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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저잣거리에 보고도 믿기지 않을 기인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조선기인열전에서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선조수정실록 11년 7월 기록에 따르면 그 기인은 머리에 가마솥을, 신발은 나막신을,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갈 지자로 걷는다고 하는데 음주측정 결과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식사는 열흘에 한 번 정도 머리에 쓴 가마솥을 내려 밥을 지어 먹고, 무더운 여름에도 좀체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선 채로 3일정도 숙면을 취한다고 하니 계룡산에서 내려온 도인 일까요?

 

그럼 직접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왜 이런 행색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계십니까? 지나가는 행인들의 손가락질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데요. 사연이 몹시도 궁금합니다.”

 

“어허 리포터 양반, 그 성격깨나 급하시구만 마포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리다. 따라와 보시게나.”

 

이 기인의 정체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추정(?)되는 토정 이지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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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은 (1517~1578) 당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드는 해운물류의 중심지, 마포에 주거지를 정하고 있었어. 양반은 절대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시대정신이 지배하고 있을 때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천민들의 거주지역인 마포에 땅굴을 파고, 그 위에 흙으로 된 정자(토정)를 짓고 사는 것부터가 상식 밖의 행동이었어. 오늘날 마포대교 입구에서 상수동 초입길에 토정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야. 말이 나온 김에 주변 지명의 유래를 잠시 살펴 보면 조선시대 관리들의 봉급을 지급하던 곳에서 유래된 광흥창과 소금창고가 있던 곳은 염리동이야.

 

아무튼, 이지함이 이런 기인이 된 것에는 필경 곡절이 있을 터, 그의 출생부터 인생의 결정적인 주요 장면들을 살펴보고 그의 행동의 원인을 유추해 보자고.

 

이지함은 151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는데 마포만큼이나 주요 활동무대였던 이곳에는 지암재라는 고개길의 명칭이 지금도 남아있어. 고려의 천재, 목은 이색의 6대손으로 태어난 그는 안타깝게도 20세가 되기 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형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었어. 학위는 화담 서경덕 스쿨에서 받았어. 설현+수지급 미모의 황진이를 고이(?) 돌려보낸 화담의 제자답게 천문, 의학, 수학, 역학 등에도 능통했어. 처가가 억울하게 역모에 휘말려 멸문한 사건과 한양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던 베프 안명세의 억울한 죽음은 본격적인 기인 라이프의 시발점이 되었어.

 

“이보게 명세! 내 자네 뜻은 충분히 존중하지만 요즘 시국이 워낙 어수선하여 자네 걱정으로 밤 잠을 못 이루고 있네.”

 

“국가가 비밀을 보장하는 사관의 기록을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수정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권력자들의 뜻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네. 죽음으로 그들에게 맞설 것이네.”

 

승정원에 근무하던 안명세는 을사사화에 대한 기록 수정을 요구 받았으나, 온갖 협박과 고문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어. 국가 기록물을 거짓으로 기록하라는 권력자들에게 맞선 대가는 사형이었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조선이라는 배는 이제 곧 침몰하겠구나. 컨트롤 타워를 잃은 조선호에 탄 백성들만 가엽구나. 처가와 친구도 지킬 수 없는 이런 세상에서 벼슬을 하면 무엇하리.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조차 힘들구나. 팔도를 유랑하며 살아가련다.”

 

삿갓을 쓰고 전국을 유랑한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이지함도 가마솥을 쓰고 전국을 유랑하기 시작했어. 이지함은 이 전국 국토순례를 통해 전국의 상권파악을 파악하고, 이렇게 얻은 고급 정보를 백성들을 위해 사용했어. 이때의 이지함의 맹활약을 모티브로 박지원이 소설 ‘허생전’을 썼다는 아주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따르면 이지함은 어느 날 박씨를 가지고 한 무인도에 들어 갔다고 해.

 

“토양, 바람 모든 것이 최상의 조건이구나. 1등급 바가지를 만들어 팔면 수익률이 짭짤하겠구나.”

 

박을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아 토지 임대료도 없는 무인도에서 수만 개의 박을 키운 후, 바가지를 만들어 판 돈으로 1,000석에 이르는 곡식을 샀다고 해. 그리고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준 후, 그가 한 행동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뒤도 안 보고 돌아섰다고 해. 저기... 님아 집에 생활비는 갖다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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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스쿨 졸업생답게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급 예언의 사례도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 예견을 했다고 하니, 이런 능력을 부러워해야 하나. 자신이 죽을 날을 알고 살아가는 건 행복일까? 저주일까?

 

이지함은 자신의 최애 제자 조헌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

 

“며칠 전에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네. 앞으로 15년 후에 우리 조선에 피 바람이 불 것이니 모두가 대비를 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나는 아산에서 생을 마칠 것이고 자네는 금산에서...”

 

아니 무슨 최애 제자 라면서, 죽을 날을 미리 알려줘서 인생에 초를 치고 계신담. 토정비결에는 백성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70% 이상은 좋은 말만 있는데, 꼭 제자의 죽음까지 예고 했어야 했나? (팩트 체크 : 이지함은 훗날 아산현감으로 부임하여 1년 후 그 곳에서 사망. 예언 16년 후 임진왜란 발발, 소름 쫙! 조헌은 임진왜란 중 의병장으로 일어나 금산 전투에서 사망. 후덜덜)

 

결혼 초기 처가에 머물던 이지함이 어느 날 밤 식솔들에게 최소한의 짐만 챙기라고 지시를 하는데,

 

“서방님 아닌 밤 중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인 미안하지만 모든 시그널이 부인 집안의 멸문지화를 가리키고 있소. 안타깝지만 일단 우리는 서쪽으로 피해야 할 것 같소이다.” (팩트체크 : 얼마 후 이지함의 처가는 역모죄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어)

 

이지함이 전국을 유랑 하는 와중 펼친 활약상 & 명성은 최고위층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특채로 경기도 포천현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어. 이제 각종 SNS를 통해 제보 받은 이지함의 미담을 쏟아 낼 테니 모두들 훈훈해질 각오 단디 하셔!

 


 

<미담 1>

 

“아니 첫날부터 군기 잡으려고 그러시나 참나! 전국에 명성을 떨치던 처사라 임금께서 특별채용 하셨다는데 소문이랑 영 다르구만.”

 

“그러게나 말이야. 항상 백성만을 생각한다는 양반이 9첩 밥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물리라고 하니, 역시 벼슬에 오르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가봐.”

 

“나으리. 20가지가 넘는 반찬을 올렸는데 또 물리치셨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지금 타의적으로 1일 1식 하는 백성이 태반인데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나으리. 그게 아니옵고 새로 부임하신 현감님께서 오늘 마련한 두 번의 상은 주민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오곡밥과 나물국 외에는 절대 올리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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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2>

 

“여봐라 저 고을 한 가운데 어울리지도 않게 있는 연못을 당장 메우도록 하거라.”

 

“아니! 지금 미치신 거 아닙니까? 저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를 임금님께 진상을 하는데 그 연못을 메우라니요?”

 

“너는 눈과 귀를 백성을 위해 열고 있지 않구나? 백성들이 농사 지을 시간에 진상 할 고기를 잡느라 효율성이 제로에 가깝고,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더라. 자네는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모든 책임은 내가 독박으로 뒤집어 쓸 것이니,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로나 하게.”

 

“아니 그래도... 어명인데... 저야 머 까라면 까겠지만.”

 

“옛 성인들 말씀에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백성이 굶어 죽어 나가는 판에 먼 놈의 민물고기가 중요하단 말이냐.”

 

 

<미담 3>

 

“오늘 부로 우리 고을 국유지에 움막을 짓고 그 이름을 ‘걸인청’이라고 명 하노라. 그리고 지금 당장 나가서 걸인들을 모아 그곳에서 기거하게 하도록 하라.”

 

“나리의 큰 뜻은 알겠사오나. 걸인이 한 두 명이 아니옵니다. 그 자들에게 한 두 끼 음식을 제공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온데, 그렇게 무작정 모아 놓으라 하시면 행정적으로 문서적으로도 참으로 난감하옵니다.”

 

“나라가 백성들의 가난을 구제하지 못해 그들이 걸인이 되었으니, 나라가 재기를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내가 한 명 한 명 붙들고 기술과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다. 아프니까 백성이다 하고 참고 견디라고 하는 위로가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오잉? 마치 노숙자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슈’라는 잡지 같은 걸 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익히 물물의 유통과정과 핫 아이템의 정보를 걸인들에게 가르치며, 스스로 돈을 벌어 재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조금 부족한 자들에게는 짚신 묶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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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거니! 너는 셈은 느린데, 손재주가 아주 탁월하구나. 그렇지. 약간 왼쪽으로 꼬아보거라 그것이 요즘 트렌드 이니라. 그렇지! 아이구 잘한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짚신이 충분히 만들어 지면 손님 응대법과 흥정법에 대해서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줄 것이다.”

 

“나리 참말로 감사하구만유. 양반 중에서 나리처럼 지한테 이리 친철하게 말씀해 주신 분은 없었구만유. 심지어 천민들도 지가 모자란다구 무시하는디. 나리 은혜 절대 잊지 않겄시유.

 

 

<미담 4>

 

“나리... 제발 이 상소문만은 조정에 올리지 마십시오. 나리가 오직 백성들만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제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나리의 생각은 시대를 너무 앞서가고 있습니다. 장사를 하는 양반들은 사회에서 바로 매장되는 분위기입니다. 어쩌자고 이런 상소를 올리려고 하십니까.”

 

이 당시 양반 사대부들은 굶어 죽으면 죽었지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금기시 하였어. 더군다나 장사를 한다는 것은 영혼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풍조였어. 그런데 이지함이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어.

 

“전라도 만경현에 가면 어종이 풍부한 섬이 있고, 황해도 풍천부에는 소금을 구울 수 있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섬이 있습니다. 이 섬들을 소인에게 임시로 빌려 주신다면 제가 고을 주민들과 함께 2-3년 안에 몇 천 섬의 곡식을 만들 내겠습니다. 수익율 1000%가 가능합니다. 성리학도 중요하지만 일단 백성들이 배불리 잘 먹고 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놀고 있는 땅과 자원을 개발하지 않고 백성들을 굶기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지함의 상소는 조정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당연히 채택되지 않았어.

 

“하여튼 처사니 하는 이런 것들은 저래서 안돼. 양반 사대부는 가만히 있어도, 배불리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무슨 백성들을 위한다고 혼자 저리 까불긴 까불어. 다 인생 업보지 머. 누가 흙수저로 태어나랬나.”

 

이지함은 자신의 예언대로 2번째 부임지인 아산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했어. 그 동안은 탐관오리들이 병사를 하면, 백성들은 또 어떤 새로운 유형의 탐관오리가 올까? 그 놈이 그 놈이겠지 해서 그리 슬퍼하지 않았다고 해. 하지만 이지함의 부고는 온 고을을 비통함에 빠트렸어.

 

“아이고. 하늘이 주신 우리 나리 같은 양반은 이리 빨리 데려가시고, 백성 등골 빼 먹는 사대부는 천수를 누리니 참말로 불공평 하구만유. 세상이 우째 이리 지랄 같대유.”

 


 

늘 이런 식이라고 한탄만 하지 말자구. 우리 역사를 보면 기득권의 온갖 박해와 탄압에도, 약자의 편에 서는 이지함 같은 슈퍼 히어로가 끈질기게 솟아 나고 있어. 시대가 어렵고 삶이 팍팍해도 새로운 국민영웅의 출현을 기대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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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토정비결이 본격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건 이지함의 사후 200년이 지난, 19세기부터 라고 해. 생전이나 사망 직전에는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어. 다만 이지함이 역학에 능하고 언제나 백성들을 위한 마음이 있었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이름 자체 만으로도 브랜드화가 된 토정의 이름을 빌려 펴낸 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고 해. 뜬금없이 ‘시열비결’ 이라고 하면 책이 팔리겠어? 사후 200년이 지나도 백성들에게 먹혔던 이름.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백성들을 바라봤던 토정! 그래서 토정비결의 내용 70% 이상이 좋은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해.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걸인에게 짚신 꼬는 법을 가르쳐 주던 다정한 토정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아?

 

“여보게. 자네는 올해 운수 대통일세. 허니 주위도 한 번 둘러보고 힘이 부족한 사람은 자네가 같이 끌어주게.”

 

“이런. 자네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좋네 그려. 허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분명히 자네를 도와줄 보이지 않는 손이 나올 것이니 너무 염려 말게.”

 

“에이. 나리는 순 엉터리시구만유. 나리 말씀대로라면 조선 팔도 굶어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인데. 헤헤 그래도 나리가 그리 말씀해주시니 맘에 위로는 되는구만유.”

 

토정비결의 원작자는 이지함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 제2의 이지함의 출현을 기대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합쳐진 공동저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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