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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추천16 비추천0






사주팔자를 액면대로 믿는 건 아니다만, 사람이란 갈고 닦아 완성하는 게 반이라면 그 원자재(?) 또한 반이라고 봐. 어쩌면 후자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해. 나이 스물에는 사람은 바뀔 수 있고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세상은 바뀌어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더라고. 그걸 ‘그릇’이라고 불러 보자꾸나. 그 그릇 안에 뭐가 담기든 일단 크고 작고는 타고나는 것이라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릇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야. 이를테면 살인범 강호순도 살인 분야에 관해서는 그릇이 큰 놈이지. 그 안에 악의와 칼날을 담은 게 문제지만. 지금도 살았네 죽었네 하는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 조희팔 같은 놈도 그릇만큼은 태평양이지 않겠니. 그릇 안에 남 속여먹을 지혜와 뇌물 먹이는 재주만 채워서 그렇지. 살다 보면 참 다양한 분야의 허다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데 각기 그 분야에서 ‘그릇’이 큰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일단 기업을 일구고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인정하는 게 있어. 나 같은 월급쟁이들에 비해서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릇이 큰 사람들이라는 거.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목매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남의 돈을 먹으려 뛰어다니고 경쟁하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고, 대박 치기도 하면서 직원들 월급도 주고 고기도 먹이잖아. 모든 계산을 한 머리에서 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그럼 한국 현대사에서 기업가들 가운데 가장 그릇이 큰 사람이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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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일 거야. 비단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만이 아니고, 나 같은 대중은 물론이고 기업인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정주영은 ‘기업가 정신을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어.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여 “외국에서 돈을 빌려 와 이 땅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말해 주인공 꼬마들로부터 미친놈으로 전락하기도 했던 정주영 회장은 사실상 ‘미친 짓’을 여러 번 벌였어. 이 ‘미친 짓’을 통해 대한민국의 지도부터 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바꿔 놓았지.


여기서 “그걸 정주영 혼자 했냐? 노동자들이 피땀 착취한 결과지.”라고 콧방귀는 뀌지 않겠어. 그걸 혼자 했다고 믿는 바보는 없겠거니와 노동자 피땀 문제는 따로 조명할 문제니까.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야 대하장편소설 10권으로도 채우기 부족하겠지만, 그의 여성 편력으로 책 두세 권은 채울 수 있을 거야. 그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는 이미 ‘4천만의 비밀’이잖니. 그 외에도 이 ‘그릇’이 큰 왕회장님은 담아야 할 여자도 많았는지 무수한 기묘한 소문과 험악한 쑥덕거림까지도 그의 그릇 속에 우겨 넣고 계시지.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정주영이 평생 잊지 못할 세 명의 여자가 있다고 해. (시사저널 2012년 3월 1주, <사나이 정주영>을 울린 세 여인‘ 기사)


한 명은 현대그룹의 어머니라고 해도 무방하고 정주영 회장이라는 그릇마저 무한하게 품었던 정주영 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고, 또 한 명은 청년 사업가 정주영에게 마음을 주고 정주영이 어려울 때 항상 도와주었으며 종국에는 빚까지 내 정주영에게 준 후 자살로써 그 빚을 안고 떠난 요정 마담이었다고 해. 그녀의 마지막 편지는 유서였다고 하지.


“꼭 성공하고 앞으로 더 큰일 많이 하기를 바랍니다.”


사업 실패로 자살까지 고민하던 정주영은 그 돈으로 기사회생했지만 장례식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해.


요정 마담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봐. 한 사람에게 꽂히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쟁쟁한 남자들과 내로라하는 사내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는 요정의 왕언니로서, 웬만한 녀석들은 다듬이 방망이로도 안 봤을 사람이 자기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 가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자발없이 하는 말로 그녀도 ‘그릇’이 큰 여자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네. 그 그릇 안에 담긴 게 사랑이든 사람을 보는 안목이든. 그런 그릇 큰 여자를 평생에 두 명이나 (마담과 변중석 여사)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주영의 머릿속에 ‘유조선 가라앉혀 간척공사를 마무리한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보다 100배 이상으로 번쩍이는 행운이 아니었을까 해.


세 번째는 더 독특하다. 세 번째는 정주영 회장이 ‘흙수저’이던 시절 금수저 물고 다녔던 여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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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에서도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다.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발행하는 동아일보를 유일하게 구독하는 집이었다.”(위 시사저널 기사)


이광수의 ‘흙’을 읽으며 열광했던 소년 농사꾼 정주영은 새벽같이 그 집에 달려가서 동아일보를 받아 오는 게 낙이었대. 그런데 그때 ‘샬랄라라라 샬랄라라라’하는 효과음과 함께 달덩이처럼 밝고 싱그러운 미소의 그녀가 소년 정주영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아 버린 거지. “경성에서 변호사가 돼서 저 소녀 앞에 나타나리라.” 정주영은 다짐을 해.


훗날 공장 하나 차리고 웬만큼 돈을 벌어 고향을 찾은 정주영은 그만 하늘이 무너져 버리고 말아. 첫사랑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기르고 있었던 거지. 피천득의 수필을 좀 바꿔 되뇌고 있었는지도. “두 번째는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오랜만에 고향 찾은 어릴 적 친구에 대한 배려로 정주영을 사랑방에서 재워 주고 밥도 뜨뜻하게 해 먹이며 남편도 소개해 주었어. 이때 정주영의 낭패감은 후일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난공사였던 당재터널이 일곱 번째 무너졌을 때의 심경과 비슷했을 거야.


그렇게 첫사랑과의 인연은 끝났어. 남북은 분단됐고, 정주영의 고향은 북한의 행정구역이 됐지. 그 후 수십 년 정주영은 종횡무진으로 살며 대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노망이 잠깐 들었는지 대통령 선거까지 출마하는 일대 스펙타클을 연출했지. 참 그의 그릇이 크다는 건, 그렇게 개망신을 당하면 웬만하면 찌그러드는 게 보통 사람이고,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사람도 최소한 입을 다물고 ‘은거’하게 마련인데, 그는 새로운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바로 ‘고향 앞으로’였지.


과거 학생 때 이른바 ‘좌파’ 총학 후보가 “임수경이 통일의 꽃이면 정주영은 통일의 할아버지냐”라고 비아냥거려서 이른바 NL 친구들을 격노케 한 적이 있는데, 그 비아냥과 격노와는 별도로 나는 정주영이 문익환 목사 이상 가는 통일의 할아버지라고 여겨. 그만큼 남북을 가깝게 이어 준 사람도 없을 테니까. 있으면 누구든 대 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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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북 사업 와중에도 정주영의 ‘그릇(?)’은 여지없이 발휘돼. 그는 자신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이익치에게 이렇게 얘기했어.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때 그녀를 꼭 찾아달라고 하게. 내 그녀를 남한으로 데려와야겠네.” 그리고는 세상에 그녀를 맞을 준비를 휘황찬란하게 했다고 하네.


“북한에서 첫사랑을 데려와 매일 아침 손잡고 걸어서 출근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정 회장은 서울 가회동에 첫사랑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라고 이익치 회장에게 지시했다. 이 회장은 가회동에 매물로 나온 전 화신산업 박흥식 사장의 집을 70억 원에 매입했다. 가회동 2층에 침실을 마련했고 그날부터 정 회장은 가회동에서 기거했다.” (위 시사저널 기사)


정주영의 애틋함과는 별도로 이 대목은 좀 유감스러워, 아니,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고 남편이 버젓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데려와 ‘손잡고 출근’하고 싶어서 돈 70억을 들여 첫사랑의 집을 마련하고 거기에 들어가 살다니. 늙은이의 주책이다 싶기도 하고, 어찌 보면 ‘돈X랄’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뭐라고? 그래서 내가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흠, 어쨌건 나는 성공을 거둔 이들이 흔히 지니는, 자신도 모르는 오만한 습관으로 보여 유쾌하지 않았어. 첫사랑 그녀가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세월은 우리를 갈라놓았고 또 그 전에 이미 우리는 다른 운명이었습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살다가 저승에서 만납시다.”라고 했으면 딱 좋았겠는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녀를 찾아 주오’ 호소하기 2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어. 나이 여든넷의 검버섯 피어난 노인 정주영은 북한 측 인사에게 1시간 동안이나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고 해. 아마 정주영의 머릿속에는 그가 고향을 떠나온 뒤 지나친 한 갑자의 세월이 슬로우 화면으로 지나가고 있었을 거야.


문득 그 정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상상해 봐. 그 새는 발음으로 난처해하는 북한 관리에게 얼굴 바싹 들이밀고 “어떻게 죽었숨미까? 많이 앓다 죽었숨미까? 무슨 병이었숨미까? 잘 살았숨미까? 굶지는 않았숨미까?”라면서 애달파하는 한 나이든 남자의 애면글면한 모습을 떠올려 보렴.


지난 이산가족 상봉 때, 아내 뱃속에 아이를 남긴 채 전쟁에 휘말려 버린 남편과 아이를 혼자 길렀던 아내가 65년 만에 만나는 걸 보면서, 대체 역사란 무엇이고 국가란 무엇이기에 저들의 평범하고도 무색무취할 수 있었던 사랑을 저렇게 피비린내가 등천하도록 저미고 썰고 갈라놓았는지 한탄했었어. 그 한탄의 메아리 와중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외치면서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고, 그 와중에 노동자들 두발 검사부터 식칼 찔러 넣기까지 못할 일도 많이 했지만 종국에는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 드리워진 분단의 철조망을 사뿐히 뛰어넘어 옛 첫사랑까지 ‘도전’하려고 했던 한 남자를 생각해 본다. 올해는 그가 세상에 온 지 100년 되는 해거든. 그의 100년은 그를 숭배하든 격하하든 곱씹어 볼 의미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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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가전사


"가끔 하는 전쟁 이야기 사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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