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곤과 박문숙
훈남이니 까칠남이니 하는 말이 한동안 유행이더니 '상남자'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 모양이더라. 남자 중의 남자 정도로 쓰이는 것 같은데 사실 그 호칭에 걸맞은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거다. 언필칭 대장부가 천하의 졸장부로 판명되는 사람이 지천이고 잠깐의 감동을 주다가 오랜 쓴맛을 선사하는 '남자'들이야 우리 알기로도 많지 않던가. 하지만 1990년 12월 세상을 떠났던 김병곤이라는 사람에게는 상남자라는 호칭을 써도 손색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교도소 취재를 할 때 화제의 중심을 형성했던 소재 중 하나는 사형수들이었다. 사형수라는 이유만으로 빨간 딱지를 단 그들은 교도소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형성한다. 아무리 험상궂은 조폭도 빨간 딱지 앞에서는 눈을 내리깐다는 말이겠다. 죽음이란 그렇게 무겁고 그 죽음을 무등 태우고 있는 사형수마저도 바라보기 힘들기 때문이겠다.
이희호 여사 자서전에도 나오잖는가. 김대중 대통령같은 인물도 -물론 이희호 여사는 사실 이 남자 겁 많다고 폭로(?)하고 있지만- 재판정에서 사형과 무기 징역 중 무기징역을 목메어 바라며 재판장의 입술이 '사'하면서 벌어지지 않고 '무'를 발음하기 위해 튀어나오기만을 간절히 쳐다봤다고. 그런데 이 '사형'을 우습게 만든 사람이 바로 김병곤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의 재판정에서 검찰은 별로 한 것도 없는 스물 안팎의 젊은이들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유인물 몇 개 뿌리고 데모 몇 번 기획하면 '넥타이 공장'으로 새파란 젊음들을 보내 버릴 수 있는 긴급조치 시대였으니까. 더구나 당시는 '구형 정찰제'였다. 검사가 구형하면 거의 판사도 그에 상응하는 판결을 내리던 시대였으니까. 그때 김병곤의 육중한 음성이 재판정을 울린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웃음까지 머금고 있었다. 사형 구형이라는 준 사형 선고를 받은 이가 얼굴이 새파래지기는커녕 봄같이 싱글거리는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었던 거다. 우렁우렁한 목청이 재판정을 흔들었다.
"검찰관님, 재판장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저에게까지 이렇게 사형이라는 영광스런 구형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이 민생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1992, 180 ~181쪽)
그가 김병곤이었다. 1952년생, 당시 나이 스물 둘. 기소자 가운데 가장 어렸다.
요즘은 참 추하게 늙어서 거명하기조차 짜증 나긴 하지만 김지하는 이렇게 얘기했었어.
"분명히 사형은 죽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광입니다'. 확실히 그렇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을 이긴 것이다. 병곤이 한 사람, 나 한 사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집단적으로 이긴 것이다."
('고행 1974' 중에서)
대통령 선거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별안간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선포했을 때를 김병곤은 이렇게 회고했다. "10월 유신이 났을 때 나는 학교 옆에서 하숙을 했어. 하숙방이 두서너 평 되는데, 그 방에 무려 열 몇명이 모여가지고 통곡을 하고 울었어. '이제는 도저히 안 된다'고 전부 다 결의를 한 거야. 이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사생결단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거는 아예 없애야지, 그냥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다....." 시커먼 총각들의 하숙방 결의. 김병곤은 그 결의대로 살았고 죽음 앞에 직면했고 겨우 모면했지만 그 이후 수시로 죽음 같은 어둠의 방문을 받는다.
그 어둠의 세월에 빛이 있었다면 아내 박문숙이었을 것이다.
서울여대 74학번이고 서울여대 운동권의 뿌리라 할 '녹수회' 회원이었던 그녀는 교회 야학에서 김병곤을 만난다. 결혼을 하고 딸 둘이 태어났고 한때 김병곤도 괜찮은 직장을 잡아 알콩달콩 살기도 했지만 똥차 지나가니 쓰레기차 온다고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대한민국 권좌에 앉으면서 김병곤은 또다시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는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군부독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딸들마저 군부 독재의 군홧발 부리 위에 살게 할 수 없다는 의지.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의 흐름을 끊어놓겠다는 각오.
그렇게 독재와의 싸움에 나선 운동가의 아내로서 박문숙은 번역부터 악세사리 가게, 보험 외판원 등 모든 일을 다 하며 두 딸을 키운다. 감옥에 들어간 남편이 "면회 올 가족 없는 학생이 있으니 바라지 좀 해 줘라."고 하면 그 사람까지 챙겨야 했고, 또 잡혀가면 구속자 가족으로서 악다구니도 쳐야 했고 첩보원(?) 노릇도 해야 했다. 그랬던 박문숙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한다.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연행됐을 때 용산경찰서에 가서 난리를 치니까 고○○ 검사 방에서 면회를 시켜 주더라. 그이가 자꾸 고무신을 벗었다 신었다 하며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키더라. 내려다 보니 조그만 쪽지 하나가 신발 속에 있었다. 내가 운동화 끈을 매는 척하며 집어 들고 나왔다. '조사 방향이 (삼민투 배후 색출이 아니라) 민청련 전체에 대한 탄압으로 가는 것 같으니 김근태 의장이 피신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두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틈도 없이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형극은 이른바 민주화가 진행돼도 끝나지 않았다. 김병곤 최후의 구속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부정투표함 의혹이 불거진 구로구청 농성 사건 때였다. 부정 투표가 맞다고 해도 대세에는 변동이 없었을 테지만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었던 그는 현장에 남기로 결정한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 옥살이에서 김병곤은 병을 얻는다. 위암. 계속 소화가 안 되고 배에서 뭔가 잡히는데도 교도소 의사는 훼스탈만 줬다고 한다. 병의 정체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는 1990년 12월 6일. 평생 몇 번 안아보지도 못했을 두 딸과 아내를 남기고 세상을 뜬다. 문익환 목사는 고인의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의 이 점만은 버려야지 할 게 있다고 생각되세요? 저는 그걸 터럭만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김병곤씨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내 속에 내재화돼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도 그런 마음이었겠지만 김병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를 가장 잘 알고, 또 그의 삶을 '내재화'시켜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 박문숙이었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날 당시 경실련 사무국장 직함을 맡고 있던 아내는 이후로도 남편이 살아내지 못한 세월을 살며 하지 못한 일을 이으려고 애썼다. 얼마 전까지 사단법인 녹색환경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작년 4월 세상을 등지셨다. 역시 남편과 같은 병, 암이었다고 한다. 병이 알려진 뒤에 후배들이 무슨 돕기 모임 같은 걸 만들려고 하면 완강히 막았고 조용히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고.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세상에는 하고많은 사랑이 존재할 거다. 죽고 못 살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또는 추하다 싶기도 하고, 사랑보다는 욕심이나 집착 같을 수도 있고 이뤄지지 않는 짝사랑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부창부수 혼연일체가 돼서 자신의 가족 테두리를 넘은 더 큰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많다. 이 부부도 그랬던 거겠다. 유신 선포 앞에서 "이건 아니다.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던 정의로운 남자, 사형 구형을 영광으로 받아들인 상남자와 그를 일생 동안 사랑했던 여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군부독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던 분을 추억하기 슬프다. 우리는 국정교과서를 대물림하고 있다.
산하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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