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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석가입니다. 영화 <맨 프럼 어스>에 관한 개인적인 감상을 남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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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SF와 액션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건 최고, 진짜 제대로 SF더군요. 처음엔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이라 몇 번을 봤어요. 보고 또 보고. 꼬박 하루 동안 한 대여섯 번은 돌려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보는 순간 '설마...' 하다가 다시 후다닥 처음부터 돌려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내용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께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시작해보겠습니다.



*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는 스포일러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가급적 영화를 보신 후에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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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강의하는 박식한 교수 '존 올드맨'의 뜬금없는 도피 시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10년 근속에, 보장된 학과장 자리도 팽개치고, 왜 말도 없이 갑자기 도망치려고 하냐는 동료 교수들의 끈질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존은 “어쩌면, 이 상황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어요.”라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자신이 “140세기를 살아온 크로마뇽인”이라는 황당한 고백을 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의 입장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생물학, 고고학, 사학, 신학, 심리학)인 교수들과 인터뷰어 역할을 하는 호기심 가득한 학생,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조교 샌디가 한자리에 모인,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이라면 자신의 얘기를 허무맹랑하고 신비한 허풍 신화 같은 이야기로가 아니라, 학술적 검증을 통해 그나마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졌던 것이겠죠. 숨겨지고 포장된 자신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받아들여 주길 원했던 겁니다. 어쨌거나 존과 동료 교수들은 이삿짐 정리가 거의 끝난 오두막에 모여앉아 존의 경험담을 토대로 전 학문적 장르를 넘나들며 인류의 조상과 이동경로, 사상,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죠.


어떻게 보면 이런 지루한 얘기(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밌었습니다만)에 무슨 반전이랄 게 있을까 싶다가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14,000년을 살아왔다는 사실'보다도 더 충격적인, 너무나도 엄청난 고백과 예상치 못한 부자간의 재회를 매개로 한 깜찍한 반전으로 막을 내리는데, 여기까지는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다 아는 얘기이고 경우에 따라 별 감흥이 없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는 겉으로 드러난 반전결말 외에 또 하나의 재미있는 장치가 숨어있습니다.


<맨 프럼 어스>는 표면적으로 너무나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늘 다루고자 하는 장치는 자칫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 장치를 깨닫게 되면 영화가 다시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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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영화를 두 배 이상 재밌게 보는 방법입니다.


영화 중반, 역사학 교수인 댄은 주인공 존에게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합니다(48분 즈음).



댄: 자네와 같이 노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또 있나?


Dan: Who escaped the aging process as you have?


존: (생물학 교수인 해리가 익살을 떠는 동안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1600년대에 한 사람을 만났어요.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감이 오더군요. 이야기를 나눴어요.


John: Anyway, it was the 1600s, and I met a man, And I had a hunch that he was... like me, so I told him.


아트: 잠깐, 이 얘기는 우리한테 처음 하는 거라며?


Art: Ah. See, you said this was a first.


존: 잊고 있었어. 내가 노망기에 접어들었나봐. 어쨌거나, 그 사람은 내 얘기를 수긍하더군요.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왔다고 했어요. 이틀 동안 얘기를 나눴는데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어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납득은 되지만,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었겠어요? 당시 나는 유태율법자였는데 '그'도 나와 같은 성직계통이라더군요, 대부분의 학자가 그렇듯 의심부터 했죠.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몰라.’


John: A touch of senility. Anyway, he said yes, But from another time, another place. We talked for two days. It was all pretty convincing, But we couldn't be sure. We each confirmed what the other said, But how do we know if the confirmation Was genuine or an echo? I knew I was kosher, But I thought, "maybe he's playing a game on me." You know, a scholar of all we spoke about. He said he was inclined with the same reservation.


댄: 묘하군, 서로 수긍은 하면서도 상대의 의중 때문에 믿지 못하다니.


Dan: Now, that's interesting. Just as we can never be sure, Even if we wanted to-- I mean, if we were sure, You couldn't be sure of that.


존: 그러고는 서로 연락이나 하자면서 헤어졌어요. 그러지는 못했지만. 200년 뒤에 브뤼셀역에서 다시 만났는데, 인파 때문에 놓쳐버렸어요.


John: We parted, agreeing to keep in touch. Of course, we didn't. And 200 years later I thought I saw him In a train station in brussels. Lost him in the crowd.




약 2분 남짓한 이 짧은 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대화는 두 가지 정보를 떨궈주죠.



 1. 존과 같은,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이 또 있다.


 2.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수긍하면서도(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믿지는 못한다.



존의 말대로라면 '그 사람'또한 존을 수긍하면서도 믿지 못했겠죠. 더군다나 자신들의 '말도 안 되는 삶'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또 어떻게 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될까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데 서로에게 마냥 솔직해질 수 있을까요? 저라면 반가움을 넘어 아마 겁부터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존과 같은 '수천 년을 살아온' 또 한 사람이 영화 내내 오두막 안에 같이 있었다는 겁니다.


존의 놀라운 이야기를 처음 듣는 듯하면서도 질문 한마디 없이 때때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내 무덤덤하게 수긍했던 한 사람. 존과 같이 불을 좋아하고, 존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돕겠다며 움직이던 사람, 존이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다는 이디스 교수의 농담에 흠칫했던 그 사람, 멀리서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에 본능적으로 태곳적 공포를 떠올리던 그 사람, 그루버교수와 존의 관계를 직감하고 있던 그 사람.


결정적으로 영화 초반 존이 14,000년을 살았다고 한다는 얘길 듣고 존에게 '내가 볼 땐 900살을 넘어 보이진 않는다(john, you don't look over day 900 years)'고 농담을 던졌던 그 사람 말예요(이 장면은 진짜 빨리 스쳐 지나갑니다).


'그 사람'과 존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알면서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짐작은 하지만 확인하고 떠보는 식의 다소 모호한 양상의 대화로 일관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 사람'의 정체를 쉽게 깨닫지 못하죠.


그 사람은 바로 존에게 전화를 걸어 성적정정을 요구한 학생의 리포트를 찾아주었던, '샌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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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장치는 영화를 조금만 신경 써서 보다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저 혼자만 깨달은 것도 아니고 그리 놀라운 장치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다음 영화를 다시 찬찬히 뜯어보면 이전에는 무심한 듯 평이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던 카메라 워크와 앵글, 교묘한 인물 간 배치와 심리묘사가 확확 와 닿습니다.


일례로, 위에서 나열한 장면뿐 아니라 선사시대의 '언어'와 '벽화'를 이야기하던 극 초반부 이후 장면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존이 선사시대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내내 한 앵글에 존과 샌디가 함께 겹쳐 잡히다가, 지중해를 거쳐 이야기가 바빌로니아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천천히 존과 샌디가 분리되고, 샌디는 결국 화면에서 벗어납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이는 아마도 샌디와 존이 공존하던 시대에서 각자의 세계로 나뉘게 되는 시점의 상징이었겠죠. 이런 연출은 그야말로 영화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교묘하게 숨어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보게 된다고 제 생각이 좀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진짜로 감독이 의도한 바라면 정말 소름 돋는 연출임에는 분명합니다.


제가 생각엔 '맨 프롬 어스'의 진짜 의미는 흔한 CG와 유명배우 한 명 쓰지 않고도 연출력으로 이런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던 도중 기록되지 않은 진실의 공백을 기발한 상상으로 메우고자 했던 시도, 그리고 장대한 인류사를 관통했던 보이지 않는 '하나의 원동력'에 대해 역설하고자 했던 숨은 의지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초반 역사학자인 댄 교수의 말처럼, 수만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도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도대체 왜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남보다 더 갖고 싶어 하고, 서로 싸우고, 빼앗으려 했으며 또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을까요. 55조 개의 본능적인 작은 생명의 집합체에 불과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갈구했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렇게 보면 존과 샌디의 짧고 심심한 러브스토리는 이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주제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수많은 치정과 전쟁으로 점철된 다이내믹한 거대한 인류사의 표면 안쪽으로는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경계하던 두 개의 성이 언제나 공존해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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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보이지 않고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니,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의해 역사를 만들어 온 인간이라니.


맨 프럼 어스.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을 영화입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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