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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집사람도 대인관계가 좁다. 어렵게 살던 시절동안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관계 맺기와 이어가기를 포기하고 살았다. 해서 자존감을 내려놓지 않아도 돼는 비슷한 사정과 성향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서로의 아픈 구석을 내보이는 것이 상처가 되지 않고 위로가 되는 친밀감은 조심스럽다.

 

남자아이들이 동갑이고 처지가 비슷해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아이들이 한참 자랄 적에 아버지가 암으로 죽었다. 남편이 살았을 적에 가깝던 사람들도 무서워지고 돈을 빌려갔던 형제도 연락이 끊긴다. 살림만 하던 여자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공장을 다닌다. 부자는 아니지만 바람막이 안에서 부족함을 딱히 실감하지 못하고 살던 오누이의 생활도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사라진 만큼 어머니의 역할을 나누어야했다. 빨래를 하던 어린 여자아이가 일 중에 전화를 해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냐."며 울먹이던 이야기를 하며 엄마도 눈시울을 붉혔다. 집사람에게도 그랬지만 어려운 생활 중에 자녀를 버리지 않고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엔 우호감과 동경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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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이다 보니 아이들과도 제법 친해졌다. 씩씩하고 활달한 사내아이보다 여리고 약해보이는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더 갔다. 엄마를 닮아서 너무 작고 말랐다. 사내아이는 4년제 대학을 들어가고 연년생인 여자아이는 집 가까운 2년제 대학으로 갔다.

 

사내아이는 군대를 가고 여자아이는 진로를 공무원으로 정했다. 2년 동안 매일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요즘 세상에 공무원 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교수와 선임들에게 성실함이 잘 보였는지 졸업을 한 후에 조교 일을 하면서 계속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다.

 

고교 졸업을 할 때 대학가면 결혼하기 전까지 남자친구 열 명은 사귀어보라는 농담을 했다. 방긋 웃으며 쑥스러워하던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갔다. 한창 곱고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듯했다.

 

간만에 만난 지친아이의 얼굴을 안쓰러워하는 내게 아이 엄마가 말했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펑펑 울었단다. 김연아도 연애를 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상대는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만나고 연락할 시간이 어긋나면서 미안한 마음에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단다. "서로 좋은 마음인데도 상황이 안 돼 헤어지는 게 억울했는데 울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아지더라."고 말하는 아이가 안쓰럽고 대견스럽다며 아이가 자란 만큼 나이를 먹은 엄마가 말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지켜봐주고 응원하는 것 외엔 다른 줄 것 이 없다. 삼십분을 걸어 통근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인 시화공단으로 간다. 자동차 부속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거의 매일 잔업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잔업은 자유라지만 공단에서 집으로 돌아올 교통수단이 없다. 하지만 잔업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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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면 사내아이는 전역을 한다. 여자아이는 조교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능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내년엔 제대로 공부만 하겠다고 말한다. 아이엄마가 노동개혁이라 발표되는 임금 피크제 일반 해고에 대해 묻는다. 원청사인 현기차 파업에 대해 묻는다. 대답이 궁하다.

 

마치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순서처럼 노동자의 처우를 하향시키자는 발언이 정치권에서 나오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대를 한다. 노사정 합의는 파행을 거치다가 민주노총은 투쟁을 선포하고 한국노총은 남아 극적인 타결을 한다. 절박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극렬한 저항을 한다. 민주노총은 응어리를 풀 적당한 투쟁을 하고 한국노총은 김이 빠질 적당한 타협을 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되어있는 듯하다. 임기가 끝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같은 당 정치인으로 입문하기도 하고 서로 상대 당으로 갈라서기도 한다.

 

그나마 저항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민주노총 앞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시위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 정말 기득권이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쉬운 상대를 고른 것 같다. 절박 할수록 기회주의적으로 되기 쉽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다음세대들의 기회주의는 처절하고 불편하다. 민주노총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혹시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지만, 정부와 기업가들을 상대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에서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정년이 지난 기술직들을 임금을 줄이고 재고용 하던 게 임금피크제였다. 정년 전이라도 일정 연령이 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임금 피크제를 적용해서 급여를 줄인다. 회사가 어려울 때만 하겠다던 정리해고는 치열한 법리 싸움을 거쳐 몇 년 후의 경영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단행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상이 틀릴 수도 있지만 잘못은 아니다.

 

그마저도 불편하고 거쳐야할 수순들이 많은지 성과에 따른 일반해고를 들고 나왔다. 성과는 절대평가라 공정하다지만 믿는 사람은 없다. 공기업인 케이티에선 교환수로 근무하던 아주머니를 퇴사를 종용하다 거절하자 현장직으로 배치해 전봇대를 타게 했다. 그리고 업무성과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렸다. 사주가 노동자들을 종놈 보듯 하는 사기업에서는 더한 일들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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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들도 바보는 아니라 일할 사람이 남지 않도록 무턱대고 사람을 자르지는 않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건방지게 입바른 소리하던 사람들만 좀 솎아내면 남은 사람들은 눈길을 피하고 굽신거린다. 노동조합이니 내부고발자니 하는 골치 아픈 일들을 원천 봉쇄 할 수 있다. 경영승계나 유산상속에 태클 걸 놈이 없으니 법무 법인을 통하거나 관계부처 공무원들에게 기름칠만 좀 하면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일반 서민부모들도 자식을 사랑한다. 앞으로의 살아갈 삶에 방향을 잡아주고 힘을 싫어주고자 교육을 한다. 공부에 모두가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시키는 부모도 있다. 공부보다 운동이 길이 좁고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고 짝을 지을 때 여유가 된다면 집 한칸 마련해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란다. 형편들이 안돼서 못하는 거지.

 

경제력이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하고 살게 건물 한 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럭저럭 성공하고 대우받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업을 승계 시킨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삶이 후대의 삶 속에 녹아 영속성을 얻는 기분인 것 같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잊혀져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현상은 어쩌면 소극적 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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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뚜렷한 주목을 받을 뿐인 정권과는 또 다른 힘이 존재한다. 권력자가 원활한 통치를 하기위해선 협조를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에 협조하는 대신 반대급부를 얻어간다. 먹고 살기에 여유롭고 충분히 명예로운 자신들의 삶 보다 자식들의 편의를 봐주는 쪽으로 마음을 쓴다. 자신밖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제 자식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보면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카드로 바꾸면서 뒷면의 병역 표기란을 없앤 사람들의 자녀들은 그래도 국적을 유지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특채하는 법을 만든 사람들 자녀들의 국적이 궁금하다. 취학연령이 된 미군자녀가 한국계 아이들때문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다른 집 아이들의 죽음 따위는 이해관계를 따져보고 충분히 냉정하고 이성적인 대처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식사랑은 일방적이다. 유학 중에 뽕을 맞아 주사파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내칠 수가 없다. 주사파의 대부 황장엽씨도 국립묘지에 묻혔다. 전공이나 능력과는 무관하지만 가업인 기업을 승계한다. 비록 무리라 있다 하더라도 힘으로 누르면 순리는 무너진다.

 

하나로 뭉치면 다스리기 불편한 노동조합은 복수노조를 만들어 쪼갠다. 사사로운 정의감으로 불복종의 기운을 풍기는 직원은 징계해고로, 조직적인 움직임은 정리해고로 잘라낸다. 법치를 믿는 순진한 노동자들은 부당해고를 법에 호소한다. 법은 정의를 말하지만 사적으로 연결된 정으로 작동한다. 자주 보고 살 사람 불편하게 해서 좋을 것 없다. 편을 들어 줄래도 명명백백하게 법조문을 위반한 사건이나 지나치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일은 차마 사사로운 정을 핑계로 원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할 때도 있다.

 

섭섭하지만 서로의 입장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다. 법을 바꾸면 된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이유로 하는 정리해고나 조직문화에 녹아들지 못하는 개인을 솎아내는 징계해고가 불편하다면 상시적으로 해고가 가능하게 법을 바꾸면 된다. 보유자본이 인격이고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대다수가 살기 위해 영혼을 팔 준비가 되어 있다. 감히 사주의 심기를 고려하지 않고 자식들의 경영승계에 토 달 사람이 없다.

 

한 목소리만 내는 조직은 무한경쟁 시장에서 장기간 존속하기 어렵다. 돈이 흐르는 길목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는 독과점을 꿈꾼다. 법으로 보호막을 세울 테지만 저들 끼리 정한 법보다 강한 외국의 힘이 들어올 경우 자력으로 버텨낼 수도 없다. 괜히 조상들이 귀한자식일수록 엄하게 가르치라 한 것이 아니다. 지킬 능력이 없는 부와 권력은 재앙이 된다.

 

음서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나마 사람 흉내 내며 살길은 공무원이 되는 길이다. 경쟁률이 높다. 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하위 공무원직은 할 것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시험을 보지 않고 공무원이 된 사람들도 많았다. 수년의 노력에도 한 끗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진 아이들은 절망하고 괴로워하다 분노한다.

 

5.16 에도 비슷한 이유가 있었다. 능력에 비해 쉽게 별을 단 선배들과 다르게 수 십년간 별을 꿈꾸기도 어려운 처지를 절망하고 원망하던 육사 8기생들이 군복을 벗을 위기로 몰린 박정희를 추대하고 벌인 도박이었다. 절망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순응하고 조용히 자신을 죽인다. 자신만 죽는 게 억울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신 죽을 대상을 고른다. 증오범죄가 일어난다. 자존심과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차라리 세상을 뒤집어 버린다. 실패하면 반란이지만 대의명분을 찾고 적용할 수 있다면 쿠테타는 혁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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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쿠테타 세력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그런 징조가 아니었으면 한다. 차라리 모든 아이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옳다. 기본 소득제라는 말이 있다. 일꾼들이 배가 부르면 손이 느려지는 습성을 우려하는 사회 지도자도 있지만 산업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나서서 모내기를 지원해야하는 농업 사회도 아니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벗겨내는 산업화 사회도 지났다. 자본의 투입만큼 고용이 늘어나지 않고 투입되는 노동력의 양이 생산성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많은 누군가는 지금까지 있었던 직업과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놀고 먹는 게으름뱅이도 일정부분 존재 하겠지만 제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다양한 방향으로 구현되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발생할 것이다.

 

정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면 내수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서민들의 봉급을 건들기 보다는 고위공무원들과 대기업 임원들의 임금을 손대는 편이 좋다.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면 법정근로시간을 줄이면 된다. 세금이 부족하면 세는 곳을 막고 공정한 집행을 하면 된다.

 

지금 정부와 기업이 주장하는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가 시행되면 살아남기 위한 기회주위는 복지부동과 충성경쟁으로 발현된다. 판단을 명령권자에게 맞기고 명령만 따르던 경찰 간부 수 십 명이 모여 있던 행사장에서 육영수여사가 총을 맞았다. 이상행동이 있었고 돌발 상황이 발생했지만 명령없이 움직이는 경찰은 없었다. 비극을 막지 못했다. 충성경쟁을 벌이던 심복에 의해 박정희대통령이 총을 맞았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