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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살아오며 가장 예를 갖추는 몇 가지 의식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떤 시대의 문화와 가치 속에서도 동일한 것이 바로 '장례'에 대한 '예'겠지요. 그만큼 '장례'라는 것은 슬픔을 당한 가족들이나, 조문을 하는 손님에게나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의식입니다. 한국문화 속에서는 이러한 '장례'와 때어놓을 수 없는 것이 '제사'일 텐데 해마다 명절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이 됩니다. 이에 그리스도교가 가진 교리적 부분, 성서적 본질을 가지고 '제사'라는 걸 한 번 건드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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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에 대한 '절'을 문제 삼게 된 역사적 배경


보통 가톨릭 형제들은 장례식에 가면 영정 앞에 절을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경우 절은 하지 않고, 국화를 두고 고인을 위한 기도로 대처하고, 절은 상주에게 '예'로서만 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런 차이를 가지게 된 이유는 큰 범주에서 '고인에 대한 절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있습니다. 


쉽고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가톨릭은 고인에게 절하는 것을 '조상공경-문화'로 인식했고, 개신교는 '조상숭배-우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지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가톨릭도 개신교도 반대했지만 결국은 모두 참배하게 되어버렸던, 쓰린 역사였죠. (그래도 장로교 고신파와 몇몇 개신교 목회자 및 성도들은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고인에게 절'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여겨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인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이 '신사참배'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일본 내에서도 신사참배는 개신교, 가톨릭에 거부(1917년 나가사키교구 반대사건) 당하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나라에 와서 강요하니 개신교는 두 말할 것 없이 반대했고(이런 즉각적 대응이 성서에 대한 문자적 이해의 장점일지도...), 가톨릭도 1925년 교리교사를 위한 <교리교수지침서>를 통해 거부선언을 했던 겁니다. 당시 공립학교마다 신사참배 문제에 반발한 가톨릭, 개신교 학생들의 자진 퇴학이나 휴교 등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개신교는 1930대 말 각 교단별 총회에서 일제의 무력과 협박으로 신사참배 허용을 가결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은 1932년 일본 천주교회 동경 대주교가 신사참배가 애국심을 위한 시민적 예식인지 종교의례인지를 문부대신에게 물었고 시민적 예식이라는 답변을 받자, 일본 주교들이 이에 근거해 신사참배를 허락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로마 교황청이 1936년 5월 18일 신사참배를 허용하는 훈령을 내렸고, 교황사절 마렐라(Marella)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국체명징(國體明徵)에 관한 감상(感想)>이란 서한을 통해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권하게 되었지요. (바티칸의 경우 당시 이탈리아와 일본은 동맹국이었으므로 정치적 배경에서 신사참배가 허용되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물론 교황청의 훈령에도 가톨릭 형제 중 개신교 형제들처럼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 돌아가신 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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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거부로 체포되었다가 고문으로 옥사한

주기철 목사


문제는 이런 역사적 부분이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죠. 먼저 개신교의 경우 이 신사참배 가결 건이 총회 자체 의지가 아니였기에 매우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결 이후 적극적 친일에 가담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신사참배에 대한 사죄 여부가 훗날 장로교 교단 분열의 이유가 되기도 할 정도였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폭력과 강압에 의한 가결이었기에, 타의에 의해 그 가결을 선택한 이들의 처리 문제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사참배는 잘못했지만 강압에 의한 선택이었기에 자신들이 사죄하는 것은 거부해버린 개신교 목회자들은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지 '신사참배' 비슷한 일이라면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절'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우상숭배'라는 강력한 입장을 내세우게 된 거죠. 


다시 말해 장례에서 고인에게 절하는 것이나, 제사 때 조상에게 절하는 것에 대해 그토록 한국개신교가 반대하는 역사적 배경이 바로 이 신사참배의 트라우마에서 왔다고 분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트라우마에 우상숭배(십계명)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첨가된 까닭도 있습니다. 가톨릭의 경우, 교황의 결정이 절대적이었고 번복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장례와 제사의 몇 가지 요소에만 유의하는 조건으로 '문화'로 받아들인 점에서 (공의회 결정의 내막에는 1791년 신해교난 등 각 나라에서 비슷한 경우로 천주교 신자들이 받아온 박해와 고통이 있었기 때문) 개신교보단 교리적으로 확정된 부분과 유연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가톨릭은 '조상공경-문화'로, 개신교는 '조상숭배-우상'으로 인식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2. 제사와, 장례에서 고인에게 절하는 것이 '조상숭배'인가의 문제 


원래 그리스도교가 조상에 대해 배타적인 전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선조들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앞서 가톨릭의 경우 몇몇 요소에 유의하는 조건으로 '제사'와 '절'을 '문화' 받아들인다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 유의점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부분입니다. 


첫째, 인간이 죽으면 영혼이 독립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 


둘째,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영이 현세에 살아있는 인간과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는 것

(김동건 교수 책발췌) 


위 두 가지는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가 부정하는 부분입니다. 가톨릭의 경우 이 부분을 제외하고 '문화'로 인식하고, 개신교는 이 부분들이 '제사'에 있어 절대적이라 보고 반대하는 것이죠. (여기엔 당연히 교단적 차이도 있긴 합니다. 한 예로 고 문익환 목사님의 경우 고인에게 절하기도 하셨습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사에서 쓰이는 '지방'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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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불러들이는 것은 위의 이유로 가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반대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도 '제사'에 대한 개념을 '관습' 혹은 '문화'로 봐준다 함은 '지방'을 붙인다든지, 문을 열어 귀신을 불러들인다든지 하는 것들이 배제된 상태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보셔야 합니다. 무조건 '관습적'이라 인정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지방을 붙이지 않거나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 하여도 이 제사를 한다는 '관습' 자체가 귀신에게 복을 비는 행위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논란이 있겠습니다. '제사'란 것의 기원까지 올라가 보면 처음에는 국가가 드리는 일종의 '기원'의 방식이었고, 이것이 각 지방과 가정으로 내려오면서 겉으로는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지만 사실상 당시 먹고살기 어려운 가족들이 그 날만은 함께 모여 나누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이 '제사'에 깃든 실질적 의미였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사나 장례의 개념이 조상을 생각하며 미래를 각오하고 가족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조상숭배-우상'이라고 볼 수는 없게 됩니디. 즉, 제사나 장례에 대해서 죽은 영혼을 믿고 숭배하는 모임이 아닌, 가족이 함께 모이는 행사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상공경-문화'로 인지해야 된다는 겁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하나님 안에서(마태복음 22장 32절, 마가복음 12장 27절, 누가복음 20장 38절, 사도행전 10장 42절, 로마서 14장 9절) 살아있는 부모님을 공경하듯 (출애굽기 20장 12절, 신명기 5장 16절, 에베소서 6장 2절) 돌아가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정한 형식과 예배가 있다면 개신교인의 제사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강신, 초헌, 사신 같은 절차나 지방을 붙이고 문을 열어놓는 제사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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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




3. 세부적 궁금점들


첫째, 그럼 고인에게 절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건가요? 


가톨릭의 경우는 제사에서 지방이 없는 경우, 허용하고 장례식에서 고인에게 절하는 것 역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고인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의미, 즉 문화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고요. 개신교의 경우는 두 가지 모두 통념상 반대하고 있죠. 


사실 개신교에서 이 부분들을 반대하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의 트라우마와 문자주의적 해석이 있습니다. 


아울러 제 개인적으로 '절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① 제사는 배제하고 장례의 경우 고인과 일면식이 별로 없을 때 

존경과 공경의 의미로 절을 할 수 있는가? 


② 절을 안 하는 것도 덕이 안 될 수 있으나, 현 개신교에 대한 문화적 인식 상 

절을 하는 것도 덕이 안된다(로마서 14~15장 참조). 



둘째, 절하고 싶지 않은데, 부득이하게 절해야 될 때는 어쩌죠? 


마음에서 절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상황에 따라 해야 한다면 열왕기하 5장 18~19절의 나아만과 엘리사의 대화를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중심에 누가 있느냐겠지요? 



셋째,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은 우상의 제물로 볼 수 있나요? 


먹어도 됩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죠(고린도전서 10장 25~26절). 


음식 자체는 문제가 안 됩니다만 나의 믿음 때문에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8장 9~13절).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누군가 실족하거나 상처받는 것은 피해야겠죠? 



넷째, 장례식에서 국화가 없을 때, 향을 피우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요? 


가톨릭의 경우 향을 피우는 것을 허용합니다. 개신교의 경우는 국화가 없다면 고인을 위해 기도만 하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향을 피우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 과거 집안에서 상을 치를 때 시체의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서. 


② 혼령을 초청하고 그 연기를 따라 하늘로 가게 하는 강신적 의미로. 


가톨릭의 경우 ①의 이유 즉, 문화적 배경의 차원으로 보아 허용하고 있고, 개신교의 경우 ②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앞서 여러 질문들과 같이 자신의 믿음대로 하되, 실족게 하지 않는 행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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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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