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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 일이다. 돌잡이에 판사봉과 청진기가 등장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사회의 속물성을 개탄했던 적이 있다. 옛적이다. 몇 년 전 참석했던 돌잔치에는 컴퓨터 마우스가 등장했다. 요새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하나같이 ‘IT 가이’이니 말이다. 그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다가 문득 내 안에서 헛기침을 하는 고루한 선비를 발견했다.

 

돌잡이는 원래도 세속적이었다. 장수하는 실이나 자손이 번성하는 대추, 무과급제의 활, 문과급제의 붓 등. 그 뜻을 따로 추적할 필요도 없는 쌀과 돈도 있다. 실과 대추가 퇴조한 것은 장수와 자손을 유전자와 자궁의 건강이 아닌 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돌잡이 세태가 천박하다고 하기엔, 원래 돌잡이란 게 그랬다. 오히려 돌잡이는 전통을 잘 지켜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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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비판받는 허례허식의 대표주자인 제사상과 비교해보자. 유교문명의 유산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기고픈 서구인은 중국에 가서 실망한 후 한국에 와서 목표를 달성하곤 한다. 한국의 제사상은 예스럽고 이국적인 '그림'을 제공한다. 만약 독자여러분이 다큐멘터리 팀에 소속되어 마사이족을 만나러 갔는데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있으면 김이 빠지지 않을까. 그런데 제사의 전통이 진짜 살아있는 곳은 우리가 아닌 중화권이다.

 

중화권의 제사상엔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먹거리가 올라간다. 바나나, 오렌지주스, 조니 워커 위스키 따위가 한가득 쌓여 있다. 돈 많은 한량이 작고했던 모양인지 스트립걸이 출장 온 장례도 본 적 있다. 물론 고인을 위해서다.

 

 

2.

불교가 일상 속에 살아있는 동남아에서는 어디에서나 흔히 불단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엔 청량음료도 올라가 있다. 더운 곳이니 부처님도 시원한 탄산의 맛은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본질이 유지되면 역설적으로 그림은 바뀐다.

 

한국의 제사상은 크리스마스트리다. 북유럽인들은 설날에 침엽수를 제사상으로 썼다. 우리로 치면 당산나무 쯤 되는 나무에 온갖 먹을거리를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제사상은 곧 잔칫상이므로, 제의가 끝나면 다 같이 나눠먹는다. 북유럽의 새해가 크리스마스와 겹치면서 설날 트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됐다. 당산나무에 두른 천과 트리 장식은 혈통을 같이 한다.

 

사탕이 걸려 있는 모습으로 과거의 유산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탕이 중요하지도 않다. 원래의 기능에서 멀어져 형식화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둘 다 공연한 일이라는 점에서 제사상과 트리는 한 형제다. 트리를 사고 꾸미는 일은 많은 서구인들에게 연중행사다. 비용부터 노동까지 몹시 귀찮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재미난 질문도 가능하다. 제사상은 허례허식이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냥 문화인가? 이거 완전히 사대주의 아닌가? 미국의 크리스마스 문화는 허례허식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렇게 미풍양속이니 허위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식으로 단정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만의 특수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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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의 제사는 크리스마스 파티와 같은 뼈대를 갖고 있지만 별도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형식을 맞춰야 하는 엄숙함이다. 많은 집안이 제사상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며느리의 노동이나 그와 비슷한 의무를 기대한다. 여기에는 동아시아 제사의 역사가 숨어있다.

 

추석과 설, 집집마다 일 년에 두 번씩 치르는 제사는 파티이자 하늘과 신 등에 현세의 사정을 구하는 기복이면서도, 그 뿌리는 지나치게 존귀하다. 우리가 아는 제사의 원류는 중국 천자가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서 하늘에 치르는 의식이다. 그래서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한다. 주나라 왕은 천자였다.

 

기원전에 수립된 문서인 <주역>에는 亨(형)이라는 한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형통하고 변화가 많다는 뜻인데 ‘제사지냄’을 뜻하는 享(향)자로도 쓰인다. 升(승)괘의 효사에는 왕용향(王用享)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왕은 주나라 왕이다. 한국에서 집집마다 치러지는 제사의 원형은 세상의 절대지존 천자의 특권이자 의무였다.

 

진시황이 황제라는 개념을 발명하자 천자는 황제로 승격되었다. 지위나 호칭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플레이션을 겪는 법이고, 최상위층의 문화라도 점점 밑으로 보급되게 마련이다. 삼국시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군주가 중국이 아닌 한반도에도 여럿 생긴다. 엄숙한 제사는 황제에서 왕으로, 왕에서 제후로, 제후에서 귀족층으로 점점 저변을 넓혀나갔다. 모두가 하늘과 대화할 일은 없으니, 군주를 제외하면 제사 대상은 조상이 되었다.

 

제사의 엄숙한 형식은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양반계층이나 지역유지의 단위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 모두가 양반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근, 현대에 이르러 모든 가정의 일상적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여성들이 억울함을 느낄 만한 조건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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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 많은 ‘일반’ 가정에서 기대하는 제사상은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지주나 양반가문의 그것에 가깝다. 음식의 규모와 종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고부갈등을 논하기 이전에 ‘고부’는 무엇을 했을까? 기미(맛보기)와 ‘데코레이션’만 했다. 그 많은 음식은 당연히 하인들이 했다. 현재로 오면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발생한다. 원하는 그림은 양반가문의 제사상인데 하인이 없으니 연차휴가를 명절에 붙여 내 밤을 새서 전을 부치는 며느리가 탄생한 것이다.

 

물질적 조건이 상향되면서 상위계층의 문화가 아래로 흐르는 것이야 당연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금속 식기는 부유층의 특권이었다. 그러다 20세기에 은과 놋 대신 스테인리스가 보급되자 금속 식기가 전국의 밥상을 점령했다. 세탁기는 하인들의 빨래 노동을 대신해주었다. 그러나 일반에 퍼진 귀족적인 제사상은 음식으로 이루어진 만큼 누군가는 노동해야 했고,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많은 마을이 집성촌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가친척이 지근거리에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제사는 모두의 일이며, 남성도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장작을 패고 가마솥을 옮기고 도축을 하는 일은 모두 남자들의 노동이다. 남녀는 서로의 노동을 뻔히 보며 축제를 준비한다. 많은 이들이 함께 어울려 노동한다. 벌초도 잡목을 제거함으로서 산림자원을 보존하는 의미를 겸했다. 추석과 설이 가문 단위의 축제라면 단오는 마을 단위였다.

 

이제 더 이상 단오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전통 커뮤니티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기계문명 덕에 명절날 남성은 거의 모든 근력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여성의 음식 노동만 남은 것이다. 이에 더해 전통 커뮤니티가 해체되면서 핵가족화 된 ‘집안’만 남았다. 제사에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파티의 의미가 사라졌다. 이제는 의무적인 행사다. 그럼에도 부계문화만은 남았으니, 이제 여성에게 명절의 음식 노동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아니라 오직 시댁에 바치는 세금이다. 그에 반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일은 남성이 몫이며, 크리스마스는 집안이 아닌 가정의 행사이니 본질은 같아도 현실의 체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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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혼한 여성이라면 현재의 제사를 착취로 느끼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봉사를 당연시하는 태도를 감수해야 하는 감정노동도 더해진다. 시대변화는 깔끔한 일방향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과 과거의 잔상이 겹치는 교집합의 지대 안에서 불공평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언젠가 제사가 한국여성들에게 얼마나 억압적인지를 토로하는 여성분의 분노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제사 안 지내는 집의 미혼남성으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곤란했다. 2018년 현재 그럴듯한 제사상은 기성 구세대의 욕망이다. 시간과 노동을 바쳐가며 시댁에 눈치 보이는 여성들의 불만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여기에 여성을 옥죄려는 ‘한남연대’나 음모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나로서는 해 줄 말이 없었다. 한국 남자는 머리에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연결되어 함께 사고하고 음모를 꾸미는 군체동물이 아니다.

 

집안일은 남편분과 잘 해결하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랬다간 분노의 폭풍을 맞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차오른 불만 앞에서 반성의 모습을 보이자니 화난 사람을 달래 눈 밖에 내보내려는 연기에 불과하고, 그분 시댁의 횡포에 공감해주자니 알지도 못하는 일가족을 폄하하는 꼴이었다. 허나 몸이 고생스럽고 감정도 상하시는 분들이 분명 많다. 독자 분들이 두루 잃고 혹여 읽힐 쓸모가 있어 뵈면 배우자에게도 건네 보시라는 뜻으로 기사를 썼다.

 

마지막으로 <주역>의 承(승)괘 효사에는 ‘부내이용약(孚乃利用禴)’이라는 구절도 있다. 믿음이 있다면 되는대로 간단한 제사를 차리는 것도 좋다는 뜻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강원도 산간에서는 잡곡밥에 조상님의 수대로 숟가락을 꽂고 제사를 해결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명절은 즐겁기 위한 파티로 시작됐다. 묵은 감정을 풀기는커녕 악감정이 새로 생긴다면 현재의 명절 제사상은 파티에서 너무 멀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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