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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11. 월요일

무천

 





 


# 내 친구 민욱이

민욱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수산시장 뒤, 2층 양옥을 개조해서 만든 하숙집에서 만났죠. 방 2개를 나눠 많으면 4명 적을 땐 2명이서 와신상담은 개뿔, 마시고 빈둥거리며 재수생활을 축내고 있을 때였어요. 

민욱이는 늘 헤드폰을 끼고 다녔는데 자기가 직접 부른 유행가를 듣는 게 그의 유일한 도락이었죠. 공테이프만 들고가면 노래방에서 흔쾌히 손님의 노래를 떠 주던, 낭만이 동동 떠다니던 시절이었어요. 동방박치인 저 못지않게 절대음치인 민욱이가 주구장창 헤드폰에서 새어나오는 자기 목소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임재범 마냥 흥얼 거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사회생활의 새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죠. 

그리고 그 특유의 눈치없음은 극강 그 자체였어요. 예를 들어 사람 좋던 하숙집 아저씨가 위태위태히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온 날, 모의고사 성적을 들고 아저씨한테 진로상담을 하던 눈치계의 김영철같은 친구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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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귀차니즘과 시크함의 극을 달리던 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을 테다)을 인간관계의 기조로 삼고 있었어요. 다른 이들처럼 민욱이를 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죠.

2번째 전국모의고사가 끝난 저녁. 민욱이가 예의 그 헤드폰을 목에 걸고 제 방 문을 두드리더군요. 얼린 서주 빠빠오에 숟가락을 꼽고서요. 시험결과가 좋았는지, 표정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어요. 고향 이야기,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은 대학과 그 대학에 꼭 들어가야 하는 당위 등등...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꺼냈다간 왕따 당하기 딱 좋은 이야기를 듣는데 자그마치 제 인생의 15분을 낭비해야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말 없이 빠빠오만 긁어대던 제 손을 민욱이가 쓰담쓰담 잡는 거에요. "왔 떠 퍽 xx!" 북두신권으로 아구창을 날려버리려는 찰나. 고양이 같은 눈알로 절 쳐다보며 속삭이더군요. 친구가 되자고요. 여지껏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저만은 자기에게 빈정대거나 야멸차게 굴지않았다나요. 서로 이해하며 평생을 함께 걷는 지음이 되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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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친구가 되어주시렵니까?

. . .


“시른데.”

3번째 모의고사를 치기 전에 민욱이가 이사를 갔던거 같아요. 물론 작별인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답니다.



# 눈치없는 친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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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서평 좀 보소.

“안 읽은 사람이 더 떠든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딴지일보에서 회고록을 읽고 서평을 쓴 친구가 ‘7시간 동안 다 읽었다고 했다. 그동안 MB(이 전 대통령)에 반대한다고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매우 당황스럽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바르게 잘 쓴 책이라고 했다. 댓글에서 공격이 이어지니 일일이 답변을 다 썼더라. 자기는 7시간 진지하게 읽어서 그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2015년 2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전(前) 가카가 친구가 되자네요. 

"하~아"

엄마가 친구는 조심해서 사귀랬는데. 우리 가카는 딱히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전과도 많으시고, 거짓말도 잘 하시고, 게다가 눈치도 없으시잖아요. 가카를 국민의 심판대로 소환해야 한다는 서평마저 ‘바르게 잘 쓴 책이란 평으로 쿨하게 오독해 버리는 국대급의 눈치없는 친구는 이제 그만 만들고 싶어요. 이미 제 인생도 충분히 복잡하거든요. 

"시러요."

가카께서 침침한 눈으로 마우스를 돌돌 내려가며 딴지일보의 댓글까지 읽으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 짠한 구석도 생기지만 그래도 눈치없는 친구는 쫌... 죄송해요. 불멸의 총리셨던 정홍원 선생님도 계시고, 말뚝 김기춘 선생님도 계시고, 따끈따끈한 완구형도 계시니 같이 비타 500이나 드시면서 그 분들과 소일하시는게 더 나으실 것 같아요. 준표님도 곧 한가해지실듯하니 적적하시지는 않을듯 하구요.



# 그리드. 탐.욕.

의외로 가카의 동아일보 인터뷰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인간적인 호기심이었어요. '유체이탈병이 또 도졌군', '이 잉간. 머리를 오픈해 뇌구조를 한번 살펴보고 싶다'는 류의 호기심이 아닌, '닝겐 이명박'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 말이죠. 

사실 전직 대통령을 비명횡사로 몰아넣거나 퇴임직전 잊지않고 정봉주를 감방에 넣어버리는 가카만의 편협함은 강호의 일절로 정평이 나 있잖아요. 그런 가카가 자신의 책에 대한 야유와 조롱 섞인 서평을 인용할 수 있는 호협함을 가진 쾌남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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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만을 위한 특별한 이미지 프로세싱 #1

쓴 제가 다시 읽어도 약간은 곤혹스러운 그 글을 꼼꼼과 쫀쫀의 아이콘이신 가카가 본문은 물론이요, 댓글까지 훑으셨다니 사실 가카는 일대기협의 호협함을 가진 대인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연습이 대가를 만든 지난 5년간의 부단한 수련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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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만을 위한 특별한 이미지 프로세싱 #2

하지만 한켠으로는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 내리는 서늘함도 들더군요. 뒷통수를 후려 갈기며 떠오른 깨닫음은, 이거야 말로 ‘가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갈긴 거지요. 자신에 대한 비꼼과 비난마저 이용할 수 있다면 일단 삼켜버리고 보는 그 '탐'. 그 끝간데 없는 탐욕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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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지금?

가카의 책 발간시점을 두고 에로틱한 설왕설래들이 많았어요. 왜 하필 지금인가? 말 그대로 순수한 회고록인가? 내년 총선을 둔 친이계 결집의 신호탄? 아니면 자원비리, 방산비리의 국정조사를 앞두고 박근혜 정권에 갈기는 위협사격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로워서?!! 

사실 저의 확정적인 심증은 '외로움'이였어요. 일석삼조가 삶의 모토이신 실용주의 정치꾼인 가카답게, 책 발간을 친이계 결집이나, 박근혜 정권에 대한 경고사격으로 포장하셨지만 내심은 외로움, 외로움이 그 동기였다. 마 그케 생각하고 있다 그거죠.

퇴임 3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체력은 여전히 끗발 날리게 따라주는데, 자전거를 타고 4대강도 쑹-쓩- 날라다닐 수 있는데 이제 관심 가져주는 이 하나 없으니, 절대고독에 사무쳐 일을 치신거죠. 옛날 짱이 발리고 새짱이 들어온 것처럼 모두가 그네! 그네!를 외치는, 당신이 잊혀져 가는 그 과정이 더 없이 고통스러우셨던 거에요. 마치 한물 간 연예인이 악플마저 찾아 읽듯 연쇄 어그로마 변희재처럼 어그로라도 끌어 대중의 관심을 잡아 두고 싶은 그 절박함. 저는 마. 다 이해해요. 우리 모두 외롭잖아요. 다 외로워서 그런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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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농구. 테니스. 라이딩... 그리고 비보이까지. 그래도 가카는 외롭다.


# 근데 어쩌나.

동티(일종의 재앙)가 났네요. 인심막측하고 인면수심한 무리들이 가카의 어그로는 받아주지 못할 망정, 방산비리다 자원비리다며 국정조사 출석이나 요구하다니요. 모로가도 서울이니 이 스포트라이트나 저 스포트라이트나 다 똑같기는 하지만, 국정조사 스포트라이트는 조명빨 즐기는 사이 강제로 무상급식을 당하는 위험부담이 있잖아요. 아무리 외로워도 가릴 것은 가려야죠. 

게다가 전 국회의원이자 경남기업 회장인 고 성완종씨가 남긴 데드 사인 덕에 대중의 관심은 이제 이완구와 홍준표, 그리고 김기춘으로 홀라당 넘어가 버렸으니 가카의 고적함은 누가 헤아려 주나요.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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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만을 위한 특별한 이미지 프로세싱 #3

억수로 운 좋은 남자가 있었어요. 남들 같으면 국정조사 수 십 번에 탄핵도 '원 플러스 원' 행사가로 득템했을 사낸데 운빨 하나로 모든 역경을 헤쳐나온 쾌남이었죠. 부시랑도 친구 먹고, 오바마랑도 친구 먹고, 서울시를 뽀찌주고 신이랑도 친구 먹을려고 했던, 신이라 불리고 싶은 사내였어요. 근데 그 남자가 친구가 되자네요. 

"하~아" 

고민이에요. 신 친구의 친구는... 그럼 저도... 'ㅅ ㅣㄴ' (쿠쿨럭) 솔직히 욕심도 나네요. 영생불사라. 자주 나오는 행사상품은 아니잖아요.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북한산으로 향하던 고 성완종씨의 심정은 처절한 배신감이었을 거에요. 수 십년간 다져온 인맥들이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칼춤을 춰대니 기가 막혔을테죠. 이정현 전 청와대 대변인 말처럼, MB 정부는 소금 먹은 놈들이 ‘같이’ 물이라도 켰는데, 이번 정권은 삥 뜯어간 놈들이 칼까지 찌르려고 하니까요. 형제봉 나무가지에 몸을 맡기며 성완종씨가 원망한 사람은 전(前) 가카였을까요? 아니면 현(現) 가카였을까요?

성완종 리스트 덕에 자원비리, 방산비리 국정조사 이슈를 한 순간에 날려버린 가카는 이번에도 억수로 운좋은 사내로 남으실 수 있을까요. 전 MB정부 비서관 출신인 추부길씨가 가카 등에 칼을 꼽았고, 우리 박근혜 대통령도 인후염에서 회복하시었으니 곧 사정의 칼춤을 추실지도 몰라요. 뭐니뭐니해도 국면전환에 제일 좋은 해법은 물어뜯을 다른 뼈다귀를 던져주는 거잖아요. 여기에 공공의 적 1-2위를 다투는 가카가 셀프 사고를 쳐가며 관심을 갈망하시니 땡큐일 수 밖에요. 선거마저 압승을 거뒀으니 이번에야 말로 임기 내내 지겹게 따라다니던 레임덕 논란을 떨치고 살생부를 흔들며 국정후반의 모멘텀을 노릴 수도 있지요. 가카와의 밀약요? 몰라요. 몰라. 유체이탈화법하면 박근혜 대통령도 가카 못지 않은 천하 고수시니 두 분이서 화산서 자웅을 겨뤄보시던가요. 

버.뜨. 하지만 그것은 정쟁의 영역. 

그 나물의 그 밥에 본지까지 섞여 도토리 키재기에 발담그기 싫어요. 현재 본지의 관심은 과연 가카랑 친구를 맺어도 되는가란 실존적인 고민이에요. 원래 친구도 나쁜 친구가 땡기고, 과자도 불량과자가 더 맛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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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어~어~음." 

우리 일단 한번 만나보아요. 

좋아하시는 빤스 색깔이나, 흥분하시는 체위에 대해 도란도란 밀담을 한번 나눠보아요. ‘닝겐 이명박’이 제가 알던 그 MB인지 아니면 호남형 쾌남인지 한번 알아가 보도록해요. 아무도 가져주지 않는 그 관심. 본지가 아낌없이 쏴 드릴께요. 

가카의 동아일보 인터뷰 후로 같이 사는 친구가 처음으로 걱정을 하기 시작했어요. 온갖 소송이 난무하는 세상. 이러다 잡혀가지나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전. 뭐.걱정하지 않아요. 이래저래 재어봐도. 

가카!

당신이란 남자, 눈치없는 남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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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치는 이래뵈도 요맨큼...





무천


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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