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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메롱하고 싶다.”


51세 중견가수의 발랄한 언행록 일부.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 상을 받은 데에 대한 소감이야. 참고로 이 상은 언론과 대중에겐 관심 밖이지만 공정성 있는 상인지라 가수들 사이에선 권위가 있다고 해. 상 받아본 적 별로 없는 그에게 큰 기쁨인 듯.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논란 있는 연예인(?)이지만 내가 보건대 가장 미스티리어스한 가수, 아니 음악인이 아닐까 해.


예컨대 김민기(<아침이슬>을 부른 사람. 혹시나 모를까봐)도 참 미스테리인 인물이지만, 그의 미스테리는 이렇게 말하면 풀린다고 생각해. ‘음악적·문학적·도덕적 천재였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때 태어났습니다’. ‘미스테리입니다’로 미스테리를 해결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야.


또 한명의 미스테리인 송창식을 나는 이렇게 풀어. 그는 음악적 천재였지만 도덕적 재능은 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때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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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김민기는 의식 없이 얼떨결에 그런 아이콘이 된 것으로 치부하는 반면,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송창식에게는 도덕성의 아우라를 입히려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해. 도덕적 재능 역시 천재적인 수준이 되면 이해가 쉽지 않잖아. 당연히 어떤 재능도 인정받기에 적당해야 인정되겠지.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이승환의 과거 자료들을 뒤져보니 26년차 가수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방송출연분이나 매체 인터뷰가 적더라. 그가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으로 나왔을 때가 대중에게 얼굴을 가장 오래 비춘 때였나 봐.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TV에 잘 안 나오는 건 데뷔 초기엔 음악으로만 승부 본다는 치기 때문이었고, 나중엔 카메라 앞에서 떨어서 였다고. 심지어 그는 무대 위에서도 지속적으로 떨어왔다고 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뛰면서 노래 부르기도 너무 떨려서 긴장을 풀기 위해 시작한 거라고.


긴장 때문에 공연시작 전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를 십 수 년, 공연한 지 19년쯤이 되어서야 무대공포증(떠는 증상과 과민성대장증상)이 겨우 없어졌다고 해. 무려 19년, 그러니까 그가 평균 1년에 40회 단독공연을 해왔으니 대충 800회 가까운 공연을 펼친 후에야 없어진 거야. 그런데 그가 열심히 떨면서 공연한 콘의 영상들을 보면 그게 참 믿기지 않아. 참고로 <히든싱어3 이승환 편>을 보면 그가 모창자들 보다 훨씬 더 떠는 걸 볼 수 있어. 재미있으니 전체영상을 함 찾아봐. 뭉클한 부분도 있고 여러모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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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1


좀 더 다듬어진, 좀 더 사는 집 출신 같은, 그러나 (내 눈엔) 여전히 변진섭인 그의 1, 2집 때 모습이 여고생들의 책받침과 공책에 인쇄되었단 사실에 대해 궁금증이 일거야. 일단 좋은 시절이었다고 해야겠지만 이 미스테리의 답은 그의 콘서트를 보면 알 수 있어.


“수줍은 소년이 무대 위에 서자 거인이 되었다.”


라고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표현했더군. (사실 ‘미소년’이 원래 표현인데, 내가 ‘미’자는 뺐어)


무대 위의 모습 때문에 발라드에서 록으로 옮겨간 가수를 일부 팬들이 그대로 따라간 게 아닌가 싶어. 그의 발라드에 눈물짓던 소녀가 그의 락에 함께 뛰는 아짐이 될 수 있다니. 그의 콘서트 영상들을 보고 락을 너무 잘 부르는 이승환에 놀라기도 했지만 울컥한 때도 있었어. 이승환의 명언 “나는 무지 열심히 한다.”가 눈앞에 펼쳐져서.


그에게는 또 다른 팬층이 있어. 4집 <휴먼> 이후에 그의 락을 따라 생겨난 매니아 층, 그리고 작년 방영된 <히든싱어3>가 생성한, 혹은 <히든싱어>로 인해 자고 있다가 나타난 팬들도 일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나 같은 팬도 있지. 난 이승환의 5일차 팬이야. 미안해 그를 ㅈ도 모르는데 그에 대해 써서.


내가 처음 들은 그의 음원은 그가 만든 <애국소년단 로고송>이었어.


“애국소년단 빨갱이 아녜요. 애국소년단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환’이라고 내가 거의 이름만 알던 가수가 만들고 불렀다는데, 가사의 위트, 그리고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대비되는 멜로디와 창법이 참 세련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러 번 돌려 들었지.


<천일동안>도 몰랐냐고? <나는 가수다>에서 옥주현이 부른 버전으로 <천일동안>을 처음 들었지만, 원곡자와 연결되지 않았어. 이번 취재를 통해 그가 소속사도 없이 아부지한테 돈 받아 만든 1집을 방송 활동 없이도 백만 장 이상 팔아치운 길보드 탑가수였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신기했어. 그의 노래가 거리에 흐를 때 난 어디 감옥에라도 갔다왔나봐.


그래도 난 그의 이름은 좋아했어. 지난 몇 년간, 날 가장 엔터테인해준 것은 그의 언행들이었으니까. 그래도 그의 곡들을 찾아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클래식과 포크밖에 듣지 않는 사람이란 것과도 관련이 있을 거야.



내가 두 번째로 들은 음원은 그가 이 달 초 저작권 free로 발표한 <가만히 있으라>라는 세월호 노래였어. 그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일 전에 들으면서 쏟은 눈물을 닦고 나니, 난 그의 팬이 돼있었지. 한 4분 걸린 건가.


팬심을 돋우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없었어. 이 글을 써야 할 어떤 목적을 느끼고서 그의 콘서트 영상 등을 찾아봤는데 그의 가창력이 후덜덜하다는 게 오히려 팬심에 위기를 잠시 불러왔지.


<나는 가수다> 이후 촉발된 가창력 분석, 비판 혹은 찬양질, 디바니 뭐니, 정말 싫어라 하거든. <나는 가수다>는 나도 참 재밌게 본 쇼지만 음악은 내게 완벽한 예술양식이야. 완벽한 예술을 위해서는 기술이 죽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


<나는 가수다> 이후 언론에서 누가 노래를 잘한다고 떠들어댈 때 이승환의 이름을 들어본 것 같지 않았어. 그러다 그의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뒤통수를 맞은 거야. 좀 담백하게 부르지 너무 기교 쩔잖아, 뭐 그런 생각도 하고. 데뷔 초 상대적으로 노래 못했을 때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그랬네.


내가 앞으로 다룰 이승환의 미스테리는 크게 두 가지야.


우선, 그의 기적적인 동안과 비인간적인 체력. 혹은 비인간적인 동안과 기적적인 체력.


그가 사회에 참여하는 가수가 된 지는 꽤 되었지? 그가 자신을 넘보는 동안이라고 칭찬했던 인물인 MB의 출마로 각성하고, MB의 집권이후 활동했다고 보면 될 듯 해. 기부 등은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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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을 뺨칠 정도로 동안, 젊음의 아이콘인 전임 가카의 수트빨


하지만 그의 언행이 언론에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전은 아니지. 그런데 볼살이 줄어든 거 외엔 거의 정체된 듯 보이던 노화가 언론이 그의 정치적 언행을 다루기 시작한 근 몇 년, 속도를 낸 것 같아. 그래서 난 안타까웠어. 그래도 아직 나이보다 스물은 어려보이는 것 같아.


얼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체력인데, 일단 올 초에 SBS를 통해 방영된 그의 지난 연말콘서트 녹화분을 보고, 10월 16일부터 72시간동안 무료 공개 된 <빠데이> 6시간 20분 공연을 보자. 전반부는 다소 지루했으나 후반 3시간여는 증말 ‘HWAN타스틱’했다. 연말콘서트처럼 화려한 쇼가 없었음에도 ‘HWAN니발’이었음.


51세가 아니라 21세 가수 중에도 무대를 종횡무진 휘젓고 한 자리에서 66곡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는 가수가 있을까? 그의 콘서트 영상을 보면 일베애들이라도 턱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게다가 <빠데이> 6시간 20분 공연을 하기 바로 전날에도 <빠데이 전야제>라고 하여 두 시간 반 동안 공연을 했으니 합하면 9시간 가까운 공연을 게스트 없이 혼자 한 거야. 하루 쉬고 다음날 또 수원에서 공연을 했어. 미친 건데 겉보기론 쌩쌩해 보여.


또 게다가 공연은 얼마나 자주하는지 지금까지 단독공연만 1,000회를 훨씬 넘겼어. 작년부터 올해까진 심하게 많이 해. 생계를 책임지던 행사를 많이 할 수 없어서 인지 (왜인지는 알겠지?) 한해 70회 이상 단독콘서트에 다섯 개의 락페스티벌의 메인공연, 돈 안 주고 오라는 이곳저곳의 행사 및 집회들에서의 공연 등 비인간적인 일정을 보내고 있더군. (난 이승환씨가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일까 두렵네)   


또 하나의 미스테리는 그가 그 동안 받아온 평가들이야. 그의 커리어는 그가 다른 뮤지션들에게 없는 종류의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줘. 그는 곡 만들고 프로듀싱하고 공연기획하고 연출하고 노래 부는 것 모두에 재능이 있어. 잘은 모르지만 이런 케이스가 자주 있을 것 같진 않아. (자신과 밴드의 코디도 자신이 하는데 이 쪽 재능은 모르겠어)


여기에 가수 싸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듯 “과도하게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26년간 쉬지 않고 했어. 그런데 그가 받은 인정은 ‘동안’이란 것 외에는 모든 분야에서 충분치 못한 것 같아. 구글링을 해보면 가수들 내부의 평가는 높은 편인 것 같은데 그 외엔…. 이승환은 ‘저평가’가 아니라 ‘평가 없음’, 즉, 아예 무시되어 왔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어.
 

예컨대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그의 공연기획 및 연출능력이지만, 무시되어 왔어. 그는 최초의 퍼포먼스형 공연을 만들었어. 서커스를 함께 하거나 살수차를 쏘아대고, 기타를 불태우고, 자기 머리에 불붙이고, 거꾸로 매달려 부르고 날면서 부르는 등 별 짓 다하는 콘서트를 해왔어. (어떤 인터뷰어가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야한다는 압박이 있는지 물었는데 전혀 없대. 신기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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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성카드)


‘공연의 신’이라는 별명이 회자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어. 김장훈과 싸이가 차용하고 다른 많은 가수들이 따라한 <무적>콘서트 이후의 소위 ‘HWANTASTIC’한 공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언론이 아니라 김장훈과 싸이의 기사에 간혹 달리는 댓글뿐이었지. 나는 가수 몇 명의 콘서트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 나왔던 것들이 이승환의 공연에서 가져간 것이란 걸 이번에 알았어.


3년 전 방송을 보니 심지어 이승환이 자기 공연의 연출자라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고 씁쓸하게 말하더군. 그 이유는 자기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는데 내가 덧붙이자면 묻는 사람도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가 이번에 6시간 21분간의 단독공연으로 깬, 5시간 40분 공연기록도, 또 그 전의 공연기록도 모두 이승환의 것들이야. (참고로 그가 게스트를 두고 한 공연은 7시간을 훌쩍 넘긴 적도 있다고 해. 정말 그의 팬들도 미쳤어)


국내 최장수 공연기록도 그가 15년째 해오고 있는 <차카게 살자> 공연이 갖고 있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공연으로 팬들에게는 광클릭으로 표를 구해야하는 핫한 공연이었음에도 이 자선공연의 존재가 팬덤을 벗어나 알려진 것은 정말 최근이야. 김제동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해야”한다는 주장에 설득되었다고 해.


그 외 <19금> 공연, <WET> 공연, <DRY> 공연 등 다양한 공연형태에 그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공연 네이밍 실력. 퍼포먼스형 콘서트의 기원이 된 <무적>시리즈, 그리고 <끝장>, <차카게살자> 등은 다른 사람들이 갖다 쓴 듯하고, 소극장 공연이었던 <놀면 뭐해 또 놀아야지>, <히든싱어>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 연 콘서트 이름은 <은둔싱어>. 그 외 <사상 최악의 날리 부르스 쇼>, <환타스틱 쇼>, <환니발 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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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체육관 공연을 매진시키면서도 홍대클럽은 물론 지방 라이브클럽들에서 극소수의 관객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가수에겐 공연에 관한 신화적 타이틀을 좀 더 일찍 주어 마땅하지 않았을까. (라이브클럽 활성화 및 그가 좋아한다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인 듯)


아울러 그의 뮤직비디오 역시 최초, 신기원 뭐 그런 것들이야. 국내 최초의 드라마타이즈드 뮤직비디오도 그의 것이고 다른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따라하자 초현실 내지 SF 뮤직비디오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어. 뮤직비디오의 시놉시스도 감독과 함께 자신이 짜니 ‘뮤지션’이라기보다 ‘아티스트’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아.


그가 여러 종류의 최초·최장·최다 공연기록을 갖고 있음에도 그의 재능과 노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상당히 인색해, 매체에 얼굴을 자주 비춘 김장훈과 싸이가 공연에 관계된 타이틀을 받았지. 하물며 그가 기원이 되고 매 챕터를 다시 쓴 공연사에 관해 이럴진대, 가창력이나 프로듀싱, 송라이팅 능력에 대한 평가야 말해 무엇하리. (이 부분은 다음 편에 좀 더 말하자)


그는 심지어 ‘락커’라는 것조차 인정받기 쉽지 않았어. <히든싱어>에서 그의 모창자 한분이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


“많은 사람들이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형님은 락커이고 그것도 최고의 락커다.”


그러자 이승환은 최고는 아니고 그냥 락커라고 정정하더군.


그가 락페스티벌에 가면 대선배가 왔다고 인사를 받는 게 아니라 발라드 가수가 왔다고 후배 락밴드들의 등돌림을 당했다고 해. 대중과 언론에게 그는 아직도 락커가 아닐 거야. 헤비메탈밴드의 리드보컬로 음악을 시작했고 4집 이후 락을 해왔지만 말이야. 락이 뭐라고.


이 미스테리는 세상을 원망하기 위해 제기한 건 아니야. 저평가? 들여다보니 순리대로 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듯이). 언론과의 소통 혹은 타협 부족, 사운드에 대한 강박, 그리고 음악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승환의 경우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게 곧 당연한 거잖아.


그런데 그는 살아남았어. 이게 오히려 이상해.


한 번의 비난에 무릎 꿇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지인들이 여린 사람이라고 하는 그가 재능과 노력에 비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여러 비아냥을 듣고, 언론과의 불화, 여러 사기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26년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사실. 그 ‘성실성’이야말로 미스테리야. 이에 대해서는 자기계발서 하나 나와 줘야 해. <성실, 그 황홀함에 대하여>. 그는 그 과정을 정말 즐긴 것 같으니 말이야. 혹은 <성실, 그 고단함에 대하여>. 그의 지나온 길은 예상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으니. 물론 이런 책들이 실용서가 아니라 환타지란 점은 알고있어.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하지.)


락커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그가 이제는 이 나라에서 유일한 락커야. ‘락스피릿’이란 게 걔네들이 말하듯 그런 거라면 말야. 그렇다고 다른 락커들을 비난하는 건 절대 아니야. 그들은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있어. 이승환이 무모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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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24일 ‘세월호 100일 추모 음악회’(서울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승환


락스피릿을 영미권에서 펼치는 것과 지금 여기서 그러는 것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일이겠지. 문화와 생존처럼.


우연히 나는 상위 1%의 권력층에 속하며 너희들에게 큰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었던 어떤 사람과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 덕분에 한국에서 성공을 돕는 미덕인 야비함을 탑재하고 태어나 몇 가지 경험을 했지.


지난 며칠 간 그의 활동을 검색해 보다가 이승환을 괴롭힐 수 있는, 어쩌면 죽음 직전까지 몰아갈 수 있는 101가지 방법이 떠올랐어.


연예인이 정부를 비판하는 언행을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러냐고? 대단한 것이니까 다른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겠지? 정치적 언행 덕분에 한국인의 최소 절반에게는 가수이기를 포기해야 해. 그의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이미 여러 해코지를 당해왔어.


그는 이제 사회참여의 지속가능한 수준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 자꾸 생각나네. 보통 사람들이 늘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나쁜 사람들이 나쁠 수 있을 때 얼마나 나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겠지.


우선 내가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의 정치적 언행이 아닌 뮤지션 내지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주로 좀 다뤄줬음 좋겠어. 당신들은 그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어. 그의 직업적 행보는 아직도 거의 무시하면서 말이야. 그가 최장공연기록을 세우든 새 앨범을 내든 한정된 언론만이 다루지. 물론 기자, 피디들에게 돈 주고 사서 보라고 하니 마음 상하겠지. 하지만 그가 너희들이 하고 싶은 말, 정확히는 해야 할 말을 대신 해 준 부분이 혹 있다고 생각한다면.


몇몇 무모한 사람들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이 나라에 무력감이 더 퍼지기 전에 그들을 서포트하면서 활용하는 운동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어. 그들을 덧없게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말이야. 


일단 그에 대해 좀 알자. 그리고 괜찮으면 앨범 좀 사고 콘서트도 가보자. 참고로 그는 95년 이후로 흑자를 낸 적이 없다고 해. 공연으로 큰돈을 벌지만 그걸 다음 공연 만드는데 투자하고 앨범은 큰 적자래. 작년에 나온 11집의 큰 적자로 소속사였던 드림팩토리가 문을 닫고, 현재는 다른 소속사에 있는 걸로 알아. (편집자 주- 드림팩토리는 현재 이승환의 1인 소속사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 <26년>의 투자도 연말공연으로 받을 수익을 미리 받아 했던 걸로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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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지만 한 가수의 발라드/락 앨범을 사는 게 헌법적 가치를 옹호하고 나아가 진화적 가치를 지닌 행위가 되는 나라가 있을 수 있어. 그리고 그가 제공한 사이다 값은 내야지. 그게 한 병은 아니잖아. 게다가 그는 훌륭한 아티스트야. 나처럼 세월호 노래에 처울었던 사람들은 그의 콘에서 처달리자!


다음 편에선 그의 미스테리를 함 풀어볼게. 논증까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승환이 반박할 수도 없는 그런 수준의 얘기들이야.    



피에스:


1) 양해 구할게. 난 이승환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 대해 아는 게 없어. 클래식, 포크를 듣지만 조예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으니 다음 편에서 뭔가 전문적인 걸 기대하진 말아줘.


2) 드림팩토리 공장장님에 대해 알려고 한 지 겨우 5일째이니 이 글에 오류가 많을 거야. 아는 분들은 댓글로 교정해 주시고 아예 새로 글을 써보시라고 권하는 바임.


3) 이승환씨께, 당신이 이 글을 보리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인터넷 넘 많이 하지 마세요. 햇빛을 못 받게 하여 동안의 비결이 되었던 인터넷질이 사회참여를 더 부추겨 당신의 노화를 재촉하고 있다고 다음 편에 나와요) 낯 뜨거우시겠지만 이 글로 당신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어요. 근데 뭔가 해야겠더라고요. 다음 편엔 오히려 심기를 불편하게 할 얘기들이 포함될지도 몰라요.


4) 



난 이 영상을 처음에 핸드폰으로 봤어. 그러면서 그의 가창력에 뒤통수 맞았지만 “발음이 왜 이래?" 혹은 "바이브레이션이 넘 장식적 아냐?" 혹은 "이걸 이렇게 락처럼 불러야 해?”하고 궁시렁 댔는데, 큰 영상으로 보면서 조용해졌어. 참고로 운동할 때 틀어두는 팬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용도로도 유용해 보여.


아쉬운 건 락도 발라드도 비교적 그의 초기작품 위주로 선곡이 됐어. 내가 보기엔 더 좋은 곡들이 많은데. 그런 곡들은 <빠데이> 같은 소극장 공연에 가야들을 수 있는 듯 해. 대형 콘서트에서는 사람들이 더 잘 알만하다는 이유로 옛 노래 위주로 부르나봐. 물론 많이 편곡해서 다른 방식으로 부르고 있지만.


일부만 볼 때는


12분까지 초기 히트곡 세 곡을 씐나게 부름.
40분부터 <천일동안>
1시간부터 락 락 락. <붉은낙타>, <그대가 그대를>, <위험한 낙원>
그 외 56분 <물어본다>
마지막 곡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그의 독특한 발음은 아마도 그의 사운드강박과 관련 있음을, 그리고 <그대가 그대를>에서 볼 수 있는, 가사의 유치한 파격과 "뽕발라드+락"(본인의 표현임)에 대해, 서구에서 할 수 없을 락이란 이유로 좋아함을 다음 편에서 함 다뤄 볼께. 힘들어서 쓰기 싫어할까봐 예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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