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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9. 수요일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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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7.9지진 - 현지 특파원의 생생보고(28일 오후 1시 45분 추가)






1. 세계에 알려야 하는 나 vs 세계 속의 나


본 기자, 260자도 안 되는 반야심경도 자주 틀려서 스님들의 눈총을 받는 날라리 불자다. 공부가 그만큼 짧은지라 한국 스님들은 본 기자에게 심부름은 시켜도 불교 이야기는 안 하신다. 현지는 잘 알지만 가르칠 엄두도 안 나실 테니까. 반면에 외국 스님들은 공통의 관심사(현지에서 땅파기 혹은 인터넷에 연결해서 뭐 어떻게 하는 것)와 공통의 취미(예를 들어 사진)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외국 스님들과 이야기하다가 뭔가 머리를 한 방 맞았다는 이야기를 한국 스님들에게 하면 대체로 ‘아, 저 깡통에 이제 물 한 방울 들어갔구나’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신다.


2007년 초, 룸비니에 있는 스위스 절에 심부름 간 적이 있는데.. 공구함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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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들이 뭐냐고 여쭸더니 스님 말씀이 이랬다.


“뭘 어디에 넣으라고 이야기하면 이 친구들이 자꾸 잊어먹고 악업을 쌓으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저렇게 그려놨다.”


다시 말해, 비싼 스위스 공구를 갖고 튀는 노무자들이 많은데 그거 잡겠다고 몸수색 같은걸 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숫자를 파악하기 쉽도록 해서 훔쳐가지 못하게 했다는 말씀이다. 악업을 쌓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씀이 꽤 신선했다. 그래서 그 이야길 그날 한국 스님들께 했더니 스님들은 ‘저 맹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다가 딱 한 말씀 하셨다.


“그게 수행자란다.”


그런데 그런 스님들도 ‘한국 불교의 세계화’ 이야기를 하실 때는 좀 깬다. 다른 나라 스님들과 기본적인 입장 자체가 아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스리랑카. 언젠가 스리랑카의 꽤 높은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스리랑카에선 매년 어린 학승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이들을 100여 명씩 뽑아서 전 세계로 유학을 보낸다고 했다. 핵무기 같이 위험천만한 것들을 만드는 무도한 서양 놈들을 계도하기 위해서란다. 불자들이 많아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 철학을 가르쳐야 흉악한 물건을 쓸 생각을 안 할 것 아니냐는 것.


세계 속의 한 구성원으로 세계를 어떻게 보고 거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나’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시각은 사실 많은 것을 다르게 만든다.



2.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


이번 지진으로 '네팔을 도웁시다'라는 분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물론 이런 분들을 못마땅하게 보며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라고 하는 분들도 꽤 많다고 한다. 뭐, 하나도 놀랍지 않다. GDP 규모에 걸맞은 ODA(Oversea Development Assistance.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부 개발 원조)예산도 아닌데 그거 쓴다고 난리이지 않나. 의무급식을 '공짜 점심'이라고 부르는 양아치가 언론사 논설위원인데 뭔 소리인들 안 나오겠나.


하지만 ODA 없이 개발도상국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큰 사업인 인프라 사업에 들어갈 방법은 아예 없다. 한국 경제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건축과 토건사업이다. 전임 가카가 강바닥에 22조를 바르자고 했을 때 그걸 OK했던 이들이 더 많았던 이유는 사실 더 이상 한국엔 땅 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쪽 양반들이 자빠지지 않으려면 어딘가 가서 땅을 파야 하는데... 그게 선진국에 많을까? 개발도상국에 많을까?


발주를 잘 받는 이들은 제안요청서(RFP, Requests for Proposal)를 만드는 단계에 참여하거나 아예 그 제안요청서를 만들어다 준다. ODA가 하는 역할이 바로 그런 거다. 사회기간시설을 만들기 위한 설계를 해주는데, 그 설계를 수행하려면 자기네 나라의 특화된 기술을 안 쓰면 아주 난감하거나 좀 힘들게 만든다.


물론 이런 눈에 빤히 보이는 장삿속으로 하는 것들 외에도 하는 지원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어야 물건 갖다 팔지 않나. 잘 먹고 사는 사람들만 구매력이 있으면 시장 과포화 되는 건 금방이다. 시장이 과포화 되면 적조로 양식장 쓸려가는 것처럼 다 죽는다.


부모가 경제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이 굶는 것을 국가가 방치해선 안 되는 것도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인 것처럼, 어느 누구의 생명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봐야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라고 하는 분덜에겐 안 먹히니까 혹시라도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들 할까 해서 쓴 건데... 이 부분만 또 놓고 뭐라고 하면 정말 짜증날 거다. 진짜 하려는 이야기는 그 훌륭하신 분들 덕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하려고 하니까.



3. 트리듀번 공항 풍경


내가 딴지 필진이 된 것은 99년이었는데, 그 때 이후 처음으로 딴지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물품을 공수 받았다. 바로 랩탑의 보조 배터리다. 지진이 난 바로 다음 날이었던 일요일 아침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좋아하는 포스팅을 페이스북에 했다. 이 때 많은 이들이 네팔도 한국처럼 24시간 전기가 공급되는 건 줄 아는 거 보고 조금 황당했다. 네팔은 원래 계획 정전하는 나라다. 겨울에는 최대 14시간, 여름에는 최소 4시간 동안 전기가 안 들어온다. 매일 같이. 지진이 난 날은 하루 6시간 정전되는 스케줄이 시작되던 날로, 그 전 날인 금요일까진 하루 7시간 정전되었더랬다.


보조 배터리가 있으면 계획 정전이 이루어지는 시간에도 랩탑의 모든 성능들을 다 갖다 쓸 수 있으니 전기가 없어서 기사 못 썼다는 소리는 할 수 없게 됐다. 이 보조 배터리는 타이항공 TG0319편으로 날아왔는데 이 비행기, 대박이었다.


UN팀, 미국 NGO인 사마리탄 퍼스, 역시 미국의 어느 도시 응급구조 팀, 여러 나라 취재진이 대부분으로 일반적인 관광객들보다 몇 배는 무거운 장비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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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난민 생긴 공항처럼 보이지만 원래 트리듀번 출국장이 이렇다.



그런데 입국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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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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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탄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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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국 어느 도시의 응급구조 팀(아마 뉴욕?)



같은 비행기로 도착한 한국 구조 팀과 이들은 많이 달랐다. 뭐가? 맞이하는 취재팀도 없었고 그들 앞에서의 인터뷰도 없었다. 왜? 아니, 사람 구하러 왔으면 사람 구하러 현장 달려가야지 뭔 인터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구조 팀은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는 게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라는 분들이 말을 방어해야 하는 한편, 또 다음의 문제를 방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4. 공관 조지기


지진 직후 트위터로 지진 상황을 알렸을 때 지진규모를 알려준 것도 트위터 친구들이었고,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의 피해 상황을 확인해준 것도 트위터 친구들이었다. @trimutri100에 따르면 포카라는 ‘멀미를 잠깐 할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피해는 없다고 했다. 사실 꽤 많은 지역이 그렇다. 그런데 어제 포카라에서 한국의 고등학생들 그룹이 귀국을 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때문에 학부모들이 외교통상부에 강력한 어필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기관에 침 뱉는 걸로 치자면 나도 침 꽤 뱉었던 편인데, 살다 살다 대한민국 관공서 편을 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먼저 부모님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린다. 더군다나 작년에 바로 연안에서 304명이 죽는 것을 라이브로 멍청하게 보기만 했던 경험 때문에 험한 나라에서 재앙이 터졌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걱정할지 잘 안다. 나만 하더라도 ‘지진 지나갔는데 괜찮다’라고 바로 알렸고,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라는 말만 듣고 전화를 끊었지만, 뉴스 나오는 것 보고 부모님이 다섯 번 넘게 전화시도를 하셨었다.


하지만 네팔은 평소의 생활이 재난 대비 상황이다. 그래서 거꾸로 이번 재난에 쉽게 적응하고 대응을 하고 있다면 이해하실 수 있겠는가? 앞서 말했지만 하루에 전기가 들어오는 게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20시간이다. 그 시간에 맞춰 전기 쓸 계획을 만들어서 전기를 쓴다. 물론 제 시간에 안 들어오는 경우도 꽤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아껴 쓴다.


카트만두의 상수도 시설은 2019년 완공예정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가정에선 지하수를 퍼 올려 탱크에 담아두고 쓴다. 외국인들끼리 술자리에서 자기 사는 집 자랑할 때 ‘인터넷이 빠르다, ’주인이 좋다‘, ’교통이 편하다‘ 등등의 소리를 하는 넘들은 다 초짜들이고 좀 연식 되는 넘들은 딱 하나 밖에 안 물어본다. ’너네 집 물탱크 몇 개니?‘ 물탱크 3개 이상이면 걔가 짱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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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먹는 집



그렇다 보니 없는 물을 최대한 아껴 쓰는 것이 일상이다. 최소의 물자들을 가지고 최대의 안락한 방법을 찾는 것이 네팔에서의 생활이다.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재해대책본부가 담요 나눠주고 뭐 이러는 거, 전혀 불필요한 행동이다. 연식 좀 되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서들 다 하고, 어리버리하고 있으면 주변의 네팔 사람들이 다 도와준다.


뭔 이야기냐면 애들이 좀 꼬질해지긴 했을지라도, 그리고 밥이 입에 안 맞아서 끼니를 덜 챙겨 먹을 수는 있었겠지만, 작년 4월 16일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 왜 빨리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못하냐고 외교통상부에 항의하시고 계시다는데 그러면 더 아이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첫 번째, 진앙이 포카라와 카트만두 사이였다. 그 사이에 있는 도로들의 상태가 상당히 안 좋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들을 하는데 만도 며칠은 걸린다. 공항도 마찬가지인 게, 지진이 지나갔는데 활주로 상태만은 완벽할 리가 없지 않는가? 지금은 구조 팀들이 장비들 갖고 들어오는 게 우선이다. 이들이 들어와서 전문 장비로 빠르게 정비하지 않으면 위험천만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띄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께서 항의를 하시면 청와대 사투리 쓰시는 분이 직접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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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위터 @murutukus)



이 분의 명령을 해석해서 그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면 견적이 나올 것 같은가? 작년 세월호 당시에도 생뚱맞은 상황에서 의전을 신경 쓰게 만들고, 구조 팀에 혼선을 일으키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분이 움직이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게 된다. 모쪼록 걱정들 많으시겠지만, 간만에 혼연일체로 재난을 극복하려고 하고 있는 네팔인들을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5. 나가며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 그런데 세금을...”


이라며 쥐 눈꼽 위의 먼지만큼 세금 내시는 분들 덕택에 구조대는 구조지역으로 빨리 달려가고 보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한국은 그럴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더불어 사건이 터지면 일단 공관을 조지는 걸로 시작하시려는 분들 덕택에 네팔 기준으로는 ‘괜찮은 상태’에 있는 아이들을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관은 왜 이걸 설명 못하냐고? 이 내용을 모두 읽는데 몇 분 걸리는가? 그리고 당신들이 TV에서 네팔 소식에 신경 쓰는 것은 몇 분인가?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 많다’고? 한국은 그 문제를 해결할 자체적인 능력이 있다. 그에 반면 여기는 의지는 충만한데 자원과 그 자원을 능숙하게 활용할 전문적인 인력이 없다. 그리고 아니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 목숨 구하자고 하는데 뭔 소리들이 그렇게 많은가?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