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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World!"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장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나오면서 프로그래밍을 연습할 때 아주 간단하게 Print 구문을 이용해서 출력하는 첫 문장으로 관례적이 되다시피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에 우주공간에서 지구로 이와 비슷한 뜻을 지닌 신호가 발신되었다. 그 문장은 "삡~ 삡~ 삡~" 이었지만 "안녕, 지구!"와 다름 없었다. 수많은 지구인이 그 신호를 듣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그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차 대전의 종전과 V-2 로켓기술의 확산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개발한 로켓, 최초로 우주권 진입이 가능했던 로켓 V-2는 전리품이 되어 승전국들이 나눠 갖게 되었다. 특히 핵심 과학자와 기술자 대부분을 확보한 미국은 폰 브라운을 위시한 독일 공학자들을 모두 미국으로 데려와 계속 로켓을 개발하도록 하였다. 미국은 독일에 있던 V-2 로켓의 완제품 및 잔여 부품, 생산시설 다수를 획득하여 본국으로 운반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반면 소련이 점령했던 독일 지역에는 V-2의 주요한 연구시설, 기술자, 잔여부품 등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서, 소련은 겨우 십여 기의 V-2를 조립할 수 있는 부품들과 기술자 일부만 획득할 수 있었다(미국은 V-2 100여 발의 완제품 및 부품을 확보). 소련 역시 로켓기술의 획득에 적극적이었지만 미국과 다르게 독일의 로켓기술을 입수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독자적인 개발이 절실하게 되었다.


소련은 인류 최초로 구체적인 우주로켓 이론을 제시했던 러시아 치올라코프스키의 영향으로 우주로켓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여러 로켓연구 클럽이 생겨났다. 당시 폐쇄적인 소련의 사정상 이들의 연구는 유럽, 미국 등의 연구자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나 차근차근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고 액체연료 로켓엔진을 개발하는 등 유럽, 미국의 개발에 크게 뒤처짐이 없었던 편으로 보인다.


1928년, 레닌그라드에 GDL(Gas dynamic LAB)이 설립되었고 발렌틴 글루시코(Valentin Glushko, 1908~1989)라는 젊은 공학도가 그곳에 소속되어 연구를 시작했다. 1931년, 모스크바에 MosGRID(Moscow Group for the Study of Reactive Propulsion)이 설립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 1906~1966)라는 젊은 공학도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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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세르게이 코롤료프 / 오른쪽, 발렌틴 글루시코 


두 연구기관은 모두 소련 정부의 지원으로 활동했으며 글루시코의 GDL은 소련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엔진을 개발했고 로켓기술 기초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 코롤료프는 정부와의 관계를 능숙히 다룰 수 있는 정치적 수완이 좋았기에 GRID의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1938년,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는 대숙청이 일어났으며 당시 비행기 공학자들과 배타적인 관계에서 미움을 받던 로켓공학자들은 모두 반혁명세력으로 몰려서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로켓의 군사적 이용이 필요해지자 몇 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던 로켓공학자들은 복귀하였으나 엄중한 감시하에 제한적인 연구 활동만 재개할 수 있었다. 전쟁 후 독일 V-2 로켓 일부 부품이 소련으로 운반되었고, 수천 명의 독일 기술자들이 소련으로 압송되어 기술적 자문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롤료프 등의 소련 로켓공학자들은 그들의 로켓지식을 이용해서 분석하여 V-2 로켓을 조립하는 데 성공한다. 소련의 로켓공학은 정치탄압으로 몇 년간 정체되었지만 기초분야에서는 이미 독일의 로켓을 역분해,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당시 소련에는 여러 그룹의 로켓관련 연구기관이 있었는데 코롤료프가 V-2의 복제품을 발사하는데 성공하자 위상이 높아졌고, 다른 5개 연구기관의 책임자(글루시코, 바민, 쿠즈네토프, 필유긴, 리잔스키)를 불러서 향후 협력하여 우주로켓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모두 훗날 소련 우주로켓공학에 중요한 인물들이 된다. 특히 글루시코가 책임지던 OKB 456은 현재에는 NPO 에네르고마쉬라는 세계 최대의 로켓 엔진 제작사가 된다.


코롤료프를 위시한 소련의 로켓공학자들은 V-2의 복제품인 R-1 로켓을 개발한 뒤에 R-2, R-3, R-5에 이르기까지 로켓을 개량하였고 사거리 1,000km를 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개발하였다. 1950년대에 냉전이 가속화되면서 핵무기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의 필요성이 증가했고, 결국 소련에서 미국까지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 구상되기에 이른다.


코롤료프와 몇 년간 강제 수용소, 감금된 연구개발로 사실상 동료가 된 글루시코는 이를 위해 RD-107, RD-108엔진을 개발하여 1957년에 첫 발사에 성공한 역사상 최초의 ICBM인 R-7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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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로켓, 초기에 3톤 페이로드에서 5.5톤까지 증가하였다


1957년 8월, R-7은 여러 차례의 발사 실패를 극복하고 중앙아시아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현재 소유즈 우주선을 쏘는 곳)에서 발사되어 5,000km 넘게 떨어진 극동 캄차카 반도에 모의 탄두를 탑재하고 도달한다. 당시 소련의 기술력으로 핵탄두는 5톤의 무게였으며, 이를 위해 5톤의 페이로드(로켓의 화물운반중량)를 거의 위성궤도까지 보낼 수 있는 로켓이 필요했으므로 R-7은 처음부터 꽤 중량물을 우주로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 후르시쵸프는 코롤료프와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여겨지며, 코롤료프와 자주 통화를 하며 R-7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로켓개발이 강행된 탓에 코롤료프와 동료들은 심한 압박에 시달렸지만 결국 일정에 맞추어 ICBM을 개발해냈다. 이와 함께 코롤료프는 후르시쵸프를 설득하여 R-7 로켓을 이용하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자고 제안한다. 후르시쵸프는 결국 이를 승인하였으나 이미 무리한 개발로 지친 다른 로켓공학자들이 성급한 인공위성 개발을 주저한다. 코롤료프는 이들을 설득하였으며, 미국이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 한창 개발 중이던 뱅가드 로켓의 개발일정을 고려하여 급하게 임시변통으로 제작된 작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로 한다.


1957년 10월 4일, 역사상 첫 ICBM이 발사 성공한 지 고작 3개월 뒤에 소련은 R-7 로켓에 탄두 대신 83.6kg에 불과한 구체에 간단한 안테나와 송신 장비만 부착한 '스푸트니크 1호'를 장착하고 발사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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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1호


- 발사일 : 1957년 10월 4일

- 신호 : 20MHz, 40MHz 대역 (22일간 송신)

- 비행기간 : 92일 (대기권 추락시 산화)

- 무게 : 83.6kg

- 궤도저점(Perigee) : 215km

- 궤도고점(Apogee) : 939km

- 궤도경사각(Inclination) : 65.1°

- 공전시간 : 96.2분 (하루에 약 15회 공전)

- 발사체 : Sputnik 8K71PS (R-7 개조버젼)

- 발사장소 :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카자흐스탄) 




1903년, 치올코프스키가 최초로 인공위성의 원리를 <반작용 모터를 이용한 우주 공간 탐험>이란 책으로 제시한 이후 54년 만에 첫 인공위성이 우주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스푸트니크 1호는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되었으며, 전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도록 두 가지 전파채널로 단순하게 "삡~ 삡~ 삡~" 신호를 주기적으로 발신하였고, 대대적인 소련의 선전으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무전기를 하늘로 향하고 그 소리를 들으며 인류 첫 인공위성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안녕 지구인들! 나는 인공위성입니다"라고 하는듯한 이 신호로 인해 당시 세계 최강국을 자처하던 미국은 큰 충격을 받으며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 그 쇼크는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공습을 당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니 짐작할 수 없는 정치적, 국가적 치명타를 입게 된다.



Tip : R-7 로켓이란?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명예를 얻게 된 우주로켓 R-7은 1957년 첫 발사 이래로 2015년 현재까지 꾸준하게 개량되어 발사되고 있는 세계 최장수 베스트셀러 로켓이다. 거의 1,000회 가까운 발사 횟수를 자랑하며, 개량도 이어져 신뢰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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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독일로부터 입수한 V-2 로켓의 복제판인 R-1부터 시작하여, R-1의 길이를 늘이고 사거리를 두 배 늘린 R-2, 알콜 대신 케로신을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R-3를 거치면서 자체적인 로켓엔진의 설계 능력을 키웠다. 이후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군부의 요구로 당시 수소폭탄을 적재하기 위해 5톤 이상의 페이로드를 요구받는다. 5톤 이상의 탄두를 탑재하고 7,000km 이상의 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R-7을 완성하지만, 페이로드의 무게를 줄일 경우 그대로 소형 인공위성을 지구저궤도(LEO)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를 이용해서 미국과의 정치적 패권경쟁을 위해 83.6kg의 스푸트니크 1호 위성을 쏘아 올린다.


러시아의 로켓명칭은 서구와는 달라서, 위 그림과 같이 맨 좌측의 R-7(ICBM), 좌측 두 번째의 스푸트니크로켓(R-7의 탄두를 위성체로 교체한 것), 가운데의 보스토크로켓(R-7을 개량하고, 상단에 3단 로켓 장착), 우측의 소유즈 로켓까지 있지만, 정식명칭은 코드명으로 되어 있다. R-7 로켓은 8K71이며, 이후 개량된 다른 로켓은 코드명이 다르지만 R-7 패밀리라고도 부른다.


R-7은 처음에 다단로켓으로 개발할 예정이었으나, 비행 도중에 단을 분리하고 2단을 점화시키는 것이 당시 기술적으로 불확실해, 처음 지상에서 이륙 시 1, 2단을 모두 같이 점화하는 방식이 되었다. 부스터처럼 주위에 붙은 4개의 로켓을 1단이라고 부른다(러시아는 부스터를 전통적으로 1단이라 지칭).


1단과 2단은 각각 4개씩의 비교적 소형로켓엔진을 클러스터링해서 구성하며, 1단은 2개씩의 추력편향 조절용 소형엔진과 2단은 4개의 추력편향 조절용 소형엔진을 또 부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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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복잡한 구성은 당시 소련의 로켓엔진 기술로는 큰 추력을 내는 대형로켓엔진을 개발할 여유가 없었기에, 기존에 확보한 기술력으로 무거운 페이로드 중량을 우주로 날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계속된 발사와 개량으로 이제는 매우 신뢰성이 높은 발사체로 진화했다.


R-7 ICBM은 발사를 위한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 등으로 얼마 되지 않아 신형 ICBM으로 교체되었지만, 발사체 자체는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시리즈를 계속 발사하며 이윽고 사상 첫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까지 발사하게 된다. 1960년대에 미국과의 달 탐사 경쟁 와중에 N1 로켓이 대형로켓으로 개발되지만 실패했고, 당초 달 탐사에 이용될 예정이었던 7톤 중량의 소유즈 우주선을 신뢰성이 입증된 R-7의 발사체 시리즈에 계속 장착하여 우주로 보냈고 첫 개발 이후 57년이 지난 2015년 현재에도 중국의 창정2F 로켓과 함께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올리는 유일한 로켓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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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를 쏘아 올린 R-7의 개량형, 보스토크 로켓 8K72K


중국은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을 위해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로부터 소유즈 우주선 기술을 이전받아서 선저우 우주선을 비교적 빠르게 개발하였으며, 선저우 우주선의 발사체인 창정 2F 로켓은 외형상 소유즈 로켓(R-7의 진화형)과 유사하나 엔진의 원리는 다른 편이다. 중국은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로켓을 상당부분 모방하였으나 발사체 기술은 제대로 이전받지 못해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편이다.


러시아는 소유즈 우주선과 로켓을 대체하는 차세대 유인 우주선 계획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여건상 막대한 자본과 실험이 필요한 신규개발 대신 기존의 소유즈를 당분간 계속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R-7부터 시작된 R-7 패밀리 로켓은 최소한 60년은 넘게 사용되며 인류의 우주개발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발사체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 References ]


1. 영문 Wiki - Sergei Korolev, Valentin Glushko, R-7 Rocket

2. 위키백과 - 스푸트니크, 코롤료프

3. 엔하위키미러 - 스푸트니크

4. 네이버 SNW님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snw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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