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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2%에 불과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2천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약 40만 명이 개신교였던 것이다. 한편 2015년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천만 명 중 19.7%, 약 967만 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1945년에 비해 인구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70년 만에 개신교 인구가 40만에서 960만까지 늘어난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단순한 통계적 수치이긴 하나, 이러한 폭발적인 증가는 그동안의 기독교 역사에 자주 있어왔다. 한국교회가 전세계 기독교계의 연구대상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걸까?

 

기독교의 급성장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기복신앙, 정치적 특수성, 도시화로 인한 가족 구도의 변화

 

‘천지신명’ 혹은 ‘하늘’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하나님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큰 거부감이 없었고, 기독교의 죄 사함에 대한 교리가 친일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해줘서 친일 정치세력이 국가차원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또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도시화로 가족 구도가 변화했고, 교회는 소외된 인간들의 공동체로서 역할을 했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만 한국교회가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내부에서 성경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가장 대표적인 발판은 ‘전도’였다. 격동의 시기에 외쳤던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한 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 표어이기도 했다. 표현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측면이 있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간결하면서도 의미전달을 분명하게 할 수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좋건 싫건 간에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파급력 또한 컸다.

 

어떻게 이토록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걸까? 선조들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천국’이라는 안정감을 심어줌으로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했다. 그와 함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며 내세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쳤다고 알려진 건 故최봉석(崔鳳奭, 1869-1944)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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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대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최 목사는 언행이 반듯했다고 한다. 평안함과 안정을 추구하는 삶보다 불편과 고됨을 견디는 참된 신앙인의 기개가 있는 인물이었던 듯 하다. 한국교회에서는 보통 ‘최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서울신학대의 허명섭 박사는 최 목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순수한 신앙으로 전도에 헌신했던” 한국교회사 속의 위대한 ‘전도대장’이었고, 예수 복음의 맛을 깊이 알았던 진짜 예수꾼이었다. 일신(一身)의 안일과 명예보다 주님의 명예가 더욱 소중함을 깨달았던 예수의 충복(忠僕)이었던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

 

그는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복 받고 잘살게 된다’는 결과론적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부유했던 삶을 뒤로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기도 하고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킨, 존경의 대상이었다. 故최봉석 목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자신의 삶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입증했다.

 

어째서 21세기 한국교회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이렇게 만들어 버렸을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먼저 이게 올바른 기독교적 메시지인지부터 알아봐야 하겠다. 기본적으로 성경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성경이 ‘인간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이러한 내용을 일부요약한 표어로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특히 ‘예수천당’이라는 단어에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와 연결점도 있다. ‘이신칭의’는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The Reformation)’ 핵심 사상이다. 한국교회가 너도나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니, ‘이신칭의’ 교리가 함의된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원리적으로 보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나 크게 흠잡을 곳이 없는 구호다.

 

하지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표어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믿고 난 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 사용하면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 작용할 수 있다. 사용자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봉석 목사를 제외하고, 과연 누가 자신 있게 자신을 삶에서부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믿기만 하면 된다는 편리함은 취하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삶의 부분은 버린 것은 아닐까.

 

 

신앙(信仰): 삶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들에 관하여

 

흔히 기독교인을 ‘신앙인(信仰人)’이라고 부른다. 믿을 신(信), 우러를 앙(仰)이라는 조합이 보여주듯, 특정 대상을 ‘믿고 우러르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에는 삶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전도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되는 행위를 한국교회에서는 ‘영접(迎接)’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단어 역시 맞이할 영(迎), 이을 접(接)으로 신과 인간의 만남까지만 언급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신앙’이나 ‘영접’ 등과 같은 단어를 매우 중하게 사용해왔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등한시됐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그 결과 길거리에서 아무나 외치는 말이 된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구호로만 사용되게 되었다. 한국교회에서 행해온 ‘노방전도(路傍傳道)’ ‘단기선교’ 등은 우리네 ‘삶’에 대해서 침묵한다. 길거리에서 던지는 도(道)를 전(傳)하는 행위로는 어떠한 삶의 증거도 찾아낼 수 없다.

 

처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쳤던 故최봉석 목사는 본인의 신앙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권능’이 있었던 것이고, 외쳤던 구호에도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셀프용서가 만연하고, 온갖 부정부패, 비리와 성폭력 소식으로 넘쳐나는 한국교회에서 아무리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쳐댄다고 한들, 누가 설득을 당하겠는가 말이다.

 

교회가 진리라고 믿는 성경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두 사람은 만 일 년 동안 그 곳 교회 신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 때부터 안티오키아에 있는 신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도행전 11장 26절>

 

바울이 그의 동료와 함께 1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친 사건을 묘사한 구절이다. 당시에도 믿는다고 바로 신앙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었다. 1년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믿사오니’ 한 마디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쳐대는 것으로 전도가 된다는 언급도 물론 없다.

 

 

바울: 설득과 논쟁을 벌였던 소통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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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그리스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떠난 여행에 주목해보자. ‘바울’은 총 3차례 여행을 떠났는데, 첫 번째는 3년에 걸쳐 14개 도시를 다녔고, 두 번째는 2년에 걸쳐 13개 도시를, 마지막 세 번째는 5년 간 20여 개의 도시를 누볐다. 총 10년에 걸쳐 여행을 했는데, 첫 번째 여행에서 다녔던 곳들을 재방문하였다. 자신이 세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믿음을 보다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고린도(Corinth)’나 ‘에베소(Ephesus)’에는 각각 1년 반, 3년간 머무르며 현지에 거주하는 이들과 직접 소통했다. 특히 바울이 그리스 ‘아테네(Athens. 성경에는 ‘아덴’이라고 되어있음)‘에 방문했을 때를 살펴보면 그가 선택했던 전도의 방식은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었단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유대 교도들과 토론을 벌였고 날마다 광장에 나가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도 토론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은 바울과 토론을 해보고 … ”

<사도행전 17:17>

 

토론과 함께 강론을 펼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설득을 통해 전도하려던 바울의 노력은 현재 한국교회가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듯 전도를 해온 것일까?

 

해방 이후 급성장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불어난 한국교회에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못했다. 덕분에 왕정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성경의 위인들이 ‘목사’로 둔갑했다. 전도와 성경에도 없는 ‘주일 성수’라는 이름으로 매주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길 독려했다. 아프고 힘들어도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못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는 가르침으로 신앙인의 방법론에 대한 방향을 비틀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없던 돈이 쌓이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삶에 대한 부분을 뒤로 감추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 가치관으로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구원을 얻으면 복, 돈, 명예, 성공 등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누가 고난 속에서 찾아오는 기쁨을 맛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를 원하겠는가.

 

 

결론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작성한 바울은 몇 달 혹은 몇 년씩 머물며, 사람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아감으로 자신이 믿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보여주려 했다. 단순히 내뱉는, 쉽고 단순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삶으로 보이고 토론과 대화를 통해 알렸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인격을 바탕으로, 여기에 ‘성령(Holy Spirit)’이 드러나야 함을 함께 주장한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를 예로, ‘외침’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외침은 ‘calling’ 혹은 ‘crying’의 영어식 표현을 번역한 단어로 실제 뜻은 ‘부르심’에 대한 대답을 뜻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외치’라고 했으니 우리도 ‘외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잘 이용해왔다. 쉬웠다. ‘믿으라’고 소리 지르는 게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삶이 드러나지 않았던 외침은 공허했다. 그 결과 지금은 아무도 이 구호로 교리를 전하력 하지 않는다. 과연 이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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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증거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아무나 나와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쳐서는 안 된다. 최봉석 목사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 전해야 설득력이 있다.

 

더불어 무조건 외쳐서도 안 될 것이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한국교회에는 지진이 났을 때 ‘교회에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정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다’고 말하는 이들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울과 실리의 말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바울이 한 말이 사실인지를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사도행전 17:11>