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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TV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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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영어 조기교육이란 것은 거의 없었다. 영어란 학문은(그때까지는 영어가 생활 필수 요건이 아니라 학문범주에 가까웠다) 중학교 가면 처음으로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아버지가 카투사 출신이었고 집에서 AFKN을 즐겨 보셨다. 그 당시AFKN(지금의 AFN)에서는 아침 시간엔 어린이가 보는 '쎄서미 스트릿(Sesame Street)'을 방영해줬더랬다. 어린 나의 눈을 그 빨갛고 노란 털북숭이 인형들이 사로잡았다. 나는 알파벳을 배우기 훨씬 이전에, 이놈의 영어라는 언어를 거의 춤과 노래로 배웠다. 엘모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다 보면 뜻은 몰랐지만, 괜히 신나서 ‘영어란 재미난 도구구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졌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가끔 외국에 나가면 꼭 쎄서미 스트리트가 하는지 채널을 뒤져본다. 나에게 엘모는 유년 시절의 친구이자 나이 먹고 나서도 여전한 힙스터다.



애들도 눈이 있다구요! 쁘라스, 부모도 즐길 권리가 있다구요!


엘모를 유튜브에 검색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텐데, 우리들의 쎄서미 스트리트엔 이 머펫(털북숭이 인형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미,아카데미, 깐느, VWMA까지 최고의 스타라면 거쳐야 할 관문이 많겠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이 쎄서미 스트리트의 엘모가 만난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숱한 스타들의 히트곡이 엘모 버전으로 편곡되어 방송되었다. 그것도 아주 교육적인 방식으로다가 말이다.



한국 육아는 유난히 고되다고들 한다.(안 해봐서 잘은 몰라도 허허…) 소싯적에는 홍대 클럽에 서 팝 꽤나 들었다던 양반들도 결혼 후에 찾아온 육아 앞에서는 무릎 꿇고 뽀로로 노래나 불러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부모라고 해서 육아에만 온 신경을 쏟아야 되나? 이들도 트렌드를 보고 즐길 권리가 있지 않나? 그렇다고 sex와 여자 가슴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는 어른들 보는 방송을 편안히 틀어놓고 즐기기에는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수준은 아직 너무 저속하다. 열 몇 살짜리 여자애들이 가슴 다 내놓고 춤추는 꼴을 아기들에게 보여줄 순 없잖은가. 걱정하지 말자. 쎄서미 스트리트가 2014년에 베스트로 꼽은 비디오 한 번씩 보시면, 요새 누가 잘 나가는지 한 번에 따라잡을 수 있다. 아기들과 함께 봐도 순도 100% 안전하고 교육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으니 금상첨화.




What’s Hot For Today!



최근 어떤 가수와 배우 그리고 영화가 흥했는지 궁금하다면 <Sesame Street Video Top List>만 봐도 충분하다. 원디렉션(One Direction)이 'What Makes You Beautiful'을 'What Makes U Useful'로 개사해서 불러준다. 맥클모어(Macklemore)가 'Triftshop'의 랩을 하는가 하면,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도 등장한다. 'Les Miserable'을 패러디한 'Les Mousserable'에서는 쿠키몬스터가 땅에 떨어진 쿠키 주워 먹을라고 'Look down'으로 시작한다.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부터 케이티 페리(Katy Ferry)까지 음악적 다양성은 물론,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Kumberbatch) 같은 미국계가 아닌 배우들도 다양하게 등장시켜 문화적인 다양성도 보충하려고 노력했다는 후문도 있다. (70년대에는 쎄서미 스트리트가 너무 백인 문화권의 잘사는 애들한테만 맞는 컨텐츠를 만든다는 비판이 일기도 해서 히스패닉계와 스페니쉬도 등장시키고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단다)





Timeless Moments


반대로 '당대의 핫한' 셀럽들이 앞다투어 등장하기 때문에 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쎄서미 스트리트가 간직한 세월 속의 레전드 영상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1978 크리스마스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출연했었고, 레이 찰스(Ray Charles)가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부른 'ABC Song'도 있다.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와 듀엣을 이룬 엘모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뿔테안경과 페도라, 기타까지 따라치고, 아직은 머리숱이 남아있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Your Smiling Face'를 쓰레기통 속의 오스카에게 불러준다. 해체해버린 엔싱크(N'sync)의 풋풋한 모습이나, 지금은 중장년이 된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덤이다. 작년엔 엠마 톰슨(Emma Toms)가 나왔지만 언젠가는 그녀도 줄리아 로버츠의 영상처럼 레전드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이건 뭐 부모가 아니라 할매할배와 아기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다.





Top 5 Sesame Street Feat. Musicians


다음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쎄서미 스트리트 영상들이다. 원곡을 가장 멋들어지게 살린데다가 교육 효과도 만점이다.

 

 

1.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i)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Time to say Goodbye'를 잘들 아실 터, 1996년에 가장 많이 팔린 레코드 중 하나였단다. 여하튼 이 엄청난 히트 송이 쎄서미 스트리트와 만나면 'Time to say Goodnight'으로 바뀐다. 아직 더 놀고 싶은 땡땡이 잠옷 입고 지도 인형인 주제에 곰 인형 안고 침대에 누워있는 엘모를 살살 달래가며 재우는 눈을 감고 있는 안드레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애들뿐 아니라 부모의 마음을 적신다.




2. 빌리 조엘(Billy Joel)이 앉아 쓰레기 통 안에 사는 오스카의 양철 캔에 노크를 한다. 친구들이 더럽고 끈적인다고 싫어하자 의기소침해 있던 오스카에게 빌리가 'Just The Way You Are'를 불러준다. 너의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과 다른 친구를 차별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느꼈을까? 적어도 난 그랬다.





3.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파이스트(Feist)가 부르는 '1,2,3,4'는 역대 쎄섬 스트리트의 패러디 곡 중에 가장 원곡과 잘 어울린다. 원제를 그대로인데 숫자를 가르쳐 주는 컨셉으로 멋드러지게 개사했다. 부모가 출근길 차 안에서 따라불러도 손색없다.




4.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의 'I'm Yours'는 'Outdoors'로 개사 했다. 더 이상 집 안에만 있고 싶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가사다. 절묘하게 원곡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쫓기 충분히 명랑한 곡이지 않은가?





5. 노라 존스(Norah Jones)의 'Don’t know Y'에서는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웃긴다. 원래는 연인과의 이별에 대해서 '내가 왜 그랬을까'를 노래했던 곡이 '알파벳 Y를 모른단 말이더냐'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쎄서미 스트리트 밖에는 없다고 본다.





What Sesame have changed


어린이용 방송 컨텐츠는 간단히 말해, 쎄서미 스트리트 전과 후로 나뉜다.


* 쎄서미 스트리트는 세계 최초로 ‘어린이를 위한 컨텐츠’를 방송에서 내보인 시도였다. 그전에는 아이들만을 위한 방송이라는 게 없었다. 여성 인권만큼이나 처참한 수준으로 보장받지 못한 게 어린이들의 인권인데 최초의 어린이용 방송 컨텐츠 개국이 1968년이라는 점, 채 50년도 안 된 역사라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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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ounder인 조안 간츠 클루니(Joan Ganz Cooney)는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의 Executive Director였다. 그녀는 Sesame street의 주요한 원전이 되는 CTW(Childerene’s TV Workshop)의 Co-Founder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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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서치 없이는 쎄서미는 없다!' 라는 조안의 기조 아래 CTW는 어린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쎄서미 스트리트는 아이들은 5분 이상 집중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어른들의 선입견을 깨고 1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들을 화면 앞에 잡아두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방송은 아이들의 시청 습관과 동시에 어린이 교육 컨텐츠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 2002년에 TV Guide에서 뽑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TV 프로그램 50에서 27위를 수상했으며, 2015년 현재까지 159개의 에미 상을 받았다. 역대 모든 티비 프로그램 중 최다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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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을 위한 쎄서미 스트리트


즘도 식당엘 가보면 울고 짜는 아이들 달래느라 부모들이 뽀로로 같은 걸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다가 틀어주는 광경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시끄럽던 아이가 뽀로로 틀어주자 한방에 '신림동 고시 삼수생 모드'로 화면 앞에 각 잡고 앉아 개집중하는 기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정작 부모들은 뽀로로가 왜 그렇게 인기 있는지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내 생각과 다른 부모들도 물론 있겠지만 적어도 나한텐 뽀로로는 디자인도 살짝 아쉽고, 내용도 유치해 그저 애들이나 보라고 만든 컨텐츠일 뿐이다. 하지만 나이 제법 먹은(=철도 안든) 나에게 엘모나 쿠키 몬스터는 여전히 즐거운 유흥거리다. 게다가 이제는 혼탁해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가끔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컨텐츠의 힘이 있다. 


쎄서미 스트리트란 어린이를 위한 방송이 만들어 낸 기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록달록한 캐릭터 상품의 판매수익에만 있지 않다. 진짜 기적은 미국의 어른들은 90%가 쎄서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랐고 그들의 자식과 함께 다시 보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인기에 휩쓸려 아이들과 부모의 코 묻은 돈을 뺄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집에서 볼 게 없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교육적인 컨텐츠를 보여줄까 애썼던 사람들의 열정이 쎄서미 스트리트란 힘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냈고, 그 컨텐츠는 여전히 아이들과 어른들의 지지를 받으며 지속해나가는 중이다.

 




  **참고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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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덕내는 어디서 나는 거지? 혹시 너도? 


몰라도 지장 없고 안다고 돈 되는 것 아니지만,

어렴풋이 알아두면 행복한 명랑잡지식 총출똥! 


손쉽게 후딱 끓여 잡숫는 딴지인의 정보 야식, 


'덕후라면'




[지난기사 보기]


덕후라면 <1>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타임머신 "지우개"

덕후라면 <2> : 언제 어디서나 머스트 해브 아이템 : 컨버스

덕후라면 <3> : 니베아의 로고 디자인을 만든 건 영부인?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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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벙커깊수키 통합4호 : 나쁜 짓 특집1(15년 3월호>에 실린 

스곤의 연재물 <덕후라면 : 쎄서미 스트리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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