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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중 OOO님께서는 가장 먼저 출구 쪽으로 나오셔서 안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비행기 안, 착륙 후 들려오는 기장의 안내였다. '기장이 왜 나를 제일 먼저 내리라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 순간 머리가 텅 비는 것처럼 백지상태가 되어버렸다.

 

3살배기 아들과 함께 온 터라 챙겨야 할 짐이 많았다. 하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빨리빨리’에 숙달된 우리네 문화 때문이었을까. 다들 험한 인상을 하며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OOO이 누군지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누군가 짜증이라도 내지는 않을까 불안감이 앞섰다.

 

다행히도 어린 아이와 동승했다는 이유로 이코노미 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얼른 짐을 챙겨 출구를 향해 걸어 나왔다. 빽빽하게 복도에 서있던 인파를 뚫고 그렇게 가장 먼저 기내를 빠져나왔다.

 

“OOO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대답하는 순간 지체 없이 두 남성이 내 양팔을 잡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아시죠? 같이 가시죠."

 

순간 내 옆을 숨가쁘게 따라 걸어오던 아들이 생각났다.

 

“저... 잠시만요. 아들이 옆에 있는데요. 혹시 제가 혼자 따라 가면 안 될까요?”

 

짐을 들고 있던 터라 아이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파견 나온 경찰 2명은 이내 내 팔을 놓아주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제 막 만 세 살 넘은 아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파악하고 몸이 경직돼 있었다. 아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랜 비행시간(영국-한국은 보통 10시간 이상 걸린다) 때문이었을까. 안아 달라 조르는 아들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안았다. 피로가 쌓였었는지,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이내 품에 안겨 겨드랑이 사이로 고개를 푹 묻었다.

 

경찰 2명은 “이쪽으로 오시죠”라는 말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는 산 만한 짐을 메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을 안고 있었다. 어깨가 빠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힘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따라갔을까. 나는 조그마한 사무실로 인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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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통보 사실 통지서’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정보통신망 사건으로 수사 중에 소재불명 사유로 지명 수배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했다. 아직 혐의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도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조치가 내려졌다는 말도 함께 전해 들었다. 1개월 안에 서울 OOO경찰서로 출석하여 조사를 받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이 발부 될 수 있다는 고지도 빼 놓지 않았다.

 

눈 앞이 캄캄하다거나, 가슴이 먹먹하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까지 할까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 삐꺽(?)거리는 몸을 추스르기 위해 병원도 다녀야 했고, 찾아 봴 분들도 많았던 때, 경찰은 날짜를 고지해 놓고도 연락이 안 닿을 때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연락이 안되면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며 가족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나는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했을까.

 

 

 

나도 내부고발자, 휘슬-블로워(whistle-blower)다

 

서지현 검사(이하 서 검사)가 검찰 내부의 성추행을 고발했다.

 

 

 

 

 

현직 검사가 ‘내부고발’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해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조직문화가 폐쇄적이고 상하 위계질서가 견고한 조직일수록 권력은 상부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검찰이라는 조직이 갖고 있는 특성상, 이러한 성폭력 문제는 발생할 확률이 높은 데다가 숨겨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서지현 검사가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사상 불이익까지 받았던 것은 이러한 검찰의 생리를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을 밝히려 했던 다른 여성 검사도, “피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내부 고발자’(whistle-blower)이기 때문이다. 입국과 동시에 체포 비슷한 일을 경험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서지현 검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직장을 그만 둔 상태라 인사상 불이익이 아닌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영어식 표현인 ‘휘슬-블로워’(whistle-blower)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의 ‘호루라기’인 ‘휘슬’(whistle)과 기류를 불러 일으켜 경종을 울린다는 표현의 ‘블로워’(blower)의 합성어인 ‘휘슬-블로워’가 ‘내부고발자’라는 단어로 대체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이런 입장이다 보니 불리는 명칭에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따지고 보면 조직 내에 부정한 일을 알리는 행위가 부정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휘슬-블로워’가 없인 사회 정화는 불가능하다. 이는 마치 왕따를 당해 구타를 당하는 학생이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알리는 일을 ‘고자질’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대로 내버려 두는 게 우리네 ‘고자질=비겁한 짓’ 문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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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블로워’로서의 시작

 

2016년 12월 23일, 딴지일보의 필진이 된 이후 두 번째로 쓴  “저는 영국대사관 직원이었습니다2: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습관'" (링크)에서 나는 직장 동료가 당했던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 한 고위공직자(외교관)가 자신의 직급를 이용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후 이를 강제 무마하고, 타 남직원들의 성추행까지 눈감게 한 사건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수 차례 보도된 바 있지만, 외교부(재외공관)의 성문제 관련 문제는 국민들에게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남미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서울에서까지 외교관들의 재외공관 내 성폭력, 몰카 사건 등 얼마나 많은 사례들이 있는가.

 

물론, 내가 근무했던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한 외교관이 벌인 부정의혹들을 파헤치던 중, 직장 내 동료 여성으로부터 해당 외교관으로부터 받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서지현 검사가 2010년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니,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서지현 검사와도 같다. 결국 피해는 피해자가 받게 될 게 뻔했다. 2차 피해는 물론, 인사상 피해까지. 

 

사실, 재외공관은 검찰과 같이 피해를 당한 (대부분) 여성이 피해 사실을 폭로하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다. 특히, 일반 직원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인사권을 시작으로, 근무 평점과 관리감독 등에 대한 모든 권한이 상급 외교관에게 있다. 섣불리 폭로전(?)을 펼쳤다가 직장도 잃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할 수도 있다. 한 여성 외교관을 통해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선배 외교관이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해도 당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문제 제기 해 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결국 나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게 그녀의 변이었다.

 

뭐, 성폭력 문제 뿐이겠는가. 친일을 비롯하여 영화 개봉과 함께 최근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각종 간첩조작사건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문까지 당해야 했던 이들의 삶을 보라. 가해자는 ‘웃기는 소리하고 있어’라고 조롱해도 아무런 처벌없이 떵떵거리고 살아가지만, 누명 쓴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감수하며 또 다시 피해자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다. 물론, ‘휘슬-블로워’에게도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휘슬-블로워’가 되기로 결심했다

 

현재, 내가 재판을 받고 있는 이유는, 가해자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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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기사 - (링크)

 

사실, 이러한 사례는 너무 많다. 위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녹취나 CCTV 등과 같은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경우, 가해자가 혐의만 부정하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아무런 처벌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피해 사실을 밝혔던 나도 재판을 받아야 했고 부당한 결과를 얻어 재심을 거듭하고 있다.

 

“법적으로 따져보면, …” 이라는 말은 “진실은 관심 없고요”라는 말과 같다고 한다. 결국 누가 법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모면해 나가는지를 싸우는 것이 법리다툼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이미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휘슬-블로워’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랜 기간 동안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하소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일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인권이 유린되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우리네 사회 병폐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내가 성추행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온갖 혜택과 호사는 다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한쪽으로 편향된 이 모든 불합리의 끝은 특정 대상만을 향해 있지 않았다. 결국 그 모든 부당함은 국민들이 끌어 안아야 한다.

 

지난 2016년, 한국은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나라 전체가 혼돈의 상태였다. 그런 시국에 대사관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대사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와 관련하여 성추행과 보복 인사 등과 관련된 부조리를 알렸다. 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겪었던 일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 국빈방문 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 딴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다행히 JTBC를 비롯해 많은 언론에서 인용되었다. 

 

 

 

[사회]박근혜 대통령 영국방문, 그날의 진실 (링크)

 

 

 

물론, 비난을 받기도 했다. 본인이야 그만 뒀으니 괜찮겠지만 남아있는 이들이 얼마나 눈치보고 직장생활을 하겠느냐며 질타의 문자도 받았다.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휘슬-블로워’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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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처음 대사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나라를 위해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공공기관에서 대민업무 및 외교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터라 나름 긍지를 갖고 일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정부기관, 특히 외교부의 조직문화는 겉보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외교’라는 화려하고 젠틀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그들만의 카르텔은 이미 딴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내부의 문제들을 밖으로 꺼내면서, 한국의 엘리트 카르텔이 얼마나 촘촘하고 강력하게 잘 짜여져 있는지 절실하게 체감했다. 푸코의 말처럼, 그들은 이어지지 않은 듯 보이지만 겹겹이 쌓인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권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나에게 다시 물었다. 알고도 그냥 넘어가야 했을까? 안위와 신변을 위해서 나는 침묵했어야 했을까?

 

이번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검찰 내의 성관련 비위가 해결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듯이, ‘미투 캠페인’과 같은 사회적 반향을 통해서라도 이 사회의 성폭력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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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 (링크)

 

 

 

그저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끝으로, 지금 우리가 알게 된 수많은 역사 속 진실들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양심선언을 통해 알려진 것들이 많다. 1987의 검사, 의사, 경찰 등. 만약 그들의 양심적인 행동이 없었다면 누군가는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라는 경찰의 발표대로 생의 마지막이 기록에 남겨졌을 것이다.

 

내가 침묵하는 사이, 수많은 부정과 부패, 비리들이 묵인되고 있음을 잊지 않고 싶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