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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재판, 엇갈리는 운명


원세훈이 석방되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2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지 240일 만에 보석을 받은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은 아니지만, 8개월 만에 마시게 된 자유로운 공기는 원세훈에게 보석만큼 값지게 느껴질 것이다. 격하게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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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풍. 당. 당.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국정원장 퇴임 후 불과 석 달 만에 기소당했던 원세훈의 법정투쟁을 돌아보자. 1라운드로 치러진 개인비리 사건에서는 1심 징역 2년, 2심 징역 1년 2개월의 유죄판결로 현재 스코어 패색이 짙은 상황이다. 원세훈은 작년 9월로 구속기간이 1년 2개월을 넘어서며 석방되었지만, 대법원은 그 후 1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판결 확정을 미루고 있는 중이다. 1심과 2심이 각각 6개월 만에 선고까지 이르렀던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시간을 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주심 고영한 대법관과 대법원 제1부 소속의 대법관, 재판 연구관 모두 분발들 하시라. 아울러 원세훈은 2심 도중에 업계 2~3위를 다투는 로펌인 태평양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는데 과연 돈 쓴 보람이 있을지도 주목된다.


한편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개인 비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심에선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선거법 위반은 무죄라는 '무죄인듯 무죄아닌 무죄같은' 결론으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그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전작 '무죄인듯 무죄아닌 무죄같은 유죄판결'을 참고하시라!) 되었다. 2심에서는 국정원법 위반은 물론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라는 결론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해 버렸다.


그 와중에 이 사건을 기소하려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낙마했고,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도 정직 1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좌천되었지만, 기소를 막으려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무총리로 영전했다. 의지를 갖고 수사하려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제복을 벗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모해위증죄로 기소되었고, 수사를 방해하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직권남용으로 기소되었다가 무죄확정 판결을 받아 대구 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1심 판결을 선고한 이범균 부장판사는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반면, 지록위마(指鹿爲馬ㆍ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성어로 이범균의 판결을 비판하며 '교수들이 뽑은 2014년을 대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제공한 김동진 부장판사는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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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으로 수천 개의 댓글을 달았던 국정원 직원에 대하여 검찰은 2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으며, 법원에선 '좌익효수'를 국정원 직원이라고 볼 수 없다며 '망치부인' 이경선 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해 버렸다. 정말 희한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 판결의 미스터리


그러나 가장 희한했던 건 올해 7월 16일에 선고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었다. 개인적으로 수천 건의 대법원 판결을 공부해 왔고 그중에는 전원합의체 판결도 적지 않았지만, 13:0의 만장일치로 이뤄진 전원합의체 판결은 본 적이 없으며 유무죄의 실체판단을 하지 않고 증거능력만 문제 삼아서 파기환송을 시켜버린 '노 디시전(No Decision)'판결은 더더욱 못 본 것 같다. 대법원 판결의 프로세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결론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사건의 경우 4명의 대법관으로 이루어진 소부에서 재판을 하는 게 원칙이고, 소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 비로소 13명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즉 13명 대법관이 만장일치로 동의한 사건이라면 애초에 전원합의체까지 올 필요가 없었던 것.


게다가 대법원은 파기환송을 할 경우에도 적어도 유무죄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분명한 결론을 내려주는 게 일반적이다. 파기환송 판결 앞에 유죄 취지 또는 무죄 취지라는 설명이 따라붙는 건 이 때문이다. 1, 2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유죄, 무죄에 대한 실체판단을 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다. 물론 1, 2심에서 사실관계와 관련 증거를 잘못 채택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결론이 바뀔 정도의 증거가 아니라면 애초에 살펴보지도 않기 때문에, 증거판단의 변경은 사실상 유죄 또는 무죄라는 결론이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유죄 인정의 전제가 되는 증거를 부정해 버렸으니, 적어도 일부 무죄라는 결론을 예상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겁하게도 "인터넷 게시글, 댓글 및 찬반클릭 작성 행위가 심리전단 직원들에 의한 것으로 인정되고 그에 더하여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메일 기재 등 다른 적법한 증거에 의하여 25개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작성된 트윗글과 리트윗글이 심리전단 직원들에 의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검사와 피고인들의 주장과 증명 여하에 따라서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트위터 계정의 범위에 관한 사실인정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트위터 계정과 그 계정을 사용하여 작성한 트윗글 및 리트윗글의 범위가 적법한 증거에 의하여 새로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터넷 게시글 및 댓글 등 나머지 사이버 활동만을 대상으로 정치관여 행위 및 선거운동 해당 여부에 관한 원심판단의 당부를 살필 수도 없다"며 판단을 회피해 버렸다.


이 또한 말이 되지 않는 게, "검사와 피고인들의 주장과 증명"은 사실심인 1, 2심에서 이미 충분할 정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도 하나 마나 한 소리인 "검사와 피고인들의 주장과 증명 여하에 따라서는... 사실인정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명제는 이미 사실심이 끝난 이 사건 재판에선 명백한 오류.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사실을 전제로, 본질적인 부분이 잘못되었다면 파기환송하고 반대 취지의 결론을 내려주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상고를 기각하여 원심을 확정하면 족하다. 그런데 위 판결은 1, 2심의 사실관계를 모조리 부정하고,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뜻이니, 바둑이나 장기에 비유하자면 잘못 둔 한 수를 무르고 다른 수를 두도록 조언하면 족할 훈수꾼이 판을 다 엎어버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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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황당한 일은 그러면서도 원세훈에 대한 보석신청은 기각해 버렸다는 점. 이로써 원세훈은 개인비리 두 번을 포함, 이때까지 총 세 번의 보석신청이 모두 기각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국정원법 유죄, 선거법 무죄였던 1심에서 원세훈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점을 감안했을 때, 대법원도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이 완전히 무죄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고작 증거능력을 빌미로 파기환송을 시킨 대법원의 결론이 더더욱 의아해진다. 유죄를 염두에 두었다면 뭐하러 내려보냈나?


대략 세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전관예우. 대법원 선고가 나기 두 달 전인 올해 5월 20일, 원세훈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김황식은 전직 총리이기에 앞서, 대법관을 역임한 전관 출신 변호사이기도 하다. 대법원 사건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인의 위력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그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음은 시간 끌기.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이 유죄로 확정된다면, '박근혜 정부는 태생부터 관권선거로 출범한 정통성 없는 정권'이라는 점을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대통령 임기가 절반을 넘어선 이 시점에서 대선을 무효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혹시라도 정통성에 기스가 난다면 각하가 버럭 하실 것이다. 더구나 '상고법원 설치'에 목을 매고 있는 대법원으로서는, 적어도 총선 전에 각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저지를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손 안 대고 코 풀기. 위와 같은 두 가지 이유로 대법원은 원세훈을 봐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달고 트윗을 날리는 등 대선 정국에 참전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대법원으로선 스스로 무죄라는 결론을 내리거나 원세훈을 풀어주기가 영 껄끄러웠을 터. 게다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선 야당의 비위도 대놓고 거스를 순 없었을 게다.


결국 대법원은 직접 무죄라는 결론을 내리는 대신, 원심의 유죄 판결을 전면적으로 엎어버리는 파격적인 파기환송 판결을 통해 하급심 판사들에게 무언의 암시를 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파기환송심을 맡게 된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시철)는 1, 2심에서 심리가 끝난 부분까지도 전부 다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더니, 급기야 보석신청을 받아들여 원세훈을 석방하기에 이른다. 이런 분위기라면 재판은 꽤나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그 결론 또한 적어도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로써 대법원은 직접 총대를 메지 않고서도 소기의 성과를 모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석 받은 남자, 그리고 영혼의 샴쌍둥이


한편 앞서도 살펴보았듯 원세훈은 개인비리 재판과 관련 두 번의 보석신청을 냈으나 모두 기각당하며 1년 2개월의 잠정형기를 모두 채우고 사실상 만기출소했었다. 대선개입 재판에서도 보석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했다는 것 또한 앞서 본 바와 같다. 결국 그는 네 번째 도전 끝에, 가까스로 보석 받은 남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보석신청과 관련해선 역시 업계 2~3위권을 다투는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원세훈은 대법원 파기환송 후 세종을 새 변호인으로 선임했으며, 담당 변호사로는 5명이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정진호(서울법대 83학번, 사법연수원 20기), 배호근(서울법대 82학번, 사법연수원 21기) 두 변호사는 이 사건 재판장인 김시철 부장판사(서울법대 84학번, 사법연수원 19기)와 서울법대 동문이며 학부와 연수원을 1~2년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가며 마친 비슷한 연배의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이다. 세 사람은 2004~2005년 서울고법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도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원세훈의 보석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지, 나아가 앞으로 계속될 파기환송심 재판에도 일말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막바지에 접어든 올해 국정감사와 관련, 최고의 스타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아닐까 싶다. 영화 '변호인'의 모티프가 된 부림사건의 주임검사였던 그는, 공식석상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라는 발언을 한 것은 물론 국감장에서도 그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그는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사법부, 검찰, 공무원 중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일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팔팔 뛰며 고영주의 해임을 촉구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글쎄요. 좌익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계신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이런 양반들, 상당히 좋아하신다. 게다가 공안검사 출신이 아닌가. 내년 총선 과정에서 청와대의 전략공천이 허용된다면 조만간 금배지를 단 고영주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세훈은 어떨까? <한겨레> 2013년 7월 1일 "김정일 사망·북 미사일 발사 등 원세훈 재임 때 번번이 정보 ‘물먹어’"에 따르면 원세훈이 국정원장이던 시절, 국정원 수사국의 윤아무개 단장(2급)은 감찰실 직원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제주 4·3 진압은 정부 쪽에서 심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국정원 감찰실은 이 발언을 ‘좌파적’이라고 몰았고, 윤 단장은 대기 발령받았다가 결국 국정원을 떠났다. 수많은 간첩 조직을 수사해온 국정원 고위 간부가 ‘좌파’로 몰려 쫓겨난 것이다.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수사국에서 파트장(4급)을 맡고 있던 강아무개 씨는 부하 직원의 보고 내용을 검토하던 중 ‘지난 좌파 정권 10년’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다. 불법으로 세워진 정부도 아닌데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강 씨는 “지난 정권 10년으로 문구를 바꾸자”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한 직원이 강 씨의 발언을 감찰실에 전했고, 그는 결국 지역 출장소로 좌천됐다고 한다.


결국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여준 행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세력을 모두 좌파로 단정 지은 뒤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원세훈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국감을 통해 드러난 고영주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영혼의 샴쌍둥이 같은 두 사람이 남은 박근혜 정권 2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상당히 궁금하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이루어진다면 이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기록될지도 주목된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일베의 컨텐츠를 교과서로 배우는 날이 올까 두렵다.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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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