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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나 50만 원 필요해. 만들어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말한다. ‘네 이름으로 거짓 출장비를 청구하라’는 뜻이다. 상사와 자신의 이름을 올려, 가지도 않은 출장비를 청구하면 통장에 적게는 몇십만 원이 들어온다. 통장은 부하직원의 것일지 몰라도 돈은 아니다. 찍힌 숫자만큼 현찰로 가져다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사만 그랬던 건 아니다. ‘상사’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아마 신입사원 시절에 똑같이 자신의 상사에게 돈을 만들어 가져다주었을.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세금이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부정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던 한 부하직원은 감사실에 이를 제보한다. ‘자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따돌림과 괴롭힘이었다.

 

"일주일 후에 전 직원들에게 (감사실로부터) 공문이 떠요. ‘ㅇㅇ과 이재일이라는 사람이 이러이러한 문제제기를 해서 전체 특별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너무도 당연한, 모두가 하는 부정을 왜 문제 삼냐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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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의 직장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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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타쿠(이하 ‘챙’): 2년 차에 있었던 일이죠?

 

이재일 연구원(이하 ‘이’): 네. 사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기원’)은 건축공학 연구를 한 사람들에겐 꿈의 직장이에요. 기회가 돼서 다니게 됐던 건데 그런 일이 있었던 거죠.


(2004년 입사, 제보는 2006년. 부정, 그러니까 횡령은 약 2년의 직장생활 동안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돈을 현찰이 아닌 계좌로 송금받는, 다시 말해 기록 남기는 걸 꺼리지 않을 정도로 타성에 젖어있었으니까.)

 

: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횡령하는 건가요?

 

: 제가 저하고 팀장님이 같이 출장을 간다고 내부결재 시스템에 올리면, 두 사람 몫으로 출장비가 나와요. 두 명에 기본 50만 원이니까 한 번에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백만 원도 넘게 들어와요. 인원을 많이 넣을수록 불어나니까요. 그리고는 출장을 가지 않죠. 돈은 기안을 올린 제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걸 인출해서 드려야 해요. 제 이름을 팔아서 돈을 드리는 거죠.

 

처음에는 “이거를 왜 해야 돼요?”라고 여쭤봤더니, 뭐가 필요하다, 회식비가 없다, 국토부에 상납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처리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댔어요. 문제는 없는 이유도 만든다는 거.

 

: 나쁘게 생각하면 이만큼 쉽게 현금 뺄 곳이 없네요. 근데 본인 이름이 올라간 건데 서류상으로는 발을 들인 거 아닌가요?

 

: 그렇죠. 아무리 ‘인 마이 포켓’을 안 했다고 해도, 결재가 제 이름으로 올라갔으니 모르는 일이기는 해요. 현찰로 왔다 갔다 한 것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잖아요. 어떤 기자분이 그러셨어요. 그쪽에서 밥 사 먹으라고 몇만 원이라도 주지 않았냐고. 주셨어도 안 받았겠지만, 주시지도 않았어요. 명확하게 ‘이번 달에 얼마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거기서 저한테 돈을 주시겠어요?

 

: 듣고 보니 그렇네요. 문제가 있었던 건 출장비 뿐인가요?

 

: 법인카드도 막 긁고, 그때 유행했던 PDA가 갖고 싶으셨는지 가짜로 실험목록을 만들어 사기도 했어요. 그분들 연봉도 많으신데 연봉에 비해 푼돈을 쓰기 싫어서. 국가에서 보조금 받고 세금으로 연구하다 보니까 세금이기 전에 ‘서류를 잘 써내면 무마되는’ 눈먼 돈이 된 거죠.

 

: 세금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거죠?

 

: 네, 전 조직이 다 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2년 다녔는데,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신고를 했을 때 확인된 금액만 4억 8천만 원이 좀 넘었어요.

 

: 그동안에만 4억 8천을 횡령했고, 그 전에는 또 모르고, 이후에도 얼마를 했는지 모르는 것이고.

 

: 모르죠.

 

(하나 다행인 게 있다면 지금은 같은 방법으로 횡령할 수 없다. 이재일 연구원의 제보로 공무원여비규정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 제보 과정에 대해 여쭐게요. 처음에 건기원의 감사실에 제보하셨죠?

 

: 항상 가지 않은 출장에 대해 내 이름으로 돈을 받은 것에 대해 소명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제가 올렸던 결재서류를 출력해서 가지고 있었죠.

 

: 증거가 되겠네요. 그 서류를 들고 감사실에 가셨나요?

 

: 감사실에 갈 땐 서류를 들고 가지 않았어요. 꿈의 직장이었던 곳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부에서 자정작용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감사실에다가 이런 문제가 있으니 노력을 좀 해달라고 말을 했어요. 거기선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고 말은 했지만 속으론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언급한 분들한테 미리 전화를 돌렸어요. “이재일이 그렇게 얘길 하더라” “이런 말 안 나오게 미리 잘 하지 그랬냐”라는 얘기였겠죠.

 

(순진한 믿음의 결과는 가감 없는 신분노출이었다)

 

: 일주일 후에 전 직원들한테 공문이 떠요. “ㅇㅇ과 이재일이라는 사람이 이런 문제제기를 해서 전체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감사 대상은 뭐고, 누구의 PC까지 검사할 거라는 걸 다 정해줘요. 감사 날짜도 그로부터 일주일 뒤로 딱 정해놔요.

 

: 감사를 하긴 할 거니까 그때까지 치울 거 치우라는 거겠네요.

 

: 그렇죠. 그리고 전 어퍼컷, 라이트, 레프트 다 맞기 시작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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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따돌림과 괴롭힘

 

: 따돌림과 괴롭힘은 필연적이었겠네요.

 

: 따돌림이란 게 업무적 따돌림 정도여야 되는데, 제가 음란한 사람인 것처럼 음해했어요. 저는 스물대여섯이었고, 저희 팀장님이 남자고 싱글이셨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으셨던 분인데, 제가 팀장님의 첩이라는 소문까지 있었어요. 밥이라도 같이 먹는 사람이 있다손 치면 그 사람하고 불륜이라는 소문이 돌고. 여러 가지의 성적인 루머가 발전에 발전을 하는 거죠. 더 재미있는 건 제가 문란한 사람이라고 소문을 내면서, 자기들도 일부러 제 앞에서 컴퓨터로 그런(야한) 영상을 보는 거예요. 제가 위축되고 억눌러지길 바랐겠죠.

 

: 성희롱 아닌가요?

 

: 네, 성희롱이라고 제기를 했는데, 거론한 분 중에 한 분이 사실 회사가 내보내고 싶었던 사람이었던 거죠. 제 문제제기를 기반으로 그분을 파면시켰어요.

 

: 역이용해서?

 

: 네. 거꾸로 이용한 거죠. 하지만 제가 당한 부당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았죠.

 

: 상해위협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 상해위협이라는 게, 제가 어딜 가면 쳐다보고 있어요. 복도를 지나갈 땐 다른 사람 책상을 지나야잖아요, 지나가다보다 하고 마는 게 아니라 끝까지 얘가 어디 가나 감시하는 거죠. 뭐 하고 있는지는 계속 주시하고 있고.

 

저는 서울에 살았고 회사는 일산이라 차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어느 날 퇴근하는데 차로 누가 따라오는 거예요. 내부순환로를 올라가려고 하는데 옆 차가 창문을 열더니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켜요.

 

: 도로에서요?

 

: 네. 저는 차에 탄 사람에 누군지 알고, 그분도 저를 알잖아요.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곤 문자가 와요. ‘내가 네 차 번호도 알아. 너 조심해’ ‘퇴근할 때 깜깜한 길을 조심해’. 자기가 나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듯이.

 

(꼭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사람을 정신적으로 옥죄는 게 얼마나 무서운 폭력인지는 실감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다.)

 

: 경찰에 신고해도 될 것 같은데요.

 

: 경찰에도 얘길 해봤는데 물리적 가해를 하지 않은 이상 방법이 없다고.

 

: 면전에서 해코지를 들은 적도 있죠?

 

: 하나는 “너, 학교에서 뭐 배웠어? 아니, 석/박사까지 나왔으면 연구비 삥땅치는 거 정도는 기본으로 알아야지. 원래 연구는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나는 거야”였어요. 연구보다 잘해야 하는 일은 문서라는 거죠. 근데 그분들, 석/박사 다 외국에서 하신 분들이에요. 삥땅치는 건 한국에 와서 배웠을 거란 말이죠.

 

제가 건축공학 박사 수료(학점은 땄으나 논문을 통과하지 못해 ‘학위’가 없는 상태)에요. 박사학위를 딸 수 없었던 게 그분들이 저희 교수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당신이 가르쳐서 내보낸 애 하나 때문에 전반적으로 업계가 어수선하다.” 그 뒤로 교수님이 만나주지 않으셨어요.

 

: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까 박사 논문을 진행할 수가 없었겠네요.

 

: 네. 문제는 다른 학교에서라도 학위를 받아야 하는데 저를 받아주지를 않겠죠? 동네가 좁아서 다 아니까.

 

: 업무 외적인 게 이 정도라면 업무적 따돌림은 늘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연구직은 각자만의 공간이 있어요. 책상에 파티션이 나뉘어 있는데 파티션과 파티션 사이에 저를 가둬 놓고 막아버리는 거죠. 평상시에도 그림자처럼 지나가 버리고 일도 주지 않았어요. 보직변경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연구직이라는 게 전공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부서를 옮기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심지어 저를 환경기술과로 보냈어요.

 

: 원래 건축인데 환경 쪽으로.

 

: 제가 하는 게 건축에서도 ‘건축관리’거든요. 굉장히 범위가 좁은 분야에요. 범위를 벗어난 데다 같은 건축도 아니고 환경으로 보내버리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누가 와서 “쟤가 걔라며?”라고 하면 그 과에서 저를 보겠어요? 일을 시키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제가 꼬투리 잡지 않을까 생각하겠죠. 전화 받고 복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일을 주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다 보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퇴직 혹은 해고)

 

 

3. 제2막의 시작: 재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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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기원을 자의든 타의든 그만뒀는데, 국책연구원이면 공무원 아닌가요?

 

: 공무원은 아니고 준공무원 신분이에요. 국가직이니까 공무원에 준해서 모든 것을 적용을 받지만 공무원 신분은 아니죠. 연구직은 다 비정규직이에요. 계속 연봉협상을 하면서 재계약을 해요. ‘정규직’이라고 뽑아도 ‘n년 계약을 하되 연봉협상은 해마다 한다’하는 식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1년마다 재계약을 했었는데, 연장이 되겠어요?

 

: 정확히 말하면 그만둔 게 아니라 ‘재연장이 안 된’ 상황인 거네요.

 

: 안 되는 거죠. 제가 연장이 안 되면서 동기들도 다 안 됐어요. 저로 인해서 제 동기들의 이미지도 다 만들어진 거죠. 윗분들은 ‘쟤도 똑같이 머릿속에 주입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데리고 있기 싫죠.

 

: 칠 건 빨리 친다?

 

: 네. 조직뿐만 아니라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한테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것만큼은 안 하고 싶었는데 문제는 그렇게가 안 된다는 거.

 

: 복직소송은 안 했나요?

 

: 계약연장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건기원에서 제가 돈을 요구해서 밀고 들어가는 거고, 제가 탱크로 밀고 들어오는데 자기들은 권총조차도 없다고 얘기를 했었어요. 변호사를 여섯, 일곱 명 쓰면서.

 

: 권총도 없다며 변호사를 그렇게 많이 쓰네요.

 

: 결론적으로 제가 1심에서 졌죠. 항소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던 차에 ㅇㅇ일보하고 인터뷰를 했었어요. 기자분이 기사가 나가면 힘을 받을 테니까 항소를 해보라고 하시는데, 해서 뭐하나 싶은 거예요. 신분이 다 노출이 된 상태에서 돌아가면 뭐하나. 그래서 항소를 안 했어요.

 

: 조금 아쉽네요. 언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 그 시절엔 기자분들이 개인보다는 조직을 더 신뢰하셔서요. 어떤 기자분 하고 만나기 전에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했었어요. 그런데 만날 약속 전에 전화해서는 왜 거짓말했냐고 “당신 조직은 그렇게 얘기 안 한다.”고 따지는 거예요. 제가 그랬죠. 만일 저를 못 믿으시겠으면 오시지 말라. 나중에 조사 다 끝나면 오시라고.

 

: 안 왔죠?

 

: 그렇죠.

 

: 조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본론으로 돌아가 볼게요. 감사실 사건이 있고 나서 재신고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 누가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거예요. 시민단체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과 <함께하는시민행동>에 찾아갔죠. 법률적인 상담도 받고, 그 때 단체에서 ‘밑빠진독상’이라는 걸 했거든요. 이 상이 사건을 언론에 좀 오픈시켜줬죠.

 

(‘밑빠진독상’은 <좋은예산센터>에서 2000년부터 ‘선심성 예산배정과 어처구니 없는 예산낭비사례를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여기서 ‘밑빠진’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고. 이재일 연구원의 사례는 2006년 33회 밑빠진독상을 받았다)

 

: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건기원에 적이 있을 때인가요?

 

: 네, 도움받는 중간에 적이 없어졌고요.

 

: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뭔가 잡혀갔던 거 같네요.

 

: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이 제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이하 ‘권익위’)에다가 신고할 수 있게 도와줬어요.

 

: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 권익위에 조사받으러 다녔어요. 그때는 권익위에 정직원이 없고, 감사원, 검찰 등 여기저기 부서의 전문가들이 파견을 왔었어요. 저는 감사원에서 오신 분이 조사해주셨죠. 법이 없었음에도 그나마 진행이 됐던 거 같아요.

 

: 여기서 법은 어떤 법인가요?

 

: ‘공익신고자 보호법’이요. 그때는 법이 없었는데도 제보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했고 실상을 밝혀내서 어떻게든 벌을 주려고 했었어요. 지금 법 테두리 안에서도 그 역할이 잘 안되지만요.

 

: 조사가 하루아침에 끝나는 건 아닐 텐데,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수입이 없었을 거 아니에요.

 

: 조금 쉬다가 A기업에 들어갔어요. 문제가 생겨서 오래 못 있었지만. A기업에 다니면서도 조사를 계속 받았잖아요. 권익위에서 저로 인해 공무원여비규정이 바뀌었으니까 보상금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4억 8천만 원이 다 환수된 건 아니고 4천만 원 정도가 환수됐는데 그 몇 퍼센트를 준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보상금 심의위원회가 열려야 하는데 신청하겠느냐고 물어서 신청했어요.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좋은 거라고 하니 당연히 신청했어요.

 

: 신청해야죠. 당연히 해야죠.

 

: 심의 끝에 제가 포상하고 훈장을 받게 된 거예요. 문제는 상을 받으러 간 장소에 A기업의 이사님이 있었던 거죠. 그 해에 A기업도 기업부문 상을 받았거든요. 이사님과 딱 눈이 마주쳤어요. 신분이 딱 드러난 거죠.

 

: A기업에선 ‘기업을 말아먹을 친구’라고 생각했겠네요.

 

: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고 나서 더 못 다녔어요. 요즘 말로 빼박?

 

: 예, 빼박(‘빼도 박도 못한다’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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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나서는요?

 

: 그만두고 유학을 갔죠. 아예 한국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갔어요. 딱 서른에 떠났는데, 저희 어머니가 유학간 데까지 오셔서 어쩔 수 없이 돌아왔죠. 서른넷, 다섯에 왔나 봐요.

 

: 신기한 전개네요. 보통 공익제보자들은 제보 후에 직장을 잃고 힘들어하거나 생활고를 겪는데, 재취업하고 유학까지 가는 게.

 

: 쉽지는 않았어요. 유학도 전공을 바꾸려고 간 거였어요. 업계가 좁으니까 이제 그쪽에선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고학력이기 때문에 다른 데 지원을 할 수도 없어요. 받아주지 않아요. 그래서 사회복지 공부를 했어요. 유학 가기 전에 일 년 동안 사회복지사 공부하고, 복지사로 일하다가 유학을 간 거죠. 유학 가선 MBA(경영)를 했어요. 경영은 어디에다 다 쓸 수 있으니까.

 

사실 스텝업을 하려고, 그 단계를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여러모로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지난 일로 계속 눈물을 흘릴 수는 없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이 상황에 대해선 인지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인지하기가 힘들죠. 화나고 억울하니까. 근데 공익제보 때문에 회사에서 잘려서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돼요. 덮어두라는 게 아니라 장기전을 위해서는 다른 걸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

 

 

4. 말 못했던 고통

 

: 담담하게 말하지만 전 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됐을 리가 없잖아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고통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있었죠. 화병이 났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사람들이 이럴까 너무 화가 나서 병이 났어요. 어느 날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구요. “너 왜 밤마다 방에서 나와서 냉장고를 여느냐.”고.

 

: 몽유병이 생긴 건가요?

 

: 네, 그게 생겨서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거죠. 꿈에서 그 사람들하고 싸우고, 일어서서 벽을 쳐서는 손이 깨지고. 그때 14층에 살았는데 창문을 열고 앉아있기도 했어요. 나도 모르게 구멍 뚫는 펀치로 손을 찧었던 적도 있고. 이걸 인지하고나서는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서 제 발로 병원에 갔어요. 의사선생님이 해리성 장애까지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해리성 장애의 ‘해리’는 ‘연속적인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시사상식사전, 박문각)’으로,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정체 장애, 해리성 둔주 등이 포함된다.)

 

: 자리에 있다가 잠깐 이석을 했을 때 누군가가 내 자리에 불을 지르는 건 아닐까 불안해요. 화장실을 못 가겠고, 화장실을 가더라도 잘 찾아왔나 싶고, 화장실이 맞나를 확인하려고 타일을 만져보고. 현실인지 상상인지 계속 확인해야 하는 정도까지 간 거죠.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빨리 낫기 위해선 그분들이 당신한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분들이 그러시겠냐구요.

 

: 그럴 리가 없죠.

 

: 의사선생님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 싶어서 상담을 줄였어요. 이 얘기를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들으신 분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갔던 건데, 이제는 상담이 더 소용이 없겠다는 걸 느끼고 끊었던 거 같아요. 한 1년 걸렸지만.

 

: 의사에게 말한 게 처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요? 가족이라던가.

 

: 가족한테는 말하지 않았어요.

 

: 혼자 감내한 건가요.

 

: 그렇죠.

 

: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어머님이 굉장히 많이 놀라셨겠네요.

 

: 저희 어머니도 뭔가 이상하니까 왜 밤에 냉장고를 여닫냐고 하셨겠죠? 저도 그 얘길 듣고 병원에 간 거니까.

 

(가족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 내가 더 힘들지도 몰라서, 그래서 말을 안 한 걸까 멋대로 짐작만 하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5. 공익제보 이후의 삶

 

: 요즘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 서울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고, 청렴연수원(국민권익위원회 산하기관) 청렴강사로 있어요. B대학에선 행정학 공부를 하면서 공익제보에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정책하고 행정을 적절히 넘나들면서.

 

: 계속 공부를 하시는군요. 원래 공부를 좋아하시나요?

 

: 아뇨.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그저 공익제보자로서 말을 할 때 제 목소리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들리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거예요. 극성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학문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이렇다고 말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거죠.

 

: 지금 하는 일도 공부하는 것과 연관이 있으시겠네요.

 

: 네. 연구하고 공부한 덕분에 공익제보자 분들을 위한 제안을 하고 있죠. 현실적인 부분과 학문적인 부분에서 서포트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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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제보 하신지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공익제보자‘로 사는 삶은 어떤가요?

 

: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살았던 게 절대 아니잖아요. 예상하지 못한 삶을 살기 때문에 더 스펙타클하게 살고 있어요.

 

: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제보하실 건지.

 

: 하긴 할 거예요. 대신 방법을 좀 달리 취하겠죠. 그때는 너무 어려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치기 어린 정의감이란 게 있었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하지만, 지금은 말을 하되 그렇게까진 대놓고는 안 하겠죠. 하하.

 

: 돌려 돌려서.

 

: 네, 돌려 돌려서. 직접 말하지 않고도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정면돌파를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전략이 없었던 거죠. 당연히 바뀌어야 하는 문제고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앞뒤 가리질 않았어요.

 

: 정면돌파를 해서 더 멋있었던 거 같아요. 보통은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잖아요.

 

: 다른 공익제보자 분들을 본 결과로 판단하면, 다들 그런 고민을 하고 제보하진 않으시더라고요. 제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많은 설문조사에 ‘(제보하기 전) 이걸 말하고 난 뒤 당할 불이익이 걱정됐다’는 질문이 있는데, 그거는 좀 안 맞는다고 봐요. 왜냐면 사후에 돌이켰을 때는 ‘두려웠다’고 말하지만, 당시엔 두려웠으면 안 했을 거예요.

 

: 제보하는 게 너무 당연하니까 한 것뿐?

 

: 당연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 제보하는 거지, 다른 생각을 했으면 안 하죠. 연애할 때도 조건만으로는 연결 안 되는 거랑 똑같아요. 첫눈에 팍 오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그거랑 똑같이 여러 생각을 하면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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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혹시 적십자사의 혈액관리 문제 제보하신 분 아세요? 에이즈 걸린 사람의 혈액인데 관리가 안 돼서 수혈용으로 쓰이는 거예요. 그 팩을 수혈받으면 에이즈 걸리는 거죠. 이렇게 혈액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걸 제보하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만약 내 가족이 그걸 수혈받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셨대요. 앞뒤를 잰 게 아니라 당연히 바꿔야한다는 마음에 말씀하신 거라는 거죠. 당연한 얘기니까 한 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예요.

 

: 조건이 많고 생각할 게 많으면 제보할 수가 없겠네요.

 

: 경주마처럼 앞만 보이면 하지만 옆이 보여버리면 못 하는 거죠. 제가 지금 공익제보 관련 일을 하고 있잖아요. 공익제보를 할까 말까 망설이시는 분과 상담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고민되면 안 하시는 게 맞다.”고 말씀드려요. 뭐가 옳은지는 알지만 이면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망설이시는 거거든요. 그러면 안 하는 게 맞죠. 공익제보자에게 박수 쳐주고 격려해주는 역할로도 충분해요.

 

: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공익제보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혹시 말리실 생각은?

 

: 말리지 않아요. 대신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자고 할 거 같아요.

 

: 역시 전략을 세워서?

 

: 네. 단계별로 전략을 두고, 1단계 했는데 예상되는 결과가 안 나왔을 때는 다르게 가보는 식으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는 거죠. 공익제보자는 사회에 필요한 역할이니까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도해야죠.

 

: 역시 해본 사람이 아는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 제가 안 억울해서 옛날 일을 접어둔 게 아니라 거기에 붙잡혀 있으면 다른 걸 할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잖아요. 역경을 겪었지만, 앞으로, 긍정적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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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연구원은 제보 당시(2006년)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로. 흥미로운 건 놀라운 기억력과는 반대되는 놀라울 정도의 차분함이었다. 거기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위해 억울했던 기억을 차곡차곡 정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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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때문에 ‘스펙타클’한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이재일 연구원은 공익제보와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길가다 넘어지기만 해도 다시는 그곳을 가고 싶지도 않은 게 사람 심리 아니던가. 하지만 연구원은 '거기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제보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편집부 주 
 
 
본 이너뷰 기획 시리즈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다. 
사회를 위해 용기냈던 분들을 딴지 기자들이 돌아가며 
찾아갈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추천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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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구원의 횡령을 고발하다 - 이재일 편
 
공익제보자, 공익활동가의 삶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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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하지마세요

 

 

 

 

 

사진: 나봉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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