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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14. 목요일

SamuelSeong







일정대로라면 오늘쯤 밥벌이 현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512정오 즈음에 규모 7.3짜리 지진이 다시 일어났다.

 

이틀이 지난 514. 지금까지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70여명, 부상자는 2000여명에 달한다. 이번 지진의 피해로, 첫 지진에 무너지지 않았었던 건축물이 치명타를 입었으며, 본 기자가 2년 간 작업해온 지역이 무너졌다. 다행히 대규모 산사태가 난 지역은 아니지만, 몇 주간은 접근이 어렵게 되었다.

 

2년간 공들인 현장의 상태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집 앞 공터에 텐트 치고 노숙하는 생활로 돌아가니, 멘탈이 탈곡기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때 한 언론에서 인터뷰가 들어왔다. 거의 새벽에 다다른 시간이었다.

 

인터뷰는 네팔 구호 과정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현지에선 큰 의미를 둘 사안이 아니었던 관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는데, 한국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정신도 없고 컨디션도 최악인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다. 나름 최대한 정리를 해보겠다고 했는데, 그게 좀 애매하게 전달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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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 <미디어 오늘>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언제부터인가 '누구 편을 드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쟨 누구네랑 관계가 있어서 그래~'라는 초등학교 미취학 아동스러운 이야기들 나오는 것 같아, 노파심에 몇 마디 덧붙이겠다.

 

한국이었다면 인터넷이라도 빠르니 일일이 해명하겠지만 여긴 인터넷 속도가 한정 없이 느리고 불규칙하다. 1차 지진 당시는 3G를 쓰는 이들이 몇 없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구호단체와 취재진이 왕창 몰려 들어와 있는 상황. 뭘 해도 느리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 대륙에서 각종 이행과 기적을 행해오신 선교사들을 '사막 유랑 민족의 잡신을 섬기는 무당 무리'라고 비판해 온 나 같은 넘이 이 느려터진 인터넷으로, 몸도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미쳤다고 그 종교를 옹호하는 글을 쓰겠나?

 

다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분들의 그간의 이행과 기적들을 비판할 타이밍이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거다. 여튼, 시작한다.

 

 

1. 라미찹(Ramechhap)주에서 벌어진 일

 

59일 네팔 언론 <onlinekhabar>에 노브라츠 비티끄 기자가 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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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 <onlinekhabar>

 

핵심만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한국에서 구조활동을 하기 위해 왔다는 <굿피플>이라는 이들이 지진으로 힘들어하는 네팔 지진 이재민들에게 비타민B 몇 알과 성경을 전달했다. 그들은 이런 재난은 예수를 믿지 않고 다른 신을 믿어서 벌어진 일이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라미찹(Ramechhap)주에서 발생한 이 일로 지역민들과 네팔의 식자들은 대단히 분노하며 이런 행각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


 

<굿피플>이라는 선교단체가 현지에서 이재민들에게 비타민과 성경을 전달하며, 전도를 했으며 이에 현지인들이 분노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몇 가지 주의해서 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는 '분노하며 이런 행각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는 부분. 기사에선 누군가가 분노했고, 선교(?) 행각을 당장 멈추라고 했다는데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지역민들과 식자들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될 뿐이다. 한국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이런 경우, 그런 주장을 하고 싶은 화자는 기자 본인이다.

 

두 번째는 <굿피플>이 전달했다는 비타민B 몇 알. 고작 비타민 주러 네팔에 갔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데 의사가 진찰하였을 때 별다른 외상이 없거나 치료 가능한 진료장비가 없는 경우,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달리 뭐가 있는가?

 

세 번째는 성경. 4251차 지진 직후 트리듀번 공항에서 영어 성경책이 대거 발견되었다고 해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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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WISHESH>

 

그런데, 얼마 후 정정보도나 공지 같은 것 하나 없이 기사가 삭제되었고 조금 지나선 해당 화물은 트리듀번 공항의 세관창고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된 것이라며 이번 재난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공항 담당자가 확인 했다는 짤막한 설명을 덧붙인 기사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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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 <Patheos>

 

이번 지진 참사 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여러 현장으로 달려 갔었다. 네팔의 유일한 하늘 길인 트리듀번 공항도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들어오고 있는 구호물자들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창고 구석에 쌓여 있던 물건들도 같이 정리되고 있는데, 그 중에 성경 박스가 들어 있던 것. 그리고 이 박스가 왜 거기 있는지 아는 '담당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원봉사자들 코멘트를 모두 따서 기사가 올라갔던 것이다.

 

네 번째 다시 성경. 해당 기사에서 <굿피플> 선교 단체가 이재민들에게 전달한 성경이라고 한 것은 사실 종이 한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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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onlinekhabar>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네팔 현지 언론이 쓴 이 기사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기자 자신의 아젠다를 갖고 작성한 악의적인 기사라 볼 수 있다.

 

그럼, 이 기자가 이런 기사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2. 지역구, 그리고 지역신문 기자

 

지역신문 기자들은 지역구 정치인과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고리로 기사를 작성한다. 물론 날 선 비판의 기사들도 있지만, 선가 때가 되면 정치인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주는 거, 그건 한국이나 네팔이나 마찬가지다.

 

그전 기사에서도 말했지만 네팔 정가는 무진장 오래 끈 협상 끝에 지난 4월에서야 개헌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했고 올 9월까지 새 헌법을 만들어서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었다.

 

새 헌법과 관련된 논쟁에서 가장 시간을 오래 끌었던 것은 지역구 분구였다. 새 헌법의 정신이 뭐고 경제 정의는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는 이야기가 아니라 난립해 있는 수많은 정당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구획정리를 어떻게 할 것이냐 갖고 치고받고 싸웠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애써서 자기 '텃밭' 만들었다고 뿌듯해하고 있던 각 정당 정치인들, 선거운동 들어간다고 사람들 조직하고 있던 와중에 이 지진참사가 터졌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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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논란이 있었던 Ramechhap주는 Janakpur존에서 분할되어 있는 지역구 중 하나다. 지난 20132차 제헌의회 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이는 Shyam Kumar Shrestha로 마오이스트다. 참고로 두 개의 정당이 둘 다 '네팔 통합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데, 하나는 소작 농민들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마오이스트들로 Unified Communist Party of Nepal(UCPN(M))이라 하며, 또 하나는 Communist Party of Nepal(Unified-Marxist-Leninist)(UML)이다.

 

그런데 Janakpur존은 특정 정당이 독주한 지역이 아니라 네팔 국민회의(Nepale Congress)와 이 두 정당이 접전을 벌인 지역이다.

 

*영어로 되어 있지만 네팔 정치판이 얼마나 아수라장인지는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정당이 난립하여 어느 한쪽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판이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지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이 다른 나라의 구조대이다. 지역 정치인들은 자기 텃밭을 망쳤다고 불만을 가졌지만, 사실 이 사람들은 지역구민을 먹일 만큼의 쌀을 살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네팔에서 지역구 정치인들이 쓸 수 있는 스피커들은 대체로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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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 하나 만들지 못하는 가난한 정치인들이 무슨 수로 수천, 수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쌀을 사겠는가. 물론 다 이 모양인 것은 아니고 정치에 뜻을 가진 꽤 많은 이들이 이미 복구현장에 달려가 자원봉사 인력을 조직해 움직이고 있다.

 

여튼 요는 기존 정치인과 연결되어 있는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서 위와 같은 기사를 쓰게 된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외국 구조대에 대해 현지 기자들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뭐 이런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특히 기독교를 타겟으로 삼는 이유가 있다.

 

 

3. 네팔 기독교도들의 원죄(?)

 

네팔 전체 인구의 80%가 힌두교다. 힌두교는 종교를 선택하는 이들이 아니라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어느 사회든 특정 종교인의 인구 비중이 50%가 넘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본 기자 처가만 하더라도 산악부족으로 불교도들임에도 주류인 힌두교 뿌자(힌두교 예식)를 올리는 게 낯설지 않다. 다른 생활 풍습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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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건 일종의 힌두교 식 굿.

 

지진 다음 날 우리 동네에 살고 있던 이들이 아침에 가장 먼저 갔던 곳도 동네에 있는 수많은 사당의 하나였고 그들 모두 종을 치면서 힌두교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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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머니처럼

 

그리고 복구를 시작한 것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사원이 우선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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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종교 자체가 카스트 시스템의 운영체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불가촉천민, 그리고 하층 카스트로 소작농을 살고 있는 농민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이 '니네는 전생이 수많은 악업을 쌓아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니까 이번 생에게 상층 카스트를 잘 받들어 모시면 다음 생에는 좀 상태가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따위 헛소리는 걷어치우라고 일어서는 이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은 '다른 종교'.

 

종교분쟁의 이면에 사회계급문제가 있는 게 뭐 새롭겠는가. 그리고 다른 종교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이들이 기존 체제에 대해 가지는 적대감이 적겠나? 많겠나? 기독교도들이 지역의 작은 사당을 파괴하는 사례들 꽤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보복하는 일들이 꽤 많이 벌어지고 있다.

 

힌두교도들이 마오이스트들의 이중성을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 "왕정 타도 이후 지역 힌두교 대학을 습격해서 힌두교 경전을 소똥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 힌두교 대학들이 모두 대지주들이라 소작민들에게 수확한 소출의 80%를 소작료로 땡기던 이들이라는 것은 이야기 안하고.

 

 

4. 그리고 구호현장

 

쌀 배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봤던 구조대는 인도 힌두교 구루들의 구급품을 싣고 다니던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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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고는 얘네들이 가장 많이 치고 있다. 그들이 친 사고는 말 그대로 '쓰레기'를 구급품이라고 가져다 준 것.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 공장에서 불량품으로 처리했어야 할 의류나 모포를 구급품이라고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꽤 많은 힌두교 구루들, 그들은 한국 혹은 미국으로 치면 인기 있는 TV전도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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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이 TV에서 하루 종일 좋은 말씀을 하신다.

 

이 분들의 좋은 말씀을 열심히 듣는 팬들이 어디든 있으니, 지금 여기서 가장 큰 이슈인 구조물자 분배와 관련해서도 이 사람들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피해 마을에 최소한 몇 명은 이들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으니, 어디건 구호물자가 한번은 왔다 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정도다. 그리고 일반적인 구급품 분배 현장과 달리 이들 현장은 말 그대로 충만한 은혜가 흐른다.

 

일단 지역에 필요한 물건들의 리스트가 충분히 전달되어서 필요한 것들을 몽땅 갖고 오는 것도 현지에선 크게 작용하다보니 길 막고 난리치는 것은 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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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부흥집회 같은 종교적 열광의 현장인 셈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을 모르고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부러워 할만 했을 게다. 아마도 그래서 방심했던 것 같고.

 

 

5. 복구? 재건?

 

2004년 남아시아를 쓰나미가 밀고 갔을 때, 진짜 참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졌다. 딱히 영양상태가 좋았던 지역도 아닌데, 지역경제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보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많은 딸들이 자신의 장기를 장기밀매시장에 내놨던 것. 이게 드러났던 것은 영국에 살고 있는 타밀인들이 참상을 현지에 나가서 조사해 밝혀졌던 것인데 이때 신장의 경우 300~500달러의 헐값에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네팔은 지진 이전부터 인도의 인간 장기 공급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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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기사 - <경향신문>

 

이 지역에서 거의 9년 째 별의 별 꼴을 다 봐온 처지다보니 이 이야기도 덤덤하게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제 값'을 받은 이들이 경찰 조사에도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지 꾸욱 입을 다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정말 운이 좋아서 3천에서 5천 달러를 받은 이들은 누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자신의 장기를 팔았는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 돈이 10년 치 생활비거든.

 

그런 나라가 지금 규모 7.9짜리에 연이어 7.3짜리를 연달아 맞았다. 어쩌면 올해 내내 이럴지도 모른다. 네팔 매체와 정부는 자기들만의 힘으로 재건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게 한국에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이야기하는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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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네팔군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기사를 쓴 기자가 찍어서 기사에 붙여 놓은 사진이 이거다. 차타고 열심히 가서 저렇게 행군해 올라가면 아마 다음 달 중순 정도나 되어야 피해지역에 모두 배달 될 거다.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사실 현장이 이 모양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장학금 준 정치인의 아젠다에 딸려가는 지역 기자들의 '주장'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도 이거고.

 

'<굿피플>처럼 사고 칠꺼면 가지마'라는 댓글들 많이 봤다. 솔직히 평소였으면 나도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좀 잘 하세요'라고만 하고 가능한 한 많이 와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면 많이들 지원해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의 밥이 없으면 네팔의 산간마을 곳곳에서 자식의 목숨으로 밥 먹는 부모들의 통곡이 사방에서 울릴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영양상태 엉망인 상태의 장기 이식해봐야 뭐 얼마나 살 것 같은가. 진짜 인세 지옥이 펼쳐지지 않게들 해주시라.

 

꾸벅.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