고 참가자들의 항의 시위가 대규모 소요 사태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볼티모어 시장은 일주일간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린 상황입니다. 


사망한 프레디 그레이는 유치장으로 이송되는 도중 여러 차례 고통을 호소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시하여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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