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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2일 동경만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Missouri) 함상에서 역사적인 항복 조인식이 거행된다. 연합국을 대표해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짤막한 연설을 했고, 뒤이어 일본대표인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가 절뚝거리며 걸어왔다(그의 다리는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박살났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을 대표해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와 우메즈 요시지로(梅津 美治郎) 참모총장이 항복문서에 사인을 했다. 뒤이어 연합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맥아더가 사인을 한다. 뒤이어 연합국 대표들 승전국 자격으로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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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일본에게 ‘반성의 기회’는 없었다. 전쟁에 졌음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물론, 표면적인 변화는 있었다. GHQ(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주도하에 일본은 민주국가(?!)로 차근차근 변신해 갔다.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이 해체됐고, 화족제도(메이지 유신의 공신들에게 서양식 작위를 하사한 제도)도 폐지됐다. 일본 국민들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특별 고등경찰도 폐지됐다. 결정적으로, 일본제국헌법이 폐지되고, 일본국 헌법(日本國憲法). 통칭 평화헌법(平和憲法)이 만들어진다.

 

덴노는 살아남았다. 평화헌법의 제1장은 덴노를 위해 만들어졌다.

 

『덴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평화헌법의 제1장 1조다.

 

그는 상징으로 남게 됐다. 일본제국헌법의 제1장 1조가,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덴노가 이를 통치한다.』

 

로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지만, 어쨌든 덴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평화헌법의 제2장.

 

『일본국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9조 1항의 내용이다. 일본은 영원히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가 됐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9조 2항이 따라붙는다.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군대를 만들 수 없게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의 자위대는 ‘국가 공무원’이지 ‘군인’이 아니다.

 

덴노에 관한 내용을 제외한다면, 헌법의 첫 장을 ‘전쟁금지’로 시작한 거다. 그래서 ‘평화헌법’이다. 일본은 전쟁을 하지 못하는 국가가 됐다. 어쨌든 일본은 살아남았다.

 

이제 일본에는 언론의 자유도, 노조활동의 자유도 생겼으며, 자유롭게 선거도 할 수 있게 됐다. 그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도 폐지됐다.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우리 땅에는 아직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치안유지법이 살아있지만, 일본은 전후 이 악법을 폐지한다(GHQ가 폐지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그러나 전쟁의 반성은 없었다. 1937년 중일전쟁부터 시작한다면, 8년 전쟁이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에서만 최소 1,200만 명이 죽었다(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3,500만의 희생자를 내놓은 연구도 있다). 뒤이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영국령 버마, 네덜란드령 동인도, 영국령 싱가포르 등등 대동아공영권이란 이름으로 휩쓴 식민지에서 죽인 숫자를 다 더하면, 유럽 전선에서 히틀러가 죽인 숫자와 버금가거나 더 많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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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숫자는 충격적이다.

 

독일의 경우는 조직적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로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죽인’ 것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이런 홀로코스트가 없었다. 즉, 전쟁이 일어나는 전선(前線)이나, 점령지에서 당연하단 듯 살인과 강간, 약탈을 자행했던 거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구 일본제국군은 이런 전쟁범죄행위가 ‘상식’이었던 거다. 그렇기에 독일과 같은 전쟁범죄 기록이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전쟁을 치른 거였다.

 

중세시대 사무라이에게 총과 대포, 전투기를 쥐어주고 전쟁터에 내보낸 거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적은 죽이고, 적의 여자는 강간하고, 부족하면 약탈을 하면 된다. 그게 그들의 상식이었다. 죄의식이 없었기에 그들 스스로가 이게 ‘범죄행위’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무서운 거다.

 

놀라운 사실은 이 기록을 알고 있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마다 할리우드의 유태인 자본이 총동원 돼 홀로코스트를 말한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흐릿한 기억밖에 없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바로 ‘국제정치’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인 전쟁범죄를 말해야 할 시기에 국제정세는 다시 요동쳤다. 중국에서는 국공내전이 터졌고, 뒤이어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베트남 전쟁이 터졌다.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미국의 적에서 태평양을 틀어막은 ‘불침항모’로 변신했다. 실제로 일본은 냉전시대 내내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틀어막는 ‘마개’역할에 충실했다.

 

그럼 3000만 명을(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훌쩍 뛰어넘는 희생자들을 생산해 낸 일본인의 사과는 무엇일까?

 

1946년 5월 3일 극동국제군사재판(極東国際軍事裁判). 즉, 전범재판이 시작됐다. 약 2년 반에 걸쳐 이어진 재판의 결과 28명이 기소되어 25명이 실형을 받았다(재판 중 사망 2명, 소추 면제 1명). 이 중 사형을 받은 이는 7명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대속(代贖)이라 말해도 될 정도다.

 

그들의 죄를 더 캐묻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국제정세, 아니 미국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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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

 

연합국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을 때 일본이 이걸 바로 수락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달라졌을 거다. 남북한이 갈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불과 2주 만에 세계정세는 요동쳤다.

 

그 결과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았지만, 다시 살아날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된다.

 

남북한이 갈라졌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쟁 소식을 전해들은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당시 일본 총리의 발언이 모든 걸 대변한다.

 

“이제 일본은 살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당시 일본의 경제수준은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공장을 돌리고 싶어도 전력난으로 제대로 가동 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GHQ에 통사정을 해 겨우 중유수입을 할 수 있었던 게 1946년이다.

 

전후 일본을 먹여 살린 건 『팡팡걸』로 대표되는 매춘부들이었다. RAA(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 : 레크레이션 및 오락협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 단체의 일본명은 ‘특수위안시설협회’였다.

 

내무성 관료가 입안했고, 대장성의 예산지원으로 조직된 이 단체의 목적은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이었다. 겉으로는 일본의 순진한 처녀들의 정조를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원래 목적은 미군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거였다.

 

종전 직후 일본 가정의 모습들은 거의 다 비슷했다. 어머니나 여동생이 어딘가에서 돈을 구해오면, 집에 있는 남편과 남자형제들은 돈의 출처를 묻지 않고, 묵묵히 이들이 사 온 음식을 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일본 정부는 ‘특수 조달청’을 설치했고, 미국이 요구하는 군수품을 적극적으로 생산해 전달했다. 그 결과 1952년 6월, 군수품 공장만 400여개에 달했고, 이 숫자는 한국 전쟁 말기에는 860여개까지 증가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군사물품 구입만으로 25억 달러라는 돈을 일본에 풀었다.

 

경제적인 면 뿐만이 아니었다. 군사적인 족쇄도 풀렸다. 당장 한국전쟁이 터지만, 주일미군을 한국으로 돌려야했기에, 공백이 생겼다.

 

맥아더는 1950년 7월 8일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병력’을 요청한다.

 

“50일 안에 7만 5천의 경찰 예비대 창설을 요청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자위대’의 시작이다.

 

오히려 일본이 눈치 봐가며 청해야 할 일을 미국 측이 먼저 요구하게 되자 일본은 부랴부랴 병력을 모집한다. 1950년 8월 10일 보병 4개 사단으로 구성된 경찰 예비대를 조직하게 되고, 1952년 해안 보안대와 통합되면서 보안청이 설립 된다. 그리고 2년 뒤 방위청의 설립과 함께 ‘자위대 설치법’이 만들어 졌고, 이윽고 1956년 자위대가 만들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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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면은 이보다 더 극적이다.

 

1951년 9월 8일 한국 전쟁이 한참이던 그때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 센터에서 48개국이 참가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바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이다. 이 조약에 의해 일본은 이제 공식적으로 독립국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이전까지는 GHQ가 관리하던 연합국의 점령국 지위였다). 그리고 같은 날 미국과 일본은 미일안전보장 조약(Security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소위 말하는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제 일본은 공식적으로 독립국의 지위와 함께, 미국의 동맹이 됐다.

 

7년 전 패망했던 일본이 부활한 날이었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무서움이다.

 

 

 

마치며

 

이 시리즈의 처음은 엉뚱했다. 대부도 작업실에서 다른 분야 예술가들과 술을 마시다 ‘러일전쟁’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러일전쟁을 일본의 ‘운 좋은 승리’라고 말했다. 술이 확 깼다. 그들이 역사에 밝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난 러일전쟁의 전후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다들 불콰한 얼굴이었지만, 그날 날이 새도록 러일전쟁과 이어지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까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술자리가 파했을 때 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걸 왜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늘 하던 대답을 했다.

 

“다들 아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편집장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한다)

 

그날 저녁 무렵에 ‘다들 아는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국제정치를 들여다 볼 때 내 머릿속을 꽉 채운 한 마디가 있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외교 감각’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한반도란 땅덩이에 태어난 천형(天刑)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게 이 시리즈다. 이 시리즈를 다 읽었다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에 둔감하다.

 

한반도란 땅덩이는 대륙세력의 해양진출로로, 해양세력의 대륙진출로로 활용될 수 있는 지형이다. 하필이면, 이 땅덩이를 기준으로 미, 일, 러, 중 4대 초강대국이 선을 긋고 대치하고 있다. 이런 경우가 벌써 몇 번째일까?

 

무서운 건 21세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모습이 100여 년 전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거다. 안타까운 건 ‘북한’이라는 존재 덕분에 그때보다 더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제정치에 무관심하다. 우리의 일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러일전쟁의 결과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한국전쟁의 결과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부활했다.

 

국제정치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 3년 동안 이 글을 썼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국제정치를 재미있게 써보고 싶다.”

 

라는 간단한 말이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만 3년간 이런저런 부침과 천성의 게으름 때문에 연재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 동안 묵묵히 지켜봐주고 격려해 준 딴지일보 편집장과 편집부에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연재를 끝내려니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다 끝내면, 술집으로 달려가 그 동안 고생했다며 내게 술 한 잔 사주겠다고 결심했는데, 막상 마침표를 찍으려니 술 생각보단 고기 생각이 난다. 역시 술과 고기를 같이 먹어야겠다.

 

긴 시간 불친절한 연재를 응원해 준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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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딴지에서 연재된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시리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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